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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진노, 오늘 누구에게 향할까?

마태복음 한완상............... 조회 수 1706 추천 수 0 2008.04.18 07:5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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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23:29-36 
설교자 : 한완상 목사 
참고 : 새길교회 
우리는 예수님을 온유하고 겸손하신 사랑의 화신으로 믿는다. 그러기에 그분의 얼굴은 언제나 온화한 미소로 가득 차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때때로 심각한 얼굴로 근심하시는 모습도 있으나 불쌍한 사람을 만나시면 함께 아파하시는 사랑의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에게는 더 익숙하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시며 기도하시는 그 고뇌에 찬 모습도 우리에게 퍽 가깝게 여겨진다. 예수님은 사랑 자체이시기에 항상 인자하실 것으로 믿는 신자들에게 예수님의 다른 모습 곧 진노하시는 모습은 놀라운 일인지도 모른다. 마태복음 23장에는 천둥소리 같고 번갯불같이 날카롭고 무서운 진노하시는 예수님이 잘 드러나고 있다. Plummer의 표현대로 "말할 수 없이 가혹한 천둥소리 같고 여지없이 폭로하는 번갯불 같은" 진노의 예수님을 그곳에서 우리는 만나게 된다.
무엇이 그토록 온유 겸손하신 예수님을 그렇게 격노케 했던가? 지금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누구를 향해 그 천둥소리 같은 진노의 음성을 발하시고 번갯불 같은 격분을 터뜨릴 것인가?

위의 두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몇 가지 확인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첫째, 예수님의 진노는 종교적 성격과 함께 정치적 성격을 띄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당시 지도층은 주로 종교인들로 채워져 있었다. 神政政治體制였기에 종교적 위선에 대한 주님의 격노는 곧 정치정당성에 대한 분노 그 자체였다. 누가복음 6장 24-25절에 보면 축복 받는 사람들과 함께 저주받는 사람들이 나온다. 또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도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이들은 모두 당시 부유하고, 배부르고, 웃는 지배층에 속했던 사람들이었다.
둘째,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七禍 메시지는 예수님의 유명한 八福의 말씀과 짝을 이루는 메시지다. 우리는 팔복에는 익숙하지만 칠화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철학자 러쎌같은 인식 때문일까? 예수님의 축복메시지를 이해하려면 당신의 진노 메시지도 함께 이해하여야 한다.
셋째, 는 식으로 처세하고 출세하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오늘의 얄팍한 세상에서 이 七禍의 메시지는 번개같이 화끈하게 깨닫게 하는 중요한 가르침이 된다. 선거에 앞서 표 얻기 위해 지난날의 악한 세력을 무원칙하게 용서하려는 작금의 세태를 보면 예수님의 격노는 새삼 우리를 새롭게 깨우쳐준다.
넷째, 예수님의 진노는 위선자들을 향한 것이었다. 위선자는 그리스어로 hupokites다. 이것은 원래 대답하는 사람이란 뜻인데, 무대 위에서 본심을 숨기고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사람을 말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도 세상에서 매일매일 우리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하면서 로 살고있지 않는지 성찰케 한다. 교수로, 의사로 회사사원으로, 주부로, 아빠로, 엄마로, 교인으로 우리는 연기하고 있지 않는지. 우리의 연기 속에 위선적인 요소가 얼마나 많은지 자성해볼 일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천둥 같은 진노는 왜 나온 것일까? 도대체 어떠한 사람들을 향해 그 격노가 격발되었을까? 일곱 가지 화는 일곱 종류의 인간들을 향한 것이다. 간단히 살펴보자.
(1) 천국 문을 막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님을 격노케 했다. 참된 희망의 문을 닫아버리면서 가짜 희망 문을 열어놓고 사람들을 홀리는 오늘의 짐 존스들이 주님을 진노케 한다. 인간에게 종국적 희망을 앗아가는 짓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행위가 아닌가? (I hope, therefore I am)란 고백이 진솔한 것일수록 희망을 탈취해 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주님처럼 격노해야 한다. 인간과 민족으로부터 희망을 빼앗아 가는 세력이야말로 악마의 세력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을 포용할 수 없다. 오히려 진노를 격발시켜야 한다.
(2) 열과 성을 다해 개종자를 얻어놓고 그를 철저한 근본주의자로 변질시킴으로써 지옥의 자식으로 떨어지게 하는 자들을 주님은 질책하셨다. 그리스어 proselutos는 가까이 끌고 오는 자를 뜻한다. 유대교 밖에 있는 사람을 유대교 안으로 가까이 끌어다 놓고 나서 그를 광적인 율법주의자로 만드는 사람들은 오늘도 주님을 진노케 한다. 한국유교가 원산지 유교보다, 한국불교가 원산지 불교보다, 한국기독교가 원산지의 그것보다 더 독선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바로 그것은 주님을 격노케 하고도 남을 것이다.

위의 두 종류의 사람들은 남에게 악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다. 나머지 다섯 가지 화는 지도자의 行態와 資質에 관한 진노다.
(3) 일의 輕重과 가치의 경중을 가리지 못하고, 본질과 현상을 구분하지 못한 채 輕과 現象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격노케 했다. 마치 몸이 옷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자들이 성전보다 성전 속에 있는 헌금을 더 중요시하고, 제단보다 제단 위에 놓여 있는 제물을 더 소중한 것으로 떠받든다. 이런 사람들은 몸팔아 화려한 옷을 사 입는 매매춘자와 같고 원칙과 신념을 팔아 권력을 탐하는 자들과 같다.
(4) 법의 세칙일수록 더 잘 지키되 법의 정신은 무시하는 행위자들이 주님을 화내게 했다. 박하 한줄기에도 십일조를 바친다고 자랑하면서도 사랑과 정의에는 무관심한 사람들과 같다.
(5) 속과 겉이 다른 사람들. 특히 속은 더러운 것이 가득 차 있을 수록 겉은 화려하게 꾸미는 위선자들을 주님은 질책하셨다.
(6) 위의 위선행위가 종교적인 성격을 지니면서 남을 차별하고 남에게 고통을 주는 것으로 나아갈 때 주님은 더욱 격노하셨다. 불결에 대한 유대교적인 거부는 신경질적인 것이었다. 이방인, 시체 등을 만지면 자동으로 불결해진다. 여성은 월경기간엔 자동적으로 불결해진다. 그들은 성전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당시 유월절 순례자들이 실수로 무덤을 만지지 않게 하기 위해 무덤에 회칠을 하여 대번에 눈에 띄게 했다. 이같은 종교적 행위를 주님은 역겨워 하셨다. 이런 종교적 위선행위 자체가 주님 보시기에는 불결한 것이었다.
(7) 예수님의 진노는 일곱 번째 사람에 이르러 그 절정에 이른다. 여기서 우리는 천둥 같은 진노, 번갯불 같은 날카로움을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주님의 언어사용이 정말 과격하다. 그러기에 그만큼 진솔하다. 라고 일갈하신 주님께서 이것으로 부족한 듯 여기셨음이 틀림없다. 라고 내쳐 독설을 쏘아 부쳤다. 평소에 욕 잘하는 사람이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면 놀랄 것 없다. 그런데 평소에 온유 겸손하셨던 주님께서 이러한 거친 표현을 서슴지 않으셨음은 그만큼 예수님의 진노가 진솔했음을 뜻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과 를 비교해 보면 주님의 격노의 질감을 우리는 새삼 느낄 수 있다. 개는 우리에게 여러 모로 유익한 친구 같은 동물이다. 그러나 유대교문화에서 뱀의 상징성을 생각해 보면 의 부정적 뜻이 얼마나 깊은 가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주님의 그같은 진노를 격발시겼단 말인가?
첫째, 지금 와서 지난날의 역사적 범죄를 은폐하려는, 그것도 위선적으로 은폐하려는 가짜 애국자들, 가짜 민족주의자들이 예수님의 진노를 격발시켰다. 이들은 역사의 위선자들이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 했던 애국자들을 직접 간접으로 억압했던 자들의 자손들이 마치 오늘에 와서는 애국 애족하는 사람인양 행동하는 것은 참으로 역겨운 일이다. 군사독재시절 권력에 아부했거나 짐짓 무관심한 척 했던 사람들이 지금 와서 지난날을 美化하려는 행위도 주님을 진노케 한다. 지난날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평화와 사랑과 신의를 전파하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내쫓거나 차별하려는 세력에 대해 주님께서는 계속 라고 질책하실 것이다.
한마디로 지난날 더러운 역사를 오늘에 와서 화려한 겉 장식을 통해 은폐하려하거나 겉으로는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하는 척 하면서도 실제로는 평화와 정의와 사랑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을 계속 핍박하고 차별하는 위선자들을 향해 천둥 같은 목소리로 라고 꾸짖을 것이다.

지금 우리 상황, 분단 반세기를 넘기면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 우리상황, 이천만 북녘동포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 이 딱한 상황에 우리 주 예수님이 오신다면 누구를 향해 그 진노의 번갯불 같은 직격탄을 쏘아댈 것일까? 나는 확신한다. 지난날 일제 때는 親日행각에 여념이 없다가 해방된 뒤에는 냉전적 증오심으로 양심적인 민주세력과 인권세력과 평화주의자를 핍박하면서 그들끼리 부정과 부패의 연대를 이룩하여 부당하게 살쪄온 이 시대의 冷戰的 바리세주의자들이 예수님을 격노케 할 것이다. 으로라는 대결의식을 불태우면서 남북관계를 계속 악화시키고 초전박살의 증오심으로 조국강토의 평화정책을 어렵게 하면서 지금 죽어가고 있는 이천만 북한동포를 더 빨리 목졸라 죽이고 싶어하는 이 땅의 냉전근본주의 세력이야말로 독사 같은 위험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때일수록 십자가의 사랑, 곧 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신 주님의 뜻을 따라 아사상태로 내닫고 있는 우리동족 이천만을 그 곤경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에 한국 크리스천들이 앞서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게 될 것이다. 냉전적 바리세주의자들이 정치계에서 계속 날뛰는 한 한반도의 평화는 오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꿈에도 꾸지 못했던 평화를 크리스천들의 헌신적 동포돕기운동으로 이 조국 반도강산에 우뚝 세워야할 것이다. 지금 북녘에는 지극히 적은 자들이 이천만 명이나 굶어 죽어가고 있다. 지금 우리는 이라는 증오의 노래, 냉전의 노래를 부를 것이 아니라 주님의 평화가 저 한강물같이 남북으로 흐르게 하는 노래를 불러야 할 것이다. 이 노래가락에 맞추어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의 동포돕기운동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할 때 라는 주님의 천둥소리는 라는 주님의 부드러운 소리로 바꿔질 것이다. 이러할 때 "내가 주리고 목마를 때 너희들이 나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준 사람들이다. 영생의 축복이 너희들에게 있을지어다"라는 주님의 인자하신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천둥번개소리 같은 격렬한 진노를 듣게되는 신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주님과 함께 오늘 이 땅의 냉전적 바리세주의자들에게 격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 소중한 일은 이천만 동포와 함께 아사지경으로 떨어지고 있는 지극히 작은 우리 주님들에게 사랑과 평화의 도움을 줌으로써 주님으로부터 단비 같은 축복을 받는 우리 신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오늘 우리가 여기 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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