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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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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눅7:36-50 |
|---|---|
| 설교자 : | 소재열 목사 |
| 참고 : | 의정부평안교회 http://www.uppch.org |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들의 마음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복을 소유하기 위해서 분주한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 모든 복과 생명을 주관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잃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외면하면서 자신들의 노력과 힘으로 복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지막 열매는 저주요, 죽음과 죄악에 대한 심판 뿐입니다. 그들은 복과 생명을 맞바꾼 셈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들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같은 사랑을 아는 자가 바로 참된 구원의 백성입니다. 죄많은 가냘픈 한 여인이 본문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은 세상적으로 볼 때 지지리도 복이 없는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원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죄 용서함을 받는 복된 여인이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 누리는 최대의 복과 행복을 소유한 여인이었습니다.
이같은 여인에게 희망과 소망을 주신 분이 누구셨습니까? 그분은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를 받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희망이셨고 비전이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언제나 죄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오해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조롱하였습니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눅7:34-35)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은 본문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어떤 면을 소개받아야 할 것인지를 묵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계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1. 한 바리새인에 의해 초청 받으신 예수님(36절)
본문 36절에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바리새인으로부터 초청을 받으셨습니다.
① 바리새인이라는 유대인이었습니다.
② 유대인들이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③ 예수님은 유대인의 초청을 받을 때마다 잘못된 그들을 시정해 주셨습니눅11:37,14:1).
한결 같이 바리새인들로부터 초청을 받을 때마다 예수님은 자신의 어떤 의도를 드러내기 위하여 초청에 응하셨던 것을 복음서를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초청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기에 초청한 초청은 아니었습니다. 호기심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단순한 어떤 존경심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예수님에게서 어떤 약점을 캐기 위한 목적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같은 사실을 다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잘못을 시정하시고 책망하시기도 하시고 경고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내 마음속에 예수님을 믿기로 했습니다. 영접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 주님을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오, 주님 내 마음속에 오시옵소서”라고 결단과 헌신을 다짐했을 것입니다. 그런 다짐들이 단순히 순간적인 어떤 감정이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주님을 마음속에 초청해 놓고 우리들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으면 안됩니다. 초청에 응하신 주님은 우리들과 동행하십니다. 우리 주님이 원하신 것이 무엇인가를 늘 묵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딴 마음을 갖고 있으면 안됩니다.
2. 죄인인 한 여인과 예수님과의 만남(37-39절)
예수님에게 한 여인이 찾아 왔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여인은 누구입니까?
① 죄가 많은 여인이었습니다(37절上).
② 향유을 담은 옥합을 가져왔습니다(37절下).
③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실 정도로 많이 울었습니다(38절上).
④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고 그 발에 입맞추며 향유를 부었습니다(38절下).
예수님을 사랑하는 한 여인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을 보라.
여인의 이같은 행동을 그대로 방치하신 예수님을 바리새인은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① 예수님은 참 선지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합니다(39절).
② 그 이유는 자신에게 향유를 붓는 여인이 죄 많은 여인인줄 몰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39절).
③ 예수님이 참 선지자였다면 이런 죄인과 함께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그 당시 죄많은 사람들과 자리를 합석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죄인들이 많이 사는 이방인의 지역을 통과한 다음 자신들의 발에 먼저를 떨어버립니다. 더러운 지역을 지나왔다는 것입니다. 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청한 것은 예수님은 고상한 분이라고 생각해서였습니다. 혹은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런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자신이 곧 고상한 사람임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죄많은 여인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죄인과 함께 하는 것을 보니 예수님은 더 이상 선지자일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예수님을 의심했던 것입니다.
혹 우리들이 예수님을 초청한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은 아닙니까? 하나님은 나에게 어려움을 주시면 나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겠다고 합니다. 나에게 어려움이 없도록 해 주실 때만 나는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들은 우리들의 머리로 하나님을 만들어 믿으면 안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신 그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3. 탕감 받는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는 예수님(40-46절)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잘못된 생각을 지적하기 위해 비유를 듭니다.
① 빚진 자 둘이 있는데 하 사람은 5백 데나리온, 다른 한 사람은 5십 데나리온을 졌습니다(41절).
② 그런데 이 둘이 갚을 능력이 없어서 주인은 두 사람의 빚을 다 탕감해 주었습니다(42절 上).
③ 그렇다면 이 둘 중에 누가 탕감해 주는 주인을 더 사랑하겠습니까?(42절 下).
④ 이같은 예수님의 비유에 바리새인 시몬은 많이 탕감 받은 자라고 답변합니다(43절).
비유를 통해 가르치시려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①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습니다(44절 上).
②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내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44절 下).
③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 발에 입맞추었습니다(45절).
④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했지만 이 여자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습니다(46절).
이 비유는 많은 빚을 탕감받은 자는 여인이고 적게 탕감받은 자는 바리새인으로서 많이 탕감받은 여인이 주인이신 예수님을 더 사랑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스스로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나 나는 전혀 죄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감격이 없을 것입니다. 죄가 전혀 없는데 억지로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말이 아닙니다. 원래 우리들은 죄인 중에 괴수라고 표현해도 할 말이 없는 자들입니다. 이런 죄를 인정하고, 시인하면서 그 죄 가운데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감격이 넘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그 어느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할 것입니다. 마치 본문에서 등장한 죄많은 여인처럼 말입니다.
4. 죄 많은 여인을 구원하신 예수님(47-50절)
결국 한 바리새인의 초청에 응한 것도, 비유를 든 것도 예수님 자신이 누구신지를 알려 주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약이 예언하고 있는 그 메시아이심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자신이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오신 분으로 자신을 나타내어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당시 유대인들로부터 멸시와 천대와 정죄를 받았던 죄만은 여인이 용서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의 대열에 끼었다는 점입니다. 유대인들이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① 예수님을 많이 사랑한 여인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네 죄사함을 얻었느니라”(47절)고 하셨습니다.
② 죄 사함을 선언하신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한 바리새인(49절)들은 마음 속으로 우왕좌왕 할 뿐이었습니다.
③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시면서 평안의 복음을 허락하셨습니다(50).
우리들은 보통 마음 편할 날이 없다고 합니다. 골치 아픈 날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은 늘 그렇게 부족하게 산다는 말입니다. 불안전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간직한 사람들은 이제 무엇인가 달라졌습니다. 행복을 압니다. 마음의 평강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그것은 오직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에게 임하게 하는 비결입니다. 자신을 비관했고 상대방을 정죄했던 내가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이제 달라졌습니다. 변화되었습니다. 오직 예수 승리, 내 승리였습니다.
5. 말씀에로 초대
참으로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 어려움은 하나님의 저주의 형벌이라기 보다 우리들을 훈련시키시는 훈련의 도구임을 명심하십시오. 어렵다고 회피하고 낙심하면 그는 영원히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상실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사함과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비전과 꿈이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부여받은 우리들이 언제까지 움츠리면 살겠습니까? 깨어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열심히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눅7:50절).
의정부평안교회 http://www.uppch.org/
세상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외면하면서 자신들의 노력과 힘으로 복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지막 열매는 저주요, 죽음과 죄악에 대한 심판 뿐입니다. 그들은 복과 생명을 맞바꾼 셈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들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같은 사랑을 아는 자가 바로 참된 구원의 백성입니다. 죄많은 가냘픈 한 여인이 본문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은 세상적으로 볼 때 지지리도 복이 없는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원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죄 용서함을 받는 복된 여인이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 누리는 최대의 복과 행복을 소유한 여인이었습니다.
이같은 여인에게 희망과 소망을 주신 분이 누구셨습니까? 그분은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를 받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희망이셨고 비전이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언제나 죄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오해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조롱하였습니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눅7:34-35)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은 본문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어떤 면을 소개받아야 할 것인지를 묵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계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1. 한 바리새인에 의해 초청 받으신 예수님(36절)
본문 36절에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바리새인으로부터 초청을 받으셨습니다.
① 바리새인이라는 유대인이었습니다.
② 유대인들이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③ 예수님은 유대인의 초청을 받을 때마다 잘못된 그들을 시정해 주셨습니눅11:37,14:1).
한결 같이 바리새인들로부터 초청을 받을 때마다 예수님은 자신의 어떤 의도를 드러내기 위하여 초청에 응하셨던 것을 복음서를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초청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기에 초청한 초청은 아니었습니다. 호기심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단순한 어떤 존경심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예수님에게서 어떤 약점을 캐기 위한 목적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같은 사실을 다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잘못을 시정하시고 책망하시기도 하시고 경고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내 마음속에 예수님을 믿기로 했습니다. 영접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 주님을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오, 주님 내 마음속에 오시옵소서”라고 결단과 헌신을 다짐했을 것입니다. 그런 다짐들이 단순히 순간적인 어떤 감정이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주님을 마음속에 초청해 놓고 우리들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으면 안됩니다. 초청에 응하신 주님은 우리들과 동행하십니다. 우리 주님이 원하신 것이 무엇인가를 늘 묵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딴 마음을 갖고 있으면 안됩니다.
2. 죄인인 한 여인과 예수님과의 만남(37-39절)
예수님에게 한 여인이 찾아 왔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여인은 누구입니까?
① 죄가 많은 여인이었습니다(37절上).
② 향유을 담은 옥합을 가져왔습니다(37절下).
③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실 정도로 많이 울었습니다(38절上).
④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고 그 발에 입맞추며 향유를 부었습니다(38절下).
예수님을 사랑하는 한 여인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을 보라.
여인의 이같은 행동을 그대로 방치하신 예수님을 바리새인은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① 예수님은 참 선지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합니다(39절).
② 그 이유는 자신에게 향유를 붓는 여인이 죄 많은 여인인줄 몰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39절).
③ 예수님이 참 선지자였다면 이런 죄인과 함께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그 당시 죄많은 사람들과 자리를 합석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죄인들이 많이 사는 이방인의 지역을 통과한 다음 자신들의 발에 먼저를 떨어버립니다. 더러운 지역을 지나왔다는 것입니다. 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청한 것은 예수님은 고상한 분이라고 생각해서였습니다. 혹은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런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자신이 곧 고상한 사람임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죄많은 여인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죄인과 함께 하는 것을 보니 예수님은 더 이상 선지자일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예수님을 의심했던 것입니다.
혹 우리들이 예수님을 초청한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은 아닙니까? 하나님은 나에게 어려움을 주시면 나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겠다고 합니다. 나에게 어려움이 없도록 해 주실 때만 나는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들은 우리들의 머리로 하나님을 만들어 믿으면 안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신 그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3. 탕감 받는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는 예수님(40-46절)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잘못된 생각을 지적하기 위해 비유를 듭니다.
① 빚진 자 둘이 있는데 하 사람은 5백 데나리온, 다른 한 사람은 5십 데나리온을 졌습니다(41절).
② 그런데 이 둘이 갚을 능력이 없어서 주인은 두 사람의 빚을 다 탕감해 주었습니다(42절 上).
③ 그렇다면 이 둘 중에 누가 탕감해 주는 주인을 더 사랑하겠습니까?(42절 下).
④ 이같은 예수님의 비유에 바리새인 시몬은 많이 탕감 받은 자라고 답변합니다(43절).
비유를 통해 가르치시려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①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습니다(44절 上).
②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내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44절 下).
③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 발에 입맞추었습니다(45절).
④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했지만 이 여자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습니다(46절).
이 비유는 많은 빚을 탕감받은 자는 여인이고 적게 탕감받은 자는 바리새인으로서 많이 탕감받은 여인이 주인이신 예수님을 더 사랑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스스로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나 나는 전혀 죄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감격이 없을 것입니다. 죄가 전혀 없는데 억지로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말이 아닙니다. 원래 우리들은 죄인 중에 괴수라고 표현해도 할 말이 없는 자들입니다. 이런 죄를 인정하고, 시인하면서 그 죄 가운데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감격이 넘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그 어느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할 것입니다. 마치 본문에서 등장한 죄많은 여인처럼 말입니다.
4. 죄 많은 여인을 구원하신 예수님(47-50절)
결국 한 바리새인의 초청에 응한 것도, 비유를 든 것도 예수님 자신이 누구신지를 알려 주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약이 예언하고 있는 그 메시아이심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자신이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오신 분으로 자신을 나타내어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당시 유대인들로부터 멸시와 천대와 정죄를 받았던 죄만은 여인이 용서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의 대열에 끼었다는 점입니다. 유대인들이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① 예수님을 많이 사랑한 여인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네 죄사함을 얻었느니라”(47절)고 하셨습니다.
② 죄 사함을 선언하신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한 바리새인(49절)들은 마음 속으로 우왕좌왕 할 뿐이었습니다.
③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시면서 평안의 복음을 허락하셨습니다(50).
우리들은 보통 마음 편할 날이 없다고 합니다. 골치 아픈 날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은 늘 그렇게 부족하게 산다는 말입니다. 불안전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간직한 사람들은 이제 무엇인가 달라졌습니다. 행복을 압니다. 마음의 평강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그것은 오직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에게 임하게 하는 비결입니다. 자신을 비관했고 상대방을 정죄했던 내가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이제 달라졌습니다. 변화되었습니다. 오직 예수 승리, 내 승리였습니다.
5. 말씀에로 초대
참으로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 어려움은 하나님의 저주의 형벌이라기 보다 우리들을 훈련시키시는 훈련의 도구임을 명심하십시오. 어렵다고 회피하고 낙심하면 그는 영원히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상실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사함과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비전과 꿈이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부여받은 우리들이 언제까지 움츠리면 살겠습니까? 깨어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열심히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눅7:5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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