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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이르는 여덟가지 복 (Ⅱ)

마태복음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588 추천 수 0 2008.09.23 23: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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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5:1-12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3년 1월 19일 주일2부설교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서론>
행복에 이르는 여덟가지 복 제 두 번째를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행복한 자가 되는 여덟가지 조건 중 그 네가지를 전번 주일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가 마음이 가난해야 되고 둘째, 애통해야 되고 셋째, 온유해야 되고 넷째,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 나머지 네 조건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본론>
5. 긍휼히 여기는 자,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다섯째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죄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은 인생들을 얼마나 불쌍히 여겼기에 그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재물을 삼으셨겠습니까? 그 아들을 재물로 바쳐서 몸을 찢고 피흘려 우리 죄를 대신 다 청산하게 하시고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용서와 의와 영광을 얻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탁월하신 긍휼의 역사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보면 로마서 3장 25절에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3절에는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산 소망을 가지고 영광에 재림의 주를 바라보며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무궁하신 긍휼과 자비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솝우화에 보면은 물에 빠진 개미를 긍휼히 여긴 비둘기와 그 보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미 한 마리가 연못가에 가서 물을 마시려다가 미끄러져서 물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허우적 거리며 빠져 죽어가고 있는데 그 나무위에 앉았던 비둘기가 보고 불쌍히 여겨서 나뭇잎을 하나 입으로 따서 물에 던져 주었습니다. 개미는 구사일생으로 그 나무위에 올라타서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개미가 가만히 보니까 역시 비둘기가 나무에 앉았는데 포수 한 사람이 비둘기를 잡으려고 활을 겨누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속히 개미는 그 포수의 발등에 올라가서 발등을 깨물어 버렸습니다. “아야~”하는 바람에 화살이 빗나가 버리고 비둘기는 피해서 살아났다는 우화인 것입니다.
자비를 베풀면 그 자비는 다시 보훈으로 돌아온다는 놀라운 우화인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야고보서 2장 13절에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남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고 혹독히 심판하면 나도 긍휼이 필요할 때 긍휼을 받지 못하고 혹독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영국을 전승으로 이끈 위대한 정치가인 처칠은 놀라운 이 긍휼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 아버지는 상당히 부자였는데 아버지 농장에 방학동안에 가서 놀다가 농장에 있는 연못에 빠져서 죽게 되었습니다. 허우적 거리며 사람 살리라고 하니까 농장일꾼으로 일하던 청년이 뛰어 들어와서 물에 빠진 처칠을 구해 냈습니다. 그 아버지가 너무 고마워서 “그래 자네 내가 뭘 해줄까?” 그 청년이 하는말이 “나는 의사가 되고 싶지만 집이 가난하고 돈이 없어 의과대학에 들어갈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처칠의 아버지가 너무 고맙다고 이 사람을 의과대학에 보내어서 졸업할때까지 돈을 대주었습니다. 그리고 잊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처칠은 그 이후 성장해서 영국의 수상이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자결할 때 가장 어려운 고비에 그만 처칠 수상이 폐렴에 걸렸습니다. 그땐 폐렴에 걸리면 다 죽습니다. 그래서 큰일이 났습니다. 독일과의 전쟁의 고비에 폐렴이 걸렸으니 이를 어떻게 합니까? 그런데 그때 마침 영국의 유명한 알렉산드 플레밍 박사란 분이 페니실린을 발명했습니다. 페니실린 한 대면 폐렴은 낫거든요. 그래서 알렉산드 플레밍 박사가 병원에 입원해서 정신이 몽롱해진 처칠경에게 와서 그 페니실린 주사를 놓고 처칠은 살아났습니다. 그때 알렉산드 플레밍 박사가 인사를 하면서 “저를 몰라 보시겠죠? 어릴때에 수상께서 연못에 빠져서 허우적 거릴 때 제가 뛰어 들어가서 건져 드렸습니다. 아버님께서 보훈으로 제게 의과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게 해주셨는데 제가 그 이후로 의과대학 졸업하고 의학박사가 되고 이 페니실린을 발명하여 처음으로 수상께 페니실린을 놓았습니다” 이는 놀라운 보훈입니다. 만일 처칠의 아버지가 이 젊은이를 불쌍히 여겨서 긍휼을 베풀어 의과대학에 보내어 공부를 안시켰더라면 제2차 세계대전에 폐렴에 걸려 죽어가는 그 아들 처칠경이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 낳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돌려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 주리라’는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지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부모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같이 우리를 늘 긍휼히 여기십니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을 불쌍한 눈으로 봅니다. 부모가 80이 되고 자식이 60이 되어도 늘 부모는 그 자식을 불쌍한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보실 때 늘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보시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13절에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경엔 뭐라고 말합니까?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면 다른 사람도 우리에게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겨주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긍휼을 베풀면 장차 긍휼을 받을 수 있는 씨앗을 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한 긍휼을 받아서 죄인들이 용서와 의와 영광을 얻었은즉 긍휼에 빚진 자들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겨서 돌보아 주는 이러한 삶을 살 때 우리는 참 행복을 가져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6. 마음이 청결한 자,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여섯째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맑고 깨끗한 연못에 가서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보면 하늘의 태양도 연못에 비치고 구름도 연못에 비치고 연못가에 있는 나무도 연못에 다 비칩니다. 연못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연못이 하늘인지 하늘이 연못인지 모르게 환하게 비추는 것입니다. 그러나 혼탁하고 일렁이는 물에는 하늘도 구름도 나무도 비치지 않고 오직 혼탁한 물만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마음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하면 하나님도 마음에 비추고 예수님도 비추고 천국도 비추어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비춰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마음이 정결해 질 수 있습니까? 우리가 마음이 정결해 있으면 죄의 혼탁함을 회개하고 보혈로 씻어야 됩니다. 죄는 우리 마음을 부패하게 하고 아주 혼탁하게 합니다. 죄로써 부패된 마음은 꾸정물과 같습니다. 흙탕물과 같습니다. 조금도 하늘의 계시가 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죄를 다 토설하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서 이 혼탁한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다고 말했습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한다고 했습니다.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신다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마음을 씻으면 우리 마음이 깨끗해 지고 정결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 말씀을 먹으면 그 말씀이 우리 마음을 청결하게 만듭니다.
여러분께서 이 세상에 살면서 세속에 얽히고 여러 가지 죄악이 마음을 점령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읽게 되면 말씀이 여러분 마음을 청소해 주는 것입니다. 청소부가 와서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처럼 여러분의 마음을 말씀이 구석구석 마다 청소를 해주어서 말씀 읽을 때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26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늘 읽어야 우리 마음에 정결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혜가 임하면 성령은 불입니다. 모든 추한 것을 태워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불로 마음을 정하게 하면 마음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3장 11절로 12절에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성령의 불로써 우리에게 세례를 베풀어서 우리의 모든 마음에 더러움을 다 태워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 하늘나라가 내 마음속에 비춰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각으로 별수가 없습니다. 눈으로 볼 수 없고 하나님의 음성을 내가 직접 귀로 들을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잡을수도 없고 하나님을 우리 감각으로는 체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육으로써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계시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동물들은 왜 하나님을 모릅니까? 그들은 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될 곳이 없습니다. 연못에 물이 없는데 하늘이 비칠수가 없지요. 동물들은 그 마음속에 영이 없는데 영이신 하나님이 비추어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영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거듭나서 영이 살아나면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계시되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시되어 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17절로 18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 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연못에 하늘이 비춰오고 구름이 비취고 나무가 비치듯이 우리에게 비춰 옵니다. 마음이 맑아지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되어 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여러분이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증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위대한 하나님은 증명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계시될 따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그냥 깨달아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부활하신 것은 구원의 놀라운 은혜라는 것이 성령으로 깨달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라 여러분 어두움에 앉은 사람에게 아무리 세상 밝은 세계를 설명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캄캄한데 앉아 있는 사람에게 세상에는 아름다운 나무가 있고 꽃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고 시냇물이 흐르고 굉장히 아름답다고 해도 캄캄한데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밝은 빛으로 이끌어 내면 빛이 환하게 비추면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눈에 태양이 보이고 구름이 보이고 나무가 보이고 새들이 보이고 꽃들이 보이고 물이 보이는데 증명할 필요가 있나요? 그러므로 어두움에 처한 자에게 아무리 천국을 설명해도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밝은 빛이 비취면 아무리 설명을 안해도 자연적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 그 사람의 마음에 성령의 빛이 비취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는 어두움에 있으니까 아무리 설명을 해도 하나님도 예수님도 천국도 지옥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의 빛이 비취면 설명할 필요없이 스스로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시되어 오시는 것이기 때문에 어두움에 빛을 비춰 주시고 어두움에서 빛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그렇게 늘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도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것은 우리에게 계시로 알려주는 것이지 우리에게 감각으로 체험되게 해주시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정결하게 되면 맑고 밝고 환하게 되면 이 하늘나라가 우리 마음속에 비춰오는 것입니다. 깨달아 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도 증명 안해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배 드리는 여러분! 여러분께서 수학공식처럼 하나님을 증명해 주어서 여러분 이해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와서 앉아 계시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누가 증명하라 하면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보고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인 것을 너는 아느냐하면 우리는 안다고 대답합니다. 어떻게 아느냐.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보혈로 씻고 말씀으로 정하게 되자 성령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시고 하늘나라가 비춰왔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마음이 정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것임요. 우리가 영으로 하나님을 보고 깨닫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본다는 것은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불신의 말을 해도 우리는 흔들지 않는 것은 우리가 압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기도로써 대화를 하고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마음에 느끼고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우리 마음속에 확실히 계시로써 알게 했으므로 하나님을 믿고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갖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7. 화평케 하는 자,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일곱째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분이신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하여서 영원한 지옥불로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서 화평케 하는 재물이 되었습니다. 우리 대신하여 죄를 짊어지고 심판을 받아 몸을 찢고 피흘려 죽으심으로 화평의 재물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힘없이 늘어져 있는 것을 봅니다. 왜 예수님이 능력과 힘이 없어서 십자가에 매달렸습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죄를 다 값기 위해서 그곳에 올라갔고 예수님이 우리의 재물이 되시므로 그를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심판하시고 그를 통해서 우리를 용서하고 용납하고 사랑하고 우리와 화평을 가지게 되고 우리도 하나님 앞에 이제는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나갈 수 있는 것은 그 피가 마음속에 평화를 가져왔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5장 10절에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되었으니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서 영원한 천국으로 데려갈 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에도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담을 다 헐어 버리시고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평을 가져 오셔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 거하실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화평케 하는 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와 동시에 땅에 평화를 가지러 오셨습니다. 우리가 오늘도 오후 3시에 시청 앞 광장에 가서 기도합니다. 뭘 위해서 기도합니까? 평화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 전쟁의 위험을 제하시고 평화를 주시옵소서. 북한에 핵을 만드는 그 모험을 중지시켜 주시고 우리 한국에 버섯 구름이 떠올라 온 민족이 다 참화를 당하는 이 위기에서 우리를 멸하게 해주시고 우리에게 평화를 주옵소서. 왜, 평화는 주님밖에 주실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여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므로 하나님의 평화를 우리 민족에게 임하게 하기를 원해야 되고 이를 위해서 기도해야 될것인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 개인 개인의 마음속에 평화를 주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렇게 근심과 두려움이 많은 세상에 갈기갈기 찢기어진 우리 마음속에 누가 평화를 줄 수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평화를 얻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무거운 짐을 지고 짐에 짓눌려서 땀을 흘리는 사람은 평안하지 않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짐을 벗어서 예수님께 맡기면 우리에게 휴식이 다가옵니다. 평안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지 아니하시면 우리에게 평안이 다가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하나님 없는 사람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이며 헛되도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잠은 마음의 평안입니다. 불안한 사람이 뒤척거리지 잠을 잘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참된 평화 마음의 평화도 예수를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늘에서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화평의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속에 와서 함께 일하므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 화평을 가져오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속에 와서 우리를 통해서 우리는 어느곳에 가나 화평을 가져오고 평화를 만들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9절에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우리에게 예수님 하신 그 화목의 역사를 우리도 하도록 부탁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평케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됩니다. 우리 가정에서 또 우리 이웃에서 우리 나라에서 우리는 평화를 가져오는 일에 온갖 힘을 다해야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우리가 분열을 가져오고 싸움을 가져오고 상처를 가져오면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아닙니다. 이것은 마귀가 하는 일인 것입니다. 마귀가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율법의 안경을 벗고 사랑의 안경으로 갈아 끼워야 됩니다. 율법의 안경을 딱 쓰고 자꾸 남의 허물만 들추어 내고 남의 잘못을 들추어 내고 남을 할퀴면 절대로 화평을 가져오지 않고 가는곳마다 분쟁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으면 율법의 안경을 벗고 사랑의 안경으로 갈아 끼워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0절에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영어에 보면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우리 한국보다 다르게 말합니다. 시어머니는 mother-in-law 법적인 어머니라. 며느리는 daughter-in-law 법적인 딸이라. 그건 뭐냐면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볼때는 율법의 눈으로 보는 어머니입니다. 또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볼때는 율법을 가지고 보는 딸입니다. 딸은 딸인데 율법으로 봐요. 그렇기 때문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가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틀린 것은 당연한 이칩니다. 어떤 권사님이 아들 집에 갔는데 아들이 아침에 앞치마를 두루고 식탁을 준비하니까 시어머니가 노발대발합니다. “며느리는 어디갔냐? 고약한 것! 어디 제 남편을 부엌에 보내가지고서 아침식사를 준비하다니...” 노발대발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가 혼비백산이 났지요. 그런데 똑같은 그 시어머니 권사님이 딸집에 갔는데 사위가 앞치마를 두루고 아침식사를 준비하는데 “아이고~ 우리사위 최고다! 이렇게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이런 훌륭한 사위가 있을 수 있느냐” 세상에 불공평해도 그렇게 불공평할 수가 어디 있습니까? 아들이 식사 준비하는 것은 도저히 며느리 꼬락서니 사나워 볼 수가 없는데 사위가 딸을 위해서 아침식사 준비하는 것은 그렇게 예쁘게 보이고 귀하게 보인다. 이것이 어떠한 눈으로 보느냐 거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죽먹은 그릇은 딸에게 설거지시키고 비빔밥 먹은 그릇은 며느리에게 설거지시킨다. 죽먹은 그릇이야 뭐 물에 헐렁헐렁하면 씻어지면 비빔밥 먹은 것은 고추장이 묻어서 이것은 닥아야 돼. 웃지만은 사실 그렇잖아요? 왜 그러느냐.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는 아무리해도 율법적인 관계입니다. 율법적인 관계는 언제나 비평을 하고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느니라. 그러므로 어머니가 딸을 다 덮어주는 것입니다. 화평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남의 허물을 파헤치거나 악의적인 비평을 절대하지 말아야 돼요.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도 이제는 우리는 보통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입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이기 때문에 사랑의 안경으로 갈아 끼워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1절로 5절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 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허물을 덮는 것이 화평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허물을 들춰내지 말고 허물을 덮으세요. 아내는 남편의 잘못을 자꾸 파헤치지 말고 허물을 덮으세요. 이웃에 허물을 덮어주는 사람은 이웃과 화평하게 되고 이웃의 허물을 자꾸 캐내어서 그것을 들춰내는 사람은 이웃과 불화를 가져오고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평을 위하여는 적은 손해는 받아 들이고 양보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세상에는 생존경쟁의 맹렬한 싸움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화평하려면 적은 손해는 그냥 양보해 버려야 돼요. 끝까지 내중심으로 이기주의로 살면 화평을 가져올 수 없지요.
마태복음 5장 39절로 42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큰 손해가 안나는 겁니다. 뺨 한 대 맞았으면 다른 뺨 돌려대는 것 별로 큰손해 안납니다. 입다 내버릴 수 있는 속옷 그것 몇푼어치 가치 납니까? 속옷 송사에서 받으려거든 겉옷도 내줘도 좋습니다. 오리를 가자는데 한 오리 더가서 십리가는 것 괜찮잖아요? 큰 손실이 없는 이상 양보해야 평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중세 평화의 사도인 성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이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심이 있는곳에 신앙을 거짓이 있는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해주시옵소서. 우리는 줌으로 받고 용서하므로 용서 받으며 그리고 죽음으로 영생을 얻기 때문인 것입니다”

8.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여덟째로,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가장 핍박을 많이 받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의이시기 때문에 가시는 곳마다 불의가 드러나므로 불의를 행한 자들이 예수님을 멀리하고 예수님을 미워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신자는 빛과 소금이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우리 성도들은 빛과 소금이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로 16절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러분 온 세상은 마귀에게 속해 있고 어둠의 세계요 부패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둠을 밝히는 것이 빛입니다. 어둠에는 온갖 불의, 부정, 부패한 일이 행해지는데 빛을 확 비취면 그것이 다 드러나잖아요?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이 핍박을 받을 것은 어둠의 사람들 앞에서 빛을 비추기 때문에 어둠의 행실이 드러나므로 저항하고 핍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썩어 들어가느 곳에 소금을 탁 쳐보십시오. 얼마나 아픕니까? 썩어가는 사람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소금을 치면은 아프니까 반항하죠. 부패를 막고 어둠을 밝히므로 필연적으로 부패한 사람과 어둠에 사는 사람에게 저항과 핍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20절에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8절로 19절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우리가 세상과 같이 어두움의 일을 하고 썩어져 가면 세상이 친구라고 감싸주지요. 그러나 어둠에서 우리가 빛을 비춰서 어둠을 물리치고 썩어져 가는 곳에 소금칠을 해서 부패를 막으면 세상은 우리를 적대시 하고 핍박하는 것은 마땅한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핍박한 것과 같이 우리를 핍박하고 예수님을 저항한 것처럼 우리를 저항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1절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라고 말했었으며
베드로전서 3장 14절에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복이 있나요? 그것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확인이 되므로 복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혀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핍박을 받지 아니하면 그는 비취지 아니하고 소금의 역할을 안했다는 증거입니다. 크리스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빛을 비추고 여러분이 소금역할을 하면은 반드시 세상에 저항을 받고 핍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핍박과 저항을 받으면 여러분이 진신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4절에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성령이 있다는 증거가 되므로 여러분이 확실히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핍박을 받으면 하늘에서 상이 큽니다.
마태복음 5장 12절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이땅에서 우리가 상받은 것은 이땅이 지나가면 다 없어지잖아요. 그러나 하늘에 올라가면 우리가 이땅에서 그리스도 때문에 핍박을 받은 것은 하늘에서 주님이 상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적은 상이 아닙니다. 큰 상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땅에서 상처를 입은 것은 하늘나라에 영광을 얻을 훈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핍박당할 때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될 것은 하늘에 상이 크기 때문인 것입니다.

<결론>
행복의 기초는 마음의 태도입니다. 마음바탕이 행복의 상태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물질과 환경이 플러스 되어 더 큰 행복을 누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져다 주신 천국 시민의 여덟가지 마음의 덕목을 가진 자는 정말로 행복의 바탕이 이루어진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깊이 묵상하고 우리가 그 안에 들어가 살도록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우리는 행복을 누리며 살수 있게 되고 하나님 영광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그 행복을 마음속에 찾지 않고 바깥에서 찾고 있습니다.
환경과 물질에서 찾으므로 변화무쌍한 환경과 물질 때문에
마음속에 행복은 있은 듯 하나 곧 사라지고 맙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고 부딪혀도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행복의 기초는 바로 주님이 가르쳐 주신 이 팔복에 있사옵니다.
여덟가지 복을 우리가 마음속에 간직하고 이 덕목을 가지고 살게 도와 주시옵시고
늘 이 말씀을 묵상하고 이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참으로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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