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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신앙과 여성

마가복음 최만자............... 조회 수 1901 추천 수 0 2008.03.17 21: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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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6:1-8 
설교자 : 최만자 자매 
참고 : 새길교회 
아직은 사순절 기간이어서 부활의 이야기를 하기에는 좀 이른 때입니다. 그러나 부활이 고난과 불가분리의 관계를 가지는 것이기도 하고, 또 부활신앙의 의미보다는 부활신앙의 형성과정을 살펴보고 그 원래적 의미를 살펴보는 기회를 가지고자 하여 부활신앙의 이야기를 미리 하기로 하였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기독교의 기반이며 중요한 신앙의 요인입니다. 이 부활절을 기다리면서 오늘은 성서 안에 있는 처음 부활신앙인의 이야기에서 부활선포의 유래와 본래적 의미를 찾아보고, 오늘의 우리의 부활신앙에 그것을 비추어 보고자 합니다.

예수의 부활에 관한 사실은 초대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형성되는 기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선교의 중심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당한 후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뿔뿔이 흩어졌었으나, 예수가 부활했다는 믿음에 근거하여 다시금 모여서 예수가 전한 복음과 그의 삶 그리고 그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하기 시작하였으며 그것이 그리스도교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사실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선교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고전 15:14). 이처럼 기독교 시작의 기반이 된 이 부활신앙의 처음 이야기를 성서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성경공부를 하는 방법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성서에는 예수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가 몇 가지 나옵니다.
첫째는 빈 무덤 이야기입니다. 이 빈 무덤 이야기는 복음서마다 다르게 나오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6:1∼8절은 오늘 읽은 본문대로이고, 요한복음에는 20:1∼10절에 나오는데, 여기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주요 인물이 되어 무덤을 찾아갔지만 무덤의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으며 빈 무덤을 확인하는 일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주어지지 않고 베드로의 역할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먼저 무덤에 간 마리아는 빈 무덤을 확인하지 않고 시몬 베드로와 주님의 사랑하던 제자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립니다. 누가 주님의 시체를 도둑질하여 갔다고 합니다. 베드로와 주님의 사랑하던 제자가 뛰어갔고, 주님의 사랑하던 제자가 먼저 무덤에 이르러 몸을 굽혀 고운 베가 놓인 것을 보았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이어서 시몬 베드로가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고운 베가 놓여 있고 머리 수건은 따로 있는 것을 보고 그제야 다른 제자가 들어와 함께 보았는데, 그들은 아직도 예수께서 살아난다는 성경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또 하나의 빈 무덤 이야기는 마태복음 18:1∼10절에 나옵니다. 마태는 마가와 거의 같은 내용이지만, 마가복음에는 여자들이 무서워 아무말도 못한 것으로 끝맺은 것에 비해 마태는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이 엇갈려서 급히 무덤을 떠나 이 소식을 그의 제자들에게 전하려고 달려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9∼10절에서는 갑자기 예수께서 그들 앞에 나타나 여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의 현현을 보게 되고, 그의 발을 붙잡고 절을 하고, 예수께서는 여인들에게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러면 거기에서 그들이 나를 만날 것이다"라고 제자들에게의 전언을 줍니다. 누가복음에는 24:1∼12절에 나오는데, 여자들이 빈 무덤에서 천사의 현현을 보고 그가 살아날 것이라 한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여자들이 열한 제자들과 그 밖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모든 일을 전합니다. 이 여자들이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라고 하여 마가복음에 나오는 명단과는 차이를 조금 가집니다. 이들과 함께 있던 다른 여자들도 이 일을 사도들에게 말합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이 일을 어처구니없게 여기는데 베드로만 일어나서 무덤으로 달려가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두 번째로 예수의 부활과 관련되는 내용은 '예수를 알아봄'의 이야기입니다. 이 알아봄의 이야기 중 잘 알려진 것이 누가복음 24:13∼32절에 나오는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 이야기입니다. 무명의 두 제자가 길을 가는데 부활하신 예수께서 동행하였으나 처음에는 누구인줄 알지 못하다가 그들이 집에 들어가 식사를 할 때 예수께서 빵을 들어 축사하시고 그들에게 떼어 줄 때에 그제야 비로소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를 알아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20:11∼18절에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는데 마리아가 처음에는 동산지기인 줄 알다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서야 주님임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21:1∼19절에는, 바닷가에서 다시 옛날의 어부생활로 돌아가 고기잡이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고기를 많이 잡게 해 주시고, 생선을 구워 제자들에게 주면서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씩 묻고, 내 양을 먹이라고 세 번 당부한 내용으로 나옵니다.
세 번째로 예수의 부활과 관련된 내용은 부활한 주님의 직접적인 현현입니다. 마가를 제외한 나머지 세 복음서 모두에 나오는데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에서는 먼저 여인들에게 나타난 후에 다른 제자들에게 나타나지만, 누가복음에서만은 여인들에게 나타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직접 현현하신 장면은 모두 마지막에 주님께서 제자를 세상에 파송하면서 사도직의 권위를 부여하는 내용으로 끝이 나고 있습니다. 한 본문의 예를 들면, 마태 28:16∼20절에 "열한 제자가 갈릴리로 가서 예수께서 일러주신 산에 이르렀다. 그들은 예수를 뵙고 절을 하였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라는 것으로 맺음하고 있습니다. 복음서 이외에 예수의 부활 현현에 관한 보도는 고린도 전서 15:3∼8절에도 나옵니다. 여기에는 예수께서 나타나신 순서에 관심을 집중하는데, 첫 번째 나타난 것이 게바에게 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났다 하고, 또 오백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고, 다음에는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달이 차지 못하여 태어난 자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다"고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도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사도입니다. 나는 사도라고 불릴만한 자격도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의 현현 보도는 더욱 명백하게 사도적 권위를 증명하기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의 현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고린도전서가 복음서보다 먼저 쓰여졌다는 점에서 더 고대문서의 권위로 사실에 가깝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꼭 먼저 쓰였다고 해서 고대 전승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살펴보면 부활하신 예수가 제자들 앞에 나타나서 말씀하셨다는 현현 보도는 원래 예수의 부활을 증명하기보다는 사도의 권위 부여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파악됩니다. 고전 9:1절에서 바울은 그의 사도권에 대해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것에 반문하기를 "내가 사도가 아닙니까? 내가 주 예수를 보지 못했단 말입니까?"라고 항의하고 있습니다. 이 발언은 바울이 부활한 예수를 보았다는 것, 즉 부활한 자의 현현은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해 준다는 의의를 가집니다. 고로 베드로나 12사도나 야고보나 각 사도 앞의 현현은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베드로 앞의 현현과 제자들 앞의 현현도 으레 이 범주에 속하여 보입니다. 왜냐하면 빈 무덤 이야기의 전승 과정에서도 베드로를 첫 부활 증인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엿보였습니다. 이런 시도는 누가와 요한의 빈 무덤 이야기에서 드러났는데 누가에 의하면 여인들로부터 빈 무덤의 사실을 전해들은 베드로는 무덤으로 달려가 확인합니다. 원래 빈 무덤 이야기와는 상관없는 베드로가 이렇게 여인들과 함께 빈 무덤의 증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도 베드로와 예수가 사랑하던 제자가 빈 무덤의 주된 증인이 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의 돌이 옮겨진 것을 보고 제자들에게 알리는 역할로 끝나고 베드로와 그 제자가 빈 무덤의 증인이 되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빈 무덤에 대한 증인의 역할이 배제됩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본문들은 특정 권위자들이 공동체에 대해서 지니는 합법성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현현 환시를 부활 케리그마의 시발점으로 보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에 관련된 내용들의 분석을 통하여 우리는 초기 원시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 예수의 부활을 전승하는 집단이 둘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베드로에게 비중을 두고 그의 예수 부활 현시를 우위에 두는 사도들의 예수 부활 현현이고, 다른 하나는 빈 무덤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여성들의 예수 부활에 대한 증언입니다. 대체로 고린도전서의 바울 서신이 시간적으로 복음서보다 오랜 문서라는 점에서 이를 더 원래적인 근거로 삼아온 것이 그간의 해석이었습니다. 그러나 두세 가지 점에서 그것은 설득력이 약합니다.
첫째, 부활 전승은 초기적 형태가 오히려 빈 무덤 이야기일 수 있고, 실제로 빈 무덤 이야기만으로도 초기에는 부활 증언으로 충분하였다고 봅니다. 이것이 점차 알아봄의 이야기와 현현 보도로 확장되어진 것으로 그 내용의 형태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현현 보도는 사도직의 권위나 합법성을 결론으로 하는 교회 형태가 점점 잡혀가면서 누가 진정한 사도인가에 대한 논쟁과 교회의 권위자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원래의 빈 무덤 설화에 덧붙여져 확장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사도직 논쟁이 나오면서 확립되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이야기 형태의 차이에서 볼 수 있는 점입니다. 사도직과 관련된 특히 베드로의 권위를 세우는, 베드로가 부활의 주를 처음 만난 자로 내세우는 이야기에는 스토리가 없습니다. 즉 여성들과 12제자의 현현에 관해서는 복음서에서 구체적으로 보도해주는 반면에 베드로 앞의 현현 장면은 구체적인 이야기, 곧 베드로가 주체가 되어 전개되는 스토리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베드로 앞의 현현을 얘기하는 누가복음 24:34절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엠마오 도상의 이야기에 이차적으로 삽입된 첨가물임이 드러납니다. 여기서의 초점은 12제자에 속하지 않은 무명의 두 제자에게 부활한 예수가 나타나서 자신의 부활을 입증하였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 뒤에 나오는 베드로 이야기는 연결이 안됩니다. 누가는 고전 15:5절과 유사한 베드로 앞의 최초 현현 전승을 알고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묘사할 이야기 체의 보도를 갖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만일 베드로의 환시가 부활신앙을 태동시킬 만큼 엄청난 것이라면 구체적으로 이야기 장면을 갖지 않겠습니까? 베드로에 관한 전설들이 복음서에 그렇게 많은데도 말입니다. 스토리가 결여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이야기 형성의 근거가 약하다는 말이 됩니다.
이와 대비되어 여성들이 중심이 된 빈 무덤 이야기는 상세하고 따뜻한 마음이 담긴 스토리들을 가지고 있으며, 빈 무덤과 처음 부활의 주를 만난 자들로는 여성들이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여자들은 예수가 부활하신다는 말씀을 믿었고, 안식일 첫날 향유를 바르러 갔고, 그래서 빈 무덤을 발견하였고, 주님의 부활의 첫 증언자들이 된 것입니다. 사실 사도직의 권위와 합법성이 중요한 터에 여자들이 부활의 첫 증언자 됨을 삭제할 수도 있었을 것이나, 그럼에도 이렇게 여자들이 부활의 첫 증언자로 남은 것은 그만큼 그들의 활동과 증언 내용이 지울 수 없는 사실들이었고, 확실했으며, 너무나 활동적인 것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복음서에는, 누가복음만 제외하고는, 여성들이 부활 현현의 첫 증인으로 나옵니다. 요한복음(20:11∼18)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곁에서 부활한 예수와 최초로 대면하며, 첫 부활 신앙인이 되고 있습니다. 17절에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는 이 구절은 부활을 증명하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럼에도 빈 무덤의 증인은 베드로에게 넘겨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도 여인들이 부활 현현을 하는 처음 사람로 나옵니다. 천사의 부활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해주려고 가는 도중에 여인들은 부활한 예수를 만납니다(28:7-10).

이 같은 처음 부활 신앙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최초 부활신앙이 여성들에게서 태동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매우 소박한 육체부활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욥의 유훈서라는 책에 표현된 이 소박한 육체부활신앙은 극히 자연스러운 믿음으로 당시의 사람들에게 유포되어 있었습니다. 빈 무덤 이야기는 바로 그러한 유대인들의 소박한 육체부활신앙의 표상이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이 욥의 이야기의 연대가 부활신앙 태동 시기와 멀지 않을 것이고, 실로 예수에 대한 부활신앙은 처음부터 이러한 구체적인 표상으로서 민중들 가운데 널리 이야기되었을 것입니다. 특히 여성들에게 이 부활의 신앙이 태동되고, 그들에 의해 부활신앙이 확산되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여성들의 부활신앙이 확산되어서 지우려야 지울 수 없을 만큼 확실한 것으로 되었기 때문에 사도적 권위화를 위한 과정에서 베드로의 이야기는 삽입되는 형태로, 그리고 구체적인 이야기 체를 갖지 못한 채 들어올 뿐이었고, 여성들의 부활신앙에 의한 예수의 부활 사건이 전승되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가가 복음서 가운데 먼저 쓰여졌을 때 여성들의 부활신앙의 배경인 빈 무덤 증인 이야기가 채택되었을 것이고 거기에 다른 복음서들은 더 확대된 부활신앙 이야기를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옛 전승 층에는 여성 제자들이 최초로 부활신앙에 이른 장본인이었다는 인식이 확고하게 뿌리 박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그 첫 증인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그것은 민중의 의식에 뿌리 내리지 못하였습니다. 여인들은 빈 무덤의 증인 역할이 이야기되면서 부활 현현의 첫 대면자 역할을 맡습니다. 베드로를 교회의 공식적 첫 부활 증인으로 내세우는 고전15:5절, 누가 24:34절은 민중의 언어에서 생명력 있는 이야기 형태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여성들이 최초의 부활신앙인이었으며 사도들이 여성제자들보다 한발 늦게 부활신앙에 도달하였다는 것을 지울 수 없을 정도로 부활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어떻게 이러한 부활신앙을 태동시켰습니까?
여성들은 예수로부터 받은 은혜와 은총이 바다와 하늘같았습니다. 질병으로 죽게 된 혈루증 여인을 율법의 금기를 깨고 살려 회복시켰고, 등이 굽어 펼 수 없는 여인의 등을 펴주셨고, 나인성 과부가 죽은 아들로 인해 우는 그 눈물을 보시고 아들을 살려주신 예수,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돌로 쳐죽임을 당할 뻔한 여인을 살려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해주신 예수, 수가성 우물가에서 사마리아사람이라는 인종차별의 굴레를 깨고 새로운 진리의 도래 시대를 보여주신 예수, 일곱 귀신 들려 인간 쓰레기로 천덕꾸러기로 살던 막달라 마리아를 구원하신 예수, 그 예수의 은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이고 그들의 생명 자체였습니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질서의 세계를 열어주신 예수, 새 은총과 은혜의 질서의 세상을 보여주신 예수는 바로 메시아였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는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이며, 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실 메시아일 뿐이었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로 말미암아 자아를 찾았고, 자기존재의 새로운 탄생을 경험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를 통하여 어떤 지배의 자리를 얻거나 세상에서 기득권을 획득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삶을 참된 생명으로 만들어준 이에 대한 감동과 감사와 그래서 그분의 길을 따르려는 삶을 가지려고 하였던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그들에게 절대로 죽음으로 끝나서는 안될 존재였습니다. 복음서에서 우리는 남성제자와 대조되는 여성제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를 따라다니고 같이 생활하였다는 남성제자들은 예수가 감당해야 할 고난의 메시아 사명을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희망이 지배적 메시아를 통한 세상 권력의 대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뼈아픈 고난의 예고에 대해 깨닫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영광의 자리에 오른 후의 자리다툼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남성제자들의 부정적 모습과는 달리 여성제자들은 예수의 참 제자가 되는 따름과 섬김의 길을 걸었고, 그들에게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여 있었습니다. 여성들은 갈릴리서부터 예수를 쫓아왔고 따라다녔으며, 십자가의 길에도 따르고 있었습니다. 누가는 이 여자들이 빈 무덤을 찾아간 이유는 그들이 예수께서 하신 사흘만에 부활하리라는 말씀을 기억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미 부활신앙을 배태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남성제자와 여성제자의 대립을 말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누가 부활신앙을 가질 수 있었던가, 그리고 어떤 부활신앙인가를 말할 때 여성들과 같은 태도에서 처음 부활신앙이 태동되었을 것임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여성들이 가진 예민한 감수성 그것은 그들이 억압당한 경험에 의하여 생긴 창조적 능력이었습니다. 예수를 만나기 이전의 좌절된 여성들의 삶은 질병에서, 가족관계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적 구조에서 괴롭고 고달픈 것이었습니다. 지배적 위치에서 소외되어온 자들의 경험은 자신을 의심하고 성찰하는 습성이 있고,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감정이입적(感情移入的) 이해의 능력을 가졌으므로 더 인간적입니다. 남성제자들도 그 사회에서 소외계층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갖게 되는 남성의 지배자적 위치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근본적인 질서의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새 세상에서는 그들이 대신 권력집단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억압의 경험에서 예수가 보여준 새 질서가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예수의 말씀을 전적으로 공감하였고 그들의 새로운 세상의 비전이 예수의 행함과 일치되었기에 그분이 메시아인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성들에게 예수는 영원한 하나님이며 부활하실 분으로 신앙할 분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첫 부활신앙인이 누구였는가에 대한 문제의 이야기는 남녀대립으로 끝나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여성들이 첫 부활신앙이었다는 사실의 확인은 오히려 예수로 말미암은 전적으로 새로운 삶의 경험이 부활신앙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진정한 부활신앙은 예수의 생애에 대한 감정이입적 자기동일시를 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진 이들에게서 생기며 또 오늘도 지속될 수 있다는 교훈으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목적입니다.
부활신앙의 시작은 전적으로 참으로 절대적으로 예수로 말미암아 새 생명 얻은 이들의 믿음에서 시작되었고 선포된 것입니다. 내 존재를 다 흔들어 새롭게 해주신 예수에의 경험 그것이 부활신앙의 근거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이 믿음이 굳건하다면 부활신앙은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은 내 생의 거듭남의 경험 그것이 부활신앙입니다. 그 믿음과 감격 속에 예수는 우리 속에 늘 부활하여 계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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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마가복음 <제자분석4> 2인자 의식으로 최고가 된 - 요한 막9:38-40  전병욱 목사  2007-11-22 2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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