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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눅2:15-20 |
|---|---|
| 설교자 : | 소재열 목사 |
| 참고 : | 의정부평안교회 http://www.uppch.org |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에 있었던 일입니다. 만삭의 가난한 여인이 해산할 곳을 찾아 눈길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해산의 도움을 청할 곳을 찾지 못한 여인은 그만 어느 다리 밑에서 혼자 아이를 낳았습니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밤이었습니다. 산모에게는 아이를 덮어 줄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옷에서 솜을 모조리 뽑아 아기의 몸을 싸주고, 자신의 옷을 벗어 아기를 꼭 싸주었습니다. 그리고 기진맥진한 자신은 길에 버려진 마대를 주워 덮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한 행인이 우연히 그들을 발견했습니다. 아기는 동상에 걸려 있었고, 여인은 아이를 안은 채 얼어죽어 있었습니다. 마음씨 착한 행인은 그 아이를 구해 데려다 길렀다. 그후로부터 10년 후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날, 그 소년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를 데려다 키운 양부모는 10년 전의 일을 사실대로 알려 주었습니다.
소년은 어머니의 무덤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무덤에 이른 소년은 갑자기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은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 어머니의 무덤을 덮었습니다. 그리고는 벌 벌 떨면서 큰 소리로 “어머니! 저 때문에 얼마나 추우셨어요”라고 슬피 울었습니다.
어린 자녀를 살리기 위해 죽음을 부른 추위를 무릅쓰고 어린 자녀를 살렸던 어머니의 사랑, 이 얼마나 숭고합니까? 이같은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깊고 높은 사랑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들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게 했습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성탄절에 우리들에게 외쳐져야 하는 복음입니다.
1. 예언의 성취
성탄절은 무슨 날입니까? 말 그대로 성스러운 탄생입니다. 누가 태어났기에 성스러운 탄생입니까? 그래서 그날을 기념합니까? 그 성스러운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아기 예수로 태어났습니다. 그 날을 우리들은 성탄절로 기념하면서 경배하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미 2천년 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2천년 전에 아기 예수로 태어난 예수님을 기념하면서 아울러 앞으로 재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기대와 소망이 성탄절날 이 아침에 우리가 생각하고 기억해야 할 것들입니다.
2천년 전에 태어나신 그 아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어떤 근거로 알 수 있습니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이 아기 예수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한 분으로 오셨기에 이분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들의 구주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3:15절에서는 여인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서로 투쟁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여인의 후손은 생명의 계열입니다. 그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뱀의 후손으로 지칭된 사탄이 대립하지만 결국 생명이 사탄을 이길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가를 보십시오.
예수님이 약속대로(창49:10) 유다 민족 가운데 오셨을 때 유다 민족은 로마의 황제인 가이사 아구스도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로마 황제가 유다를 통치할 때 헤롯을 유다의 왕으로 세워 다스렸습니다. 이 헤롯은 구약 성경에서 언약에서 제외된 뱀의 후손으로 상징된 에서의 후손입니다. 이 에서의 후손이 이두매의 군주인 헤롯은 구약성경에 사탄의 상징으로 등장한 아말렉과 같은 종족입니다.
심지어 에스더서에 등장한 하만 역시 같은 종족들로서 하나같이 이들은 뱀의 후손, 내지는 사탄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이런 뱀의 후손이 유다를 일시 통치하고 있을 때 여인의 후손이시며 생명이신 예수님이 구약성경의 약속을 따라 출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는 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출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섭리였습니다(미 5:2).
이같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아기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음을 알게 하시려고 베들레헴에서 출생케 하십니다. 베들레헴에서 출생하도록 하기 위해서 당시 자신의 출생지에서 호적을 해야 한다는 호적령을 이용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것이 2:1절에 말씀한 내용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출생한 장소를 통하여 이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의 예언을 성취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했습니까? 또한 지금 우리들은 얼마나 장차 오실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까?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21:34)
2. 천사가 목자들에게 증거한 기쁜소식
목자들에게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실제로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천사가 양치는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증거는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10절에서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고 합니다. 그 좋은 소식은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눅2:14)라고 합니다.
아기 예수님은 하나님의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죄로 범하여 하나님의 저주의 형벌을 받고 있는 우리들에게 구원의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이야말로 좋은 소식입니다. 그분이 이땅에 오신 것 자체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님 뿐이십니다.
요한복음 14:13절에 보면 하나님은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이 이땅에 임하는 순간이 바로 아기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그 예수님을 믿고 맞이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평화가 임합니다. 이 평화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화목을 의미합니다. 그 화목은 결국 우리들의 불안한 마음, 불평의 마음을 감사하는 마음, 기쁨과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변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성탄절 이 아침에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하나님과 화목케 해 주셔서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평강과 평화를 주셨습니다. 이 평화와 평강을 우리 이웃에게 증거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나만 누릴 것이 아니라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우리 이웃을 생각하여 전도하므로 함께 누려야 합니다.
골 1:20에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18절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성탄절에 이 직책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분쟁 지역에, 불신 사회에서 우리들은 화목케 하신 복음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들도 그렇게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천사들로 인하여 기쁜 소식을 전해들은 목자들의 행동을 보십시오. 눅2:15에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알리신바 이 이루어진 일”, 즉 아기 예수님을 보고자 아기 예수를 찾았고(16), 보았고(17절), 전했다(17절). 그랬더니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기이히 여겼다(18절). 이 기이한 일은 다른 이야기가 아닌 하나님의 구원의 기쁜소식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서 목자들은 기쁜소식이 아기 예수님에 관해 들었고, 찾았고, 보았고, 전했다고 했습니다. 이같은 목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들이 믿고 있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 구약의 예언대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분명히 해 두기 위해입니다. 이렇게 까지 정확하게 예수님이야말로 우리들의 구주이심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같은 정확한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우리들도 그 성경을 통해 예수님에 관해 들었고 직접 구원을 체험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고해야 합니다. 즉 전해야 합니다. 전도의 사명은 구원의 체험에서 나옵니다.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만이 전도합니다. 이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전도할 수 있는 구원의 은혜와 감격을 체험하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사실을 오늘 성탄절 아침에 우리들이 다짐하고 체험해야 할 내용들입니다.
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본문 20절에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고 합니다. 아기 예수를 친히 보고 목격했던 목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을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로 하여금 복음을 간직한 자들에게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 어떠해야 함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 때문에 하나님께 찬양을 돌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인들의 사명입니다.
오늘날 왜 문제가 발생합니까? 교회이든 가정이든 왜 분쟁과 아픔이 오습니까? 그것은 내가 영광을 받으려고 할 때 생기는 병폐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최고라고 합니다. 자기 아니면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내가 아니요, 하나님이시요, 나보다 상대를 더 생각하며 아끼는 생활입니다. 언제나 희생을 감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손해를 볼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그 손해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어린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고 성공하면 그것은 부모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러나 자녀가 문제만 일으키고 사고만 내고 다닐 때 부모님에게는 모욕거리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대로 순종하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말로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먼저 시인하라고 한 것은 먼저 하나님을 마음속으로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그 마음이 진실인지는 뒤따라오는 그의 행동이 진실하느냐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진실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을 돌리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46절에서는 마리아가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라고 했고 누가복음 18:43절에서는 앞을 보지 못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고쳐주셨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좇으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고 했습니다.
고침 받은 당사자 뿐만 아니라 그 고침 받은 은총을 보고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찬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생각할 때마다 그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상처를 받게 된다면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하겠습니까? 도리어 원망과 분을 쏟을 것입니다. 그 통곡이 하나님께 기도로 상달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판단하실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빌1:3-5)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저를 찬송하라”고 했습니다(롬15:11).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했습니다(골3:16).
그런데 문제는 우리 자신이 그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교만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시94:2절에서 시편 기자는 “세계를 판단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에게 상당한 형벌을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아기 예수님으로 인하여 평강의 은총을 받은 목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도 그런 신앙인의 자세와 태도가 보여야 합니다.
말씀에로 초청
오늘 이 기쁜 성탄절 아침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이땅에 보내신 아기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날에 기념해야 합니까? 우리들의 구원을 말하기 전에 우리들이 어떠한 사람들이었기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야만 했는가를 묵상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죄인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성탄절은 기쁘고 즐거운 날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들이 어떤 상태에 있었는데 오늘은 어떤 자가 되었습니까? 이런 생각을 해 보면 우리들은 더 감격적인 성탄절, 희망과 소망으로 넘치는 성탄절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2천년 전에 오셨던 아기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동시적으로 앞으로 오실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늘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절에 동시적으로 가져야 하는 우리들의 관점이어야 합니다. 또한 이런 복음, 이런 신앙을 우리 이웃에게 전해야 합니다. 우리 이웃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충만히 느끼며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종말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신앙생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들을 구원하시고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이 성탄절 아침에 앞으로 오실 예수님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며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의정부평안교회 http://www.uppch.org/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밤이었습니다. 산모에게는 아이를 덮어 줄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옷에서 솜을 모조리 뽑아 아기의 몸을 싸주고, 자신의 옷을 벗어 아기를 꼭 싸주었습니다. 그리고 기진맥진한 자신은 길에 버려진 마대를 주워 덮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한 행인이 우연히 그들을 발견했습니다. 아기는 동상에 걸려 있었고, 여인은 아이를 안은 채 얼어죽어 있었습니다. 마음씨 착한 행인은 그 아이를 구해 데려다 길렀다. 그후로부터 10년 후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날, 그 소년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를 데려다 키운 양부모는 10년 전의 일을 사실대로 알려 주었습니다.
소년은 어머니의 무덤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무덤에 이른 소년은 갑자기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은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 어머니의 무덤을 덮었습니다. 그리고는 벌 벌 떨면서 큰 소리로 “어머니! 저 때문에 얼마나 추우셨어요”라고 슬피 울었습니다.
어린 자녀를 살리기 위해 죽음을 부른 추위를 무릅쓰고 어린 자녀를 살렸던 어머니의 사랑, 이 얼마나 숭고합니까? 이같은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깊고 높은 사랑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들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게 했습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성탄절에 우리들에게 외쳐져야 하는 복음입니다.
1. 예언의 성취
성탄절은 무슨 날입니까? 말 그대로 성스러운 탄생입니다. 누가 태어났기에 성스러운 탄생입니까? 그래서 그날을 기념합니까? 그 성스러운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아기 예수로 태어났습니다. 그 날을 우리들은 성탄절로 기념하면서 경배하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미 2천년 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2천년 전에 아기 예수로 태어난 예수님을 기념하면서 아울러 앞으로 재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기대와 소망이 성탄절날 이 아침에 우리가 생각하고 기억해야 할 것들입니다.
2천년 전에 태어나신 그 아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어떤 근거로 알 수 있습니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이 아기 예수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한 분으로 오셨기에 이분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들의 구주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3:15절에서는 여인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서로 투쟁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여인의 후손은 생명의 계열입니다. 그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뱀의 후손으로 지칭된 사탄이 대립하지만 결국 생명이 사탄을 이길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가를 보십시오.
예수님이 약속대로(창49:10) 유다 민족 가운데 오셨을 때 유다 민족은 로마의 황제인 가이사 아구스도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로마 황제가 유다를 통치할 때 헤롯을 유다의 왕으로 세워 다스렸습니다. 이 헤롯은 구약 성경에서 언약에서 제외된 뱀의 후손으로 상징된 에서의 후손입니다. 이 에서의 후손이 이두매의 군주인 헤롯은 구약성경에 사탄의 상징으로 등장한 아말렉과 같은 종족입니다.
심지어 에스더서에 등장한 하만 역시 같은 종족들로서 하나같이 이들은 뱀의 후손, 내지는 사탄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이런 뱀의 후손이 유다를 일시 통치하고 있을 때 여인의 후손이시며 생명이신 예수님이 구약성경의 약속을 따라 출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는 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출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섭리였습니다(미 5:2).
이같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아기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음을 알게 하시려고 베들레헴에서 출생케 하십니다. 베들레헴에서 출생하도록 하기 위해서 당시 자신의 출생지에서 호적을 해야 한다는 호적령을 이용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것이 2:1절에 말씀한 내용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출생한 장소를 통하여 이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의 예언을 성취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했습니까? 또한 지금 우리들은 얼마나 장차 오실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까?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21:34)
2. 천사가 목자들에게 증거한 기쁜소식
목자들에게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실제로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천사가 양치는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증거는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10절에서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고 합니다. 그 좋은 소식은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눅2:14)라고 합니다.
아기 예수님은 하나님의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죄로 범하여 하나님의 저주의 형벌을 받고 있는 우리들에게 구원의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이야말로 좋은 소식입니다. 그분이 이땅에 오신 것 자체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님 뿐이십니다.
요한복음 14:13절에 보면 하나님은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이 이땅에 임하는 순간이 바로 아기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그 예수님을 믿고 맞이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평화가 임합니다. 이 평화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화목을 의미합니다. 그 화목은 결국 우리들의 불안한 마음, 불평의 마음을 감사하는 마음, 기쁨과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변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성탄절 이 아침에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하나님과 화목케 해 주셔서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평강과 평화를 주셨습니다. 이 평화와 평강을 우리 이웃에게 증거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나만 누릴 것이 아니라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우리 이웃을 생각하여 전도하므로 함께 누려야 합니다.
골 1:20에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18절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성탄절에 이 직책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분쟁 지역에, 불신 사회에서 우리들은 화목케 하신 복음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들도 그렇게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천사들로 인하여 기쁜 소식을 전해들은 목자들의 행동을 보십시오. 눅2:15에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알리신바 이 이루어진 일”, 즉 아기 예수님을 보고자 아기 예수를 찾았고(16), 보았고(17절), 전했다(17절). 그랬더니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기이히 여겼다(18절). 이 기이한 일은 다른 이야기가 아닌 하나님의 구원의 기쁜소식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서 목자들은 기쁜소식이 아기 예수님에 관해 들었고, 찾았고, 보았고, 전했다고 했습니다. 이같은 목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들이 믿고 있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 구약의 예언대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분명히 해 두기 위해입니다. 이렇게 까지 정확하게 예수님이야말로 우리들의 구주이심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같은 정확한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우리들도 그 성경을 통해 예수님에 관해 들었고 직접 구원을 체험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고해야 합니다. 즉 전해야 합니다. 전도의 사명은 구원의 체험에서 나옵니다.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만이 전도합니다. 이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전도할 수 있는 구원의 은혜와 감격을 체험하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사실을 오늘 성탄절 아침에 우리들이 다짐하고 체험해야 할 내용들입니다.
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본문 20절에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고 합니다. 아기 예수를 친히 보고 목격했던 목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을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로 하여금 복음을 간직한 자들에게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 어떠해야 함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 때문에 하나님께 찬양을 돌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인들의 사명입니다.
오늘날 왜 문제가 발생합니까? 교회이든 가정이든 왜 분쟁과 아픔이 오습니까? 그것은 내가 영광을 받으려고 할 때 생기는 병폐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최고라고 합니다. 자기 아니면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내가 아니요, 하나님이시요, 나보다 상대를 더 생각하며 아끼는 생활입니다. 언제나 희생을 감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손해를 볼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그 손해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어린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고 성공하면 그것은 부모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러나 자녀가 문제만 일으키고 사고만 내고 다닐 때 부모님에게는 모욕거리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대로 순종하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말로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먼저 시인하라고 한 것은 먼저 하나님을 마음속으로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그 마음이 진실인지는 뒤따라오는 그의 행동이 진실하느냐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진실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을 돌리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46절에서는 마리아가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라고 했고 누가복음 18:43절에서는 앞을 보지 못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고쳐주셨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좇으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고 했습니다.
고침 받은 당사자 뿐만 아니라 그 고침 받은 은총을 보고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찬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생각할 때마다 그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상처를 받게 된다면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하겠습니까? 도리어 원망과 분을 쏟을 것입니다. 그 통곡이 하나님께 기도로 상달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판단하실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빌1:3-5)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저를 찬송하라”고 했습니다(롬15:11).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했습니다(골3:16).
그런데 문제는 우리 자신이 그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교만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시94:2절에서 시편 기자는 “세계를 판단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에게 상당한 형벌을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아기 예수님으로 인하여 평강의 은총을 받은 목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도 그런 신앙인의 자세와 태도가 보여야 합니다.
말씀에로 초청
오늘 이 기쁜 성탄절 아침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이땅에 보내신 아기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날에 기념해야 합니까? 우리들의 구원을 말하기 전에 우리들이 어떠한 사람들이었기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야만 했는가를 묵상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죄인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성탄절은 기쁘고 즐거운 날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들이 어떤 상태에 있었는데 오늘은 어떤 자가 되었습니까? 이런 생각을 해 보면 우리들은 더 감격적인 성탄절, 희망과 소망으로 넘치는 성탄절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2천년 전에 오셨던 아기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동시적으로 앞으로 오실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늘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절에 동시적으로 가져야 하는 우리들의 관점이어야 합니다. 또한 이런 복음, 이런 신앙을 우리 이웃에게 전해야 합니다. 우리 이웃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충만히 느끼며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종말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신앙생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들을 구원하시고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이 성탄절 아침에 앞으로 오실 예수님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며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의정부평안교회 http://www.uppc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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