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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을 깨라

요한복음 복음............... 조회 수 3360 추천 수 0 2007.11.12 1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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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9:1-3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http://je333.com 
하와이는 태평양 한가운데 더운 곳에 있는 섬입니다. 그야말로 와이키키 해변을 비롯해서 얼마나 뜨거운 곳입니까? 그런데 상상을 해보세요. 그 하와이 한가운데서 누가 밍크코트 장사를 하겠다고 한다면 미쳤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어떤 사람이 엉뚱한(?) 생각을 하고 하와이 그 뜨거운 섬에서 가죽옷, 밍크코트를 내놓고 파는 가게를 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을 두고 정신나간 사람이라고 했지마는 그는 생각했습니다. 온 세계 사람이 많이 여기에 오는데, 그 중에는 추운 지방 사람들도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은 겨울에 여름옷을 준비하고, 여름에 겨울옷을 준비할 것이다. 이윽고 그 밍크코트 가게에는 점점 사람들이 몰렸고 마침내 이 사람은 많은 수입을 올려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보통사람은 생각치 못 할 일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봄으로 사업에 성공하게 된 것입니다. 고정관념을 깨야 창의력이 생기고, 새로운 세계가 보입니다.

신앙생활의 장애물들 가운데 하나는 고정관념일 것입니다. 예전부터 갖고 있던 인간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2천년전 이 땅에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도 사람들은 고정관념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동방박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학식이 풍부하고 인생의 경험도 많은 이들이 아기 예수를 만나기 위해 먼저 찾아간 곳은 헤롯왕의 궁전이었습니다.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라면 지위가 높고 권력도 강한 가문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왕궁을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으리으리한 왕궁에서 금 보자기에 싸여 태어나시지 않고 가장 허름한 마구간의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사람들의 그릇된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뜨리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소외당한 사람들도 누구나 예수님께 찾아올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한번은 또 사람들이 성장한 예수님께 찾아와 이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을 구원해줄 메시아라면 로마의 억압에서 해방시켜줄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물고기 배속에 들어갔다가 살아난 요나처럼 죽은 후 삼일만에 부활할 것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혹 이 말씀이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을 뜻한다는 것을 이해한 사람이 있었다면 다시 살아나는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눈이 휘둥그레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고정관념처럼 이적은 다시 살아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살아나기 위해 먼저 죽는 것도 엄청난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떻게든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려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의 죄를 지고 죽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성탄의 의미는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도 그 뒤를 따라 자신의 욕심과 고집을 버리는 훈련을 쌓아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은 그 전체가 날 때부터 눈 먼 사람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눈 먼 사람의 치유에 관해서는 두 절만을 할애한 반면 그에 관한 눈 뜬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그 고정관념에 대한 예수의 비판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표면상으로는 '이적이야기'이지만 실제로는 '논쟁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본문에는 '이 사람의 눈이 먼 이유는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라고 질문하는 당시 눈뜬 사람들의 고정 관념이 표출되어 있습니다. 불행한 사람을 앞에 두고 무슨 도움이 될 일이 없을 까를 고민하기는커녕 그를 논쟁거리로 삼으려는 냉혹함이 지적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고정 관념을 정면으로 거부하셨습니다.
"이 사람의 죄도 아니고 그 부모의 죄도 아니다. 오직 그를 통해 하나님의 일이 드러나게 하려는 것이다."(요9:3)
고정 관념에는 사회적 문화적 지역적인 것 등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고정 관념의 여파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특히 일부 독일인들의 고정관념은 자그만치 육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살상하는 비극을 빚을 정도였습니다.
이때 히틀러를 도와준 사람들 가운데는 철학자 변호사 의사 등 지식인이 다수 끼어 있었고 비텐베르크 신학대학 학장을 비롯한 일부 목회자들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나치스신학을 표방하고 나치주의에 입각한 교회론, 기독론, 기독교 윤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또 유대인들의 책이라는 이유로 구약성서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독일의 작곡가 바하와 베토벤과 브라암스의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괴테와 피히테, 쉴러의 시를 읽은 독일인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유대인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할 수 있는 강심장으로 돌변하게 됐을까요? 그것이 바로 잘못된 고정관념이 가져온 엄청난 결과인 것입니다. 당시 집단 수용소의 처형된 곳에서 예후다 랑후수라는 유대인이 죽기 전에 숨겨둔 쪽지가 최근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그 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번에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람은 백 칠십 명이다. 그들은 모두 발가벗으라는 명령을 받았고 다섯 살 난 여자 어린이가 살인자의 명령에 따라 영문도 모르는 한 살 된 자기 동생을 발가벗겼다."
고정관념은 이와 같이 무서운 파급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온 몸을 던져 행동하셨습니다. 특히 요한복음 9장 39절에는 "내가 심판하러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들은 눈 먼 사람들이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보는 사람과 보지 못하는 사람은 단순히 시각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과 그것에서 벗어난 사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지금 우는 사람이 복이 있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요 배부를 것이고 웃을 것이며 대조적으로 지금 부요한 사람, 지금 배부른 사람, 지금 웃는 사람은 그 반대가 되리라는 선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고정관념에 무의식적으로 굴복하고 있습니다. 여간 맑은 정신이 아니고서는 거기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사람과 사물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할 줄 알아야만 합니다.

유명한 농구선수였던 행크 루이세티가 처음 등장했을 무렵 모든 농구 코치들은 두 손으로 하는 슛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루이세티는 주의 반대를 무릎 쓰고 한 손으로 하는 슛 동작을 개발하여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인간은 지식의 세계를 통하여 사물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인간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나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주시는 비전을 품는 신앙이 곧 개혁하는 신앙입니다.
어느 날 조각가 로댕이 청년들과 함께 산에 올랐다가 길을 가로막고 있는 큰 바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청년들은 길을 가로막고 있는 바위에 귀찮은 눈길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로댕에게는 이 화강암이 ‘인생을 고민하는 젊은이’로 보였고 그 화강암을 갈고 닦아 바로 그 유명한 명작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보고 있는 것만이 전부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프로라면 이러한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 23:7) 이 말씀은 그 사람의 생각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불가능하다는 고정관념 속에 사로 잡혀 있지는 않습니까?

미 해병대 체스티 풀러 장군은 아군이 적군에게 완전히 포위돼 고립됐다는 보고를 받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포위됐다. 덕분에 문제는 간단하다! 이제 우리는 모든 방향으로 공격할 수 있다!” 불리하고 부정적인 상황이지만 그 환경을 다르게 해석하는 능력이 도전을 줍니다. 보통사람은 물이 끓는 주전자를 무관심하게 바라봅니다. 그러나 와트는 거기에서 증기기관차를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번개를 보고 무서워 몸을 떨지만 프랭클린은 그곳에서 어둠을 밝힐 전기를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쥐를 징그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리해고 당한 월트 디즈니는 창고에서 잠을 자다 쥐들이 노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고 평화와 자유의 상징인 ‘미키 마우스’를 탄생시켰습니다. 이처럼 보통의 사물이나 환경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프로의 기본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약점이나 자신의 질병을 부끄러워하고 그것 때문에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고정관념은 고장난 생각이며 진정한 프로는 고정관념을 극복한 사람입니다.
달구지의 바퀴는 맨 처음 나무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너무 쉽게 닳았습니다. 그래서 쇠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쿠션이 없어서 엉덩이가 너무 아펐습니다. 그래서 쇠바퀴가 굴러가는 길바닥에 고무를 깔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너무 편하고 좋았습니다. 문제는 그 넓고 긴 길바닥에 고무를 까는 일이 문제였습니다. 너무 많은 비용과 노동력이 소모되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길바닥하고 바퀴를 서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에이, 그건 말도 안 돼. 단단한 쇠 바퀴도 차의 무게를 견디기 힘든데, 고무는 무거운 것을 올려놓기에는 너무 물렁물렁해서 적합하지 않아. 그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야"
그러나 이 사람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고무 속에 바람을 넣은 타이어를 개발해냈습니다. 순식간에 고무 길바닥과 쇠바퀴가 바뀐 것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바라보는 저 딱딱한 길바닥과 고무타이어는 그런 사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불가능하게 생각되는 일이 무엇입니까? 생각을 돌이켜 한번 바꿔서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은 보통 상식을 벗어난 일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 쉽기 때문에 새로운 일이나 새로운 꿈에 도전하는 것을 망설이고 쉽게 포기합니다. 전화, 비행기, 잠수함 등 모두 지금은 당연한 상식으로 통하고 이용하고 있지만 처음 그 일을 생각하고 그것을 시험할 때는 정신병자로 취급당하여 정신병원에 실려간 일도 있다 하니 상식을 뛰어넘는 꿈을 갖고 그 일을 실제로 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문화나 인류의 발전은 그런 꿈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남도 못했는데 내가 어떻게 해..., 많은 사람들이 꿈조차 꾸지 않는 일을 내가 어떻게 해..." 하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이라도 걸어가는 용기를 내십시오. 첫 걸음을 내딛고 나면 얼마나 많은 가능성과 넓은 세계가 펼쳐져 있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변화를 가로막는 고정관념의 말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얼마나 가나 봐라”(불신주의),“전에 안 해본지 아나?”(경험제일),“우리 회사가 하는 일이 별 수 있겠어?” (부정적 사고), “빨리 크는 놈이 일찍 나간다” (뒷다리 잡기),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마라” (복지부동), “또 바뀔 텐데, 뭘” (비관주의), “그래, 너는 잘 될 것 같으냐?” (물귀신 작전) “너나 잘해” (냉소주의), “중간만 가면 돼” (평균주의), “이럴 땐 납작 엎드려 있으면 돼” (복지안동), “줄 잘 잡아야 해” (정실주의),“시간이 약이라니까”(세월이 약), 언젠가는 잘될 거야(막연한 기대)“그거 우리 부서일 맞아? (책임전가), “하라면 해”(지시 일변도), “구관이 명관이다” (과거 회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지나친 보수주의), “문서로 보고해”(문서 만능주의), “어떻게 하겠어. XX지시 사항인데...” (지시의 설사), “감히 누구 말씀인데...” (관료주의, 성역의 존재), “규정에 있나?”(규정탓), “윗 대가리가 바뀌어야지...” (상사 탓), “직원들은 우수한데 회사 때문에 안돼”(회사 탓), “사업계획에 있나?”(경직된 사고), “대충해” (적당주의), “당신이 부장이야” (임파워먼트 부재) 등입니다.

유다가 북쪽의 강대국 바벨론의 위협을 받고 있을 때, 유다의 모든 정치가들은 남쪽의 애굽에 단단히 붙어서 애굽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모두가 이런 고정관념을 갖고 있을 때 유독 예레미야 선지자만은 이 고정관념에서 매어 있지 않았습니다.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고 애굽을 계속 의지했습니다. 그 결과, 유다를 위해 주님이 능력을 행치 않으셨고 ...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당하였습니다.
또 우리가 깨뜨려야 할 고정관념으로는 "내가 해야만 한다"는 생각입니다. "내가 돌봐주지 않으면 저 아이는 안 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아이에게 과잉보호를 하여 아이의 성장을 방해하는 부모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 아이는 내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키워주신다"는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이 아이 위하여 능력을 행사하십니다.

미국 갈보리교회 목사님이 목회를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부흥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유를 가지고 낚시하러 다니니 교회가 부흥되었다고 합니다.
"내가 열심히 해서 교회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릴 때 주님이 능력을 행사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하였습니다(시127).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열심히 노력해서 집을 세우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정관념을 깨드려야 합니다. 내가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합니다. 우리가 깨뜨려야 할 또 다른 고정관념으로는 영남 사람들과 호남 사람들 사이의 지역 감정, 북한에 대한 불신감, 적대감, 미인박명(美人薄命), 여자는 남자에 비해 열등하다는 고정관념 등입니다.
요즘 어느 때보다도 국론이 분열돼 있습니다. 단일민족임을 자랑하는 우리였는데 중요한 문제들을 놓고 요즘처럼 의견이 분분할 때는 없었다고 한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차이점을 슬기롭게 극복하면 오히려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고넬료와 베드로는 신분상으로나 학식면에서나 전혀 섞일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베드로를 통해 변하고 베드로도 고넬료를 통해 변하는 모습을 성경에서 봅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고 로마 군인으로 정복자의 신분을 가지고 유대 땅에 와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찾고 있지만 복음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유대인이고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된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 세계를 향한 시선에는 민감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에 여전히 얽매여 있어서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내려줄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는 고넬료를 보시고 베드로라는 사람이 있으니 베드로를 청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를 들으시고 축복하사 무엇을 주었습니까? 더 많은 물질의 축복이 아니고 구원 얻을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고넬료에게는 베드로가 필요했습니다. 고넬료는 유대 땅에서 임기를 마치고 로마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로마교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였을 것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로마 군대에서도 영향력을 미치면서 살아가는 평신도 사역자가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고넬료에게 예수님을 모르는 것이 한계였듯이 베드로에게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 한계로는 세계 복음화를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의 한계가 무엇입니까?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이 위법이라는 사고입니다. 수백년 동안 내려온 가르침이니까 베드로에게도 그것은 고정관념이 되었을 것입니다. 바로 고넬료를 만나 이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 복음의 세계화가 활짝 열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 같지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므로 하나님을 제한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우리의 한계를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립시다.
박해자 사울이 전도자 바울로 변화되었지만, 예루살렘 교회의 제자들은 바울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존경받는 인물 바나바가 바울을 잘 소개시켜 주자 그들은 바울을 받아주었습니다. 바울은 박해자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바울을 받을 때, 그 결과로 초대교회에는 주님의 능력이 역사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9:31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주님은 믿음이 있는 곳에서 능력을 행사하십니다. 그런데 성경 마태복음 13장 58절에 보면 고향 나사렛에서는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그 동네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까요?
나다나엘이라는 사람은, 예수가 메시야라고 소개받았을 때 말하기를, " ...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하였습니다(요1:46). 이렇듯, 나사렛 사람들은 '나사렛 출신은 별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 ...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마 13장 54절)
" ...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아무개 아무개 아니냐 ... 그런 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마태복음 13장 55- 56절)
이 성경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나사렛 사람들의 고정관념은 '나사렛에서는 인물이 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나사렛 동네에서는 인물이 날 수 없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었습니다. 고정관념은 믿음의 적입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리기 전에 다윗은 고정관념 둘을 깨뜨렸습니다. 1) 어리니 이길 수 없다는 고정관념입니다. 2) 싸우려면 남들 다 하는 대로 갑옷을 입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입니다. 이 고정관념들을 깨뜨리고 주님을 모시고 골리앗 앞에 나가 싸웠습니다. 우리도 고정관념을 버립시다. 그리고 주님을 영접합시다.
"주님, 내게 오시옵소서. 나와 함께 하시옵소서." 그러면 주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능력을 행사하십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고정관념 때문에 주님을 영접치 않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영접하기 위하여 고정관념을 하나 하나 내버립시다. 심령을 가난하게 마음을 청결하게 합시다. 그러면 주님이 내게 오시고 나를 위하여 능력을 행사하십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고정관념을 배척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였습니다. 나도 나의 고정관념에 붙잡혀 예수님을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우리의 소망이요 생명이요 진리가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진리이신 주님, 우리가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진리를 발견하고 진리가운데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편견과 헛된 생각으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뜻과 사랑을 오해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교회 안에도 잘못된 전통이나 관습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주의 진리를 볼 수 없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분별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태릉고등학교 교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지팡이

우리는 지팡이에 대해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약한 사람이나 노인이 짚고 다니는 것 쯤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지팡이는 다릅니다. 엘리사의 권능의 지팡이, 다윗의 양치던 지팡이, 모세의 권능의 지팡이 등은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 비록 지팡이는 죽은 나무에 불과 하지만 하나님이 사용하면 홍해를 가르고 바위에서 샘물을 솟게 하고 살구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지팡이가 됩니다. 좋은 지팡이가 되려면
첫째, 나무에서 잘라져야 합니다. 옛 생각 옛 버릇을 죽여야 합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난 아브라함처럼 그물과 배를 버렸던 베드로처럼 육에 속한 옛 것을 버려야 합니다."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 르 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 좋은 지팡이가 되려면 잘 다듬어져야 합니다.(갈5:19-21) 우리 속의 가시와 육체의 정욕을 제어(벧전2;11)하고 잔가지를 완전히 잘라 버려야 합니다. 시기 질투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셋째, 껍데기가 벗겨져야 합니다. 마가복음 10장 46절에 보면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주님의 부르심에 겉옷을 벗어 버리고 주님께 뛰어 갔습니다. 위선 불순종 나의 속 사람을 감싸고 있는 이런 것을 벗겨 버려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이 쓰시기에 적합한 지팡이가 되도록 노력하여 구원의 도구로 쓰임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2. 묵상 및 토의

0 나에게는 잘못된 고정관념은 없습니까?
0 우리가 버리고 깨뜨려야 할 고정관념은 무엇입니까?
0 혹시라도 나 자신의 판단이나 세상의 영향을 받은 주장들이 성경의 진리를 잠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포스베리 엉덩방아

“포스베리 엉덩방아”란 스포츠 용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높이뛰기를 정면으로 뛰지 않고(가위뛰기:正面跳라 함) 역U자 모양으로 높이뛰어(이것을 포스베리플릅:背面跳라 함) 떨어질 때 한 바퀴 돌아서 엉덩방아를 찧는 것을 가르킵니다.
포스베리플럽은 미국의 D.포스베리가 고안해 낸 도약방법입니다. 포스벨리 당시에는 높이뛰기의 기록은 1m 98cm이었고 2m는 인간이 더 이상 뛰어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인정되고 있었습지다. 포즈베리 역시 이 벽을 뛰어 넘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다이빙의 재주넘기 장면을 보다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지금까지 하던 ‘앞으로 넘지 말고 뛰로 넘자’는 그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험해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2m의 벽을 쉽게 뛰어 넘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 방식을 이용하여 1968년 멕시코 올림픽대회 높이뛰기에서 금메달을 차지했고 그의 도약방법인 포스베리플릅은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높이뛰기 방식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3m의 높이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우리는 너무나 자주 우리를 가로막는 벽을 경험합니다. 우리의 사고를 바꾸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면으로도, 뒤로도 뛰어넘지 못하는 많은 벽들 앞에서 우리는 좌절하게 될 때면 하늘을 우러러 봅시다. 거기로부터 우리의 도움이 오기 때문입니다. “너희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예화(2): 전도의 잘못된 고정관념

흔히 전도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영혼을 구원하는 것’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놀랍게도 이 고정관념 때문에 거의 모든 성도가 전도공포증 전도기피증 전도노이로제에 걸려 항상 기뻐해야 할 신앙생활을 누리지 못한 채 전도 못하는 죄책감에 짓눌려 불행하게 살고 있다. 이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전도는 믿지 아니하는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여 등록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문제는 쉽게 풀립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믿음이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진실과 사랑으로 감동을 주어 비신자의 마음을 녹여서 스스로 교회에 찾아오게 하는 전도가 구원의 첫 단계라면 예배설교 성경공부 기도훈련 등을 통하여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구원의 2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고정관념을 버리고 올바른 전도개념만 갖게 되면 어렵게 여겨졌던 전도가 쉽고 신바람나는 일로 확 변할 것입니다.

* 예화(3): 경배받는 성공의 수단들

현대인들이 내세우는 성공 제1법칙은"할 수 있다고 믿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인간을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며 성공을 지배하는 신으로 본다. 또한 성공의 조건을 갖추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성공을 가져오는 그 모든 수단들을 신성시한다. 쟈크 엘룰은 "물질적인 힘을 키우는 수단들만이 의기양양하게 고조되고 있으며, 이 논리가 모든 영역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신념이지 신앙이 아니다. 오히려 신앙에 의해 정복되어야 할 장애물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성공의 제1법칙은 "내가 무엇을 하면 성공을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공의 수단들에만 집착하고 우상시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공의 출발점을 수단과 관계 없이 하나님과 관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성공은 하나님의 인격적인 영역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 동안 수단에 의해 지배되어온 성공 논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회복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더 이상 그리스도인은 성공이 세상적인 수단에 의해 결정된다는 파렴치한 무신론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성공의 주체는 오직 하나님이시다. 수단을 신성시하 거나 절대시하고 수단을 키우는 데 영적인 힘을 사용하는 것은 가장 무서운 범죄 행위이다.

* 예화(4): 고정관념

비가 오면 우산을 쓴다. 어느 국민이나 다 그렇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프랑스에 가본 사람은 안다. 비나 눈이 올 때 우산을 쓰지 않고 걸어다니는 사람이 많다. 왜 그럴까. 프랑스인들은 어렸을 때 유치원에서 그렇게 교육을 받았다. 어린이가 우산을 쓰고 걸으면 앞이 가려져 위험하다는 것이다. 손이 자유롭지 못해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우산을 안 쓰고 우비나 레인코트를 입도록 교육받는다.
고정관념은 우리들의 생각과 안목을 좁게 만든다. 고정관념을 깨뜨리면 세상이 훨씬 넓게 보인다. 생각을 바꾸면 사물이 훨씬 크게 보인다.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존재다. 그러므로 사고의 폭도 넓어야 한다.

* 예화(5): 깨트려 버릴 사고

중국 북송(北宋)의 정치가 사마광이 어렸을 때 동네에서 큰 일이 생겼다. 어린 아이 하나가 물이 가득 찬 아주 커다란 독에 빠졌다. 아이가 어떻게 올라갔는지 독 위에 올라가 물에 빠져 거의 죽게 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아이구 어쩌나. 아이가 죽네, 큰일 났네!"하면서 야단법석일 때 아이는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때 소년 사마광이 큰 돌멩이 하나를 가져다가 항아리 밑부분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항아리가 깨지면서 물이 터져나왔다. "와아!" 하고 동네 사람들이 놀라는 사이에 독의 물은 다 빠지고 아이는 깨어났다.
모인 많은 사람들 중에 독을 깰 생각을 한 사람은 사마광 한 사람뿐이었다. '독을 깨뜨릴 수는 없다'는 사고의 틀을 깼을 때 죽어가는 생명을 살린 것이다. 우리가 깨뜨릴 사고의 틀은 없는가. 우리가 깨뜨리기만 하면 살아날 생명들은 무수히 많다.

4. 찬송: (197장) 이 세상 험하고

1.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늘 기도 힘쓰면 큰 권능 얻겠네
2. 주님의 권능은 한없이 크오니 돌같은 내 마음 곧 녹여주소서
3. 내 맘이 약하여 늘 넘어지오니 주 예수 힘주사 굳세게 하소서
4. 죄 사함 받은 후 새사람 되어서 주 앞에 서는날 늘 찬송하겠네

[후렴]
주의 은혜로 대속하여서 피와같이 붉은 죄 눈같이 희겠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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