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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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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마8:23-27 |
|---|---|
| 설교자 : | 이정선 목사 |
| 참고 : | 타우랑가한인교회 |
저는 예수를 안 믿어본 적이 없습니다. 애초에 태어나기를 예수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에 다닌다는 것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동의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적어도 저는 예수를 믿지 않았던 적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과 그리스도인이 된 후의 삶을 비교해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가운데는 나중에 예수님에 대해 알고 믿은 분들도 계실 것인데, 그런 분들은 어떻습니까? 예수를 믿고 나서 속된 말로 살림살이가 나아졌습니까? 나아졌다면 어떻게 나아졌습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것에 대한 한 가지 신화는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 이런 것입니다. 슬픔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던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행복해지고, 실패와 좌절만 겪던 사람도 예수 믿고 성공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입니다. 여러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잘 모르겠으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땠는지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수라는 젊은이는 그야말로 어두운 하늘에 나타난 혜성이었습니다. 그의 탁월한 가르침, 그리고 어떤 병이든지 고칠 수 있는 초능력으로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얻었습니다. 그의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된 사람들은 자기들이 매우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예수님 덕분에 자기들도 목에 힘을 줄 수 있게 되었고, 잘만 하면 성공과 출세가 보장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상한 행동과 말씀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군중이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그곳을 떠나시겠다는 것입니다. 군중으로부터 권력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군중을 피해 떠나겠다고 하니 적잖게 실망이 되지 않겠습니까? 거기다가 예수님의 발언은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지만 자기는 머리 둘 곳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사람들의 존경과 궁궐 같은 곳의 안락함이 보장될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마음 한구석에서 솟아납니다.
어쨌든 예수님의 의도대로 일행은 첫 번째 대성공을 거둔 그 땅을 뒤로 하고 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때는 이미 해가 지고 어둠이 물 위에 내리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피곤하셨는지 예수님은 배에서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말씀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시련도 피해가고 고난도 되돌아간다는 것은 허황된 신화입니다. 성경은 오히려 예수 때문에 더 많은 고난과 손해를 각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예수님 자신에게도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바쁘고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났으니까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단잠을 잤으면 좋겠지만, 예수님은 급히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배의 딱딱한 나무 바닥에 몸을 눕히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피곤한 몸이 좀 쉴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것마저 허용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곧바로 사나운 파도가 배를 삼킬 듯이 덮쳐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있던 폭풍도 없어져야 할 터인데, 오히려 전에 볼 수 없었던 두려운 폭풍이 몰아쳤습니다. 제자들 중 몇 사람은 바로 이 갈릴리 호수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들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꽤 큰 호수입니다. 면적이 170평방킬로미터라고 하니까 로토루아 호수의 약 두 배 정도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이 호수를 생업의 기반으로 삼고 살아온 사람들은 호수의 구석구석까지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 파도 앞에서 경악하고 있습니다. 다 죽게 되었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말하자면 이런 파도는 늘 있는 파도가 아닌 것입니다. 도대체 왜 없던 파도까지 생겨나서 예수 따르는 길을 가로막는 것일까요?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더 부자가 되고 더 출세하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번지수를 잘못 찾아 왔습니다. 종교의 한 가지 기능은 마음의 평안을 얻게 해 주는 것이라고 하는데, 물론 예수 믿고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때로는 예수를 믿음으로 인해서 더 많은 갈등과 고민을 하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예수를 따르는 길에 전에 없던 폭풍까지 일어나 제자들을 괴롭히는데, 정작 예수님은 그 난리 통에도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어디서 그런 그림을 본 기억이 납니다만, 폭풍이 몰아치고 파도에 배는 뒤흔들리는데, 예수께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쪽에서 주무시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그림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한 단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어려움과 괴로운 일을 만나는데, 그래서 그럴 때마다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당장 나타나셔서 내가 당하는 이 괴로움을 해결해 주시지 않는 것입니까? 그래서 다윗은 시편 44편에서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영히 버리지 마소서!” 그만 주무시고 일어나서 내가 당하고 있는 이 괴로움과 슬픔에서 구원해 주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럴 때가 없습니까? 그럴 때 그렇게 외쳐보세요.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물론 이것은 아무나 내뱉을 수 있는 부르짖음이 아닙니다. 아무 생각 없이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과 같은 절박한 위기에서 나오는 부르짖음입니다.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절망 속에서 터져 나오는 울부짖음입니다. 우리는 같은 인간으로서 그러한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 아무런 느낌도 없는 사람은 평안을 누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 죽게 되었다고 절규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오히려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십니다. 아, 예수님이 너무 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 파도 속에서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당장 배가 뒤집힐 것 같은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습니까? 고통이나 위험 속에서 아무런 동요가 없어야 믿음이 있는 것입니까?
여기서 제자들이 파도 속에서 두려워한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들의 잘못은 그 배에 예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잊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면서도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 한 그들은 안전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배는 어떻습니까? 폭풍과 파도에 흔들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애가 위태롭습니까? 문제는 그 배에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타고 계신 배라도 폭풍을 만납니다. 배가 뒤집힐 듯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태웠다고 해서 순풍에 돛 달고 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녀도 인생이 실패할 수 있습니다. 예수 잘 믿어도 사업이 부도날 수 있고, 남편은 속 썩이고, 아이들은 반항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그 파도를 헤쳐 나가고 고통도 견뎌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최후의 궁극적인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사건은 제자들이 처음으로 당하는 시련이었습니다. 이 시련을 통해서 그들은 제자의 길이 대략 어떠할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었다고 다 잘 풀리고 잘 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련을 통해서 그들은 주님을 더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주님을 의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 항로에 괴로움과 슬픔이 많지요? 짜증나고 속상하는 일도 많을 것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리던데 왜 나는 예수를 믿어도 되는 일이 없는지 이상하게 생각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타고 계시던 배도 파도에 뒤집힐 듯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여러분의 그 인생에 예수님이 함께 동행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여러분 삶에 함께 계시다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장 망하게 되었어도 놀라지 마십시오. 망해도 괜찮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망한다면 오히려 축복입니다.
큰 성공을 거두고 일이 잘 되었다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사람들을 보고 믿음이 좋다고 하지 않습니다. 성공하면 믿음이 없어도 당연히 감사해야지요. 성공했다고 감사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의리입니다. 예의상으로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요. 위대한 믿음은 고난 중에 찬양하고 망했을 때 드리는 감사입니다.
오늘날 성공을 지향하고 풍요를 가치로 추구하는 세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매우 왜곡되어 전파되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기 위해서 존재하시는 분처럼 믿도록 강요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를 따라 우리에게 슬픔도 주시고 고난도 겪게 하십니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러한 고통과 시련을 통해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성숙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인생의 배가 흔들리고 불확실의 파도 속으로 끌려가고 있습니까? 두렵습니까? 고통스럽습니까? 두려움과 고통은 함께 계신 주님을 잊게 합니까? 아니면 그 주님을 더욱 바라보게 합니까? 믿음이 없으면 두려움 속에 주님을 잊게 되고, 믿음이 있으면 주님을 더욱 찾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시련이 다가올 때 두려움과 슬픔 속에서 주님을 잊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시련을 통해서 더 주님의 능력과 임재를 확신하고 의지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나오신 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심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에 대한 한 가지 신화는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 이런 것입니다. 슬픔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던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행복해지고, 실패와 좌절만 겪던 사람도 예수 믿고 성공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입니다. 여러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잘 모르겠으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땠는지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수라는 젊은이는 그야말로 어두운 하늘에 나타난 혜성이었습니다. 그의 탁월한 가르침, 그리고 어떤 병이든지 고칠 수 있는 초능력으로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얻었습니다. 그의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된 사람들은 자기들이 매우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예수님 덕분에 자기들도 목에 힘을 줄 수 있게 되었고, 잘만 하면 성공과 출세가 보장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상한 행동과 말씀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군중이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그곳을 떠나시겠다는 것입니다. 군중으로부터 권력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군중을 피해 떠나겠다고 하니 적잖게 실망이 되지 않겠습니까? 거기다가 예수님의 발언은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지만 자기는 머리 둘 곳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사람들의 존경과 궁궐 같은 곳의 안락함이 보장될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마음 한구석에서 솟아납니다.
어쨌든 예수님의 의도대로 일행은 첫 번째 대성공을 거둔 그 땅을 뒤로 하고 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때는 이미 해가 지고 어둠이 물 위에 내리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피곤하셨는지 예수님은 배에서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말씀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시련도 피해가고 고난도 되돌아간다는 것은 허황된 신화입니다. 성경은 오히려 예수 때문에 더 많은 고난과 손해를 각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예수님 자신에게도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바쁘고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났으니까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단잠을 잤으면 좋겠지만, 예수님은 급히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배의 딱딱한 나무 바닥에 몸을 눕히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피곤한 몸이 좀 쉴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것마저 허용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곧바로 사나운 파도가 배를 삼킬 듯이 덮쳐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있던 폭풍도 없어져야 할 터인데, 오히려 전에 볼 수 없었던 두려운 폭풍이 몰아쳤습니다. 제자들 중 몇 사람은 바로 이 갈릴리 호수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들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꽤 큰 호수입니다. 면적이 170평방킬로미터라고 하니까 로토루아 호수의 약 두 배 정도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이 호수를 생업의 기반으로 삼고 살아온 사람들은 호수의 구석구석까지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 파도 앞에서 경악하고 있습니다. 다 죽게 되었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말하자면 이런 파도는 늘 있는 파도가 아닌 것입니다. 도대체 왜 없던 파도까지 생겨나서 예수 따르는 길을 가로막는 것일까요?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더 부자가 되고 더 출세하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번지수를 잘못 찾아 왔습니다. 종교의 한 가지 기능은 마음의 평안을 얻게 해 주는 것이라고 하는데, 물론 예수 믿고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때로는 예수를 믿음으로 인해서 더 많은 갈등과 고민을 하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예수를 따르는 길에 전에 없던 폭풍까지 일어나 제자들을 괴롭히는데, 정작 예수님은 그 난리 통에도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어디서 그런 그림을 본 기억이 납니다만, 폭풍이 몰아치고 파도에 배는 뒤흔들리는데, 예수께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쪽에서 주무시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그림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한 단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어려움과 괴로운 일을 만나는데, 그래서 그럴 때마다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당장 나타나셔서 내가 당하는 이 괴로움을 해결해 주시지 않는 것입니까? 그래서 다윗은 시편 44편에서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영히 버리지 마소서!” 그만 주무시고 일어나서 내가 당하고 있는 이 괴로움과 슬픔에서 구원해 주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럴 때가 없습니까? 그럴 때 그렇게 외쳐보세요.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물론 이것은 아무나 내뱉을 수 있는 부르짖음이 아닙니다. 아무 생각 없이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과 같은 절박한 위기에서 나오는 부르짖음입니다.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절망 속에서 터져 나오는 울부짖음입니다. 우리는 같은 인간으로서 그러한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 아무런 느낌도 없는 사람은 평안을 누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 죽게 되었다고 절규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오히려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십니다. 아, 예수님이 너무 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 파도 속에서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당장 배가 뒤집힐 것 같은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습니까? 고통이나 위험 속에서 아무런 동요가 없어야 믿음이 있는 것입니까?
여기서 제자들이 파도 속에서 두려워한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들의 잘못은 그 배에 예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잊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면서도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 한 그들은 안전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배는 어떻습니까? 폭풍과 파도에 흔들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애가 위태롭습니까? 문제는 그 배에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타고 계신 배라도 폭풍을 만납니다. 배가 뒤집힐 듯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태웠다고 해서 순풍에 돛 달고 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녀도 인생이 실패할 수 있습니다. 예수 잘 믿어도 사업이 부도날 수 있고, 남편은 속 썩이고, 아이들은 반항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그 파도를 헤쳐 나가고 고통도 견뎌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최후의 궁극적인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사건은 제자들이 처음으로 당하는 시련이었습니다. 이 시련을 통해서 그들은 제자의 길이 대략 어떠할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었다고 다 잘 풀리고 잘 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련을 통해서 그들은 주님을 더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주님을 의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 항로에 괴로움과 슬픔이 많지요? 짜증나고 속상하는 일도 많을 것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리던데 왜 나는 예수를 믿어도 되는 일이 없는지 이상하게 생각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타고 계시던 배도 파도에 뒤집힐 듯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여러분의 그 인생에 예수님이 함께 동행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여러분 삶에 함께 계시다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장 망하게 되었어도 놀라지 마십시오. 망해도 괜찮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망한다면 오히려 축복입니다.
큰 성공을 거두고 일이 잘 되었다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사람들을 보고 믿음이 좋다고 하지 않습니다. 성공하면 믿음이 없어도 당연히 감사해야지요. 성공했다고 감사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의리입니다. 예의상으로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요. 위대한 믿음은 고난 중에 찬양하고 망했을 때 드리는 감사입니다.
오늘날 성공을 지향하고 풍요를 가치로 추구하는 세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매우 왜곡되어 전파되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기 위해서 존재하시는 분처럼 믿도록 강요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를 따라 우리에게 슬픔도 주시고 고난도 겪게 하십니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러한 고통과 시련을 통해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성숙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인생의 배가 흔들리고 불확실의 파도 속으로 끌려가고 있습니까? 두렵습니까? 고통스럽습니까? 두려움과 고통은 함께 계신 주님을 잊게 합니까? 아니면 그 주님을 더욱 바라보게 합니까? 믿음이 없으면 두려움 속에 주님을 잊게 되고, 믿음이 있으면 주님을 더욱 찾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시련이 다가올 때 두려움과 슬픔 속에서 주님을 잊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시련을 통해서 더 주님의 능력과 임재를 확신하고 의지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나오신 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심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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