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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위에 집을 세우라

마태복음 한태완 목사............... 조회 수 2765 추천 수 0 2009.03.05 13: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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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7:15-27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http://je333.com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24절)

세계적인 미국 시인 롱펠로는 그가 지은 "건축가"라는 시에서 ‘세상 모든 사람은 운명과 시간 안에서 집을 짓는 건축가’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본문에서 세상 모든 사람이 집을 짓되 지혜로운 자들은 반석 위에 짓고 어리석은 자들은 모래 위에 짓는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시편 127편 1절에 보면 솔로몬도 사람들이 인생의 집을 짓는데 하나님께서 함께 지어주시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첫째, 지혜로운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습니다. 여기서 반석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5∼7장에서 선포하신 내용이 반석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은 인생의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인생의 집을 반석 위에 세우면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폭풍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는데 그 이유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비와 창수 바람은 영적 의미로 인생살이에 닥쳐오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환란과 시험 등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말씀이 능력이 되어 이 모든 것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으므로 인생의 집이 넘어지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취사선택할 권한이 없고 절대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어리석은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짓습니다. 여기서 모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이유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면 부담이 되고 힘이 들고 손해를 본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당장은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편할 지 모르겠지만 인생살이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과 환란과 시험거리를 만나면 인생의 집이 무너지게 집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말씀의 능력을 소유하지 못하였으므로 이런 것을 이길 수 없어 인생의 집이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10:4)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이 인생의 집을 반석 위에 세우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유명한 산상설교의 결론을 읽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옳게 생각하여 주여 주여 하면서도 그 말씀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생활을 한다면 아무런 의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 말씀을 읽을 때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주의 이름으로 다니며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사람 중에 구원을 못 받은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지라도 그리스도만 계시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입니다. 전에 시카고에 화재가 나서 무디(D.L.M oody)선생의 가산이 전부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어떤 사람이 무디(Moody)선생을 찾아와서 위로하는 말로 선생님, 아니 이번 화재에 모두 잃어 버렸었다면서요? 하니까 그때 무디(Moody)선생이 기쁜 낯으로 대답하는 말이 아니요, 그리스도는 내게 남아 있어요 하였다고 합니다. 세상에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소유한 것이 가장 귀중한 것을 의미하는 말인 줄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의 결론에서 반석 위에 세운 집과 모래 위에 세운 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반석은 자연석과 같은 느낌을 주지마는 누가복음 6장 48절에 보면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는 인간의 노력 면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하여간 집을 건축함에 있어서 기초공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집을 성경에서 보면 여러 가지 의미로 말씀하였습니다. 가령 에베소서 2장 1절, 22절에는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지어져 가느니라 하였는데 여기의 집은 우리 개인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 보면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곧 여기의 집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가령 요한복음 14장 2절에 보면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고 하였는데 내 아버지 집은 하늘나라를 가리킵니다. 개인의 신앙을 완성함에 있어서나 교회를 건설함에 있어서나 나아가서 천국을 확보함에 있어서 그 기초적 요소는 무엇입니까?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분명히 우리 인생의 집을 짓는데 있어서 기초공사를 하는 것입니다. 기초공사는 먼저 하여야 되고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기초공사는 땅을 파고 돌을 묻는 공사입니다. 좋은 기둥을 세우고 아름 다운 창문을 달고 페인트로 칠해서 아름답게 꾸미는 지상의 공사는 투자하는 것만큼 노력하는 것만큼 사람의 눈에 보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는 하는 일들이 보기에 화려하고 명예스럽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보이지 않는 일에 노력을 경주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물질을 쏟는 것입니다. 얼른 볼 때 공연한 시간과 물질의 낭비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약삭빠른 사람들 생각에는 어리석은 일로 보여집니다. 어떤 악덕 건축업자들은 보이지 않는 부분인 기초공사는 아주 허술하게 하고 보이는 부분만을 아름답게 꾸며 팔아 버립니다. 얼른 보아서는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지나 보면 알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집을 짓는데 기초공사는 결코 낭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소중하고 가치있 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진가가 나타날 때는 평시가 아니라 위에서는 비가 내리고 아래서는 창수가 나고 옆에서는 바람이 부딪치는 말하자면 역경이 다가 올 때 기초가 튼튼한 집과 약한 집의 판가름이 납니다. 우리 인간이란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른 보아서는 어떤 사람이 바른 인격의 소유자인지 그렇지 못한지 자세히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면으로 접해 보고 시간이 흐르노라면 자연히 그 사람의 본성이 나타나는 법입니다. 집을 짓는데 기초는 보이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질적인 것은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육적인 것은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과학적인 것은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덕적인 것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 사람들이 물질적인 것, 육적인 것, 과학적인 것, 외부적인 것, 보이는 것에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기 때문에 큰 발전을 가져 왔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과학시대라고 말합니다. 더구나 이 과학이 얼마나 빠른 발전을 가져왔는지 모릅니다. 가령 교통을 보세요. 과학이 발전되지 못했을 때는 어디에 가려면 걸어 갔습니다. 좀 여유있는 사람은 말을 타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자동차가 얼마나 빠릅니까? 기차도 있고 기선도 있고 비행기도 있습니다. 그 동안은 제트기하면 굉장히 빠 른 비행기로 알았는데 작년부터는 영불합작으로 초음속 비행기 콩코드라는 여객기가 나와서 전 의 제트여객기보다 갑절 빠르게 되었습니다. 오래지 않아서 보통 사람도 우주선을 타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통신은 어떻습니까? 옛날에는 누구에게 편지를 전하려고 하면 다른 길이 없었어요. 그저 편지를 써서 사람을 시켜 보내곤 했어요. 그러니까 좀 먼데는 한달도 걸리고 두 달도 걸렸습니다. 물론 바다 건너는 생각도 못하구요. 그런데 지금이야 얼마나 빠릅니까? 편지를 보내면 비행기로 나르고 그뿐입니까? 전보가 있고, 이메일이 있고, 전화가 있어서 세계 어디에도 서울 안에서 하는 것처럼 가까이 들립니다. 이제는 인공위성으로 중계하니까 얼마나 더 편리하게 되었는지 몰라요.요사이를 소위 매스컴뮤니테이션의 시대라 하지 않습니까? 전에 19세기에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찰스 스펄젼(Charles Spurgeon)목사는 약 6천 명 교인을 한 예배당에 모아 놓고 설교를 하곤 했는데 그때 이런 확성기가 있은 줄 압니까? 그저 육성으로 했어요. 본래 그는 음성이 아주 좋았습니다. 보통 사람의 경우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처럼 좋은 시설이 있어서 작게 말해도 저 뒤에까지 다 들리고 뿐만 아니라 다른 방에 계신 분들까지도 다 들으시고 텔레비젼을 통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젼을 이용 하면 세계각국에서 수천만 수억만의 사람이 함께 듣고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과학으로 인해서 우리 인간 생활에 큰 변혁을 가져 왔습니다. 자, 그런데 이렇게 과학이 우리 생활에 큰 영향을 주게 되니까 오해를 가지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아 지금은 과학시대야 과학만능시대야, 과학 이면 못할 것이 없어.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잘못입니다. 과학만 발전시키면 모든 사람이 잘 살게 된다고 하는 사상은 요사이 뿐 아니라 19세기 말엽에 소위 유토피아사상(Utopia)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과학만 잘 발전하게 되면 세상이 변하게 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고 유토피아(Utopia) 소위 이상향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공상적 사회주의가 나중에는 공산주의를 낳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과학은 만능이 아닙니다. 제한이 있습니다. 과학이란 우주의 물질을 연구해서 그 성품을 알아내고 그것이 운영되는 법칙을 발견해서 인간생활에 필요한 새 것을 만들어 우리 일상생활에 편의와 혜택을 주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과학이 우주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습니까? 물질의 뜻을 말해 줄 수 있습니까? 이 우주가 어떻게 생겼으며 무슨 목적으로 존재하며 우주의 궁극적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과학이 대답할 수 있습니까? 과학의 영역은 물질 자체에 제한되어 있습니다. 우주뿐만 아닙니다. 우리 인간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과학이 우리 인간에 대한 많은 지식을 보여 줍니다. 생리학적으로 우리 인간을 연구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전부입니까? 인간이 어디서 왔으며 무엇하러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여기에 대해서 과학이 말할 수 있습니까? 인간이 이렇게 단순히 육신뿐인지 이 속에 영원불멸의 영혼이 있는지 과학이 설명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과학의 영역이 아닙니다. 신앙의 영역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배워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이와 같은 자연을 초월하는 초자연적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도 여러분! 과학이 이렇게 인간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외부생활에 변화는 가져오지만 인간의 내부생활의 변화는 과학자체가 가져오지는 못합니다. 곧 사람이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집에 산다고 다 그 사람이 마음이 변해서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집에서 가난하게 살던 가정이 큰 집 짓고 살게 되었다고 그 집이 꼭 행복합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만히 보면 외국이나 한국이나 큰 집 짓고 사는 사람들 가운데 더 불행한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과학은 사람의 겉모양은 바꿔 놓을 수 있어요.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신앙의 영역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새 사람을 만들려고 마음이 변하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우리가 과학만 배우고 과학만 발전한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경제 발전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경제발전에 많이 힘쓰지요. 또 사실 이것이 필요합니. 우리는 그 동안 다른 나라에 비해서 너무 가난하게 지냈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도 경제성장을 해서 넉넉하게 살면 얼마나 좋겠어요? 사실 최근에 우리나라가 이 방면에 주력해서 자세한 내용은 모릅니다마는 눈에 보이는 면에 서 많이 달라지고 발전한 것이 사실입니다. 전에 비해서 외부 환경이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고 국민의 소득도 훨씬 높아져서 생활수준의 향상을 가져온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동남아에서는 그렇게 생활 면에 뒤지는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나라가 경제 성장만 해서 바로 사는 줄 압니까? 기억하십시오. 경제성장은 말하자면 눈에 보이는 집과 같습니다. 경제성장을 하면 할수록 집을 높이 짓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눈에 보이는 집이 높이 올라가면 높이 올라 갈수록 보이지 아니하는 집의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기초가 약한데 밖에 세워지는 집이 높이 올라가면 높이 올라 갈수록 사실 위험한 것입니다. 신앙적, 정신적 기초의 준비없이 과학적 경제적 성장을 가져오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이것이 현대인의 고민입니다.

우리 모두는 집을 짓고 삽니다. 육신을 위해 집을 짓고 살면서 동시에 영혼을 위한 집도 짓습니다.
‘영혼을 위한 집을 짓는다’라는 것은 ‘인격’이 집을 짓는 것이며 ‘성품’이 집을 짓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어떤 인격을 가지고 있느냐, 어떤 성품을 가지고 있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인격과 성품이 바로 그 사람 전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재료를 똑같이 주셨습니다. 집을 짓는 데 필요한 철근, 목재, 시멘트, 타일, 유리 등 모든 것을 동일하게 주셨습니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두 사람이 집을 짓기 시작했는데, 1년 후에 큰 차이가 났습니다. 한 사람은 그 재료를 잘 이용해서 쓸모 있고 아름답게 집을 지었으나, 다른 한 사람은 집을 짓지 못하고 재료를 그대로 방치한 것입니다. 세월이 지났지만 그 사람은 지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는 나이를 먹어도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예전과 똑같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또한 건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설계도입니다. 집을 지을 때 절대로 설계비를 깎으면 안됩니다. 또한 설계도를 무시하고 시공하면 안됩니다. 설계도대로 해야 제대로 된 집을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복된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영국의 석학이었던 아놀드 토인비 박사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현대인은 자연과 물질을 다루는데는 능숙하고 지혜롭지마는 자기자신을 다루는데는 어리석기 한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과학의 문명은 토끼걸음처럼 빠른데 도덕문명, 정신문명은 거북이처럼 기어가기 때문에 여기에서 생기는 격차로 인해서 현대인은 몸부림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이 이제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갔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보이는 집들은 더 높게, 크게, 아름답게 지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집을 어떤 기초 위에 세우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집은 반석 위에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창수가 부딪쳐도 무너지지 아니합니다.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보기에는 좋을는지 몰라도 무너질 때가 옵니다. 일본 동경 대지진 때에 무너지지 않았던 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집은 미국사람 라이트(Light)란 사람이 설계한 것으 로 지진도(地震 )에 맞게 기초공사를 했으므로 건축 당시에는 과대한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무서운 대지진 속에서도 완전히 보전이 되어 그 건축가의 이름이 더욱 높아졌다고 합니다. 신앙이란 기초공사가 튼튼히 되어 있는 사람은 큰 역경이 위에서 옆에서 아래서 몰아와도 신앙의 빛을 더욱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다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나 반석 위에 세 우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십시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배우고 그 말씀 가운데 확고히 서십시다. 그리스도는 반석이십니다. 그리스도 위에 우리의 집을 지웁시다. 반석 위에 집을 세우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46:1)

성도 여러분, 어리석은 자처럼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모래 위에 집을 건축하는 자가 되지 마시고 주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여 반석 위에 집을 건축하여, 어떤 시험과 환란, 어려움에 부닥쳐도 견고히 버티는 승리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우리의 피난처시요 반석이신 하나님, 우리 모든 성도가 지혜로운 자가 되어 주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여 반석위에만 집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인생이 고난의 바람에 무너지는 부실공사가 되지 않게 하시고 믿음의 반석 위에 든든히 세워진 견고한 집이 되게 하소서. 주는 나의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옵니다. 나의 주님으로 믿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의 발걸음마다 기적과 능력과 은혜와 축복이 있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태릉고등학교 교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여호와는 반석이시라

성경: 시18: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아이언싸이드 박사는 한 때 인디언에게 전도 사업을 벌이고 있었는데 그때는 자동차가 없어서 마차를 타고 여행해야 했습니다. 하루는 저녁집회를 인도하려고 오후 다섯 시에 인디언 마을을 떠나 선교본부로 출발했는데 그들이 출발하자 해가 사라지고 구름이 뒤덮이기 시작했습니다. 곧 폭풍우가 몰아닥칠 것을 알았고 이 폭풍우에 갇히게 되지 않을까 모두걱정하자 마부가 말했습니다. "꼭 붙잡으십시오. 마차를 전속력으로 몰겠습니다. 저쪽에 가면 커다란 바위산이 있는데 그곳까지만 가면 안전합니다." 그리고는 세차게 말을 몰자 곧 들판 저쪽에 약 15M 높이의거대한 바위가 보였습니다. 마부는 더욱 세차게 말을 몰아 바위 가까이 갔으며 말을 멈추지 않고 계속 채찍질하여 바위산 가운데 뚫려있는 동굴속으로 곧바로 들어가자 천둥이 울리면서 폭풍우가 노도와 같이 마구 바위산 위에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무서운 폭풍우가 그들의 귀를 찢을 듯이 몰려왔으나 그들은 안전했습니다. 그때 한 인디언이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반석이십니다. 오늘도 반석이신 주님만 바라보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묵상 및 토의
0 나는 지혜롭게 그리고 반석 위에 인생의 집을 짓고 있습니까?
0 나의 인생의 집은 어떠합니까?
0 나는 주님의 보호와 도우심의 손길을 느끼며 살고 있는가?
0 주님이 나의 반석이시요 보호자이심을 아는가?
0 나는 내 앞길을 주님께 맡기고 있는가?
0 나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0 나에게는 영혼의 도피처가 있는가?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견고한 터전

미국 서부는 환태평양 화산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지진이 자주 발생합니다. 오래 전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커다란 지진이 일어났을 때의 일입니다. 그곳 사람들은 모두 겁에 질려 이리 뛰고 저리 피하고 야단법석이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한 분이 피난을 가거나 동요함 없이 자기 집에 조용히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지진이 끝난 후 사람들은 그 노부인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소동 속에서도 기쁜 얼굴로 의자에 앉아 계실 수가 있습니까? 대체 그러한 담대함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부인은 아주 평온한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나는 내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그토록 흔드시는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그분이 나를 능력의 손 안에 안전하게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 기쁨이 솟아나 무서워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성전은 시온산 꼭대기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견고한 터전 위에 서있습니다. 이것은 거기 거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 역시 흔들리지 않고 견고한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를 지키시고 요동치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세를 가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송하리로다"(시48:1)
* 기도: 광대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 예화(2): 견고한 체인점

전국 어디를 가도 같은 품질, 같은 가격으로 서비스받을 수 있는 운영망을 체인점이라고 합니다. 각 체인점에는 본사의 요구와 구비 요건이 제시됩니다. 거기에 따르는 이익은 본사가 책임져 줍니다. 본사는 각 체인점이 우선 눈앞의 이익보다 본사의 요구와 비법에 따르고 있는가를 수시로 점검합니다. ‘체인’이라는 말은 ‘쇠줄’이라는 말입니다. 본사의 상표와 품질과 가격이 지역 점포에도 동일하게 묶여 있다는 말입니다. 성공한 체인점은 본사와의 연결이 견고한 점포입니다. 체인점이 본사와 다른 독특한 자기 아이디어로 경영할 수 있다면 구태여 체인점으로 남아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체인점의 생명은 본사의 운영 방침과 품질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인생이 많이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로 짜낸 그 어떠한 것도 지속적인 평안과 행복을 제공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항상 일정하고 든든하여 흔들리지 않는 평안과 행복을 제공해 주는 견고한 체인이 있습니다. 창세 이후 지금까지 끊어지지 않는 사슬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체인에 우리 모두가 가맹하기를 원하십니다. 구원의 반석이신 여호와, 그분의 체인점을 우리의 생활 가운데 세웁시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시95:1)
* 기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한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의 체인 아래 즐겁게 생활하게 하소서.

* 예화(3): 여호와는 나의 반석

미국 애리조나 주 코화 산맥에 있는 붉은 화강암으로 된 높이 2500피트의 계곡에는 자생 종려나무들이 장엄하게 솟아 있습니다. 수년 간 식물학자들은 어떻게 열대 식물인 이 나무들이 어둡고 가파르고 경사진 좁은 협곡 뒤편에서 그것도 하루에 2시간 동안만 햇볕을 볼 수 있는 곳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마침내 학자들은 계곡의 암벽이 충분한 햇빛을 반사해주고 또한 암벽이 하루 동안의 따뜻한 열을 충분히 저장해주고 있음으로 인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 나무들이 자랄 수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런 종려나무처럼 하나님과 가깝게 친교하면서 살아가는 믿는 자들은 어두움의 압박과 열악한 환경을 잘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믿는 사람들의 반석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영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과 위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을 겪은 그리스도인들 중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충만함을 발견하고 풍성한 간증의 잎들과 지극한 찬양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들은 번영이라는 햇빛이 거의 비치지 않는, 고통이라는 좁은 틈바구니 속에서도 아름다운 ‘의의 나무들’이 됩니다. 우리의 힘이 되시고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께 기초를 둘 때, 우리는 코화 산맥의 종려나무들처럼 무성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 예화(4): 할버지

할버지는 1년6개월 된 외손녀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다. “할버지”라고 할 때마다 손녀가 어찌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지…. 손녀를 위해 내 방문을 항상 열어 놓는다. 손녀가 아프다며 “할버지” 할 때는 껴안고 기도해서 고쳐준다. 힘에 부치는 물건을 들고 “할버지” 할 때는 안아주고 도와준다. 어른들께 책망받고 울면서 “할버지” 할 때는 껴안고 편을 들어준다. 오히려 아이 앞에서 어른들을 책망하며 위로해준다. 할버지는 손녀에게는 피난처요, 전능자의 이름이요, 바위요, 반석이요, 의사요, 돕는 완전자다. 적어도 할버지를 믿고 할버지를 부르는 손녀에게만은 할버지가 전부다. 비로소 나는 여호와 이름의 의미와 그 이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롬10:13)을 실감한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18:1-2).
/고훈목사(안산제일교회)

* 예화(5): 안전지대

사람들은 보다 안정된 삶, 소위 ‘안전지대’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경제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늙어도, 퇴출되어도, 권력에서 밀려나도 막강한 경제력만 있으면 편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돈으로 금고를 사고, 경비시스템을 설치하고, 최고급 자동차를 타고 다닙니다만 그런 것들이 오히려 위험의 표적입니다.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중 시해된 분이 있습니다. 당시 대통령 주위에는 국가 안전의 대명사로 불리는 육군참모총장 대통령경호실장 중앙정보부장 등이 있었으며 말 그대로 안전하다는 안가(安家)에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살해되었습니다. 가장 안전한 곳이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위험한 곳이 된 것입니다.
세상에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만이 안전합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안전지대(safe zone)를 찾지 말고 신앙지대(faith zone)에 거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라”(시 4:8)

4. 찬송(1): (439장) 만세 반석 열린 곳에

1. 만세 반석 열린 곳에 내가 숨어 있으니 원수 마귀 손 못 대고 환난 풍파 없도다
2. 죄에 매여 죽을 인생 편히 쉬기 바라니 주의 가슴 넓은 품에 내가 찾아 안기네
3. 이 땅 위에 평안 없고 기쁜 일을 몰라도 주 예수의 참사랑을 내가 이제 알았네
4. 험한 풍파 지나도록 순풍으로 도우사 평화로운 피난처에 길이 살게 하소서

[후렴] 만세 반석 열린 곳에 내가 편히 쉬리니
나의 반석 구주 예수 나를 숨겨 주소서 아-멘

* 찬송(2): (539장) 이 몸의 소망 무엔가

1. 이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이 아주 없도다
2. 무섭게 바람 부는밤 물결이 높이 설렐 때 우리 주 크신 은혜에 소망의 닻을 주리라
3.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4. 바라던 천국 올라가 하나님 전에 뵈올 때 구주의 의를 힘입어 어엿이 앞에 서리라

[후렴]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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