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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낭비

마가복음 권진관............... 조회 수 2647 추천 수 0 2004.05.05 14: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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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4:3-9 
설교자 : 권진관 형제 
참고 : 새길교회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수난을 받으시기 전에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의 행동은 의아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굳이 큰 말이 아니라, 나귀 그것도 새끼 나귀를 탄 것이었고, 사람들은 자기의 겉옷을 길에다 펴기도 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생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길에다 깔았습니다. 약간 코믹한 상황이 연출되었는데, 특징은 매우 소박하다는 것입니다. 매우 소박하고 민중적이며, 그리고 코믹하다는 것이 여기에 나타나는데, 모든 사람들이 그리고 그 뒤를 따르던 사람들도 매우 소박하고 맑은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은 반전하여 예수의 정의로운 행동이 나타납니다. 우선 부패한 성전을 정화했습니다. 요즘의 얘기로 환산하면, 예수께서는 그 크다고 자랑하는 한국 교회들, 특히 사회의 흐름에 역행하여 부정과 불합리가 넘치고, 목회자의 전권을 주장하는 비민주적인 교회들을 정화하는 일을 했을 것입니다. 성전을 "강도의 소굴"이라고 질타한 것은 그 당시의 성전 지배자들에게는 정말 도전적인 말씀이었고, 급기야 이것으로 예수는 권력집단의 표적이 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전에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어떻게 흉계를 꾸며서 예수를 죽일까"고 궁리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백성이 소동을 일으키면 안 되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하고 말했습니다.

  이 얘기들을 가만히 생각하면 예수는 생명의 주님이셨다는 것이며, 예수의 적대자들은 죽음의 세력이었다고 느끼게 됩니다. 어린 나귀, 살아있는 나무 가지는 생명, 특히 생명이 움트는 계절인 봄을 연상하게 됩니다. 예수는 십자가로 죽으셨지만, 생명으로 다시 부활하였습니다.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이야기는 생명의 이야기가 아닌지요. 예수께서 생명과 죽음에 관련되어 말씀하시고 행하신 것을 많이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수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신 것, 그리고 하나님은 살아있는 자들의 하나님이므로, 하나님은 현재의 이생의 하나님이 아니라 저 세상의 하나님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 특히 죽은 자는 죽은 자들에게 맡기고 산 자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 이런 것 모두 예수께서는 죽임을 가져오는 세력에 대항하여 생명을 살리는 자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사람들, 그리고 살아있지만, 생명을 죽이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 속에 2000년 전의 예수도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러한 세상 속에서 생명의 축제를 성전정화라고 하는 투쟁을 통해서, 치유를 통해서,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민중들과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벌려나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또 다른 특이한 일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한 여인이 값진 순수한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때는 예수께서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 여인이 부유한 사람이었는지 가난한 사람이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부유한 여인이었다고 하면 300 데나리온 이상의 가치를 가진 순수한 나드 향유를 소비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마가 복음의 기자는 그녀가 누구였는지를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랬는지 우리는 추측할 수 없지만, 이 여인이 요한복음에서 기록되어 있는 대로 막달라 마리아였다고 하면, 마가 기자나 마태 기자는 이름을 밝히기를 꺼렸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고, 누가는 7장 36절 이하에서 약간 다른 얘기로 이 여자를 등장시키는데, 어떤 죄인 여자가 와서 예수 앞에 엎드려 눈물로 그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고, 그리고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발랐습니다. 극단적이고 가장 지고한 존경의 표시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마가나 마태, 그리고 누가는 아직도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와의 이러한 깊은 관계 혹은 마리아가 가진 예수에 대한 끔찍할 정도로 숭고한 헌신을 공개하기를 꺼려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 걸렸다느니, 간음하다가 잡혔다느니 하는 사회적으로 낙인찍힌 죄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간음했다가 잡힌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일곱 귀신들린 여인이라고 하는데, 그 당시에 실제로 귀신들린 것이 아니라, 창녀였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고 볼 수 있다는 얘기도 있으므로, 어쨌든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였거나 아니면, 사회적으로 의심스러운 출신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집시와 같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노틀담의 꼽추』에서 이야기에서 가장 용기 있고 정의로운 주인공이 집시여인인 것을 우리는 잘 아는데, 막달라 마리아도 집시처럼 천한 출신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예수의 이야기에서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낸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일 것이 분명한 이 여자는 최고의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베드로가 한 신앙고백이 "당신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인데, 이것이 역사의 모든 교회의 반석이 되는 위대한 고백이라고 한다면,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이 여자의 고백행위는 말 한마디 없는 행동으로만 하는 또 다른 장르의 고백이었으며, 이 신앙의 행위는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도가 직접 약속하게 만든 위대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비교되는 것이며 쌍벽을 이루는 것이며 오히려 더 위대한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남자제자들이 로마와 유대관헌들이 두려워 피해 있을 때, 막달라 마리아는 항상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예수의 주검을 지켰고, 부활을 처음 목격한 사람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신념의 여자였으며, 행동의 여자였으며, 끝까지 예수를 떠나지 않았던 용기의 여자였으며, 어떤 사도보다도 예수 곁에 있었던 사도 중의 사도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장면은 이 300 데나리온 이상 그 가치가 있는 순수한 나드 향유가 든 옥합을 깼다는 것입니다. 이 나드 향유는 옛날 이스라엘 임금의 자리에 뿌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집가는 신부에게 뿌린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조금이 아니라, 300 데나리온의 가치가 있는 양을 부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알 듯이 한 데나리온은 그 당시 성인 남자 하루의 품삯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300 일 동안의 급료를 합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마리아가 그렇게 부유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을 예수를 위하여 부었던 것입니다. 이 여인이 한 행위는 그곳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한번 부으면 다시 담을 수 없는 그 값비싼 향유를 아낌없이 낭비한 것입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쑤군거렸습니다. "어떻게 이런 낭비를 할 수 있는가?" "이걸 팔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텐데, 어찌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할 수 있는가?" 가롯 유다는 이런 장면을 보고 예수에게 하도 실망이 되어서 예수를 팔아 넘길 것을 결심합니다. 가롯 유다는 적어도 예수가 이렇게 무모한 일을 벌인 이 여인을 꾸짖을 줄 알았습니다. 예수는 이 여인의 행위를 즐기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예수가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을 위해서, 그리고 고난받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해방시켜줄 그러한 영웅으로 믿고 있었는데, 기껏 여인의 호사한 대접을 즐기고 있는 어쩔 수 없는 연약한 인물이었던가 하는 상념으로 가롯 유다를 비롯한 주위의 사람들은 갈등했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으니, 언제든지 너희가 하려고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은 아니다"는 이 말씀은 그 의미를 판단하기가 아주 어려운 것으로 유명합니다. 설교자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성서 주석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보와 보수에서 그 해석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돕는 것보다는 그리스도에게 헌신해야 한다. 즉 예배와 교회에 먼저 충성해야 한다고 해석하는 좋은 구절이라고 생각하는 설교자들이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것과 해야만 하는 것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쪽은 소홀해도 되는 일이고, 다른 쪽은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우열로 나누기보다는 원래 동일한 것이지만, 시간적인 긴박함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때 예수가 계시는 동안에는 예수에게 그리고 안 계시는 동안에는 가난한 자에게 헌신하는 것이므로 결국은 같은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예수에 대한 헌신과 가난한 자에 대한 헌신을 서로 배타적인 것으로 혹은 동일한 것으로 보는 단순함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여기에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가진 헌신의 태도와 그 헌신의 대상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헌신의 태도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최선을 다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녀는 아무런 반대급부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한 것은 향유를 부은 것입니다. 그것은 오래 남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에게 오래 남는 선물을 가져왔더라면 반대급부를 겨냥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향유는 뿌린 즉시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일을 했을까요? 그냥 이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그러한 대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가장 가치 있다고 믿어지는 일에 우리의 것을 다 바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 안을 잘 살펴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위의 일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의 목숨을 던질 수 있는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여인은 그것을 예수에게서 발견했습니다. 예수가 행하시고 말씀하신 모든 것에서 이 여인은 자신이 꿈꾸던 최고의 것, 최선의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수의 행위와 삶 속에 그녀의 전부를 바칠 수 있는 가치가 체현되어 있음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일순간 없어질 나드 향유를 예수를 기념하기 위해서 아낌없이 부었던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면 어떠한 것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에다가 우리의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부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삶이란 어차피 우리 자신의 최고의 것을 쏟아 붓고 낭비하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 안에 가장 향기로운 것을 그 무엇에 부어대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행이든 불행이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이렇게 가치 있는 것에 헌신할 수 있는 특권은 모두 동등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삶이 아무리 부조리하고 힘든 것이라고 하더라도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여인이 자신의 향유를 부을 대상을 발견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 대상을 우리의 현실 속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마 그것은 오늘 가난한 모습으로 예루살렘 성으로 어린 나귀를 타고 들어가는 예수의 모습에서, 그리고 십자가의 골고다 길을 묵묵히 걸어가시는 그분의 모습에서 발견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살리는 그의 모습에서, 그리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을 돌보시지 않으신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그 분은 꺼져 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헌신하셨으며, 우리로 하여금 살아 있으면 그의 뒤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까지도 지신 그분의 삶의 형태는 오늘날에도 우리의 삶의 최고의 것을 낭비하도록 이끌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삶 속에 생명이 이어질 뿐 아니라 불멸의 생명으로 나아가는 부활이 있음을 예수를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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