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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기 전달

마태복음 차옥숭............... 조회 수 1278 추천 수 0 2008.09.08 01:10:22
.........
성경본문 : 마12:1-8 
설교자 : 차옥숭 자매 
참고 : 새길교회 2006.5.14주일설교 
제목: 하나님의 자기 전달
본문: 마태복음 12:1-8 설교: 차옥숭 자매  

요즈음 회자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산골 노인이 도시에 사는 아들집을 방문하고 산골 마을로 돌아와서 이웃집 노인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는 내용입니다.

“못에 찔려 죽은 사람이 있다는구만”
“세상에 못에 찔려 죽어 그게 누군디?”
“이름이 예수라고 하던디?”
“예수? 예수가 누구여?”
“글씨 우리 며느리가 울면서 아부지 아부지 하는 것 보니께 나하고 사둔인 갑소...”

이 이야기를 처음 듣고 한참 웃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분이 저 멀리 있는 분이 아니고 이제 참으로 세상 안에 우리 안에 가까이 와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금년 부처님 오신 날에는 신부님이 사찰을 방문해서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하는 모습과, 기독교장로회의 대표적인 목사님이 스님과 나란히 앉아 법회에 참석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습니다.
몇 해 전에는 어느 기독교 고등학교에서 불자인 한 학생이 종교의 자유를 요구하며 일인 시위를 벌였고, 그 학교의 목사님이 어린 제자를 감싸 안았다가 결국 그 학교를 그만두는 사태가 있었습니다. 곧 스승의 날인데, 저는 참 스승의 모습을 그 분에게서 보았습니다.
최근에는 기독교 대학에 몸담고 있는 교수가 불교행사에 참여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보여서 결국 재임용에 탈락하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그 학교 설립의 정신적 바탕이 된 이용도 목사님이 자신이 이단 시비에 휘말렸을 때,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내가 성서조선을 읽는다고 무교회주의자라고 하는데, 나는 소화할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불교 서적도, 사회주의 서적도 읽으라고 말합니다.”

또한 이용도 목사는 그 당시 입신하여 예언을 하는 사람들을 감싸 안았다가 결국 한국 교계로부터 외면당하게 되는데, 그때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면, 입신 예언하는 사람들과 뜻을 같이하지는 않지만 교계로부터 비난받는 그들의 처지를 외면할 수는 없다는 소신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친구에게, 다음에 무슨 일이 있어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일이 생기면 자기에게 오라고, 기꺼이 함께 돌을 맞겠노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이용도 목사의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설립된 학교에서 일어난 교수임용 탈락 사태는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태를 보면서 오늘의 성경말씀(마태복음 12장 1절에서 8절)을 생각했습니다. 안식일에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는 일, 그것에 대한 바리새인의 비난, 다윗이 배고픈 무리들과 함께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은 이야기를 들어서 대응하는 예수, 제사를 원하지 않고 자비를 원하는 뜻을 제대로 알아 무고한 자를 정죄치 말라는 경고, 거기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선언으로 이어지는 오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의 핵심은 종교적 규정이나 제도보다 인간이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이웃을 위하고 사랑하라는 율법의 기본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의 존재 이유는 인간을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것인데, 종교가 오히려 이웃들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방해하고 저해하는 역할을 한다면 그 종교는 참된 종교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위의 이런 일들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따르는 삶이 어떠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칼 라너는 하느님께서 아무런 조건도 없이 인간 안에 당신 자신을 내어주셨기에 인간은 원천적으로 성화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일상적인 삶 안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하는 것도 사실상 우리의 일상적 삶을 떠나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하고 먹고 자고 하는 일상의 일들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를 채우고 나만을 위해 살지 않고, 나를 비우고 남에게 베풀고자 할 때, 당신 자신을 조건 없이 내어주신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 안에 비로소 육화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스스로를 인간 안에 내어주고 계시고,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인간 안에 받아들여진 하느님 자신, 그것이 바로 “은총”이라는 것입니다.  

라너는 은총을 “하느님의 자기 전달(Selbstmitteilung Gottes)”이라고 간명하게 정의합니다. “하느님이 자신의 실재 속에서 자신을 인간에게 전달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대상적이고 사물적인 의미에서 자신의 일부를 인간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스스로 인간 존재 구성의 가장 심오한 핵심이 되도록” 스스로를 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먼저 자기 자신을 인간 안에 내어주고 베푸신 까닭에 인간은 하느님을 향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질을 규정해 준다고 봅니다. 인간 안에 있으면서 비로소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고, 그럼으로써 인간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최고의 신적인 생명, 그것이 바로 은총이라는 것입니다.

신이 자신을 내어주고 스스로를 비우면서 자기 자신이고자 하지 않을 때, 즉 신이 자신을 비우면서 자신을 구체화할 때 신은 인간이 되는 것이며, 본래적 인간은 바로 신의 이러한 자기 표명(Selbstausserung)이라는 것입니다. 은총은 하느님이 피조물에게 베푸는 선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선험적 조건이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은총이 이미 주어졌기 때문에 그 은총을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은총은 무조건(無條件) 무상으로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무상성이야말로 은총의 본질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처럼 우리 인간성을 무너뜨리지 않고서 스스로를 선물로서 인간에게 내어주시고, 인간은 그 놀라운 사랑의 선물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라너는 인간을 인간되게, 그리스도를 그리스도 되게 해주는 그 근저에 끝없이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 근저에서는 유한과 무한, 초월과 내재, 신과 인간 등이 결코 대립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와 타종교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천적인 차원에서 온 인류는 아무런 차별 없이, 신분이나 종파와 상관없이 하느님에 의해 자연을 넘어서는 귀한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일상 안에 이미 현존하고 있으면서, 가시적으로는 여전히 드러나고 있지 않은 하느님의 사랑을 가시화하는 유일하고 구체적인 방법은 현세적인 자아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내 것을 고집하지 않고, 더는 자기 자신에 속한 것이 없을 때, 그래서 나 자신마저 사라져갈 때, 그때가 신적인 생명에 참여하게 되는 때라는 것입니다.

라너는 복음서에서 요구하고 있는 사랑이야말로 바로 이런 것이라고 봅니다. 사랑으로 자기를 전달하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 그러한 가능성에 자신의 모든 것을 전부 내맡기는 것, 이것이 실존적 차원에서 하느님을 체험하는 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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