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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선포와 권위

마태복음 소재열 목사............... 조회 수 1906 추천 수 0 2007.12.22 01:3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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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5:1-11 
설교자 : 소재열 목사 
참고 : 의정부평안교회 http://www.uppch.org 
거북이는 참 약해 보이는 온순한 동물입니다. 그러나 거북이의 목을 강제로 뺄 수 있는 그런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무서운 힘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거북이의 체중은 12-18㎏밖에 되지 않지만 70-90㎏ 나가는 사람도 목을 움츠린 거북이의 목을 결코 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거북이의 목을 빼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북이를 따뜻한 화롯불 가까이에 놓아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북이는 목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 중에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태양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거센 바람이 못 벗긴 나그네의 옷을 태양이 계속 빛과 열을 내리니까 그 나그네가 자연스럽게 외투를 벗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같은 이야기는 우리들의 마음을 여는 비결은 강압적인 태도가 아니라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사랑의 힘, 즉 동기부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강압적으로 명령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해서 순종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 주십니다. 그 동기를 부여해 주는 힘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권위를 갖고 있는가를 본문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보편적으로 본문 말씀을 메시아의 사역과 연결시켜서 생각하지 않고 곧바로 우리들에게로 가지고 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무조건 우리들 더러 복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같은 복을 받으려면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까? 첫째 둘째 하면서 8가지를 내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 8가지를 충족시켜 내가 복을 얻기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먼 당신”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나와 거리가 너무나 먼 말씀인 듯한 인상을 깊게 심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은 특별한 종교인들이나 지키는 말씀 쯤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들을 황홀경으로 빠져들게 하는 감격적인 말씀입니다. 우리들의 삶을 송두리째 휘감는 생명의 말씀이요, 능력과 권세가 있는 말씀입니다. 이같은 말씀이 우리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생명의 길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본문의 앞 뒤 전후 문맥과 마태복음이라는 상황

우리들은 본문 마태복음5:1-11절 말씀이 어떤 앞 뒤 전후 문맥 속에서 주어진 말씀입니까? 특별히 마태복음이라는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신 말씀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이같은 사실을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아버지로부터 한 장의 편지를 받았다면 아버지는 어떤 의도를 가지시고 이 편지를 나에게 보내 주셨는지를 살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주시고자 하신 예수님의 의도를 분명히 알아야 우리들은 그분이 기뻐하신 뜻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살펴보기로 한 본문 말씀은 산상설교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설교를 하셨다는 의미에서 산상설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오늘 우리들은 예수님의 한편의 설교를 들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산상 설교는 5:1절에서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셔서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설교는 7:28절에서 마치십니다. 7:28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말씀을 마치시고 8:1절에서는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산상설교는 5:1-7:29절까지 이어지는 한편의 설교라는 점입니다. 이같은 한편의 설교 초반부를 장식한 말씀이 우리들이 오늘 살펴보기로 한 본문 말씀입니다.
다음으로 마태복음이라는 상황을 살펴보면 마태복음의 일차 독자는 유대인들입니다. 그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였습니다. 거부할 뿐만 아니라 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였습니다.
마태라는 기록자는 그 유대인들을 상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에 예언되어 있는 그 메시아 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구약이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합니다. 자신들이 생각할 때 메시아란 바로 정치적인 메시아였습니다. 모세와 같이 자기 민족을 구원한 위대한 선지자, 혹은 다윗과 같은 경제적인 평화와 부를 가져다주는 그런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이 볼 때 예수님이 이런 일을 했습니까? 예수님이 모세와 같이 로마의 지배하에 있는 자기 민족을 정치적으로 해방시켜 주었습니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다윗의 아들로서 다윗과 같은 경제적인 풍요를 가져다 주었습니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메시아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거부했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지고 오는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정치적인 해방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이 땅에서 경제적인 부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의 메시아를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교정시켜 주셨습니다. 자신은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의 개념도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의 그런 복이 아닙니다. 오직 진정한 복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이해하고 믿는 것입니다. 자칭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거부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회하고 자복하여 회개하므로 구원의 반열에 서있는 사람이 복에 사람이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보통 신앙생활을 할 때 예수님은 우리 가정의 건강을 지켜 주실 때에만 그분은 마치 우리들의 구원자인 듯한 생각들은 분명 잘못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우리들의 생각 속에 가두어 믿으려고 하는 어리석음이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 회개가 우리들을 진정한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으로 거듭나게 합니다. 유대인들은 모세 외에는 없었습니다. 애굽에 종으로 있던 자기 민족을 구출해 주는 지도자가 바로 모세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모세는 영웅입니다. 모세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 심지어 예수님도 모세 밑에 놓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모세보다 우월한 분이심을 증거하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아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산에서 자신이 직접 말씀을 선포합니다.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를 누구로부터 받아 선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선포합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권위의 선포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권위의 상징으로 산에서 올라가 앉으셔서 가르치셨다고 1절에서 말씀합니다. 당시 랍비들은 권위의 상징으로 앉아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세보다 우월한 말씀의 선포자, 혹은 자신이 말씀을 계시하는 계시자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만이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원칙에 볼 것 같은 예수님은 모세와는 전혀 다른 분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본문 말씀 속에서 예수님의 권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이 끝날 때 마태는 이런 말씀으로 산상설교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7:29) 아멘.

2. 심령이 가난한 자와 애통하는 자의 복(3-4절)

본문 3-4절을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한가지 원칙을 확인해야 합니다. 천국을 소유하는 조건을 “심령의 가난”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심령의 가난”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천국을 소유하는 조건이 됩니까? 천국을 소유한다는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심령이 가난해야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은 오직 예수님 외에는 없다고 말씀합니다. 이런 원칙을 본문에 적용해 보면 심령이 가난해야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이 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의 고백과 연결 됩니다.
유대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가 모세의 법을 잘 지켜야 구원이 있고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의 율법이 구원의 유일한 조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만 그 율법을 주었다고 생각한 그들은 자신들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과 천국은 그런식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을 고백한 심령의 가난한 자들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심령이 가난하고 부족하고, 죄인이라고 고백한 자들에게 천국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죄를 회개하고 통회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합니다. 이 위로는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요, 은총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런 믿음과 신앙고백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사랑과 구원을 베푸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들은 종교적인 어떤 열심만 있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착각입니다.
이런 착각 때문에 우리들은 얼마나 교만했으며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일하게 되었습니까?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양보가 없고 회개가 없습니다. 돌이키지 않으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반열에서 제외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의 분명한 말씀의 의도를 읽어야 합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임할 것입니다.

3.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5-6절)

본문 5-6절에 보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온유하다는 말은 우리가 보통 마음씨가 착하다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겸손한 태도를 가리킨다. 왜 겸손한가?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았기에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들은 할말이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들을 구원하지 않아도 할말이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저주의 형벌을 받아 마땅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저주를 대신 받으시게 하셨습니다. 그의 죽으심은 우리들을 살려주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할 뿐입니다. 그래서 겸손하게 됩니다. 이런 자를 가리켜 온유한 자라고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을 구원하시는 그것을 성경은 “의”라고 합니다. 의에 대한 개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 역시 오직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아니었던들 우리들이 어떻게 빛 가운데 살아갈 수 있었던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란 바로 이런 구원을 기대하며 바라며 간구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복이 임합니다. 배부른다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족한 생활을 말합니다. 불평이 아니라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여 만족한 상태를 “배부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4. 긍휼이 여기는 자와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7-8절)

계속해서 7-8절에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합니다.
여기 “긍휼히 여기는 자”란 용서하는 정신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리킨다. 마태복음 6:14-15절에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합니다.
또한 마가복음 11:25절에서도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고 했습니다.
내가 상대를 용서해 주었다는 그 조건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남을 용서해 주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하느냐면 “내가 하나님께 죄용서 받았다”는 그 감격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상대를 용서하지 못할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용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해서 판단하고 심판하는 심판자가 되겠다는 말과 같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께 용서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긍휼히 여기는 자들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들입니다. 고전6:11절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자들을 마음이 청결한 자라고 합니다.
또한 디도서 3:5절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들이야말로 마음이 청결한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 이런 자들은 이미 복받은 사람들입니다.

5. 화평케 하는 자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의 복(9-10절)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9-10)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예수님께서 화목케 해 주셨습니다. 화평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들은 하나님과 화평케 되었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화평케 하는 직책을 주셨습니다.
고후 5:18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머무는 곳이 분쟁일지라도 화평케 됩니다. 하나님과 원수져 있는 자들에게 예수의 복음을 증거해서 하나님과 화평케 하는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에게 복이 임합니다. 그런 복음을 증거하는 자, 즉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에게 복이 임합니다.
벧전2:19-21에 보면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핍박과 고난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런 고난과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결론적으로 11-12절 말씀을 읽고 끝 마치겠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11-12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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