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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건②:여우와 새보다 더 고독하셨던 예수님

마태복음 한완상............... 조회 수 1961 추천 수 0 2007.12.18 20: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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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8:18-20 
설교자 : 한완상 형제 
참고 : 새길교회 
저는 지난 달 두 번째로 성지 이스라엘을 방문했습니다. 그 곳에서 머무는 동안 저는 예수님의 고독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고독한 예수님을 성지 곳곳에서 만나는 듯 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공기와 흙에서, 산과 계곡에서, 호수와 강물에서, 저지대와 고지대에서, 사막과 옥토에서, 그리고 시골길과 도시 한 복판에서 저는 예수님의 고독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오늘의 유대인의 삶 한가운데서 그러했습니다. 주님께서 1995년 6월에 다시 팔레스타인에 오신다면 또다시 외롭고 괴로운 가시밭길을 가실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한반도 남쪽에 오신다해도 역시 그 많은 크리스천들 속에서 처절한 고독을 느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것은 주님을 외롭게 하고 괴롭게 했던 사람들, 그들의 제도들, 삶의 양식들, 그 위선과 억압이 오늘도 옛날처럼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당시 기존의 삶의 방식과는 확연하게 다른 새로운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확실히 새로운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당신은 외로웠고 괴로웠던 삶과 죽음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당시 세계화되었던 로마식 삶도 아니요, 유대의 율법주의 삶도 아닌 새로운 삶을 외롭게 사시다가 온갖 굴욕과 고난을 당하시었습니다. 저는 이번 여행에서 자기 고향 땅에서 배척받으시면서 외롭게 사셨던 주님의 행적을 새삼 느꼈기에 거기서 얻은 은혜를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주님의 고독의 외적 조건들부터 잠시 살펴봅시다.
Plummer는 "예수님 생애는 빌린 마구간에서 시작하여 빌린 무덤에서 마치셨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분의 삶의 시작이 객관적으로 볼 때 아주 보잘것없는 마구간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묻힐 때도 남의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먼저 주님의 삶을 외롭게 만든 두 가지 객관적 상황에 주목합시다. 하나는 로마의 식민지 상황입니다. 로마의 호구령으로 식민지 백성들은 어쩔 수 없이 모두 고향 땅에 내려가야 했습니다. 내키지 않는 괴롭고 외로운 여행 중에 아기 예수는 삼류여관의 삼류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인간적으로나 세속적으로 보면 비참하고 비속한 탄생이요, 외로운 탄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태어나자마자 로마세력과 결탁한 권력의 탄압으로 이집트로 피난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아프고 외로운 긴 여행을 떠나셔야 했습니다.
둘째로, 유대종교의 근본주의와 율법주의가, 그리고 유대인들의 민족주의와 선민주의가 예수님을 외롭게 했습니다. 예수님의 첫 설교는 처음에는 감동을 주었으나 예수님의 탈 민족주의적(脫民族主義的) 말씀증언으로 주님께서는 하마터면 죽임을 당할 뻔했습니다. 나사렛의 절벽 언덕을 보며 주님의 고독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 환영받을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 속에 당신의 고독은 진하게 농축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자체가 위선적인 유대 종교와의 갈등과 마찰로 점철되었고 그 속에 당신의 고행(苦行)과 고행(孤行)의 흔적이 뚜렷하게 각인 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주님 고독의 절정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외로운 것은 객관적 상황에서 비롯되기보다는 가까운 사람들, 가깝게 몰려오는 사람들 속에서 잉태됩니다. 가족, 친척, 친구들 속에서 느끼는 고독이야말로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독이요 고통입니다. 주님의 고독이 바로 이러한 고독임을 나는 이번 여행에서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곳곳을 보면서 저는 그 고독을 느끼는 듯 했습니다. 먼저 제자들이 예수님을 외롭게 했습니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살았던 제자들이 말입니다. 저는 빌립보의 가이사라 지방에도 가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주님은 중대 결심을 하시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위험한 예루살렘으로 향한 엄숙한 선교여행을 작정했습니다. 바로 이때 주님께서는 당신을 세상이 어떻게 보는지 제자들에게 물으셨고, 제자들이 과연 당신을 어떻게 인식하는 지를 물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가이사라 빌립보부터의 여행은 심각한 고난과 고독의 선교여행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겉으로 보기에는 맞는 정답을 했습니다만, 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영광 받으러 간다고 착각했습니다. 황제 취임하러 간다고 소망했기에 주님께서 고난 당하시고 죽임 당하실 것을 예고했을 때 바로 그 베드로가 주님을 말렸습니다. 바로 그 때 주님은 참으로 외로웠습니다. 으뜸 제자라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메시아 됨을 세속적인 왕(王)됨으로 착각했으며, 예수님의 가슴속에서는 찬바람, 고독의 찬바람이 휘몰아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심지어 철없는 제자들의 어머니도 예수가 황제가 되면 자기 아들들이 좌의정, 우의정 되기를 바랐으니, 주님의 속마음은 얼마나 탔겠으며, 외로웠겠습니까?
예수님 주위에 몰려드는 사람들(제자를 포함해서)이 기후의 변화는 볼 줄 알면서도 시대의 징조는 깨닫지 못했을 때, 특히 다가오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 주님은 한탄하셨습니다. 저는 예루살렘의 눈물교회를 방문하여 교회 창 넘어 예루살렘 시를 바라보면서, 2,000년전 예루살렘의 멸망을 미리 내다보고 눈물 흘리셨던 외로운 사나이 예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 시대를 앞서가면서 앞날에 닥칠 환난, 그것도 오늘의 무지와 탐욕에서 비롯된 장차의 환난을 미리 내다보시는 분들의 고독은 모두 예수의 고독이라 하겠습니다.
변화산에서 베드로가 "여기가 좋사오니..."하면서 그 황홀한 체험 속에 계속 머물러 있고 싶어했을 때, 주님은 한심한 제자들 속에서 또 한번 고독을 씹었을 것입니다. 산밑에 사는 민중들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덜어주는 선교활동이 시급한데 몰 역사적(沒歷史的) 신비체험에 눌러 앉으려는 제자들은 주님을 외롭게 하셨습니다.
제가 겟세마네 동산에 갔을 때, 겟세마네교회 안에 있는 두 그림에 주목했습니다. 하나는 주님이 피땀 흘려 기도하는 그 순간, 제자 셋은 졸고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스승의 아픔과 사투(死鬪)의 고독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해 꾸벅 졸고 있는 제자들 속에서 스승의 외로움은 얼마나 처절했겠습니까? 또 하나의 그림은 몽둥이를 들고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던 사람들 앞에 주님이 썩 나서며 "내가 바로 너희들이 찾는 예수다"하고 밝혔을 때 집으로 온 사람 하나가 뒤로 넘어지는 그림이었습니다(요한 18:6). 스승이 왜 체포되어야 하는 지를 깊이 깨닫지 못해 겁에 질려 있던 한심한 제자들의 안전을 생각하시어 스스로 나를 잡아가되 이 제자들은 손대지 말라고 하신 주님의 속마음은 참으로 고독했을 것입니다. 나 하나만 잡아가라고 분부하신 우리 주님 모습을 그림을 통해 보면서 참으로 훌륭한 지도자의 품성을 확인하였지요. 그러나 그분의 고독을 또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후만찬 때 베드로는 "주님, 나는 감옥에도, 죽는 자리에도, 주님과 함께 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누가 22:33)라고 장담했을 때 주님께서는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번이나 모른다고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하실 때 주님은 속으로 이미 고독의 눈물을 흘리며 우시고 계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비굴함, 비겁함을 미리 체험하시는 스승의 고독, 게다가 최후만찬 때 주님은 또 다른 고독의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가롯유다에게서 느끼신 고독입니다. 남달리 사회정의감에 불탔던 민족주의자, 가롯유다는 이 때 이미 예수를 배반할 뜻을 깊이 품고 있었습니다. 그 유다의 눈빛을 보면서 주님이 느끼신 연민, 괴로움, 외로움은 무척 크셨을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 모두가 가롯유다의 배반을 모르고 있는 터에 말입니다.
제자들의 한심한 작태만 아니라 예수님에게 구름처럼 몰려드는 군중 속에서 주님은 또한 아픈 고독을 느끼셨습니다. 민중 하나하나에 대해서는 애틋한 사랑을 느끼셨던 주님께서 예수님 따르려는 군중, 구름처럼 몰려드는 군중에 대해서는 왜 기피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세상 정치인들과 너무나 다른 예수님의 진면목을 보게 됩니다. 세상 정치인들은 민중 하나하나의 인격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면서도 다수 군중에 대해서는 비상한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몰려드는 군중을 피하시어 홀로 산에 기도하러 가셨던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교주가 되려는 사이비 종교지도자들과 확연히 다른 점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 의젓한 고독을 확인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교주로 모시려했던 사람들에게 그러한 충동을 아예 갖지 않게 하시기 위해 병을 낫게 해 주실 때마다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고 일러 주셨습니다. 저는 베데스다 연못이었던 곳을 방문했습니다. 38년간 병으로 누워 있던 병신환자를 고쳐주시면서 하셨던 주님의 말씀을 다시 듣는 듯 했습니다. 교주가 되려는 인간들은 "내 안수가 너를 낫게 했으니 너는 나를 따를 것이며 나에게 충성할 것이며 나에게 전 재산을 바칠 것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라고 말씀해 주시면서 교주 필요없이 하나님 은혜로 자립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셨으며 구름처럼 몰려오는 군중을 피하시어 고독한 경건 시간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 써클에 끼고자 했던 당시 종교지도자에 대해 하신 말씀입니다. 그도 주님을 영광의 메시아, 제왕(帝王) 메시아로 믿어 그를 따르려고 했습니다. "선생님, 나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 가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주님께서는 별안간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이것은 주님의 신세가 여우나 새보다 더 외로운 신세임을 고백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십자가의 고난, 골고다의 아픔을 이겨낼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디든지 따르겠다고 했을 때, 그것도 얄팍한 계산이나, 값싼 축복 받으려는 저의를 갖거나 또는 영웅주의적 정의감에 들떠 주님을 따르려 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주님은 참으로 아픈 외로움을 느꼈던 것입니다. 새보다, 여우보다 더 외로운 자신의 실존을 느끼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매 형제 여러분.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틀림없이 또 다시 그 외로움을 느끼실 것입니다. 한국 땅에 오신다면 주님에게 값싼 축복을 받고자 구름처럼 몰려 올 한국 크리스천을 보고 주님은 뼈아픈 외로움을 느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땅에 오시더라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2,000년 전 주님을 분노케 했던 종교적 위선은, 그 율법주의는 지금도 시퍼렇게 살아 있습니다. 통곡의 벽에 가서 그곳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유대 율법주의자들 모습을 보고 저는 예수님의 분노와 고독을 느끼는 듯 했습니다. 안식일이 되면 몸이 아파도 스스로 약병마개를 따지 않고 이방인인 우리 교포에게 따달라고 하는 안식일 준수주의자들은 오늘도 예수님을 절망시킬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마당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아직 그곳에는 주님의 샬롬이 없습니다. 샬롬 없는 예루살렘에서 또 다시 고독에 몸을 떨 평화의 우리 주님을 저는 그곳에서 만나는 듯 했습니다. 오늘은 6.25입니다. 6.25는 분단된 조국에서 평화가 깨어진 사건을 회상하는 날입니다.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를 부르면서 동족을 증오하는 노래를 불러야 하는 反 샬롬의 날이기도 합니다. 샬롬의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다면 6.25날 외로움에 떨며 슬퍼하실 것입니다. 마치 때의 징조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다가올 예루살렘의 비극을 예견하시면서 고독의 한탄, 고독의 눈물을 흘리셨던 주님께서, 탈냉전의 흐름 속에서도 냉전적 증오를 계속 강화하고 있는 이 땅의 무리들을 보시며 주님께서 한탄의 눈물을 흘리고 외로움의 한탄을 토해내지 않으시겠습니까!
주님을 외롭게 하는 우리의 잘못, 우리의 교만, 우리의 천박한 탐욕을 모두 십자가에 못박기로 우리는 결단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을 새와 여우보다 더 외롭게 하는 저희들을 주님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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