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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4단계

요한복음 강종수목사............... 조회 수 2549 추천 수 0 2007.07.29 17:3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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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6:63-71 
설교자 : 강종수 목사 
참고 : 사이버신학교 http://cafe.daum.net/st888 

신앙의 4단계(요6:63-71) 

 무엇에나 성장 과정이 있습니다. 정신적이지만 신앙도 영적으로 자라납니다. 생활 속에  훈련을 통하여 성숙해집니다. 교회 안에는 4단계의 신자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좋은 신앙의 차원을 따라 성장해야 할 것인데 어떤 신앙들이 있습니까?4 단계의 신앙이 있습니다. 4 종류라기 보다 성장 과정으로 볼 때 4단계의 신앙이라 볼 수 있습니다.

1. 위로 받는 신앙

엄격히 말해 이 신앙은 기독교 구원의 본질과 거리가 먼 신앙입니다. 그야말로 종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에 죄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무엇이나 구하는 대로 응답해주십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마5: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고 하시고, 또 하나님은 죄인들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인내의 하나님이십니다.

마 12:20-21『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하심대로 하나님은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때문에 아직 영생은 몰라도 세상에  처한 어려운 문제를 위해 기도하면 들어주십니다. 경제적인 위로, 건강문제, 가정문제, 직장문제, 세상에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저런 일로 기도할 때 간절하면 응답 받고 기적을 이룹니다. 문제는 이러한 신앙생활이 기독교의 본질적인 신앙이냐 하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본 장은 몇 가지의 기적과 긴 설교의 말씀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5병 2어의 기적(1-15), 예수께서 물위를 걸으심(16-21),그리고 긴 설교가 이어집니다.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남자 장정의 수효만 5천명을 먹이시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동네사람들은 예수께서  피하시는 곳을 우르르 몰려와서 주님을 붙들고 이스라엘의 희망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거절하시고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요 6:15『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그랬는데, 다음날 백성들이 5병 2어의 기적의 현장에 와보니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리 저리 찾다가 결국 바다 건너편에 주님이 계신 것을 알게 되어 몰려 왔던 것입니다. 대단한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찾는 중심이 세속적이었습니다.

요 6:25-26『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고 하시고,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라고 하시며 예수께서 영생을 주시는 분임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설교를 다 듣고 난 뒤 예수께 몰려왔던 사람들의 반응이 이렇습니다. 요6:60『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하나님의 말씀이 학문적으로 봐서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못 알아들을 만큼 말씀 전부가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마음 문을 열면 대체로다 깨달을 수 있습니다.

찾아온 무리들에게 주신 말씀은 신학적으로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늘로서 온 생명의 떡이 되시고 주님의 살과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한다는 요지의 말씀이었습니다. 영감적으로 조금만 귀를 열면 이 말씀은 주님의 우리를 위한 희생양이 되시고 우리는 주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군중들이 어렵게 들리는 것은 예수를 찾는 중심이 불순해서 그렇습니다. 세속적으로 소위 경제 대통령으로 삼으려고 하는 천박한 생각이 가득해서 주님의 귀한 생명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눅 18:34『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저희가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주님은 그래서 아시아 7교회를 향하여 항상 마지막으로 권하신 말씀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고 했습니다.

비유의 말씀이나 교훈을 하신 뒤에도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고 하셨습니다. 즉 영적인 귀를 열고 영적 말씀을 들으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여러 기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실 속에 하나님의 뜻을 내포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영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는 세속적인 생각만 가득하면 하나님의 뜻을 깨우칠 수 없습니다.
신8:3『...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6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이래서 우리는 교회 중에는 소위 종교인으로서 그와 같은 사람들처럼 영생과 생명에 관해서는  어둡고 세상에서 평안과 은총을 받겠다는 종교적 신앙인 이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적을 체험하고도 나중에 예수를 끝까지 믿는 자가 있는가 하면 떠나버린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런 자들은 소위종교인으로서 예수를 일반 교주로 알고 교회 와서 덕을 입겠다는 자들입니다.

2. 영적으로 구원을 얻는 신앙

기독교는 영육 간에 구원을 얻는 것이며 영생을 얻는 종교입니다. 돌아가신 백영희 목사님이 곧잘 표현하시던  소위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이 있는데 영적으로 구원을 얻는 일차적이고도 근본이 되는 영생 구원이 기본구원이고 건설구원은 성화구원으로 세상에서 승리하고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모든 이차적 구원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성령을 받아 중생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된 구원은 영생을 얻은 구원입니다. 이 영생을 얻은 것은 성경적으로  그리고 정통 신학자들의 통일된 관찰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노력하고는 무관한 하나님의 작정으로 되어진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엡2:8『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롬 8: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중요한 것은 구원만 받았지 세상 중에 아무런 기적의 체험도 은총에 대한 간증도 없으면 가장 낮은 신앙인이라 할 것입니다. 비천한 구원이란 없지만 게으른 신앙, 죽을 먹을 정도의 약한 신앙은 주님이 칭찬하시지 않습니다.


3. 세상을 이기며 사는 신앙

이 신앙은 영생 구원을 기초로 하여  세상을 믿음으로  이기는 신앙을 말합니다. 기적과 은총을 체험하면서 현실적으로 신앙의 행위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사람으로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사는 신앙입니다.

요 16:33『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고 하셨는데,
주님이 세상을 이기실 뿐아니라 주님을 믿는 자들도 이길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요일5:4『대저 하나님 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형식적 교인이 된다는  말이 아니고 말씀의 기적을 믿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구원은 받았으나 그 자리에서 머물고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성령의 강한 능력을 발휘하는 자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우리에게 주실 때 이 세상에 모든 것들도 함께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롬8: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교회의 전통성만 자랑하고 신앙의 현실적인 충성과 체험이 없는 것은 유대인들이 가졌던 민족적 종교적 긍지가 될 뿐이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며 오히려 외식이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행동이 나타나야 한다고 야고보는 믿음의 행위를 강조했던 것입니다.

성도가 세상을 이기는 것은 단지 세상보다  돈이 더 많아지고 건강해지고 명예로워지는 것만 아닙니다. 어려울 때나  넘치는 풍요 속에나 치우치지 않고 감당해 나가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승리자의 힘입니다.

빌 4:11『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내가 비 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을 어떤 이는 축복 받는 비결 책으로 오인하고 세상의 욕심을 채우고자 하는데 오용하게 하는 자도 있습니다. 13절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의 본래 의미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세상 어떤 형편에서도 다 감당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4. 내세의 상급을 바라보는 신앙

교회 와서 무슨 은혜를 체험하고 믿는다고 다니면 우리는  다 같은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신앙에는 차원이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믿는 사람, 구원만 받고  꼼짝 안 하는 사람, 혹은 충성과 봉사와 기적을 체험하는 사람이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세의  영원한 나라에서 얻을 상급을 위해 달려가는 신자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 갈 때 항상 높은 곳을 향하여 꿈꾸며 소망을 가집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단계에도 가장 최상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적 신앙, 사도적 신앙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사도들이 가졌던 기독교 원조인 초기 신앙을 닮겠다는 것은 좋은 말입니다. 그 내용에 있어서 사도들이 행한 신앙의 행적을 그대로 복사하겠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최근에 신사도적 신앙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신비주의와 이적주의로 잘못된 사상입니다.
이빨이 금이빨로 변한다고 선전하는 것이나 설교자의  마술 같은 짓으로 사람을 갑자기  쓰러지게 하는 행위들로 통해서 신비에 빠지게 하는 짓이 사도적 신앙이 아닙니다.

사도들의 신앙 중심을 따르는 것이 사도적 신앙입니다.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중심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오늘날 신자들이 생각하는 기적을 얻고 축복을 얻는 것들입니까? 아닙니다. 사도들은 주님께 모든 것을 올인하고 이 생명 다 바쳐 순교까지 감행한 신앙인들 이었습니다. 사도적 신앙이라는 말 함부로 할 소리가 결코 아닙니다.

예수께서 산 위에서 처음 설교하실 때 8가지 복에 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맨마지막에 주신 복은 하늘에 상급에 대한 말씀입니다.
마5:11-12『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주님 때문에 핍박을 받고 악한 말을 듣게 되고 고생하면 하늘에 상급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과거 선지자들도 그렇게 핍박을 받았다는 사실을 언급하시면서 주를 위해 이 세상에 받는 환난을 다음 세상 천국에서 상이 될 것을 바라는 신앙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사도들은 오늘 우리들이 이적주의로 잘못 오해하는 그런 신앙으로 세상을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적이 나타나든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든 오직 주만 위해 살았습니다.

행 20:24『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했으며
롬 8:18『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했습니다.
사도들은 삶의 철학이 땅에 있지 않았습니다. 내세에 두었습니다. 지상의 축복을 비는 오늘의 기복 신앙 자들과 달랐습니다.
고후 4:16『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축복 받지 못하면 저 세상에서도 상이 없는 줄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순교자가 얻은 것이 없는 것 같아도 내세에 상급이 가장 클 것입니다.
히 11:13『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예수님의 영생에 관한 설교를 듣다가  세상주의의 마음으로 찾아왔던 백성들은 다 떠나가고 예수의 제자들만 남았습니다. 그 때 주께서 물으셨습니다. 66-69『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
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베드로는  고백적 신앙자라고도 합니다. 베드로는 주는 나의 그리스도시라고 고백한 최초의 신앙 고백자 입니다(마16:16). 그리고 무슨 일에나 대표자격으로 잘 나섭니다. 넘어지기도 잘 하지만 결단도 잘 하는 사도였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라고  한 고백은 예사로운 발견이 아닙니다. 본래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라는 말은 메시아된 사람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메시아 역할을 위해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신자입니까?
밭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있듯이 성경은 교회에도 그런 종류가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는 어느 차원의 신앙자입니까? 혹시 구원만 받았지 아무런 충성이나 성령의 역사가 없는 자는 아닙니까?
기적을 체험하고 축복을 받았으나 내세를 위한 충성을 얼마나 하십니까? 세상의 자랑과 명예보다 하늘에 상급을 위해 노력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딤후 4:7-8『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빌 3: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주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면서 내세주의 신앙자로  최상의 신앙을 사모하면서 세상을 이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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