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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치료의 은혜

마태복음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006 추천 수 0 2008.09.23 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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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8:1-4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3 1월 26일 주일2부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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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 진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예수님의 치료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자식을 기르는 부모는 자식이 잘못했을 때에 징계를 하게 됩니다. 가장 가벼운 징계는 꾸짖음이고 좀더 무거운 징계는 벌을 받게 하고 채찍으로 종아리를 때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코 자식이 고통스러운 심신의 병이 들도록 병균을 그 몸에 주입하거나 음식에 병균을 섞어서 먹이기가 그를 통해서 징계하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잘못을 징계하십니다. 꾸짖으시고 여러 가지 벌을 내리십니다. 그러나 결코 흉악한 질병으로 때리시지는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12장 11절에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 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부모보다 더 크신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마태복음 7장 9절로 11절에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본론>
1. 병에 대한 예수님의 뜻
첫째로, 병고침 받는 것이 과연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님의 뜻인지 아닌지 이것을 우리 마음속에 확실히 해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고침 받기 위해서 기도할 때 번민하는 것은 “내가 병고침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합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 몸에 병이 고침 받고 건강하게 되길 원하신다는 확실한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 1절로 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는데 한 문둥병자가 뛰어 나와서 예수님 앞을 막았습니다. 이건 굉장한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문둥병 환자는 성한 사람 앞에 오지 못합니다. 성한 사람이 지나가면 고함을 쳐야 됩니다. “나는 부정하다. 부정하다. 부정하다” 곁에 못오게 합니다. 만일 성한 사람 곁에 오면 돌로써 맞아 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그 일행이 오는데 뛰어 나와서 주님 앞을 막고 엎드렸다는 것은 벌써 죽기로 각오한 사람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이 부정한 문둥병 환자가 어떻게 감히 우리 성한 사람의 행열 앞에 나왔느냐고 고함친다면 순식간에 사람들은 돌을 들어 그를 쳐서 죽였을 것입니다. 그는 죽기로 각오하고 예수님 앞에 병고침 받는 것이 하나님 뜻인지 아닌지 알고 싶어 나온 것입니다. 문둥이로 평생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주의 뜻이 아니면 고침받지 못할 바에는 죽는 것이 낫겠다는 각오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을 쳐다보고 말했습니다. “주님! 원하시면 저를 깨끗게 하실수 있나이다” 왜냐하면 깨끗이 할 수 있는 능력은 주님께서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이 문둥병 환자는 알았습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그는 시인한 것입니다. 주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으나 자기 문둥병이 낫는 것이 주의 뜻인지 아닌지 그걸 전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하시면 저를 깨끗게 하실 수 있나이다. 그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그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제자들 앞에서 그 고름이 질퍽질퍽 나는 그 머리위에 주님 손을 덮석 얹으시면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즉시 순식간에 고름은 사라지고 문둥병은 고침을 받고 그는 정상인이 되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생기가 그 몸속에 불어 들어와서 순식간에 그는 새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주님은 이를 통해서 우리의 병고치는 것은 결정적으로 주님의 뜻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세상에 다 버림받은 문둥병 환자도 주님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하시고 고쳐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보면 죄사함과 병고침을 주님께서는 언제나 동등하게 여겼습니다. 죄사함 따라하고 병고침 따로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죄사함이 있는 곳에는 병고침이 있고 병고침이 있는 곳에는 죄사함이 있어서 죄사함과 병고침은 손의 안쪽과 등과 같이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9장 1절로 8절에 보면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원수들 앞에서 행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와계신 곳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모였습니다. 거기에 바리새 교인이나 교법사들 주님을 비평하고 책잡으려는 사람들도 기회를 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풍병 걸린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는 지붕을 뜯고 친구들이 밧줄로 매달아 내렸습니다. 예수님은 그 믿음을 보셨습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 아닙니까? 주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사람은 마음속에 깊이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면서 주앞에 나왔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보나 주님은 속을 보았었습니다. 그가 회개하고 자복하는 모습을 보시고 “네 죄사함을 받았다”고 하니까 거기에 바리새 교인이나 교법사들이 마음속으로 “쯧쯧쯧 어찌 사람이 감히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가!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다. 하나님 이외에 누가 죄를 사하는가!”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아주 어려운 질문했습니다. “네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과 침상을 들도 집으로 돌아가라 하는 말이 어느것이 쉽겠느냐?” 죄사함을 받았다는 말은 쉽잖아요. 증거가 안보이니까. 그러나 중풍에 걸려 옴짝도 못하는 사람 “네 침상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어렵잖아요. 말만 가지고 하는것하고 실력으로 보이는 것 하고는 천양지차가 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예수님을 비웃는 바리새교인이나 교법사에게 이 어마어마한 질문을 했습니다. “네 죄사함을 받았다”하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은 “침상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하는 말은 아무나 못하잖아요. “내가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은 아무나 하는 말이 아니다. 진실로 능력과 실력을 가지고 하는 말이다. 그 증거로서 이 사람 고치는 것 보아라. 네 침상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 즉시로 생기가 그 속에 들어오매 그 사람의 중풍된 몸은 다 고쳐지고 야들야들 부들부들 해져서 일어나 침상을 짊어지고 군중 사이로 걸어 나갔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그냥 허풍말이 아닙니다. 실력이 뒤따른 것입니다. 죄사함을 받는 것은 그 결과로 병고침도 따라온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주님은 죄사함과 병고침을 동시에 일어나는 역사로 생각했지 죄사함 따로 받고 병고침 따로 받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증거에는 항상 치료의 역사가 따랐었습니다.
마태복음 8장 14절로 18절에 보면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여기에 예수님의 사역에는 항상 치료의 역사가 따랐습니다. 예수님 죄사함 따로 하시고 병고침 따로 하신적 없습니다. 주님 계신 곳에는 항상 죄사함과 병고침은 손과 손을 마주잡고 같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장모집에 들어갈 때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걸렸습니다. 아마 요사히 말로 말하면 장질부사 이런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장티푸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장모의 손을 잡고 병을 꾸짖었으니 병이 즉시로 떠나가고 그 장모가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귀신들린 사람 각종 앓는 사람을 데리고 오매 주님이 말씀으로 귀신 쫓아 내시고 병든자들 다 고쳤다. 한사람도 남김없이 다고쳤다. 주님을 간절히 찾고 나오는 모든 죄인을 다 용서하신 것같이 주님을 간절히 찾고 나오는 모든 병든 자는 주님 다 고치신 것입니다. 여기에 특별히 볼 것은 병고침 받기를 소원하고 나오는 사람을 고쳐 주셨지 주님이 병자를 찾아 다니지는 않았었습니다. 죄인도 회개하고 나오는 사람을 용서해 주시지 가만히 있는 사람을 용서해 주지는 않습니다. 간절한 마음의 소원이 있어서 죄를 회개하는 사람 용서해 주시고 병 낫기를 소원해서 주님께 찾아 나오는 사람들을 주님께서 고쳐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이 복음서에 보면은 예수님께서는 천국 복음에는 반드시 병고침이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천국복음의 기초는 치료에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7절로 8절에도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열두제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그냥 말만으로 천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했으면 천국의 증거와 열매를 보여주라’ 천국의 증거와 열매는 귀신을 쫓아 내고 병을 고치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뭐라고 했습니까? 천국이 여기있다 저기있다도 못하리니 천국은 너희 안에 있느니라 했으니 예수 믿는 우리 안에 천국이 있으면 반드시 병고침 받는 열매와 증거가 나타나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만 그렇게 말씀한 것 아닙니다. 칠십인의 제자를 부르셔서 둘씩 둘씩 각 촌락으로 보내서 복음을 증거하려 했을때도 똑같은 명령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 8절로 9절에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보십시오. 어느집에 가든지 주는 음식 먹고 거기에 있는 병은 고쳐라. 공짜로 음식먹고 나오지 말라. 음식 대접받고 그 집에 있는 병은 다 고쳐라. 그리고 말하기를 이것은 천국이 가까이 온 증거라고 말하라. 천국은 치료에 있는 것입니다. 치료는 천국의 기반인 것입니다. 치료없는 천국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천국이 임한 곳에는 항상 치료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너희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천국의 왕이신데 천국의 왕이 계신 곳에는 천국이 임하여 계시고 천국이 임하여 계신 곳에는 치료는 반드시 따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2. 치료와 대속의 은혜
둘째로, 치료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속에 들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반드시 천국의 증거로만 치료를 보여준 것 아닙니다. 불쌍히 여기심으로 말미암아서 마니 치료한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흘려 우리를 대속하신 대속의 은총속에 치료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만 위해서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린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병을 주님께서 청산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렸다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죄사함이 주님의 대속을 통해서 오는 것처럼 병고침도 주님의 대속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 지셨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4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 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예수님이 맞아서 고난 당하는 것을 우리는 그냥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당한다고 생각했는데 실로 그 내용인즉,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했습니다. 우리 질병을 지고 병으로 다가오는 그 모든 슬픔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대신 짊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도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똑같이 허물을 주님께서 대속하시고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의 징계를 대속하심같이 우리의 병도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대신 다 청산해 버렸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위해서 대신 갚으셨습니다. 우리가 또 갚을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몸찢고 피흘려 갚은 것을 우리가 재차 갚을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10절에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 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상함을 받아서 우리 질고를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가 병앓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예수님 보시고 “네가 대신 상처 받으라. 그래서 내 소원을 이루어라. 모든 사람들 너를 믿고 나오는 사람마다 병에서 놓여남 받게 하기를 나는 소원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잊지 말아야 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택을 무시하지 말아야 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우리가 무시해 버리고 감사할줄 모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경 시편 103편 1절로 3절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많은 예수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택을 잊어 버리고 있습니다.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은택을 누리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택을 우리가 감사히 받아 들이고 누리기를 하나님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은택이 무엇입니까?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라고 말했습니다. 죄사함과 병고침은 똑같이 주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택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죄가 회개할 때 용서받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갖은 온갖 병을 다가지고 주님께 나와서 죄를 회개하고 치료 받기를 원하면 주님이 고쳐주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은택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잊으면 안돼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잊어 버리고 있습니다. 많은 강단에서 치료하는 은혜를 설교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잊어 버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택을 받지 못하고 감사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용서와 치료를 분리시켜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사함과 우리의 치료를 동시에 언제나 허락하셨지 이것을 분리해서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베드로는 말하기를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도인 베드로가 복음을 말씀할 때 죄사함과 함께 치료를 동시에 말했습니다.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에 매달렸고 채찍에 맞은 것이 우리로 나음을 얻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를 중심으로 해서 열두사도가 복음을 증거할 때 그들은 어느곳에 가나 죄사함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고 병을 고쳤습니다. 이일은 사도적인 복음인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우리가 이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 하면 사도적인 전통을 져버린 것입니다. 사도적인 가르침을 져버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반만 쪼게서 전도하고 반은 내버린 것이 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공회의 회장이었던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온교회 편지하실 때 야고보서 5장 15절로 16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치료와 용서를 명령했습니다. 그냥 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고 말하지 않았었습니다. “너희 죄를 서로 고하고 병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라” 명령입니다. 사도시대에 총회 총회장이었던 야고보가 온교회에게 낸 공적 문서인 것입니다. “너희 중에 병든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저들은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져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너희죄를 서로 고하며 병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극적으로 치료와 죄의 용서를 위해서 교회에서는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3. 성경이 가르치는 치료의 방법
셋째로, 성경이 가르치는 치료의 방법은 어떤 것입니까?
어떻게 해서 병을 고쳐야 되겠습니까? 성경에는 안수하므로 병을 고치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승천하신 후에도 제자들에게 병고치는 일을 계수하라고 명령하셨는데
마가복음 16장 17절로 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자에게 손을 얹은즉 그 손을 통해서 성령의 생기가 흘러 들어가서 병을 고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도 부모가 세상을 뜨실때에 유언을 하시면 그 유언에 귀를 기울이고 최선을 다해서 그 유언을 이룰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마가복음 16장 17절로 18절은 유언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을 떠나기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긴 말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유언을 우리가 무시하면 안되죠. 그 유언중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에게는 손을 얹으면 낫는다고 말했으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가는곳마다 예수님의 유언을 따라서 귀신을 쫓아 내고 병든자를 고쳐야만 하는 것입니다. 치료는 우리 기독교 복음의 편만한 은혜인 것입니다. 그리고 기름을 바르고 기도해서 고치라고 말했습니다.
마가복음 6장 12절로 13절에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귀신은 말씀으로 쫓아내지만은 병을 고칠때는 기름을 바르고 했습니다. 저도 수요일날 안수할때는 기름을 발라서 안수하고 기도합니다. 기름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성령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병이 낫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낫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생기가 들어와서 낫는다 그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에스겔 골짜기에 마른뼈다귀 보십시오. 뼈다귀들이 살이 올라서 누워서도 하나도 살아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이 “생기야 들어오라” 사방에서 바람이 불더니만 모두다 살아 일어나니 큰 군대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로 그 생기는 성령의 역사를 말하는 것인데 기름을 바르라는 것은 성령의 생기가 들어와서 고침을 받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병도 성령의 창조적인 역사로써 나을수가 있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안수하는 것에다가 기름을 바를 때 우리는 그 눈으로 보고 성령이 역사하신다. 성령의 능력으로 병고침을 받는 더 큰 확신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성령을 발라서 치료함을 받는 역사를 베푼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4절에도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장로들은 여러분 교회중에 제일 믿음이 강한자들 아닙니까? 신앙의 연주가 깊고 믿음이 크기 때문에 믿음이 강한자가 믿음이 약한 자보다 능력을 더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름을 바르므로 사람의 힘과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병나았을 때에도 “아~ 내가 안수해서 낳았다” 그런 건방진 소리 안하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서 병고침을 주었다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기 위해서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성경에 보면 바울의 앞치마를 갖다가 병든 자에게 얹은즉 병이 낳았었습니다. 여러분 앞치마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울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앞치마를 통해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 11절로 12절에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사람이 너무나 많고 혹은 거리가 멀고 직접 바울이 갈 수 없는 곳에는 바울이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갖다가 병든자에게 얹으면 귀신도 쫓겨 나가고 병도 나았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몸을 통해서 역사하던 성경이 그 앞치마를 통해서 가신 것입니다. 옛날에 하나님 앞에 제사장이 있고 나간 옷은 그 옷 자체도 거룩하므로 그 옷을 입고 바깥 사람에게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 옷에 손을 대는 것마다 다 거룩해졌습니다. 그처럼 오늘날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면 그 성령의 역사가 사람 몸을 통해서 입은 옷까지도 거룩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영광이 같이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작년 8월 21일 수요예배후에 박애숙 셀리더가 큰시숙이 간경화에 시달리면서 응급실에서 생명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가져온 손수건을 간절히 안수하고 기도해서 그 손수건을 보냈습니다. 그는 큰시숙 아픈데 그 손수건으로 닦아 드리고 그 손수건으로 얹고 기도했는데 그날 아침에 기도했는데 오후에 병이 급속도로 낫기 시작해서 일반병실로 옮기고 회복되어서 일주일 만에 퇴원해 버렸습니다. 간경화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낫는 병이 아니에요. 간이 경화되어 있으면 간암으로 발전하고 살아나지 못하는 것이 보통 상식인데 오전에 중환실에 있는 사람에게 손수건을 얹고 기도했는데 오후에 일반병실로 오고 일주일만에 퇴원해서 건강하게 되어 현재 지방에서 잘믿고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보면 베드로의 그림자만 통해도 사람들이 나았다. 어찌나 병자가 많던지 일일이 베드로가 안수했으매 베드로 지나가는 곳에 눕혀 놓고 베드로 그림자가 쫙 지나가니까 그림자만 접해도 나아 버리고... 하나님께서는 사용하는 주의 종의 몸에 있는 손수건과 앞치마 뿐 아니라 그림자도 주님이 사용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놀라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병든자를 그냥 형식적으로 손을 얹어 기도해봤자 소용이 없어요. 믿음으로 기도하라. 믿음이 확실한 자가 안수를 하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5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그래서 성경에는 네 믿은대로 될찌어다라고 했습니다. 확실히 하나님 뜻을 알고 병이 낫는 것을 믿고서 기도해야지 의심하고 기도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확실히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가서 안수기도를 받으라. 믿음이 있는자가 기도를 해주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의도직할에 나오는 김혜경 성도의 간증을 들어보면 2000년 1월 딸이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감기인줄 알고 병원에 데려갔는데 급성 중이염이라고 했습니다. 의사는 청각에 이상이 올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고막이 충혈되고 온몸이 열이나서 농이괴고 고름이 흐르니 빨리 수술을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설마하며 통원치료를 했는데 병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아이는 아파서 잠도 못자고 울기만 했습니다. 그동안 딸을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지 못한 것을 눈물로 회개하고 수술날짜를 잡았지만 야고보서 5장 15절은 기억하고 주일예배 설교 후 신유시간에 딸과 함께 귀에 손을 대고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을 주시며 “오늘 중이염으로 온 어린아이 엄마가 그 귀에 손을 얹고 함께 기도했는데 나았다”는 계시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엄마와 딸이 할렐루야 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다음날 딸과 함께 병원으로 달려가 검사를 했는데 수술을 하루 앞두고 병원에 가보니 중이염이 깨끗이 나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치료함 받았습니다. 믿음의 기도가 하나님의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안올때는 믿음이 임할때까지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받은줄로 믿음이 올때까지 까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원래 믿음이 강한자는 그냥 그대로 기도할 수 있는데 자꾸 의심이 생기거든 의심이 다 물러가고 마음에 믿음이 점령할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계속 선한싸움을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싸움인 것입니다.
이주영 대학생이 저에게 인터넷을 통해 1월 24일날 이런 편지를 넣었습니다. 작년 11월 어머니가 몸이 좋지 않아서 진찰을 받았는데 쓸개담석증인데 더 큰 문제는 간이 나빠서 수술을 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온 식구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이틀 두달동안 끈질기게 기도하던 중 주님이 고쳐주신다는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보십시오. 두달동안 끈질기게 부르짖고 기도한 결과에 영적 싸움에서 이기고 마음에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더 간절히 부르짖으며 지난주 다시 검사를 받았고 그저께 1월 24일 결과를 통보 받았는데 놀랍게 쓸개담석이 사라지고 간도 정상수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나았다는 통보를 받았는데 그 하루 전날밤 어머님 꿈에 당회장님이 나타나서 어머니가 안수를 받으려고 하자 당회장이 하는 말이 “성도님이 남편도 전도했고 가족들 모두다 잘 믿고 기도 많이하니 안수 안받아도 이제 됐어요” 하더라니 것입니다. 그대로 수술 안해도 되도록 주님이 고쳐 주신 것입니다. 영적 싸움에서 이긴 것입니다. 처음에는 믿음이 안생겼어요. 그러나 두달동안 온 가족이 결심하고 계속 영적 싸움을 한 결과에 두달만에 온가족이 다 회개하고 다 예수 믿고 하나님께 나오고 믿음이 생겨나고 확신이 오고 그리고 담석증도 간도 깨끗이 나아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믿음 임할때까지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병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치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라는 것입니다.
병에는 그 배후에 직접 혹은 간접으로 죄와 마귀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병낫기 위하여 기도드릴 때 깊은 회개와 헌신이 필요하며 악한 마귀를 단호히 대적하고 물리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죄사함을 받고 마귀를 대적하여 쫓아 내고 병고침을 부르짖을 때 주님은 우리를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3서 2절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하신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내 영혼아 야웨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웨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 저가 내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내 병을 고치시며 내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세우시며 좋은 것으로 내 소원을 만족케 하사 내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오늘날 우리에게 죄사함만 주실 뿐 아니라
병도 고쳐 주시고 우리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여 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우리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도록 도와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문둥병 환자가 주님은 능력이 있으나 고치는 것이 뜻인지 몰라서 목숨을 들고 주 앞에 나와서 부르짖은 것처럼
우리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여 모두 다 죄사함과 동시에 병고침을 받게 도와 주시옵시고
마귀의 속박에서 해방되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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