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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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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황재홍 형제 |
참고 : | 새길교회 |
"네 가지 주제의 평화 이야기" [요한복음서 14:27]
셋째 이야기, "민중 연대에 기반한 평화운동" - 황재홍 형제
지금 세계는 북핵문제와 이라크문제 등으로 평화에 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세계의 경제, 특히 한국경제는 북미간의 관계에 좌우될 듯 싶습니다. 이라크전 이후로는 테러의 위험이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전쟁의 위협에 노출시켜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곳곳에서 평화행진이다, 심포지엄이다 해서 평화에 관한 많은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이 세계안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이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들어와 어떻게 보면 식상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저는 정책을 세우는 위정자들을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위정자들이 해왔던 작업이지만 항상 도루묵이 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디에서 길을 찾을 수 있을까요?
미국은 결코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는 국가가 아니라 국가 이기주의에 병들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미국이 행했던 수많은 배신행위와, 침략행위를 보면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미국 없이는 살 수 없는 한국과 한국 기독교에서 특별히 가져야 할 인식이라고 봅니다. 마치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준다며 'I love America'만을 부르짖는 그런 행위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에 대한 막연한 적대감을 가져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인식은 다르게 표현하면 미국, 남한, 북한, 이라크 등 모든 국가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제협약 같은 것도 모든 국가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적용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강대국을 위한 국제협약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이 됩니다. NPT는 강대국의 핵은 인정하면서 다른 약소국의 핵은 인정할 수 없다는 아주 불공정한 협약입니다. 그리고 북미간의 제네바협약에서 미국은 북한과의 약속을 제대로 지킨 것이 하나도 없지만 도리어 협약파기에 대한 책임을 북한에게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권력에 굴복하는 많은 국가들은 미국의 입장에 서고 있습니다. 이제는 UN마저도 자의든 타의든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평화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생명과 인권, 생존권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세계 각국이 평화정책을 세운다 하더라도, 약자들의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을 때는 이미 평화를 깨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 가장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어떻게 보면 김정일과 부시의 세력 싸움이 북한의 민중에게는 어떤 희망을 줄 것인가라고 생각할 때 비관적입니다. 그들에게는 사치일 뿐입니다. 북한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힘든 민중이 즐비합니다. 그들에게 먼저 그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생명이 가장 귀하기 때문입니다. 북한도 자기들의 인민을 먼저 살릴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 방안을 위해서 위정자들의 자존심도 버려야 합니다. 한국도 마찬가지며 미국과 이라크 위정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느릴지는 몰라도 민중의 생명부터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종교인은 여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미국 대통령과 각국의 수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평화정책이 아닌 밑으로부터의 운동이 필요합니다. 그 운동은 미미하나마 이미 시작되었고, 이제는 좀더 본격적인 민중운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권력이라는 것은 평화를 바라기보다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거짓말도, 그리고 희생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한국의 권력자는 자신의 권력을 미국에 송두리째 바쳐버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잘못했다라기 보다는 이것이 권력의 특징입니다. 더 강한 곳, 기득권이 있는 곳을 향하여 움직이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민중은 권력에 굴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수장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됩니다. 얼마 전 한총련 학생들이 스트라이커 부대의 훈련장에 들어가 시위를 했을 때나, 촛불시위를 통해서 볼 때 미국은 한국의 대통령보다 한국의 민중을 더 무서워한다는 확신을 받았습니다. 도리어 한국 정부에 그들을 막아달라고 난리를 치고, 한국의 위정자들은 허리를 굽신거리는 것을 보면서 민중운동의 가능성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민중 운동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약자의 입장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약자의 입장에 서는 것은 성서의 정신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은 약자를 다시 세움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안보 정책들은 그 국가의 약자들은 항상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항상 안보정책의 실패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중 운동은 권력지향적이지 않습니다. 생존권의 문제는 권력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민중운동은 연대가 가능합니다.
저는 남북한의 평화, 세계평화의 대안은 밑으로부터의 평화운동, 세계민중의 연대에서 그 가능성을 봅니다. 민족주의적인 민중운동이 아닌 연대운동이 필요할 때입니다. 민노당의 권영길 대표가 미국에 다녀왔는데, 이라크전쟁 이후 죽어있던 미국의 진보운동, 대학생 운동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고 하더군요, 얼마만큼 믿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운동그룹들과 한국의 민중운동그룹이 만나야 하며, 북한 민중과 이라크 민중,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민중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때에서야 세계평화운동의 시작을 볼 수가 있습니다 *
셋째 이야기, "민중 연대에 기반한 평화운동" - 황재홍 형제
지금 세계는 북핵문제와 이라크문제 등으로 평화에 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세계의 경제, 특히 한국경제는 북미간의 관계에 좌우될 듯 싶습니다. 이라크전 이후로는 테러의 위험이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전쟁의 위협에 노출시켜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곳곳에서 평화행진이다, 심포지엄이다 해서 평화에 관한 많은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이 세계안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이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들어와 어떻게 보면 식상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저는 정책을 세우는 위정자들을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위정자들이 해왔던 작업이지만 항상 도루묵이 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디에서 길을 찾을 수 있을까요?
미국은 결코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는 국가가 아니라 국가 이기주의에 병들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미국이 행했던 수많은 배신행위와, 침략행위를 보면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미국 없이는 살 수 없는 한국과 한국 기독교에서 특별히 가져야 할 인식이라고 봅니다. 마치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준다며 'I love America'만을 부르짖는 그런 행위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에 대한 막연한 적대감을 가져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인식은 다르게 표현하면 미국, 남한, 북한, 이라크 등 모든 국가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제협약 같은 것도 모든 국가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적용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강대국을 위한 국제협약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이 됩니다. NPT는 강대국의 핵은 인정하면서 다른 약소국의 핵은 인정할 수 없다는 아주 불공정한 협약입니다. 그리고 북미간의 제네바협약에서 미국은 북한과의 약속을 제대로 지킨 것이 하나도 없지만 도리어 협약파기에 대한 책임을 북한에게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권력에 굴복하는 많은 국가들은 미국의 입장에 서고 있습니다. 이제는 UN마저도 자의든 타의든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평화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생명과 인권, 생존권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세계 각국이 평화정책을 세운다 하더라도, 약자들의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을 때는 이미 평화를 깨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 가장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어떻게 보면 김정일과 부시의 세력 싸움이 북한의 민중에게는 어떤 희망을 줄 것인가라고 생각할 때 비관적입니다. 그들에게는 사치일 뿐입니다. 북한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힘든 민중이 즐비합니다. 그들에게 먼저 그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생명이 가장 귀하기 때문입니다. 북한도 자기들의 인민을 먼저 살릴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 방안을 위해서 위정자들의 자존심도 버려야 합니다. 한국도 마찬가지며 미국과 이라크 위정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느릴지는 몰라도 민중의 생명부터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종교인은 여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미국 대통령과 각국의 수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평화정책이 아닌 밑으로부터의 운동이 필요합니다. 그 운동은 미미하나마 이미 시작되었고, 이제는 좀더 본격적인 민중운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권력이라는 것은 평화를 바라기보다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거짓말도, 그리고 희생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한국의 권력자는 자신의 권력을 미국에 송두리째 바쳐버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잘못했다라기 보다는 이것이 권력의 특징입니다. 더 강한 곳, 기득권이 있는 곳을 향하여 움직이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민중은 권력에 굴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수장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됩니다. 얼마 전 한총련 학생들이 스트라이커 부대의 훈련장에 들어가 시위를 했을 때나, 촛불시위를 통해서 볼 때 미국은 한국의 대통령보다 한국의 민중을 더 무서워한다는 확신을 받았습니다. 도리어 한국 정부에 그들을 막아달라고 난리를 치고, 한국의 위정자들은 허리를 굽신거리는 것을 보면서 민중운동의 가능성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민중 운동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약자의 입장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약자의 입장에 서는 것은 성서의 정신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은 약자를 다시 세움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안보 정책들은 그 국가의 약자들은 항상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항상 안보정책의 실패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중 운동은 권력지향적이지 않습니다. 생존권의 문제는 권력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민중운동은 연대가 가능합니다.
저는 남북한의 평화, 세계평화의 대안은 밑으로부터의 평화운동, 세계민중의 연대에서 그 가능성을 봅니다. 민족주의적인 민중운동이 아닌 연대운동이 필요할 때입니다. 민노당의 권영길 대표가 미국에 다녀왔는데, 이라크전쟁 이후 죽어있던 미국의 진보운동, 대학생 운동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고 하더군요, 얼마만큼 믿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운동그룹들과 한국의 민중운동그룹이 만나야 하며, 북한 민중과 이라크 민중,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민중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때에서야 세계평화운동의 시작을 볼 수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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