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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와 누룩

누가복음 김기동............... 조회 수 2169 추천 수 0 2008.09.15 12: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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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3:20-21 
설교자 : 김기동 형제 
참고 : 새길교회 2006.7.30주일설교 
제목: 하나님나라와 누룩
본문: 누가복음 13:20-21
설교: 김기동(새길교회 2006.7.30주일설교)

오늘 읽은 본문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나라입니다. 온 것이냐, 올 것이냐, 종말론적 의미에서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닌’(already, but not yet)의 긴장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예수가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가르쳐 줬다는 점에서 하나님나라는 우리의 시공을 넘어선 초월적 개념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비유는 소위 영적인 세계에 대한 경험이라고 하면서 황금과 보석이라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개념으로 가득 찬 ‘저 하늘나라’ 이야기와는 전혀 다릅니다. 예수는 그 당시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가족, 이웃, 자연의 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하나님나라에 대해 들려줍니다. 비유는 대부분 짤막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이 이야기 진행에서 청중은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삼세번’이라는 우리네 법칙이 아마도 그곳에서도 유용했던 것 같습니다. 진짜 주인공은 세 번째 등장하고, 기대를 한몸에 안고 있는 큰 아들보다 껄렁거리는 작은 아들이 사실은 참된 사랑의 주인공이 됩니다. 가진 것이 없고, 로마의 식민지로 고달픈 민중의 삶을 살아가야 했던 예수의 청중들은 억압받고, 천대받으며, 가난한 삶을 인내해야 하는 자신들의 모습이 예수가 전해주는 이야기 안 주인공의 모습이라는 점을 깨달았을 겁니다. 자신들을 친구요, 형제로 받아주는 예수가 말하는 하나님나라는 소위 거룩하여 범접할 수 없는 성전 지도자들의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땅 안에 살아가는 자신들의 것이며, 하나님은 성전에 갇혀서 제사장들만 만나고 그들이 바치는 진설병만을 먹는 노쇠한 신(神)이 아니라, 이 땅의 불의와 억압을 변화시켜 새로운 질서를 만드시는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것, 이것은 소위 알고 있다는 자들은 알지 못하는 놀라운 비밀의 교감이었을 겁니다.  

비유는 이와 같이 비유를 말하는 자와 그 청중 간에 소통하여 은밀하지만 통쾌한 교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그 첫째 목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는 말처럼 비유는 듣고 깨닫는 자에게 그것은 정말 하나님나라의 위대한 복음의 메시지가 되지만, 들어도 듣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은 한낱 작은 이야기에 불과하게 됩니다.

누룩의 비유에서 예수는 청중들과 어떤 소통이 있었을까요? 누룩의 비유를 통해 청중은 하나님나라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누룩의 비유는 마태와 누가복음에 나오는데 그 두 경우 모두 겨자씨 비유와 함께 나옵니다. 두 이야기는 언뜻 보면 같은 패턴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작은 겨자씨가 자라서 아주 큰 나무가 되어 새들도 깃들어 쉴 수 있는 터를 제공하게 되듯이, 작은 누룩 덩어리도 큰 반죽을 온통 부풀게 한다는 의미에서 이 비유는 대개 성장, 변화, 그리고 발전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하나님나라’ 그것은 지금 작고, 보잘 것 없어 어떤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이 보이지만, 결국 기적과 같이 자라나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나라’ 제국이 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입니다. 사실 ‘나라’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바실레이아’는 그 당시 로마제국을 떠오르게 하는 단어입니다. 한 식민지 땅 팔레스타인, 아무도 관심두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목수일 하던 한 청년은 감히 어느 누구도 맞설 수 없이 보이는 강력함의 표상이었던 로마 제국을 나타내는 그 단어를 써서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하나님나라’의 힘과 능력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겨자씨 비유가 주는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 두 비유에서 사용된 겨자씨와 누룩은 실제상, 그리고 은유적으로 볼 때 하나님나라의 놀라운 능력과 긍정적 의미를 나타나기에 그리 썩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겨자씨는 그 당시 관습에 의하면 정원이나, 밭에 뿌려서는 안 되는 씨앗입니다. 겨자는 일년생 잡초로 일단 한번 씨가 뿌려지면, 다른 작물의 성장을 방해하고, 온통 겨자풀 밭으로 만드는 몹쓸 전파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정원, 풍요로운 결실을 바라는 밭과는 거리가 먼 식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누룩은 이미 고대로부터 독특한 은유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누룩을 뜻하는 영어단어 leaven에 대해 영한사전은 그 은유적 의미를 이렇게 말합니다. 감화?영향을 주는 것, 빚어내는 힘, 원동력, 기미, 기운.  Oxford English Dictionary가 그 은유적 의미에 대해 말하는 첫 예는 마태복음 13:33, 그리고 16:6입니다. 13:33은 오늘 읽은 본문과 거의 동일한 비유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가루 서 말 속에 살짝 섞어 넣으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16:6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누룩을 주의하고 경계하여라.” 앞의 비유와는 달리, 여기서 성서는 그 누룩의 의미가 무엇인지 친절하게 가르쳐 줍니다. 바로 그것은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기만적 가르침이라고 말입니다. 옥스퍼드 사전은 어떤 의미로 이 두 비유를 병렬시켜 놓은 것일까요?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서로 대조시키기 위함이었을까요? 흥미로운 것은 옥스퍼드 사전의 예들 중에서 19세기 이전의 예들은 거의 부정적인 함의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가 말하는 누룩의 비유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그 모든 부정적 의미를 뚫고 나오는 위대한 비유가 된다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누룩에 비유하는 예수의 이야기를 듣는 청중이야 말로 그 당시 보편적이었던  부정적 함의를 넘어 비유의 긍정적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위대한 해석가들이라도 되었다는 것인가요?

성서에만 보아도 누룩에 대한 언급들이 몇몇 있는데 이 비유를 제외하곤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애굽을 탈출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이스라엘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은 누룩 없는 빵으로 하나님께 제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유월절 때의 급박함이 누룩 넣어 제대로 만든 빵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을 전제하는 것이라고 해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누룩은 거룩하고, 순전한 하나님을 위한 제사에서는 터부시 되는 세속성, 타락, 그리고 불결함의 표상이었습니다. 호세아서에서 누룩은 전적인 부패의 상징이었고, 신약성서에서 경계해야 할 것으로 나오는 누룩 또한 하나님과는 거리가 먼, 더 나아가 하나님으로부터 떼어놓으려는 사악한 힘의 상징일 뿐입니다. 누룩은 절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표상으로 사용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룩이라는 은유는 쓰지 않지만, 우리가 그와 비슷하게 사용하는 부패했다, 썩었다, 냄새난다는 등의 단어들은 누룩이 가진 물리적 성격과 통하는 것 같습니다. 2천 년 전에 근동에서 ‘누룩’은 대개는 사회가 공동으로 추구하는 진리와 선의 가치평가에서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 부패하였다, 썩었다는 우리들의 표현 방식과 상응하는 상징단어였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일 지금 우리들에게 우리들의 단어로 말씀하신다면 이렇게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 일겁니다. ‘하나님나라는 부패함이다’, ‘하나님나라는 썩음이다’, ‘하나님나라는 냄새남이다.’ 영어 속담에 비추어 바꿔볼까요? ‘하나님나라는 하나의 썩은 사과와 같다. 하나의 썩은 사과를 큰 바구니에 살짝 넣으면 그 바구니 모든 사과가 썩게 되는 것과 같다.’

예수님이 2천 년 전 유대땅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이런 방식으로 말한다면, 여러분은 이 비유에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좀 더 자세히 이야기의 진행을 살펴보면 더 가관입니다. 도대체 위대한 희망의 표상인 ‘하나님나라’를 누룩에 비유해서 말한 것도 모자라서,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여자’이기까지 합니다. 여자는 하나님 앞에 정결한 존재가 아닙니다. 제사장은 절대 될 수 없고,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남자의 매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나라에서 무엇인가를 하는 자가 여자라는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빵을 만드는 행위는 여성이 행하는 가사에 속합니다. 그 당시 빵공장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고는 해도, 작은 시골 마을, 가족의 먹거리를 준비하는 빵 만드는 행위는 분명 여성이 책임져야 하는 극히 일상행위였을 겁니다. ‘서 말’이라는 단위가 조금 어색하긴 해도(뭐 그리 많이 만드는가?) 하나님의 나라가 여성의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와는 서로 연결되는 것은 무엇인가 맞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누룩은 그 여자에 의해 가루 속에 숨겨진다고 합니다. 여기서 쓰인 그리스어는 krypto(마태에서는 enkrypto)로, 일반적으로 쓰이는 kalypto와는 아주 다른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영어 encrypt의 어원을 이루는 것으로 무엇인가 남에게 감추어야 하는 암호와 같은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한 하나님나라는 숨겨지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능력으로 계시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누룩, 여인, 빵 만드는 행위, 그리고 감추는 행위 이 모든 것들은 그 당시 하나님나라를 표상할 수 있기는커녕 연결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로 보입니다.  

“하나님나라는 누룩과 같다.” 2천 년 전 예수의 말씀을 듣던 청중들에게 이 비유는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알게 하는 교감은커녕, 아마 놀라움과 충격과 그리고 당혹을 안겨다 주었을 겁니다. 도저히 연결시킬 수 없음, 이 때문에 이 비유야말로 예수가 실로 말한 비유였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하나님나라는 누룩과 같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A는 B다’ 라는 은유는 대개 A와 B 사이의 유사성을 근거로 합니다. B는 A와 무엇인가 유사한 속성을 가지고서 서술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서술관계를 근거로 이 비유를 이해하게 된다면 이 비유는 예수와 그 청중 사이에 있었던 생생함을 제거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그렇게 될 경우, 누룩의 비유는 별 설명이나 특징이 없이 그저 변화의 힘을 발휘하는 능력 정도로 이해될 뿐입니다.

하지만 2천 년 전 예수와 청중 사이의 생생한 언어로 이 비유를 구사하게 될 때, 이것은 단순히 유사성에 근거를 두는 앞에서와 같은 은유로 이해할 수 없는 치명적 결함을 드러내게 됩니다. 유사성은커녕 전혀 연관시킬 수 없는 것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병치은유(diaphor)라고 부르는데 그 은유의 목적은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종속적 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사고의 흐름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청중으로 하여금 낯설게 하고, 사고의 단절을 경험하여 전혀 다른 두 개념이 하나로 결합되는 새로운 상상세계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나라는 누룩과 같다” 라는 비유는 누룩을 통해 하나님나라의 한 속성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와 누룩의 결정적 차이를 인지하는 과정에서 상상력을 발휘하여 하나님나라와 누룩이라는 두 상징체계가 서로 영향을 끼치고 서로 변화하게 하고, 결국에는 결합하게 하는 선언이라 할 수 있게 됩니다.  

한 쪽에 거룩함, 선, 정결을 상징하는 하나님나라가 서 있다면, 다른 한 편에는 세속성, 악, 불결을 상징하는 누룩이 서 있습니다. 무엇이 잣대일까요? 거룩함이 잣대일까요, 아니면 세속성이 잣대가 될까요? 누구는 거룩하고 누구는 거룩하지 못하다고 누가 나눌 수 있을까요? 세계를 둘로 나누는 것, 그건 누구의 작품일까요? 하나님나라는 절대적으로 거룩하고, 누룩은 그 거룩성 앞에서 절대 설 수 없는 부패한 자들이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나라는 누룩과 같다.” 이 선언 앞에 선 청중들은 자신들의 자리가 어디라고 느낄까요?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의 삶에 사실 거룩성과 정결은 삶의 일차적 관심이 아닙니다. 아니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버겁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정결례를 치러야만 비로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들로 규정됩니다. 자의든 타의든 그들은 강도만난 유대인과 같이 그 땅의 지도자들에 의해 외면당하는 ‘불결한’ 자들로 규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주 단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나라를 꿈꿀 수 없는 누룩이라는 정체성을 덧입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는 누룩과 같다.” 예수의 이 선언 앞에서 청중들은 먼저 놀라움과 당혹을 경험하였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누룩과 같은 자들로 규정되어, 거룩하지도 정결하지도 못한 삶에 대해 끊임없이 부끄러워해야 했던 자신들의 모습이 그 선언 안에 들어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을 겁니다.

“하나님나라는 누룩과 같다.” 예수는 이 비유를 통해 신실함을 가장하여, 거룩과 세속, 선과 악, 정결과 부정을 나누는 배타적 이기주의의 무효를 선포합니다. ‘하나님나라는 누룩과 같다’ 이 선언은 끊임없이 이웃을 내치고 선 긋는 독실한 신앙심이라는 단단한 울타리의 폐기를 선포합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나라는 누룩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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