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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예수

마태복음 이정선 목사............... 조회 수 2181 추천 수 0 2008.06.03 16: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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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9:35-38 
설교자 : 이정선 목사 
참고 : 타우랑가한인교회 
저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랐는데, 시골에는 극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종종 마을 공터에 임시극장이 생기곤 했습니다. 커다란 천막이 세워지고, 밤에는 그 안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것입니다. 제 기억으로 그렇게 이동극장이 들어오면 2-3일 정도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골 사람들도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마을마다 찾아다니며 영화를 상영하던 사람들의 열정도 대단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분들이 어떤 동기에서 그런 일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것이 상당한 돈벌이가 되기 때문에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영화를 보급한다는 투철한 프로 정신에서 그렇게 열심을 냈던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현대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시골 사람들을 위해 봉사정신으로 그런 일을 했던 사람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어쨌든 그들의 동기가 무엇이었는지와 상관없이 시골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매우 고마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 덕분에 그래도 일 년에 한두 차례나마 영화라는 것을 볼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묘사된 예수님의 행적은 마치 시골 마을마다 찾아다니면서 영화를 상영해주는 그 천막극장 사람들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여기 보니까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셨다고 했어요. 요즘 말로 하면 성은 도시이고 촌은 시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도시나 시골을 막론하고 갈릴리 지역의 모든 마을을 찾아다니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먼 곳에서도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굳이 마을마다 찾아다니지 않으셔도 사람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모든 성과 촌을 두루 다니셨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께서 거기까지 찾아가지 않으셨더라면 평생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시골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주 작은 마을, 두메산골 마을까지 찾아가셨던 주님은 오늘 우리 각자의 마음까지 찾아오십니다. 내가 아무리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어도, 주님은 결코 그 영혼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소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마 18:14). 주님께는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귀한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여러분의 마음을 만져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하신 이 말씀의 축복의 주인공이 된 것 아닙니까?

저는 이 예수님의 열정 앞에 너무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저도 종종 슬럼프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몸 상태도 좋지 않고,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일들과 걱정거리도 생기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짜증나는 것들이고, 이러다 보면 모든 일에 의욕을 잃게 됩니다. 이것이 심해지면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들게 됩니다. 내가 왜 목사가 돼가지고 이러고 있을까? 나 아니라도 똑똑하고 훌륭한 목사들이 넘쳐나는 세상인데... 내가 목사가 아니고 집사라면 어떻게 교회를 섬기고 있을까?

그러다가도 이런 말씀, 즉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려고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셨던 예수님의 열정 앞에 두 손 들고 항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처럼 자동차를 타고 다니셨던 것도 아닙니다. 아쉬운 대로 자전거라도 있었으면 좀 덜 힘드셨을지 모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뙤약볕 아래 먼지 나는 시골길을 걸어 모든 마을마다 찾아다니셨던 주님,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한번은 사마리아를 지나시다가 행로에 곤하여 우물가에 앉으셨다고 요한은 기록했습니다(요 4:6).

우리가 지난번에는 열정이 지나쳐 일을 그르친 고침받은 소경들을 살펴보았지만, 오늘 우리의 문제는 열정이 너무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열정, 복음에 대한 열정, 교회를 위한 열정, 이런 것들의 수준이 너무 낮은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열정이 식어버린 사람들은 다시 회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열정을 아직 가져보지 못한 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고 그 감격 속에서 열정이 솟아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쨌거나 저를 비롯해서 우리 모두가 우리 주님이 보여주신 그 열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고 하면서 주님을 닮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하는 자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열정을 가지고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면서 하신 일이 첫째는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배우지 않으면 잘 알지 못합니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 있는데, 믿는 것도 알아야 올바로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맹목적인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교리의 내용은 어떤 것인지, 성경은 뭐라고 말하는지, 이단들이 여러 주장을 하는데 무엇이 옳은 것인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것인지 등등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성경공부도 하고, 제자훈련도 하고, 세미나에 참석도 하고, 그렇게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 3:14)고 말합니다. 교회는 가르치는 일을 통해서 온전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또 예수께서 하신 일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람들에게 천국을 가져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맨 처음 선포하신 말씀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고, 산상수훈에서도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시면서 천국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천국 복음의 핵심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통해서 그 천국을 소유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선포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사회정의를 부르짖어야 합니다.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가 구현될 수 있도록 필요하면 투쟁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가 선포해야 할 것은 천국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이 천국 복음을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이것을 위해서 교회가 존재합니다.

또 예수께서 마을마다 다니시면서 하신 일은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신 일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마태복음 9장은 예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을 당하면서 용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갔지만 고치지 못하고 재산만 없앤 그 여인을 고쳐주셨을 때, 이보다 더 큰 위로와 은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어쩌면 하나뿐인 무남독녀 열두 살짜리 딸이 죽었는데, 그 고통과 슬픔 속에서 딸을 살려주셨을 때,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었겠어요? 이처럼 예수께서 하시는 일들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행하시는 예수께서 큰 도시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시골 두메산골까지 모든 마을들을 친히 찾아다니신 것입니다. 정말 세상을 사랑하시고 고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교회 역시 세상을 치유하고 섬기는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만약 교회가 세상에 도움이 안 되는 존재, 손가락질이나 당하는 교회라면 제대로 된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도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빛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어떤 때는 교회가 세상을 치유하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치유의 대상이 되는 수가 있어요. 물론 지상의 교회가 완전하고 완벽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과 역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두루 다니시며 자기 백성을 불러 모으실 때 절실하게 느끼셨던 것은 일꾼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불러서 회개시켜 구원얻게 할 사람은 많은데 일꾼이 부족하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우리 현실에서 일꾼이 부족하다는 말은 묘한 뉘앙스를 가진 것처럼 들립니다. 한편으로는 일꾼이 남아넘쳐서 부작용이 많은 반면, 또 한편으로는 교회 안에 일꾼이 없어 발을 동동 굴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신실하고 충성스럽게 일할 수 있는 일꾼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추수할 일꾼들을 많이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충성스러운 일꾼들로 세워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린 선지자는 즉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일꾼이 부족하다고 탄식하시는 주님 앞에 우리도 나아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일꾼으로 써 주십시오. 내가 당신의 나라를 위하여 쓰임받고 싶습니다. 내가 교회를 위해 일하겠습니다. 내가 복음 전해서 사람들을 주님께 데려오는 일에 힘쓰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손에 들려 귀하게 쓰임받는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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