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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마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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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소재열 목사 |
| 참고 : | 의정부평안교회 http://www.uppch.org |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우리는 사람들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이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기억하고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됩니다. 하는 일을 통해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의 하는 일을 정확히 알지 못함으로써 그 사람을 정확히 알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이미지는 ‘돈 벌어 오는 사람’으로만 생각하는 것과 같이 왜곡된 현상이 일어나더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일을 하셨는가’라는 그 분의 사역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예수님에 대한 왜곡된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성경과 예수님을 오해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성경에서 어떠한 일을 하셨습니까? 즉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통해서 그 분의 속성을 드러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넌 사건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분을 보여주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을 하셨는가를 정확히 확인하는 일은 하나님을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어떠한 일을 하셨는가를 확인해 봄으로써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 라는 이런 문제는 알 것 없고 “우리가 열심이 살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을 가지면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하고, 무엇을 했느냐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들의 신앙을 가능하게 해 주신 예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바른 믿음이 있을 때에 바른 봉사를 할 수 있습니다. 봉사 그 자체를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정신으로 봉사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자신을 자랑하는 봉사가 있을 것이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봉사가 있을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어떠한 일을 하셨는가를 살펴 봄으로써 예수님의 주님 되심과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살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믿음 위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본문의 배경
먼저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마태라는 성경 기자는 어떠한 시각으로 마태복음을 기록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마태라는 성경 기자는 자기 마음대로 자신의 인간적인 시각으로 이 성경을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마태를 통하여 강권적으로 역사 하셔서 기록하도록 하셨습니다.
성경의 본래의 의도에 충실하도록 역사해 주셨기 때문에 이 성경을 기록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 사랑이 구원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구원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지고 있습니다. 이같은 일을 위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특히 유대인들은 그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예수님이기를 원했느냐면 자신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고 로마로부터 억압받고 있는 그 고통으로 해방시켜주는 슈퍼맨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지금 특히 유대인들을 1차 독자로 해서 그들의 그릇된 시각을 교정시키고 있습니다. 그 유대인들이 잘 알고 있는 구약 예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 예언된 대로 오신 이 예수님이야말로 우리들의 진정한 구원자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마태를 통해 주신 이 말씀의 외침에 귀를 기울려야 합니다. 내가 지금 신앙을 어떻게 오해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신앙을 오해하면 생활 그 자체가 위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만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신 그 일을 오해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만 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길이 하나님의 원하신 길이라고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그런 교만을 부리면서 교회에 다닙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무엇을 믿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인데 교회에 다니고 직분을 맡았다는 것으로 교만을 부린다면 그것은 안됩니다. 그런 사람들의 말로를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마시고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외쳐진 말씀에 관심을 갖고 주시해 보십시오. 예화나 간증의 이야기가 없어서 은혜가 없다고 투정부리지 마시고 진정으로 성경이 말씀한 은혜가 무엇인지를 확인 해서 참으로 하나님이 원하신 신앙생활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자들이 바로 복의 사람들입니다.
2. 가르치는 사역입니다.
오늘 본문 35절 상반 절에 보면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는 사역은 예수님의 중요한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가르치셨고 백성들은 그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 두 관계는 매우 중요한 관계입니다. 가르침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르치시는 능력을 소유한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정직하게 “주님 말씀 하시옵소서. 저가 배우겠나이다”라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목사인 저 자신도 가르친다는 개념은 어떤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배우는 자세로 임합니다. 교회에서 성경 공부를 할 때나 목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 하면 그 권면과 가르침을 받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이것은 말세의 징조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간에 성경을 통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우리들은 가르침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고백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들에게 가르치시므로서 선생된 자로서 메시아 이심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마26:18에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고 하시므로서 예수님 자신이 선생이라고 말씀합니다.
마23:8에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진정한 선생님은 예수님이십니다. 그 선생님의 가르침 목적은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그 선생님 되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마 28:20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지켜야 합니다. 지키지 않고 배웠다고만 자랑하면 하나님께서 징계하십니다. 꼭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말세의 징조는 가르침 대로 지키지를 않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딤후3:14에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하십니다.
3.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본문 35절 중반절에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라고 하십니다. “천국 복음”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 복음”입니다. 마태는 “하나님의 나라 복음”이라고 하지 않고 “천국 복음”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신성모독 죄에 해당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유대인들과의 접촉점을 생각해서 “하나님”이라는 말을 “하늘”이라는 말로 대치해서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늘 하면 하나님을 연상합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들도 여기서 어떤 지혜를 받습니다. 복음을 증거할 때도 예수 믿지 않는 사람과 접촉점을 잘 생각해서 복음을 증거하면 좋습니다. 다른 이야기에 시선을 끌게 해서 결국 복음에로 집중할 수 있도록 우리들의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의 나라 복음의 핵심은 자신이 바로 “구원의 주”라고 선포합니다.
마4:17에서는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자신으로 말미암아 왔으니 회개하고 그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습니다. 믿지 않기 때문에 주님의 임재의 체험을 못 느낍니다. 주님과 동행한 임재의 체험을 못느끼기 때문에 죄를 범합니다.
내 곁에 계신 주님을 못느끼기 때문에 쉽게 좌절하고 쉽게 토라지고 교만과 자기의 아집을 내세웁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목사인 저 자신 역시 회개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자가 아니라 회개해야 하는 자입니다.
여러분 역시 회개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거룩한 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회개라는 것은 말로만 “회개합니다”라는 것이 회개가 아닙니다. 돌이키는 것입니다. 사기쳤으면 그것을 갚아야 합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죄를 범하고 나서 회개한다고 한다면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 회개의 생활입니다. 회개의 열매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회개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마 7:20-21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는 자는 회개의 열매, 혹은 믿음의 열매로서 하나님 뜻대로 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이 어떻게 우리들의 행위와 연결해서, 믿음의 표현으로서 행위로 인하여 심판을 받게 되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때의 행위는 그 행위 자체가 문제이기 보다는 그런 행위는 불신앙의 결과이기 때문에 그 행위대로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4. 모든 병을 고치셨습니다(치유의 사역)
본문 35절 하반절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합니다.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메시아의 권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이같은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신 사건에 대해서 마태는 마8:16-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합니다.
병을 고친 이유가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구약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서 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병고친 사건은 바로 우리들의 연약함을 짊어지시고 우리들을 구원하시는 구원자로서의 메시아를 증거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그런 이적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들의 연약함을 도와 주실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를 치유해 주실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그분을 의지해야 합니다. 남들은 다 나를 버려도 그분은 우리들을 버리시지 않습니다.
딤후4:16-17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아멘
바울은 말년에 자신의 곁을 다 떠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떠나버린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바울 곁에 계신 것을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우리와 늘 동행하십니다. 우리들의 연약함을 체험 하시고 느끼셔서 우리들의 사정을 잘 알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분을 의지하고 섬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서 이땅에 오셨습니다.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병을 치료하시는 일을 통하여 그분이 분명히 구약에 예언된 그 메시아임을 알게 하시고 믿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틀림없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의정부평안교회 http://www.uppch.org
우리는 사람들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이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기억하고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됩니다. 하는 일을 통해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의 하는 일을 정확히 알지 못함으로써 그 사람을 정확히 알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이미지는 ‘돈 벌어 오는 사람’으로만 생각하는 것과 같이 왜곡된 현상이 일어나더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일을 하셨는가’라는 그 분의 사역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예수님에 대한 왜곡된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성경과 예수님을 오해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성경에서 어떠한 일을 하셨습니까? 즉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통해서 그 분의 속성을 드러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넌 사건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분을 보여주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을 하셨는가를 정확히 확인하는 일은 하나님을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어떠한 일을 하셨는가를 확인해 봄으로써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 라는 이런 문제는 알 것 없고 “우리가 열심이 살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을 가지면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하고, 무엇을 했느냐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들의 신앙을 가능하게 해 주신 예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바른 믿음이 있을 때에 바른 봉사를 할 수 있습니다. 봉사 그 자체를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정신으로 봉사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자신을 자랑하는 봉사가 있을 것이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봉사가 있을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어떠한 일을 하셨는가를 살펴 봄으로써 예수님의 주님 되심과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살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믿음 위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본문의 배경
먼저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마태라는 성경 기자는 어떠한 시각으로 마태복음을 기록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마태라는 성경 기자는 자기 마음대로 자신의 인간적인 시각으로 이 성경을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마태를 통하여 강권적으로 역사 하셔서 기록하도록 하셨습니다.
성경의 본래의 의도에 충실하도록 역사해 주셨기 때문에 이 성경을 기록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 사랑이 구원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구원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지고 있습니다. 이같은 일을 위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특히 유대인들은 그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예수님이기를 원했느냐면 자신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고 로마로부터 억압받고 있는 그 고통으로 해방시켜주는 슈퍼맨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지금 특히 유대인들을 1차 독자로 해서 그들의 그릇된 시각을 교정시키고 있습니다. 그 유대인들이 잘 알고 있는 구약 예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 예언된 대로 오신 이 예수님이야말로 우리들의 진정한 구원자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마태를 통해 주신 이 말씀의 외침에 귀를 기울려야 합니다. 내가 지금 신앙을 어떻게 오해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신앙을 오해하면 생활 그 자체가 위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만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신 그 일을 오해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만 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길이 하나님의 원하신 길이라고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그런 교만을 부리면서 교회에 다닙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무엇을 믿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인데 교회에 다니고 직분을 맡았다는 것으로 교만을 부린다면 그것은 안됩니다. 그런 사람들의 말로를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마시고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외쳐진 말씀에 관심을 갖고 주시해 보십시오. 예화나 간증의 이야기가 없어서 은혜가 없다고 투정부리지 마시고 진정으로 성경이 말씀한 은혜가 무엇인지를 확인 해서 참으로 하나님이 원하신 신앙생활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자들이 바로 복의 사람들입니다.
2. 가르치는 사역입니다.
오늘 본문 35절 상반 절에 보면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는 사역은 예수님의 중요한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가르치셨고 백성들은 그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 두 관계는 매우 중요한 관계입니다. 가르침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르치시는 능력을 소유한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정직하게 “주님 말씀 하시옵소서. 저가 배우겠나이다”라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목사인 저 자신도 가르친다는 개념은 어떤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배우는 자세로 임합니다. 교회에서 성경 공부를 할 때나 목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 하면 그 권면과 가르침을 받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이것은 말세의 징조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간에 성경을 통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우리들은 가르침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고백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들에게 가르치시므로서 선생된 자로서 메시아 이심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마26:18에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고 하시므로서 예수님 자신이 선생이라고 말씀합니다.
마23:8에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진정한 선생님은 예수님이십니다. 그 선생님의 가르침 목적은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그 선생님 되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마 28:20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지켜야 합니다. 지키지 않고 배웠다고만 자랑하면 하나님께서 징계하십니다. 꼭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말세의 징조는 가르침 대로 지키지를 않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딤후3:14에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하십니다.
3.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본문 35절 중반절에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라고 하십니다. “천국 복음”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 복음”입니다. 마태는 “하나님의 나라 복음”이라고 하지 않고 “천국 복음”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신성모독 죄에 해당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유대인들과의 접촉점을 생각해서 “하나님”이라는 말을 “하늘”이라는 말로 대치해서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늘 하면 하나님을 연상합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들도 여기서 어떤 지혜를 받습니다. 복음을 증거할 때도 예수 믿지 않는 사람과 접촉점을 잘 생각해서 복음을 증거하면 좋습니다. 다른 이야기에 시선을 끌게 해서 결국 복음에로 집중할 수 있도록 우리들의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의 나라 복음의 핵심은 자신이 바로 “구원의 주”라고 선포합니다.
마4:17에서는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자신으로 말미암아 왔으니 회개하고 그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습니다. 믿지 않기 때문에 주님의 임재의 체험을 못 느낍니다. 주님과 동행한 임재의 체험을 못느끼기 때문에 죄를 범합니다.
내 곁에 계신 주님을 못느끼기 때문에 쉽게 좌절하고 쉽게 토라지고 교만과 자기의 아집을 내세웁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목사인 저 자신 역시 회개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자가 아니라 회개해야 하는 자입니다.
여러분 역시 회개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거룩한 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회개라는 것은 말로만 “회개합니다”라는 것이 회개가 아닙니다. 돌이키는 것입니다. 사기쳤으면 그것을 갚아야 합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죄를 범하고 나서 회개한다고 한다면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 회개의 생활입니다. 회개의 열매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회개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마 7:20-21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는 자는 회개의 열매, 혹은 믿음의 열매로서 하나님 뜻대로 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이 어떻게 우리들의 행위와 연결해서, 믿음의 표현으로서 행위로 인하여 심판을 받게 되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때의 행위는 그 행위 자체가 문제이기 보다는 그런 행위는 불신앙의 결과이기 때문에 그 행위대로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4. 모든 병을 고치셨습니다(치유의 사역)
본문 35절 하반절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합니다.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메시아의 권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이같은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신 사건에 대해서 마태는 마8:16-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합니다.
병을 고친 이유가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구약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서 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병고친 사건은 바로 우리들의 연약함을 짊어지시고 우리들을 구원하시는 구원자로서의 메시아를 증거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그런 이적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들의 연약함을 도와 주실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를 치유해 주실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그분을 의지해야 합니다. 남들은 다 나를 버려도 그분은 우리들을 버리시지 않습니다.
딤후4:16-17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아멘
바울은 말년에 자신의 곁을 다 떠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떠나버린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바울 곁에 계신 것을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우리와 늘 동행하십니다. 우리들의 연약함을 체험 하시고 느끼셔서 우리들의 사정을 잘 알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분을 의지하고 섬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서 이땅에 오셨습니다.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병을 치료하시는 일을 통하여 그분이 분명히 구약에 예언된 그 메시아임을 알게 하시고 믿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틀림없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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