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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건① : 물동이를 버린 사마리아 여인

요한복음 한완상............... 조회 수 4038 추천 수 0 2007.12.17 0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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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4:7-30 
설교자 : 한완상 형제 
참고 : 새길교회 
예수사건은 무진장의 진리를 담고 있는 말씀의 광맥입니다. 캐어갈수록 더 진귀한 진리가 캐어지는 놀라움을 갖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도 풍부한 은사를 우리들에게 전달해 줍니다. 예수사건은 사건이기에 거기에는 파격성과 이례성(異例性)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도 그러합니다. 여러분을 오늘 예수사건으로 초대합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지역으로 가신 것 자체가 사건이었습니다. 왜 사건입니까? 유대인들에게는 이 땅이 불결한 땅, 금기(禁忌)의 땅이었습니다. 400년간 인종분규가 있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이방인들보다 더 더러운 잡종, 혼혈인이라고 유대인들에 의해 차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 간의 인종분규는 예수님 당시에도 첨예했습니다. 거기다가 두 지역 간의 갈등은 종교적 갈등이기도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대 게리심산 성전 간의 종교적 분쟁이기에 그것도 심각했습니다. 세상에서 종교분규가 가장 풀기 어려운 분규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곳에 가신 파격적 행위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구하러 사마리아 마을로 보냈으니 이것 역시 반관례적(反慣例的)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뿐입니까? 제자들을 마을로 보내 놓고서 예수님은 홀로 사마리아인을 만났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금지된 일입니다. 게다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습니다. 유대인 남자도 같은 유대인 여성을 공공장소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당시 관례로 비추어 보면,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을 공공장소인 우물가에서 만나 대화했다는 것은 분명 요즈음 식으로 말하자면 스켄달을 캐는 주간잡지의 표지 스토리가 될 놀랄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도 여섯명의 남자와 성관계를 맺었던 부정한 사마리아 여성과 얘기했다는 것은 빅 뉴스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같은 예수사건에서 우리는 깊고 오묘한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그 가운데서 오늘 저는 예수의 교육방법, 보다 깊고 높은 차원으로 대화 상대자를 끌고 가시는 예수의 대화법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학생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도록 인도하시는 위대한 교사 예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암기식, 주입교육에 찌든 우리의 교육 현실을 보면서, 스승 없는 삭막한 우리의 학교현실을 보면서 감동적인 교육자,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는 방법(heuristic method)을 사용하시는 교사 예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러면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 간의 대화 과정과 대화 주제를 따라가 봅시다.
첫째 단계에서 먼저 목이 말랐던 피곤한 인간 예수를 만나봅시다. 그는 참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참 인간이십니다. 사람이기에 목이 말랐습니다. 그래서 우물로 물을 길으려고 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 좀 달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이 같은 말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말입니다. 갈증을 축이려는 인간 기본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모험을 해야 했습니다. 이례적(異例的)이고 파격적인 행위를 해야 했습니다. 온갖 비방을 들을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사마리아인과 빵을 함께 먹는 것도 종교적으로 불결한 행위로 인식되었고, 사마리아인이 눕고, 앉고, 타는 것은 모두 불결하다고 믿었습니다. 재수 옴 옮는다는 뜻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청했습니다.
여인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그녀는 당시 관례에 충실했습니다. "어떻게 감히 유대 남자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거는가?"라는 식으로 대응했지요. 아주 아니꼽고 치사한 행위로 보았습니다. 일본의 옴 진리교 신도가 일본경찰을 미워하듯, 그 여인은 유대남자 예수를 미워하며 냉소적으로 대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개의하지 않으시고 진리 찾기 대화에 나섰습니다.
둘째 단계에서 예수님은 생수와 영생 수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유대인이냐 사마리아인이냐, 남자냐 여자냐 하는 차원의 문제는 아예 무시하시고 한 차원 높은 생수(生水)문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고인 물인 샘물과 흐르는 물, 솟아오르는 물인 생수 간의 차이를 식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물은 고인 물(well)이 아니라 움직이고 흐르고 솟아오르는 살아 있는 물(spring)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생수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사요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저 나누어주는 선물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 여인은 여전히 예수님의 생수와 영생 수에 대한 에 대해 무관심했습니다. 예수님을 계속 우습게 보고 냉소적으로 대했습니다. 도대체 물을 떠올릴 두레박도 갖고 있지 않은 주제에 무슨 흐르는 생수를 주겠다고 흰소리를 하느냐 식의 반응이지요. 웃긴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자기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했습니다. 마치 빌라도가 진리 자체인 예수님을 자기 눈앞에 두고 진리가 무엇인가 물었던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이 여인은 예수가 두레박 같은 도구를 갖고 있지 않은 사실에만 주목한 나머지 예수 속에 흐르는 생수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영생의 물을 주목하지 못했습니다. 예수의 빈털터리 모습만 보았지 예수가 곧 생명수요 메시아임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여인은 눈을 뜬 장님이었습니다.
오늘 한국교인들도 교회의 시설, 장비, 건축, 살림도구, 내부장치, 재산 등은 자랑하고 주목하지만, 교회 자체가 예수의 몸이요 예수의 마음이요 영임을 보지 못하고 있지나 않은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인들 중에 아직도 사마리아 여인의 신앙 수준에 머물러 있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게다가 주님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주겠다고 한 예수님 말씀을 듣고, 여인은 자기 삶의 편리함만을 생각했습니다. 물을 길으러 우물까지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 나오는 이유가 이 여인처럼 세속적 삶의 편리함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라면, 아직도 이 여인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한심한 수준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서 우리 주님은 일종의 충격적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느닷없이 여인의 남편을 데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꾸었던 바람둥이 이혼녀의 남자 편력을 언급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여인에게 수치심, 죄의식을 주기 위해서일까요? 결코 아닐 것입니다. Temple씨는 하나님의 선물인 생수는 그것이 값없이 주는 선물이기에 반드시 남들과 함께 나누어 가져야 함으로, 지금 남편은 아니지만 동거생활을 하는 남자를 데려오라고 했다고 해석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더 중요한 까닭은 이 한심한 여인, 깨닫기를 더디 하는 이 여인으로 하여금 더 높은 차원의 대화에로 끌어올리기 위해 짐짓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바로 이점이 복채를 받는 세상 점쟁이, 영매 만신들과 다른 점입니다.
이 때 여인은 마음의 문을 조금 열어 솔직해 집니다. 지금 동거하는 남자는 남편이 아니라 정부임을 시인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예언자로 보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눈에 끼인 세속적 비늘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즉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간의 종교 분쟁을 제기하면서 어느 곳이 예배장소로 적합한 곳인지 묻습니다. 예루살렘인가 게리심산인가를 묻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과연 예수님이 인종주의자인 지를 알아보려고 했을 지도 모릅니다. 사마리아인들은 게리심산이 거룩하다고 확신했습니다. 모세 오경만 믿었던 그들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곳, 아브라함이 멜기세댁을 만났던 곳, 아브라함과 야곱이 제단을 쌓았던 곳이 바로 게리심산이라고 믿었습니다. 여하튼 여인의 질문은 예수와의 대화를 한 차원 높였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여인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는 대화 길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네 번째 단계에서 예수님은 예배의 본질론을 언급했습니다.
예배의 장소나 예배의식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부차적인 것임을 알립니다. 진정한 예배는 인종, 지역, 성, 조상 등과 무관한 것입니다. 이 같은 생각은 예루살렘 지배세력을 분노케 하는 위험한 생각이기도 했습니다. 주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이야말로 예배에 대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배의 형식, 외양,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의 정신, 신령, 진리가 더 중요하다고 선포했습니다. 왜냐하면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은 형식과 외양과 장소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라, 자유롭고 자유 하게 하는 영(spirit)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자유케 하는 하나님의 영을 만나는 사건입니다. 은총의 기회입니다. 자유와 감사가 넘치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어디서나 언제나 계심으로 특정한 장소만이, 그것이 예루살렘 성전이든 게리심산의 성전이든 예배 보는 곳이 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야말로 예배 혁명의 때임을 강조했습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여인은 한 단계 더 올라갑니다. "나는, 그리스도라고 하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압니다. 그가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진리에 이르는 정답을 하실 때가 되었음을 아셨습니다.
이것은 이 대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나타납니다. 주님은 "너에게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메시아다"라고 밝히셨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례적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당신이 메시아임을 유대인들에게는 비밀로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그토록 경멸하고 증오했던 사마리아인, 그것도 부정한 바람둥이 여인에게는 그 비밀을 밝혔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진정한 메시아는 특정 인종, 성, 계급, 지역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특히 특권계급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소외되고 차별 받고, 불결하다고 따돌림을 당한 밑바닥 인생들에게는 메시아가 나타납니다. 이 여인은 비로소 눈을 뜨게 됩니다. 메시아를 눈앞에 보는 순간, 그 여인은 물동이를 버리고 동네 사람들을 부르려고 급히 떠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속적인 일, 물 뜨는 일, 생활수단인 물동이 등을 모두 버렸습니다. 물을 길으려 왔던 여인이 물을 버리고 사람을 길으려 새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분명 새길로 들어섰습니다.
과연 우리는 아직도 물동이를 든 채 새길공동체로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세속적 형이하학의 문제만을 가지고 이 공동체로 나오지 않습니까? 과연 우리는 물동이를 버렸습니까? 진짜 새길로 들어섰습니까? 이 시점에서 여인은 스스로 진리를 만났고 스스로 물동이를 버리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대화의 첫 단계에서 라고 말씀했더라면, 이 냉소적인 사마리아 여인은 하고 비아냥거렸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단계적인 깨우침의 교육방법에 놀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 특히 유대인 남성들에 대해 깊은 적대감을 품고 있었던, 이 여인의 그 얼어붙었던 닫힌 마음을 녹여 놓고 열어 놓은 예수님의 대화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주입식이 아니라 여인 스스로가 진정한 예배를 깨닫게 하고 진정한 메시아를 만나게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위대한 교사 예수님,
감동적인 메시아 예수님,
너무나 자상하고 인간적인 친구 예수님,
수백 년의 장벽을 무너뜨리면서
평화의 다리를 놓으시는 평화의 일꾼 주님,
당신 자신이 그토록 피곤하여 육체적 갈증을 느꼈으면서도,
사마리아 여인에게 오히려 영생 수를 주시기 위해
깨달음의 대화를 이끌어 가신
우리의 스승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제 우리도 신령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새길공동체를 통해 위대한 스승 예수를 매주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길공동체의 예배는 의식과 장소를 소중히 여기는 외향적 예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예수의 예배, 신령과 진리의 예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영이신 하나님과 주님을 우리는 매주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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