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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에 침묵하시는 하나님의 아픔: 삼풍의 교훈

마태복음 한완상............... 조회 수 1944 추천 수 0 2007.12.18 20: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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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7:21-23 
설교자 : 한완상 형제 
참고 : 새길교회 
사건이란 항상 우발적이고 충격적이며 여러 가지 고통을 던져 줍니다. 바로 이 같은 성격 때문에 사건을 올바르게 해석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해석이 쉽지 않습니다. 2천년 전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것도 사건입니다. 왜 가장 의(義)로우신 분이 가장 흉측한 징벌을 받아야 했는지 당혹스러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류 최대의 수수께끼에 대한 해석이 기독교 복음의 단서였습니다.
심각한 사건일수록 그것으로부터 큰 감동의 교훈과 올곧은 해석을 받아야 합니다. 그 교훈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요 낙후될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 우리는 삼풍백화점의 붕괴를 목도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엄청난 세계적 사건이었습니다. 그 경악, 그 당혹, 그 고통은 전세계로 번져 갔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십니까? 세 가지 다른 차원에서 우리는 이 사건에서 소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차원은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교훈입니다. 종교인 특히 기독교인들의 몰 윤리적(沒倫理的) 삶의 비극을 확인하게 됩니다. 백화점 주인은 〈착실한〉 장로교 안수집사입니다. 그의 몰 윤리적 치부행위(致富行爲)는 오늘 이 땅의 기독교윤리의 부재를 증명해 주는 듯 합니다. 이 땅에는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아예 없는 듯 합니다.
일찍이 예수님은 구원에 이르는 첩경으로서 애신(愛神)과 애린(愛隣)을 강조하셨습니다. 이 중 이웃사랑은 곧 기독교윤리의 핵심입니다. 이웃사랑 없는 하나님 사랑은 가짜입니다. 윤리 없이 신앙은 헛것이 되기 쉽습니다. 이웃은 누구입니까? 불 의한 세력에 의해 억울하게 고통 당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 아닙니까? 그렇다면 삼풍백화점 주인은 이웃노릇 하기는커녕 불한당 노릇을 한 셈이 되었으니 그는 주님의 말씀을 짓밟은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또 주님께서는 저희들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범죄로 어두워지고 부정부패로 썩어 가는 세상을 밝고 맑게 변화시키는 윤리적 명령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기독교 신자들이 얼마나 모범적으로 이 주님의 명령을 거역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입니다.
눈을 크게 떠서 한국의 가정과 학교와 사회를 봅시다. 가정에도 도덕과 윤리를 가르치는 어른이 없습니다. 다만 〈공부해라〉를 외치는 기성세대는 있습니다. 학교에도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고 배우는 마당이 없습니다. 교회는 어떻습니까? 한국교회에는 넘치는 〈영적 신앙〉은 있어도 윤리의식은 이미 고갈되어 있습니다. 한국 크리스천들은 윤리문제 대해서는 신앙적으로 무관심합니다. 이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비극입니다. 바로 이런 교회 현주소에 대한 하나님의 경종과 진노가 이번 삼풍사건에서 계시된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교훈입니다.

둘째 차원의 교훈은 극적으로 구출된 젊은이들의 몰 종교성(沒宗敎性)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순간순간 다가오는 극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지극히 세속적이고 일상적인 관심을 지니면서 그 위기를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종교와는 거리가 먼 것들을 생각하면서 죽음과 대결했습니다. 찬 커피, 아이스크림, 시원한 수영장, 여자친구 등을 생각했고 손 잡히는 장난감으로 힘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확실히 종교이후시대(宗敎以後時代)의 한 모습 같기도 하고, 신앙이전(信仰以前)의 상황 같기도 합니다.
여하튼 그들의 초인적 인내가 신앙행위와 무관하다는 것은 크리스천들과 종교인들에게 하나의 〈충격〉일 수 있습니다. 죽음과 신앙간에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일까요? 그들의 물 종교적 태도가 신선한 감동마저 주었으니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어떤 시인은 그들을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죽음을 통과한 무서운 비밀을 들고,
땅 밑의 거대한 관 뚜껑을 열면서
거구를 어깨에 맨 아틀라스처럼 힘들게
아아 너희들이 돌아왔니!
못 돌아온 이웃들의 영혼을 들고
상처 입은 날개를 퍼득이면서
너희들이 땅 밑에서 솟구쳐 올라 왔을 때
아니야, 꿈도 기운이 되고,
다시 꿈꿀 수 있을 거라고...

이 시 속에는 몰 종교적 꿈이 종교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들 젊은이의 세속적 작은 관심은 종교적으로 과잉 포장된 한국 크리스천과 교회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세 번째 차원의 교훈을 만나게 됩니다.

세 번째 불행에 침묵하시는 하나님의 아픔을 체험합시다. 깔려 억울하게 죽은 자들 중 간절한 기도를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했던 분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왜 그들의 기도는 묵살되었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두 가지 우리의 이미지 또는 확신이 흔들리게 됨을 느낍니다. 전지전능(全知全能)의 하나님과 자비(慈悲)로우신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실존 속에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렇게 무력(無力)하실까?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그렇게 잔인할 만큼 무관심하실까?" 이런 질문들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의 실마리를 찾게 됩니다. 먼저 우리의 일상화된 신앙, 과잉 종교화된 신앙의 문제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 공동체 속에 깊이 침투했던 〈과잉신앙태도〉를 나무라셨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이것을 확인합니다. 〈주여 주여〉라고 부르짖는 사람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산 위의 설교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도 바로 이 같은 과잉신앙과 영적으로 과잉상태에 있는 사람과는 다른 사람, 곧 신앙적으로 겸손한 사람을 지칭하신 것입니다. 외양으로 과잉 종교냄새를 피우는 것은 자랑일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실마리는 다윗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식을 살려달라고 처절하게 기도했던 다윗의 기도를 묵살했던 하나님께 그는 놀라운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 자식이 죽자 다윗은 몸을 씻고, 기름을 마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성전에 들어가 경배 드린 뒤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다윗의 성숙한 신앙을 보게됩니다. 기복적 반대급부를 바라지 않았던 다윗은 위대한 신앙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태도보다 더 중요한 교훈을 우리는 침묵하시는 하나님 속에서 발견해야 합니다. 이천년 전 우리 주님은 삼풍백화점에서 깔려 죽은 사람들보다 더 억울하게, 더 고독하게, 더 비참하게 나무에 달려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뿐입니까? 주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처절하게 버림을 당하셨다고 느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마태 27:45)라고 절규했습니다. 그의 고통, 그 억울한 죽음에 침묵하셨던 하나님께 대한 절규였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모든 억울한 죽음을 대신하셨고 그 고통을 대변하셨습니다. 억울하게 죽어 가는 모든 실존자들 곁에서 함께 죽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그 고독하고 억울한 죽음은 과연 모든 것의 끝장입니까? 아닙니다. 〈죽음이 끝장이 아니다〉라는 응답에서 기독교는 탄생한 것입니다. 예수의 그 고독한 죽음, 비참한 죽음 밑바닥에서 삶의 빛, 희망의 광채가 터져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부활사건이요, 이 사건에 대한 증언이 초대교회의 기초가 된 것입니다. 침묵 속에 잉태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곧 부활을 준비하는 하나님의 아픔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역설적 진리입니다.

이제 우리는 삼풍의 비극에서 세 가지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삼풍비극을 거울삼아 그 속에 투영된 우리들의 몰 윤리적, 반도덕적 행위를 보고 고쳐나가야 합니다. 한국교회 안에 윤리교육을 세워야 합니다. 또한 이 거울을 통해 몰 종교적 태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외양적 과잉종교행위를 반성해야 합니다. 주여 주여만 부르짖는 한국 크리스천들은 반성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거울을 통해 다윗의 성숙한 신앙을 본 받으면서 가장 억울하고 가장 고독하게 죽임을 몸소 당하셨고 지금도 당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아픔을 이해해야 합니다. 부당한 비극과 불행에 침묵하시는 듯 하지만 아픔을 겪는 사랑의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보는 힘이야말로 참으로 영적인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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