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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먹는 방법

마가복음 채수일 목사............... 조회 수 2605 추천 수 0 2008.05.30 19: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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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6:30-44 
설교자 : 채수일 교수 
참고 : 새길교회 
 오늘의 설교 제목은 마치 무슨 새로운 '다이어트' 방법을 소개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아침은 왕처럼 먹고, 저녁은 거지처럼 먹어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오늘의 설교는 '다이어트'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또 '음식궁합'이라는 것이 있어서 무슨 음식을 무슨 음식과 함께 먹으면 좋지만, 잘못 섞어 먹었다가는 탈이 난다는 음식 건강론이나, '삼위일체 건강법'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먹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의 하루 생활을 시간별로 나누면, 물론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고 먹는 시간이 차지하는 부분이 아마 일하는 시간보다도 더 많을는지 모릅니다. 또 음식이 건강에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환자들이 무엇을 먹을지를 고르는 일도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직장인들이 매일 점심때만 되면 도대체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나, 자녀들 도시락을 무엇으로 싸줄 것인지가 어머니들에게 가장 골치 아픈 일의 하나인 것도 먹는 것이 얼마나 무시할 수 없이 중요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그러나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소개하려는 세 가지 먹는 방법은 지금부터 2천년 전, 로마제국에 있었던 방법입니다. 로마제국 당시 먹는 것과 관련하여 우리의 주목을 끄는 인물은 로마 비티니의 통치자이자, 집정관이고, 네로황제의 친구로서 피손의 모반이 실패한 이후에 세네카와 함께 65년 강제로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티투스 페트로니우스 니게르(Titus Petronius Niger) 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당시 최고의 미식가로, 또 음란 소설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낮 시간은 자는데 바치고, 밤 시간은 쾌락을 향유하는데 쏟아 부었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림으로써 명성을 얻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가 아비투스라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시의 어떤 만찬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편지를 통해 당시의 먹는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과 어떤 몇몇 특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접시에 담긴 최고의 요리를 내오게 했고, 그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거칠고 간소한 식사를 내오게 했습니다. 포도주도 역시, 그는 품질에 따라 세 등급으로 나누어서 작은 병들 속에 담아 내오게 했는데, 선택할 자유를 주지 않았고, 거절할 권리도 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일등급의 포도주는 그와 우리를 위해서 나왔고, 이등급은 그의 덜 중요한 친구들을 위해서(왜냐하면 그의 우정에는 등급이 매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삼등급은 그의 해방된 노예들과 우리가 데리고 온 해방된 노예들에게 돌려졌습니다.
내 곁에 앉아 있던 사람 하나가 식사가 그렇게 계획된 것을 보고는 나에게 묻기를, 당신도 그렇게 하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대답했습니다. "절대로 아니오." 대답을 듣고 난 그는 덧붙여서 나에게 "그러면 당신은 어떤 식으로 합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접대합니다. 나는 사람들을 식사에 초대하는 것이지, 모독을 주기 위해서 초대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나는 식탁과 응접실에 똑같이 받아들인 사람들이 똑같이 대우받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해방된 노예들도 똑같이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나의 눈에는 그들이 더 이상 해방된 노예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나의 손님들이지요." "그렇게 되면 돈이 꽤 들겠는데요?" 그가 다시 물었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럴만한 좋은 이유가 있습니다. 나의 노예들이 나와 같은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내가 그들과 같은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지요." "아, 정말 그렇습니다. 만일 당신이 당신 식사의 질을 낮춘다면, 당신이 많은 사람들과 식사를 한다고 해도 돈이 많이 들지 않고, 그래서 그 점에 대해서 당신이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지출을 줄이기를 원한다면, 다른 사람을 천대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 속에 있는 기질을 절제하는 것을 통해서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점을 환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가 꿈꾸면서 듣는 이야기는 아닐까요? 상당한 재산을 가진, 곳곳에 방대한 수익성 토지를 가지고 있었던 원로원 의원인 그가, 비용을 줄이고 자기의 좋은 포도주를 해방된 노예들에게 나누어주지 않으려고, 그들의 거친 포도주를 마신다고 터무니없이 자랑한 것입니다. 플리니우스는 아마도 '헤프고 인색한 인물'을 조롱하고 싶었던 것일지 모릅니다. 한 사람은 식탁에 초대받은 사람들의 계급을 철저하게 분리하여, 음식까지도 계급에 따라 차등을 둔 것입니다. 그런데 플리니우스는 해방된 노예들이 마시는 거친 포도주를 함께 마십니다. 그것은 내적인 기질의 절제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로마의 두 가지 먹는 방법, 그것은 욕망의 충족과 내적 절제였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먹는 방법의 근본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것은 식탁에 초대된 사람들 사이에는 깊은 계급적 골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해방된 노예와 주인 사이에도 깊은 골은 여전히 존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플리니우스는 111년에서 112년 사이 비티니의 통치자로 있을 때, 고발 받은 그리스도교인을 고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두 명의 여자 노예들은 고문에 못 이겨,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어떤 신에게 찬양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에게 찬양하며, 청렴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공동으로 식사를 실행하고 있다."고 자백했습니다.
초대 신앙공동체의 특징의 하나가 이들이 함께 식사를 했다는 것임이 여기서도 드러났습니다.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먹는 방법은 달랐습니다. 초대한 사람의 부와 명예를 과시하고, 다른 사람을 천대함으로써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식사나, 부유하지만 내적 절제력을 과시하기 위해 해방된 노예들이 마시는 질 나쁜 포도주를 마시는 식사와 그리스도인의 식사와는 달랐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식탁에는 음식의 질이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누가 초대 했느냐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초대받은 사람들이 해방된 노예냐, 여자냐, 어린이냐, 부자냐, 가난한 자냐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식탁에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참여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먹는 방법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구별되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별된 많은 생활양식이 있었습니다. 전쟁에 나가는 것을 거부한다던가, 품위 높은 가문의 여성이 해방된 노예와 결혼하는 것을 허락한 일이라든가, 청렴성, 직업생활에서 속이지 않는 것 등이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먹는 방법에 있어 그리스도인들이 철저한 평등성을 지켰다는 것은 이들을 다른 집단으로부터 결정적으로 구별하는 점이었습니다.
이런 전통은 물론 예수님의 먹는 방법에서 온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예수님의 먹는 방법 하나를 배우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드셨을까요?

예수님의 먹는 방법에 대한 보도는 복음서에 너무 많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치시는 일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삶의 일부는 어쩌면 먹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먹는 문제는 예수님 공생애의 처음부터 부활사건에 이르기까지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할 때,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 때 악마의 첫 번째 시험은 돌로 빵을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마 4:3).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절망한 제자들이 엠마오로 가던 길에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낯선 분이 부활한 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가, 그들과 함께 먹을 것을 나눌 때, 비로소 그 분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눅24:30∼31). 세례자 요한은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지만, 예수님은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먹고 마시는 것을 즐겼던지 적대자들은 예수님을 "보아라, 저 사람은 먹기를 탐하는 자요, 포도주를 즐기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마11:18∼19)라고 비난했습니다.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서 먹은 일(마12:1∼8)에서부터, 결혼잔치에서 술이 떨어지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일(요한2:1∼11),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에서 겨자씨(막4:26∼29), 누룩 등이 등장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먹고 마시는 일은 예수님의 짧은 공생애에 있어서 중요한 일의 하나, 아니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다"(요6:41, 6:48)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으로 준비했습니다. 세상 끝까지 먹고 마시는 일을 통해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기념하고 새로운 약속을 축하해야 했습니다.
오늘의 본문도 먹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5병 2어의 기적으로 알려진 본문은 네 복음서 모두에 전승되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처형당한 후, 제자들과 함께 외딴 곳으로 피한 예수님에게 소식을 들은 큰 무리가 모여들었습니다.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았던 무리를 예수님은 측은히 여기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눅9:11).
날이 저물자 끼니를 걱정한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여기는 빈들이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흩어, 제각기 먹을 것을 사 먹게 근방에 있는 농가나 마을로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갑자기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아니, 우리들 끼니도 해결하지 못하는 처지라는 것을 선생님은 모르나?" "우리 목구멍도 채우지 못하는 판에 이 많은 사람들을 무슨 돈으로 사 먹인담?"
"어디 혹시 숨겨 놓은 비자금이라도 갖고 계신가?" 사정을 모르는 것 같은 예수님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제자들은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서 빵 이백 데나리온 어치를 사다가 그들에게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인 당시 현실을 감안한다면, 제자들이 200 데나리온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에게 빵이 얼마나 있느냐? 가서 알아보아라" 하시자, 그들이 알아보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제자들이 이 빵과 물고기를 어디에서 구했는지 공관복음서에서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요한 복음에 따르면 "한 아이가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라고 되어 있습니다(요 6:9).
보리 빵은 유대인 식사의 주성분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입니다. 굽거나 소금에 절인 물고기도 바닷가에서는 대체로 빈약한 반찬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람들을 떼를 지어 풀밭에 앉게 한 후, 빵과 물고기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기도를 드린 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제자들이 나누어주는 빵과 물고기를 받아 모두 배불리 먹었습니다. 남은 음식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는데, 배불리 먹은 사람들이 남자 어른만도 오천 명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오병이어 이야기는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기적능력을 입증하는 이야기로써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수많은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이 까짓 것 빵과 물고기를 늘려서 5천명을 먹이는 일쯤이야 식은 죽 먹기 아니냐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이전의 사람들은 이 본문을 우화적으로 해석했는데, 떡 다섯 개는 모세5경, 열두 광주리는 열두 사도로, 물고기 두 마리는 시편과 예언서 또는 복음서와 사도서신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위임을 받아 설교의 빵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럼으로써 율법이 복음으로, 옛 계약이 새 계약으로 바뀌는 전 세계적인 교회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본문 전체를 도덕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에라스무스는 이 이야기를 "복음의 설교라는 양식으로 군중을 먹이도록 사도들에게 보여준 모범"이라고 봅니다. 칼뱅은 그리스도가 육신적인 일을 돌보는 데까지 목자 역할을 하셨다는 사실의 확증으로 봅니다. 다른 한편으로 19세기의 합리주의자들은 예수님이 자신이 갖고 있던 적은 양식을 기꺼이 나누어주자, 다른 사람들도 주머니에서 각자 가지고 있던 음식을 내놓아 모두 배부르게 먹은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야기를 기적으로 볼 것이냐, 설화로 볼 것이냐는 중요한 관심사가 아닙니다. 본문이 관심을 끈 것은 예수님의 먹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먹는 방법 때문에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별되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사람들을 "먹을 것을 사러" 보내야겠다고 했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고쳐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안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놀랐지만 제자들은 군중을 위해 빵을 사러 갈 준비를 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다시 말씀해야 했습니다: "너희가 가지고 있는 빵이 얼마나 되느냐?" 그 때에야 비로소 제자들은 문제가 단순히 그들이 가지고 있는 빵을 나누려는 것임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특별한 형식의 경제, 아니 문화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다/나누다"의 대조는 오직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이 배고플 때, 빵을 사먹을 수 있는, 교환가치에 근거한 사회적 제 관계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이 매우 적은 것일지라도, 나눈다는 것, 그것은 새로운 먹는 방법이었습니다.
오늘의 경제위기의 배경에는 교환가치에 근거한 시장논리의 지배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시장으로 통합니다. 시장에서 교환가치가 없는 것, 돈이 되지 않는 것은 부도난 기업의 어음만도 못합니다. 인간관계까지도 매매법칙이 지배합니다. 이 시장 안에서는 무한경쟁의 법칙만이 지배하고, 승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뿐입니다. 심지어 소외와 차별은 생물학적 운명으로 규정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인 식탁에는 누구도 소외될 수 없습니다. 이 식탁에는 모든 사람이 초대받습니다. 이 밥상 공동체에서 모든 사람이 배부르게 먹고 마실 때,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지상에서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에서부터 세상에서 굶주리는 사람들과 먹을 것을 나누는 것에 이르기까지 평등한 밥상공동체의 실현은 그리스도의 삶을 오늘에 실천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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