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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눅14:34-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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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서창원 목사 |
| 참고 : | 새길교회 |
오늘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 중 한 비유입니다. 소금의 예를 들면서 깊은 진리의 교훈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소금은 맛을 조절하는 양념으로 그 용도와 역사가 오래 된 것입니다. 성서의 예를 보더라도, 소금은 종교 예식 상의 소제(레2:13)와 번제(겔43:24)의 예물 위에 뿌리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성전에 피우는 향의 성분 속에도 소금이 들어갔으며(출 30:35), 새로 태어난 아기를 위해 의학적 목적으로 소금을 뿌리기도 했고(겔 16:4), 방부제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소금의 가장 큰 역할은 맛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맛을 잃는다는 표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해와 해석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소금은 그 맛으로 소금 됨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아무데도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밖에 버리어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며(마 5:13), 땅에도 거름에도 쓸모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후에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는 매우 의미 있는 말씀으로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예속되는 비유로 그를 따르던 무리에게 예수님께서는 필요한 말씀을 충분히 해 주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여 현명한 결단을 하는 것입니다. 이 결단은 다만 듣는 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선택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의 짧은 소금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정체성(identity)의 문제를 심각하게 느껴 볼 수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로서 정체성의 문제는 소금의 짠맛에 대응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70년대 이후 세계의 교회들은 복음의 핵심적 성격을 시대적 상황과 연결시키면서 다음의 세 가지 성격을 부각시켰습니다. 이 세 가지 방향을 오늘의 크리스천이 지녀야 할 자기 정체성의 내용으로 정리하면서 신앙적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첫째, 구조적 구원을 의미하는 해방적 복음적 진리입니다. 70년대 세계적으로 자각된 것은 사회 정치의식의 고양이었습니다.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가 부분적 현상이 아니라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 경제 부국과 경제 약국 사이에 존재하는 종속적인 구조와 관련되어 있음이 폭로되었습니다. 개인도 단지 개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적이며 관계적인 그물 속에 존재한다는 사회적 성격이 부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회 정치적 불의와 억압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회복하려는 기독교 신앙의 실천이 강력하게 대두되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발견된 것이 '하나님의 정치'이었는데, 그 핵심은 하나님 나라의 실현인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이 땅위에 이룩하려는 믿음의 실현이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지난 2,000년간 개인주의적이며 사회 도피적 기능으로 역할을 한 것에 대한 자기 회개가 포함되었습니다.
둘째, 영성을 중심한 통전이며 온전성을 향한 복음적 진리입니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남미의 해방 신학자들은 정행(正行)의 실천을 강조하던 것에서 더 나아가 영성의 필요성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깨달은 진리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내면적인 전체성에 기초한 진리에 대한 실존적이며 영적인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신앙적 실천과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행동과의 차이는 영성적인 기초의 유무입니다. 신앙은 단순한 정치행동으로는 환원될 수 없는, 진리에 대한 영성적 자각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은 매우 포괄적인 개념이고, 그래서 영성에 대한 이해도 넓혀져 갔습니다. 특별히 여성적 감수성, 융통성, 육체성의 이해가 영성 개념에 중요하게 자리 매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셋째로, 생명이해에 따른 우주적 자각으로서의 복음이해입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복음의 진리는 빈부의 격차, 힘 있는 자와 힘 없는 자, 남성과 여성의 화해 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 생물과 무생물, 식물과 동물 등과의 우주적 창조적 질서와 보존에 따르는 근원적인 화해를 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시대는 경제적 선진국이건 후진국이건 간에 인간이 자연을 무책임하게 관리해온 결과에 따르는 재앙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생물학자의 보고에 의하면, 50억년 이상 진화의 과정에 지금까지 존재해 온 다양한 동물과 식물 그리고 곤충 등의 종들이 지구 위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엄청난 비극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이 생물들은 인간이 창조해 냈던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창조를 이처럼 거역해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21세기를 앞두면서, 우리 기독인들은 스스로 믿고 따르는 진리의 핵심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존재 의의는 소금으로 그 짠맛을 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데, 그 짠맛 즉 진리의 핵심이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온 우주와 온 만물 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생명과 더불어 자신의 생명에 대한 책임 있는 자각입니다. 인간은 그저 흙으로 빚어진 육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생명입니다. 복음은 이 생명을 살리고 회복시키고 변화시켜서 더욱 풍성한 하나님의 생명을 충만케 하는 진리입니다. 생명의 정치적 경제적 억압, 내면적 정신적 왜곡, 그리고 우주적 관계의 단절에서, 우리는 생명의 본질이신 하나님을 통해서 증거된 진리를 인격적으로 자각하여 영원한 생명의 진리를 실천적으로 증거하며 펼쳐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의 존재 의미이며 정체성의 근거가 될 것입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그러나 그 맛을 잃는다는 표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해와 해석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소금은 그 맛으로 소금 됨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아무데도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밖에 버리어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며(마 5:13), 땅에도 거름에도 쓸모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후에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는 매우 의미 있는 말씀으로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예속되는 비유로 그를 따르던 무리에게 예수님께서는 필요한 말씀을 충분히 해 주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여 현명한 결단을 하는 것입니다. 이 결단은 다만 듣는 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선택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의 짧은 소금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정체성(identity)의 문제를 심각하게 느껴 볼 수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로서 정체성의 문제는 소금의 짠맛에 대응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70년대 이후 세계의 교회들은 복음의 핵심적 성격을 시대적 상황과 연결시키면서 다음의 세 가지 성격을 부각시켰습니다. 이 세 가지 방향을 오늘의 크리스천이 지녀야 할 자기 정체성의 내용으로 정리하면서 신앙적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첫째, 구조적 구원을 의미하는 해방적 복음적 진리입니다. 70년대 세계적으로 자각된 것은 사회 정치의식의 고양이었습니다.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가 부분적 현상이 아니라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 경제 부국과 경제 약국 사이에 존재하는 종속적인 구조와 관련되어 있음이 폭로되었습니다. 개인도 단지 개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적이며 관계적인 그물 속에 존재한다는 사회적 성격이 부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회 정치적 불의와 억압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회복하려는 기독교 신앙의 실천이 강력하게 대두되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발견된 것이 '하나님의 정치'이었는데, 그 핵심은 하나님 나라의 실현인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이 땅위에 이룩하려는 믿음의 실현이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지난 2,000년간 개인주의적이며 사회 도피적 기능으로 역할을 한 것에 대한 자기 회개가 포함되었습니다.
둘째, 영성을 중심한 통전이며 온전성을 향한 복음적 진리입니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남미의 해방 신학자들은 정행(正行)의 실천을 강조하던 것에서 더 나아가 영성의 필요성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깨달은 진리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내면적인 전체성에 기초한 진리에 대한 실존적이며 영적인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신앙적 실천과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행동과의 차이는 영성적인 기초의 유무입니다. 신앙은 단순한 정치행동으로는 환원될 수 없는, 진리에 대한 영성적 자각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은 매우 포괄적인 개념이고, 그래서 영성에 대한 이해도 넓혀져 갔습니다. 특별히 여성적 감수성, 융통성, 육체성의 이해가 영성 개념에 중요하게 자리 매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셋째로, 생명이해에 따른 우주적 자각으로서의 복음이해입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복음의 진리는 빈부의 격차, 힘 있는 자와 힘 없는 자, 남성과 여성의 화해 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 생물과 무생물, 식물과 동물 등과의 우주적 창조적 질서와 보존에 따르는 근원적인 화해를 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시대는 경제적 선진국이건 후진국이건 간에 인간이 자연을 무책임하게 관리해온 결과에 따르는 재앙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생물학자의 보고에 의하면, 50억년 이상 진화의 과정에 지금까지 존재해 온 다양한 동물과 식물 그리고 곤충 등의 종들이 지구 위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엄청난 비극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이 생물들은 인간이 창조해 냈던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창조를 이처럼 거역해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21세기를 앞두면서, 우리 기독인들은 스스로 믿고 따르는 진리의 핵심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존재 의의는 소금으로 그 짠맛을 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데, 그 짠맛 즉 진리의 핵심이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온 우주와 온 만물 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생명과 더불어 자신의 생명에 대한 책임 있는 자각입니다. 인간은 그저 흙으로 빚어진 육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생명입니다. 복음은 이 생명을 살리고 회복시키고 변화시켜서 더욱 풍성한 하나님의 생명을 충만케 하는 진리입니다. 생명의 정치적 경제적 억압, 내면적 정신적 왜곡, 그리고 우주적 관계의 단절에서, 우리는 생명의 본질이신 하나님을 통해서 증거된 진리를 인격적으로 자각하여 영원한 생명의 진리를 실천적으로 증거하며 펼쳐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의 존재 의미이며 정체성의 근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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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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