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 성경본문 : | 요1:19-34 |
|---|---|
| 설교자 : | 소재열 목사 |
| 참고 : | 의정부평안교회 http://www.uppch.org |
원님이 한 번은 나귀를 타고 한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나귀등에 타고 가신 원님을 보자 모두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그때 나귀는 자신에게 절을 하는 줄 알고 교만을 떨다가 매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무엇을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까? 종이 주인의 영광을 가로챌 때 주인으로부터 그 종은 제재를 당합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설교자만큼 불쌍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강단에서 자기 말을 내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는 강단에서 나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증거 하는 사람입니다. 즉 자신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만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세상적으로 보면 불행한 사람일지 모르지만 신앙으로 보면 이것만큼 영광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참으로 불행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사용한다고 생각해 보라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문제는 종은 주인의 영광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들은 하나의 종들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 영광을 우리가 가로챈다면 거기에는 응분의 대가가 있을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은 세례요한이 어떻게 쓰임을 받았습니까? 무엇을 증거 하기 위하여 세례요한이라는 사람의 생애를 허락하셨습니까? 또한 세례요한이 증거한 내용이 우리들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런 문제에 관해서 살펴보면서 우리들도 무엇을 위해서 부름을 받았는지에 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무엇을 우리들에게 소개해 주시기를 원하시는가에 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1.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19-23절).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몸부림칩니다. 그 욕심 때문에 끊임없이 죄를 짓다가 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죄로 말미암아 나오게 된 것을 알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잘못인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께 잘못을 범해 놓고도 잘못한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란 자신의 욕심들이 자기 죄에서 나오는 것을 아는 자입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폭로되어야만 우리들은 비로소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증거 하는 자가 됩니다.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처음부터 예수님에 대해서 드러내 놓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그 첫 번째 증인입니다. 그 증인에 의하면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합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을 온전히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말씀, 볼 수 있는 말씀으로 나타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세례요한이었습니다. 그 요한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그는 약대 털옷을 입고 음식은 석청과 메뚜기를 먹었다고 합니다(마3:4).
또한 그는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선지자로 생각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파견해서 조사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 1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요한에게 묻기를 “네가 누구냐”라고 했습니다. 이런 질문이 왜 나왔습니까? 누가복음3:15절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누가복음 3:15절에 보시면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15) 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구약에서 예언하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지만 결국 메시아를 기다린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요한이 메시아가 아닌가 하고 물어 보게 된 것입니다. 요한은 즉각적으로 ”나는 메시아(그리스도)가 아니다”(20절)라고 밝혔습니다. “네가 엘리야냐?” “나는 아닙니다.” “그러면 네가 그 선지자냐?”라고 또 질문했습니다(21절).
신명기 18:18절에 예언된 “그 선지자”인지 물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세례요한은 분명히 답변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단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말합니다(23절). “광야의 소리”라는 말은 요한이 메시아가 아니라는 말이 담겨져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구약 이사야 40장의 상황으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분명히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소리라고 합니다. 소리는 우리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아닙니다. 소리는 소리로써 사명을 감당할 뿐입니다.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모습으로 보이는 말씀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모든 관심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리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들은 여기서 세례요한이 이런 정신을 갖게 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반대로 세례요한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했기에 그런 겸손한 행동을 취했습니까? 우리가 관심을 갖고 보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2.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 증거함(24-31절)
세례요한은 이사야 말씀을 인용합니다. 이사야 40:3-5절에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이 볼 것이라고 했는데 그 여호와의 영광이 지금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여기서 말한 어린 양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제물로서 드려진 어린 양입니다. 또한 우리들의 죄를 위해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사53:7)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어린 양은 구약성경에 보면 제사를 드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희생의 재물로 드려진다. 예수님이 어린 양으로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것은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께 재물로 드려지면서 하나님께 희생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고 했습니다.
여기 죄를 ‘지고 가다’는 말은 ‘덜어주다’,‘벗겨 주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죄를 지고 멀리 우리 눈에 보이지 않도록 치워 버렸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의 죄를 멀리 치워 버리셨습니다. 다시는 기억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죄를 해결해 주시는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이같은 어린 양의 재물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먼저 선언했던 것입니다. 세상은 어두움에 속해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누군가가 조금 위대하게 보이면 제각기 자기가 원하고 기다리는 모습으로 메시아가 온 것으로 착각하고 메시아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무엇이 복음인지 알았더라면 그렇게 헤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도 “그동안 내가 찾는 진짜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무엇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을 못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신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예수님에 관해서 혹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 알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정죄 했던 어두움의 세상을 알고, 우리 자신을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어두움의 세상을 알고 있다면 우리들은 그 세상을 멀리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면서 우리가 과연 예수님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세상이 요구하는 것을 부정해야 합니다. 세상은 언제나 죄 짓는데는 정보가 빠릅니다. 그런 죄된 세상을 부정하려면 우리 자신들부터 부정해야 합니다.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는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우리들은 우리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분은 ‘나보다 앞서 계시다’라고 했습니다.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을 증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성부 하나님께서 증거하신 그리스도(32-34절)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성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이 음성을 들었습니다.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요1:32-34)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예수님 위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고 합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는 것은 성령이 비둘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비둘기 같이 임하셨다는 것은 이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화평하게 하시려고 오셨다는 뜻입니다. 비둘기는 거룩의 상징입니다. 또한 좋은 소식을 제공해 줍니다. 하나님 쪽에서 제공한 좋은 사랑의 선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8장에 보면 노아는 비둘기를 사람들보다 앞서 보내어 좋은 소식을 가져오기를 기대했습니다.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바로 이와 같은 일을 하실 것을 증거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예수님 위에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성부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증거하고 계십니다. 고전12:3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에게 성령께서 역사 하셔야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구주이심을 믿게 됩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도록 증거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한다면 이미 내 안에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해 주셨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임이 분명해 졌습니다. 의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해 주셔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게 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보다 더큰 복이 있겠습니까? 천하를 얻고도 구원을 받지 못하고 멸망받아 지옥간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말씀에도 초청
오늘 우리들은 세례요한을 배우기 위해서 모이지 않았습니다. 그 세례요한을 통하여 우리가 누구를 소개 받고 있습니까? 더 정확히 표현해서 하나님께서는 세례요한을 통하여 무엇을 보여 주시기를 원하시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들도 그 세례요한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례요한이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았을 때 어떤 삶의 모습을 보였습니까? 우리들이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그토록 예언해 주셨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말씀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했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린 사람들이 메시아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거부한 자들에게 세례요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오시리라고 예언했던 그 메시아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죄에서 구원하신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세례요한의 외침을 통하여 기록된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들을 뿐만 아니라 이분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원래 죄가 전혀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들의 죄를 담당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들의 죄 때문에 마치 어린 양과 같이 희생을 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였습니다. 이같은 사랑으로 우리들을 부르셔서 사명을 주셨습니다.
요15:16-17절에 보면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을 택한 이유를 두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들에게 항상 신앙의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우리들에게 떠나지 않게 하려고 우리들을 택하셨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그 열매들이 있습니까? 둘째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위해서든지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려고 우리들을 택해 주셨다고 합니다. 아울러 이 말씀을 우리들에게 하신 것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그렇게 살 뿐만 아니라 우리 이웃과 더불어 서로 사랑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우리 이 말씀 안에서 승리하며 삽시다.
의정부평안교회 http://www.uppch.org/
세상적으로 보면 설교자만큼 불쌍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강단에서 자기 말을 내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는 강단에서 나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증거 하는 사람입니다. 즉 자신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만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세상적으로 보면 불행한 사람일지 모르지만 신앙으로 보면 이것만큼 영광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참으로 불행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사용한다고 생각해 보라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문제는 종은 주인의 영광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들은 하나의 종들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 영광을 우리가 가로챈다면 거기에는 응분의 대가가 있을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은 세례요한이 어떻게 쓰임을 받았습니까? 무엇을 증거 하기 위하여 세례요한이라는 사람의 생애를 허락하셨습니까? 또한 세례요한이 증거한 내용이 우리들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런 문제에 관해서 살펴보면서 우리들도 무엇을 위해서 부름을 받았는지에 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무엇을 우리들에게 소개해 주시기를 원하시는가에 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1.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19-23절).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몸부림칩니다. 그 욕심 때문에 끊임없이 죄를 짓다가 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죄로 말미암아 나오게 된 것을 알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잘못인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께 잘못을 범해 놓고도 잘못한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란 자신의 욕심들이 자기 죄에서 나오는 것을 아는 자입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폭로되어야만 우리들은 비로소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증거 하는 자가 됩니다.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처음부터 예수님에 대해서 드러내 놓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그 첫 번째 증인입니다. 그 증인에 의하면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합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을 온전히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말씀, 볼 수 있는 말씀으로 나타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세례요한이었습니다. 그 요한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그는 약대 털옷을 입고 음식은 석청과 메뚜기를 먹었다고 합니다(마3:4).
또한 그는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선지자로 생각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파견해서 조사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 1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요한에게 묻기를 “네가 누구냐”라고 했습니다. 이런 질문이 왜 나왔습니까? 누가복음3:15절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누가복음 3:15절에 보시면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15) 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구약에서 예언하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지만 결국 메시아를 기다린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요한이 메시아가 아닌가 하고 물어 보게 된 것입니다. 요한은 즉각적으로 ”나는 메시아(그리스도)가 아니다”(20절)라고 밝혔습니다. “네가 엘리야냐?” “나는 아닙니다.” “그러면 네가 그 선지자냐?”라고 또 질문했습니다(21절).
신명기 18:18절에 예언된 “그 선지자”인지 물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세례요한은 분명히 답변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단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말합니다(23절). “광야의 소리”라는 말은 요한이 메시아가 아니라는 말이 담겨져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구약 이사야 40장의 상황으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분명히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소리라고 합니다. 소리는 우리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아닙니다. 소리는 소리로써 사명을 감당할 뿐입니다.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모습으로 보이는 말씀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모든 관심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리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들은 여기서 세례요한이 이런 정신을 갖게 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반대로 세례요한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했기에 그런 겸손한 행동을 취했습니까? 우리가 관심을 갖고 보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2.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 증거함(24-31절)
세례요한은 이사야 말씀을 인용합니다. 이사야 40:3-5절에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이 볼 것이라고 했는데 그 여호와의 영광이 지금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여기서 말한 어린 양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제물로서 드려진 어린 양입니다. 또한 우리들의 죄를 위해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사53:7)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어린 양은 구약성경에 보면 제사를 드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희생의 재물로 드려진다. 예수님이 어린 양으로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것은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께 재물로 드려지면서 하나님께 희생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고 했습니다.
여기 죄를 ‘지고 가다’는 말은 ‘덜어주다’,‘벗겨 주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죄를 지고 멀리 우리 눈에 보이지 않도록 치워 버렸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의 죄를 멀리 치워 버리셨습니다. 다시는 기억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죄를 해결해 주시는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이같은 어린 양의 재물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먼저 선언했던 것입니다. 세상은 어두움에 속해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누군가가 조금 위대하게 보이면 제각기 자기가 원하고 기다리는 모습으로 메시아가 온 것으로 착각하고 메시아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무엇이 복음인지 알았더라면 그렇게 헤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도 “그동안 내가 찾는 진짜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무엇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을 못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신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예수님에 관해서 혹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 알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정죄 했던 어두움의 세상을 알고, 우리 자신을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어두움의 세상을 알고 있다면 우리들은 그 세상을 멀리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면서 우리가 과연 예수님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세상이 요구하는 것을 부정해야 합니다. 세상은 언제나 죄 짓는데는 정보가 빠릅니다. 그런 죄된 세상을 부정하려면 우리 자신들부터 부정해야 합니다.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는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우리들은 우리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분은 ‘나보다 앞서 계시다’라고 했습니다.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을 증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성부 하나님께서 증거하신 그리스도(32-34절)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성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이 음성을 들었습니다.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요1:32-34)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예수님 위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고 합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는 것은 성령이 비둘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비둘기 같이 임하셨다는 것은 이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화평하게 하시려고 오셨다는 뜻입니다. 비둘기는 거룩의 상징입니다. 또한 좋은 소식을 제공해 줍니다. 하나님 쪽에서 제공한 좋은 사랑의 선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8장에 보면 노아는 비둘기를 사람들보다 앞서 보내어 좋은 소식을 가져오기를 기대했습니다.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바로 이와 같은 일을 하실 것을 증거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예수님 위에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성부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증거하고 계십니다. 고전12:3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에게 성령께서 역사 하셔야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구주이심을 믿게 됩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도록 증거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한다면 이미 내 안에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해 주셨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임이 분명해 졌습니다. 의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해 주셔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게 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보다 더큰 복이 있겠습니까? 천하를 얻고도 구원을 받지 못하고 멸망받아 지옥간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말씀에도 초청
오늘 우리들은 세례요한을 배우기 위해서 모이지 않았습니다. 그 세례요한을 통하여 우리가 누구를 소개 받고 있습니까? 더 정확히 표현해서 하나님께서는 세례요한을 통하여 무엇을 보여 주시기를 원하시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들도 그 세례요한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례요한이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았을 때 어떤 삶의 모습을 보였습니까? 우리들이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그토록 예언해 주셨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말씀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했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린 사람들이 메시아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거부한 자들에게 세례요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오시리라고 예언했던 그 메시아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죄에서 구원하신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세례요한의 외침을 통하여 기록된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들을 뿐만 아니라 이분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원래 죄가 전혀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들의 죄를 담당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들의 죄 때문에 마치 어린 양과 같이 희생을 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였습니다. 이같은 사랑으로 우리들을 부르셔서 사명을 주셨습니다.
요15:16-17절에 보면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을 택한 이유를 두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들에게 항상 신앙의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우리들에게 떠나지 않게 하려고 우리들을 택하셨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그 열매들이 있습니까? 둘째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위해서든지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려고 우리들을 택해 주셨다고 합니다. 아울러 이 말씀을 우리들에게 하신 것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그렇게 살 뿐만 아니라 우리 이웃과 더불어 서로 사랑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우리 이 말씀 안에서 승리하며 삽시다.
의정부평안교회 http://www.uppch.org/
|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