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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악한 일을 하셨느냐?

마가복음 김남준 목사............... 조회 수 1641 추천 수 0 2008.04.02 10: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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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5:12-14 
설교자 : 김남준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g 김남준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는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시 소리지르되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막15:12-14)

본문은 예수님이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셨는지를 설명하는 가운데, 사형언도를 받으시는 현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비록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정도로 잘못한 일은 없는 분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해 달라고 모질게 요청했고 빌라도는 이들의 집요한 요구에 의해서 수많은 군중들에 의해 폭동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며 예수를 넘겨주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해 달라고 소리치는 유대인들에게 되물었습니다. ‘왜 그러느냐? 이 예수라는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아무도 이 빌라도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해 달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만약에 십자가에 못 박을 정도의 끔찍한 형벌을 그렇게 집요하게 요구할 정도라면, 그 형벌에 합당한 어떤 잘못을 예수님에게 발견하거나 자신들에게 입힌 손해가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 중에 모질게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할 정도로 잘못한 일이 없으십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후 베드로가 유대인을 향해 외쳤던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성령을 한량없이 받은 후에 착한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착한 분이셨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죄로 고통 하는 세상에 내려오셔서 사신 33년의 생애, 그중에서도 자신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리신 공적인 3년의 세월은 착한 일을 하시기 위해 사신 생애였습니다.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고 고생하던 모든 사람들이 주님 앞에 나온 자마다 주님은 거절하지 않고 그들의 인생 문제에 깊이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그 문제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만나도록 섬기고 도우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마지막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이 처형의 자리에 오기까지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수만 명의 무리들도 있었고 예수님을 만나고 그 사랑에 감격한 인간들도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취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멸시와 욕을 당하시고 일평생 십자가에서 숨 거두실 때까지 자기를 돌보시지 아니하고 불쌍한 이 인생들을 위하여 자신을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인생 전체는 불쌍한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다 바쳐 헌신하신 고단한 노역의 연대기였으며 모든 것을 바쳐서 하나님 앞에 최선을 드리는 섬김과 헌신의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해 달라고 소리쳤습니다. 더욱이 유월절이면 한사람씩 특사로 풀어주는 관례가 있었는데, 민란을 일으켜서 자신들의 동족을 죽이고 결박당한 바라바라고 하는 이 끔찍한 죄수는 살려달라고 요구를 했고, 생명을 주기 위해서 자신들에게 오셔서 온갖 섬김을 다해주셨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며 빌라도를 위협하였던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겠습니까? 여기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음모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고 백성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많은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 자신들을 통하지 않고 나아갈 수 없는 것처럼 종교적인 권력을 독점했습니다. 그들이 가르쳐주는 가르침을 통해서는 도저히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두고 말씀하시기를 천국의 문을 가로막고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못 들어가게 방해하는 자들이라고 심하게 질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자신이 먼저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자신이 만나서 행복한 그 하나님을 불쌍한 이 인간들에게 가르쳐주고 전해주는 그 사역에 자기를 헌신하지 않았습니다. 금식했지만 길거리에서 기도했지만 그 목표는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백성들에게 인정을 받고 영광을 받기 위한 욕망적인 행위였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떠받듦을 받으면서 스스로 종교적인 잇속을 챙기고 많은 사람들을 타고 다녔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엾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심령을 빌미삼아서 자신들의 권력을 휘두르며 하나님과 그들 사이를 가로막았습니다.
어느 날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에게는 탐욕이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분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죄 가운데서 유리하고 방황하는 영혼을 위해서 자신을 주시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성령을 한없이 받으셨고, 진리의 말씀 자체이셨기 때문에 그분이 입을 열고 진리를 가르쳤을 때 백성들은 전율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두 가지 때문이었는데, 선명한 하나님의 진리와 그 안에 역사하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 때문에 이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 종교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하나님께 인도한다는 미명하에 그들을 착취하고 그들을 타고 다니는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였고 버림 받아 불쌍한 인간들의 이웃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분 곁에는 스스로 의롭다고 믿는 사람들보다 하나님 이외에는 의지할 데가 없다고 생각하는 불쌍하고 상처받은 영혼들로 가득 찼습니다. 사랑으로 돌보셨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예수께로 옮아가기 시작했고 그분에게로부터 진리를 배우며 은혜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정말 하나님을 사랑했더라면 아마 자신도 그 예수님에게 진리의 말씀을 배우며 하나님 뜻대로 살게 해 달라고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시기했습니다. 그 시기와 미움은 급기야 저 예수를 죽이면 백성들의 사랑, 존경이 다시 자신들에게 합쳐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잘못한 것이 없으셨지만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미워하기 시작했고 유월절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거대한 음모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힘만으로는 예수를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백성들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실제로 예수님을 죽일 수 있는 큰 권력은 빌라도나 종교지도자들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백성들 한 두 명이 와서 예수님을 못 박으라고 말했다면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의 종교 싸움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유월절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무리들이 예루살렘에 모였고 빌라도의 법정과 그 언덕을 뒤덮었습니다. 만약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주지 않으면 폭동이라도 일으킬 기세였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로마에 대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기회만 있으며 구실을 잡아서 폭동을 일으킬 궁리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었던 것입니다.
궁금한 것은 왜 이 백성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고 마지막에 ‘이 무죄한 자의 피를 나는 당치 않겠노라’하고 빌라도가 세수 대야에 손을 씻으니까 ‘그 피를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돌리십시오. 우리가 책임지겠습니다.’라는 저주를 담보로 하면서까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겠다고 외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너무 이해가 안 되지 않습니까? 유대인들 중에 예수님에게 상처 받은 사람이 있었을지 모른지만, 유대인 중에 예수님에게 상처 받은 사람이 있었을까요? 무엇 때문에 백성들이 원한에 사무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해 달라고 외쳤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 실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슨 실망이었을까요?
이 날이 금요일이었습니다. 정확하게 그 일이 있기 5일 전 주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셨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뛰어나와서 예수님을 환영했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이 겉옷은 존귀의 상징입니다. 겉옷을 벗어서 양탄자처럼 길바닥에 깔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다윗의 자손을 외쳤습니다. 그렇게 열렬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환영했는지 성경은 온 성이 소동하였다고 했습니다. 수많은 백성들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 후 4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하던 이 유대인들이 지금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해 달라고 소리치게 되었을까요? 성경에 보면 종교지도자들이 시기할 정도로 백성들이 예수님을 환영했다고 되어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교회가 나라였고 나라가 교회였습니다. 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개 같은 이방의 나라 로마에게 점령되어 힘이 없어 식민지가 되어 나라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들의 꿈은 메시야가 오셔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로마를 때려 부수고 사람들과는 견줄 수 없는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이 세상을 통치해 모든 나라가 무릎을 꿇고 이스라엘에게 와서 머리를 숙이고 조공을 바치는 다윗 왕국의 회복을 꿈꾼 것입니다. 그 기대가 한껏 고조된 최고의 정점이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며칠 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4일 동안 보여준 예수님의 행적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로마와 더불어 싸울 놀라운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분명히 자신들의 눈으로 놀라운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보았는데 바로 그 기적을 행하여 로마를 쓸어버려야 할 그 순간에는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예수님께 거는 기대와 예수님이 보여주는 모습이 엇박자가 나는 것입니다. 원수들을 짓밟고 때려 눕혀 하나님의 큰 물질과 번영의 복을 받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나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실망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소리치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신앙은 예수님을 변화시키고 예수님을 꺾어서 내 인생의 목적에 이용하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의 시작은 올바르신 그 예수님 앞에 나아가서 복음의 진리를 통해 자기가 얼마나 굽은 죄인인가 하는 사실을 깨닫고 굽은 자신 때문에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많은 죄를 예수님이 대신 지시고 죽으셨다는 사실을 십자가에서 발견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앞에서 그 고난이 나의 죄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를 꺾는 것, 내가 십자가의 사랑 앞에 꺾이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마음 안에서 먼저 일어납니다. 마음 안에 일어나는 가장 위험한 일은 구원받은 것이 하찮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구원이 일상적인 것처럼 생각될 때 자신의 모든 삶은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경험할 때는 나를 향한 기도가 별로 없습니다. 은혜가 마음에 깊이 밀려올 때 ‘하나님 나는 기도제목이 없습니다. 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마음을 많이 쓰지 마십시오. 나는 충분합니다. 주님이 내 마음에 계시시므로 저는 더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주님을 깊이 만나고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현재적으로 만나게 되면 욕망을 버리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그리스도 바깥에서 행복해지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 한 한때 그렇게 사로잡혀 십자가의 사랑에 감격했어도 그 사랑은 식어집니다. 그리스도와의 십자가 앞에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그 순간 주님이 그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한 몸에 받으시고 죽으신 그 가시면류관과 피로 십자가를 적신 그 죽음의 고난이 바로 하나님 바깥에서 행복해보려고 하는 나의 죄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우리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있는데 예수님께 무엇 때문에 실망을 하겠습니까? 문제는 욕망입니다. 백성들 안에 있는 욕망, 하나님 바깥에서 번영해보고자 하는 욕망, 예수의 뜻과 상관없이 부강한 나라에서 살고자 하는 욕망이 예수님께 대해 실망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십시오. 좋은 신자의 눈에는 항상 그리스도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에 대한 눈물이 있습니다. 그 가슴에는 십자가 보혈의 시냇물이 흐릅니다. 좋은 신자입니다. 한때 생애적으로 주님을 만나고 인생의 모든 것을 그분께 드리고 혹은 피나도록 그분을 섬긴 적이 있다고 할지라도 천하에 모든 것이 그분의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들의 마음입니다. 매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무슨 일을 행하셨던가? 핍박자요, 폭행자였으나 죄인들의 우두머리였으나 바로 나같이 더러운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낮고 천한 이 세상에 내려오셨구나...’ 그것이 바로 신앙이고 믿음입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볼 때마다 죄를 버리게 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바깥에서 누려보려고 하던 행복, 하나님 바깥에서 성취해보고자 했던 번영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께 대한 그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꺾인 사람들은 매순간 그분의 인도를 받습니다. 그분이 늘 우리를 이끌어주십니다. 그러나 그분을 꺾어서 나를 섬기게 하고 싶은 사람들은 주님의 인도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것이 바로 우리의 그런 불순종을 버리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평생 사시면서 자기는 두루마리에 기록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신 분이라고 말씀하셨고 의로우면서도 죄인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는 것이 우리에게 합당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기 때문에 죽음이 두려워 하나님 앞에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자기를 꺾고 곧 하나님의 뜻을 굳게 붙들며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합니다.”라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승복하실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고난의 주간에 주님께 드릴 최고의 선물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제사장이면서도 스스로 당신 자신의 몸을 제물로 하여 아버지 앞에 나갔을 때, 성부께서 아들을 온전히 받으셨던 것처럼 이번에는 우리들이 그 피 공로를 의지하여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구속을 받은 제사장들이 되어 우리 자신을 또한 주님 앞에 제물로 드려 그분의 십자가 고난 앞에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살고자 할 때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2008-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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