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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요4:23-26 |
|---|---|
| 설교자 : | 소재열 목사 |
| 참고 : | 의정부평안교회 http://www.uppch.org |
오늘은 요한복음 가운데 특별히 4장 말씀을 통해서 “내가 그 메시아다”라는 제목으로 살펴보면서 우리들의 영원한 생수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이신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이 그분을 바르게 믿고 있습니까?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과 구원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확인해 보는 그러한 시간이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무엇을 했느냐라는 그분의 활동 보다는 그분이 과연 누구이시며 무슨 목적으로 이 세상에 오셨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 충만한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전체는 이 독생자이신 예수님의 영광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섬기고 낮아지고 겸손하신 영광을 우리들로 하여금 발견하게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땅에 있는 교회는 어떠합니까? 교회의 모든 제도나 행사가 이 영광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들의 영광을 내세우지나 않았습니까? 상당한 부분에서 삐걱거리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일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분명한 진리를 깨닫고 분명한 기독교와 구원의 진리를 터득하는 시간이기를 원합니다.
1.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하루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서 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습니다.
예수님: 물을 좀 달라(4:7)
여인: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4:9)
예수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 었으리라(10절)
여인: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11-12절)
예수님: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3,14절).
여인: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15절).
예수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16절)여 인:나는 남편이 없나이다(17절).
예수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17,18절).
여인: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19,20절)
예수님: 21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21-24).
여인: 여자가 가로되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25절).
예수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26절).
3. 사마리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솔로몬’이후 그 아들 대에 와서 나라가 둘로 나뉘어 졌습니다. 그래서 남쪽은 유다,북쪽은 이스라엘이라고 했습니다. 그후 약 250년이 흘러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 나라에게 멸망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약 2만7천명이 다른 지방으로 쫓겨 가고,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메소포타미아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을 사마리아인이라고 했습니다. 그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을 점령해서 마케도니아인들이 거주하게 되어 혼혈이 더욱 더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이방인 취급을 하고 천대시 했습니다.
역대하34장에 보면,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할 때 사마리아인들이 협력할려고 했지만 이방인-혼혈족이라는 이유로 거절 당했습니다. 그 때부터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는 관계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 이교적인 신전을 세우고 거기서 예배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개같이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과 상종하지를 않았습니다.그리고 유대인들의 정결법에는 사마리아인들이 사용하는 그릇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그런데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은 ‘어째서 당신들이 상종치도 않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라고 하면서 대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결국 이 대화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이신가를 보여줍니다.
4. 지역감정의 벽을 넘어서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대단했습니다.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마리아를 비롯해 이방인들에게는 구원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건전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구원이 있을찌라도 그들은 유대인들을 수종들기 위해서 구원시켜 주었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이고 보면 그 유대인들의 오만함이 어찌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지역까지 불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방인 지역을 지나가다가 그 지역을 벗어날 때는 언제나 자신들의 발의 먼지를 터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질문하기를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라고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오히려 자신에게 호의적인 예수님을 의아해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음 안에서 지역감정의 벽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제 구원과 거룩이 단순히 유대 지역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면 구원이 성립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보이지 않는 벽을 예수님은 지금 허무고 게십니다.
지금 우리 교계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이 지역감정의 골이 너무나 깊습니다. 신앙안에서 경상도면 어떻고 전라도면 어떻고 충청도면 어떻고 강원도면 어떻습니까? 일반 세상 정치가들이 자신들의 야망과 지배욕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지역감정을 마치 교회가 그것을 차용하는 꼴이 되어져 버렸습니다.
광주사태을 지역감정으로 끌고 가는 정치가들의 수작에 몰고가면 안됩니다. 교회가 보는 광주사태는 지역감정으로 볼 것이 아니라 지배욕에 어두워 하나님이 주신 생명까지라도 자신들의 지배욕에 장애가 될 때는 제거하고야 말겠다는 사탄의 음모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에 교회 특정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지역감정으로 교단이 갈라지고 교회 분쟁을 조장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종도 아니요, 그것은 교회라고 볼 수 없습니다. 과거 유태인 학살때 독일교회가 침묵했습니다. 이제와서 그 침묵을 회개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차별당하고 있는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동일한 복음의 소식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유대인의 예루살렘에서도 아니요, 사마리인들의 그리심산도 아닙니다.전라도도 아니요,경상도도 아니요, 충청도도 아니요, 강원도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믿음 안에서 모두가 하나 되었습니다. 마귀는 이 하나됨을 파괴하기 위해서 지역감정으로 시험하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5. 메시아 곧 그리스도
우물가에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알아봤습니다. 어떻게 알아보았습니까?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통해서였습니다. 19절에서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입니다”라고 합니다.
25절에 “여자가 가로되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입니다”라고 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27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39절에 보면 사마리아인들이 믿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리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말씀에로 초대
예수님께서 14절에서 자신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영생하도록 솟아는 샘물을 주신다고 하자 사마리아 여인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여인이 15절에서 이렇게 답변합니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다음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니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예수님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 이러한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당장 우리들의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치신 의도대로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요4:41-42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예수님의 의도대로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 은헤와 역사를 35-38절까지의 비유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38절에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사마리아인들에게 구원을 베푸심으로 유대인들이 노력한 것 위에 거져 참여하는 구원의 축복을 이방인들이 누리게 되었다는 은혜의 말씀입니다. 이 것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 위에 임한 은혜의 축복입니다. 이 은혜를 늘 간직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의정부평안교회 http://www.uppch.org/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무엇을 했느냐라는 그분의 활동 보다는 그분이 과연 누구이시며 무슨 목적으로 이 세상에 오셨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 충만한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전체는 이 독생자이신 예수님의 영광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섬기고 낮아지고 겸손하신 영광을 우리들로 하여금 발견하게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땅에 있는 교회는 어떠합니까? 교회의 모든 제도나 행사가 이 영광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들의 영광을 내세우지나 않았습니까? 상당한 부분에서 삐걱거리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일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분명한 진리를 깨닫고 분명한 기독교와 구원의 진리를 터득하는 시간이기를 원합니다.
1.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하루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서 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습니다.
예수님: 물을 좀 달라(4:7)
여인: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4:9)
예수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 었으리라(10절)
여인: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11-12절)
예수님: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3,14절).
여인: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15절).
예수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16절)여 인:나는 남편이 없나이다(17절).
예수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17,18절).
여인: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19,20절)
예수님: 21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21-24).
여인: 여자가 가로되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25절).
예수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26절).
3. 사마리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솔로몬’이후 그 아들 대에 와서 나라가 둘로 나뉘어 졌습니다. 그래서 남쪽은 유다,북쪽은 이스라엘이라고 했습니다. 그후 약 250년이 흘러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 나라에게 멸망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약 2만7천명이 다른 지방으로 쫓겨 가고,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메소포타미아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을 사마리아인이라고 했습니다. 그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을 점령해서 마케도니아인들이 거주하게 되어 혼혈이 더욱 더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이방인 취급을 하고 천대시 했습니다.
역대하34장에 보면,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할 때 사마리아인들이 협력할려고 했지만 이방인-혼혈족이라는 이유로 거절 당했습니다. 그 때부터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는 관계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 이교적인 신전을 세우고 거기서 예배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개같이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과 상종하지를 않았습니다.그리고 유대인들의 정결법에는 사마리아인들이 사용하는 그릇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그런데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은 ‘어째서 당신들이 상종치도 않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라고 하면서 대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결국 이 대화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이신가를 보여줍니다.
4. 지역감정의 벽을 넘어서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대단했습니다.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마리아를 비롯해 이방인들에게는 구원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건전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구원이 있을찌라도 그들은 유대인들을 수종들기 위해서 구원시켜 주었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이고 보면 그 유대인들의 오만함이 어찌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지역까지 불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방인 지역을 지나가다가 그 지역을 벗어날 때는 언제나 자신들의 발의 먼지를 터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질문하기를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라고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오히려 자신에게 호의적인 예수님을 의아해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음 안에서 지역감정의 벽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제 구원과 거룩이 단순히 유대 지역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면 구원이 성립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보이지 않는 벽을 예수님은 지금 허무고 게십니다.
지금 우리 교계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이 지역감정의 골이 너무나 깊습니다. 신앙안에서 경상도면 어떻고 전라도면 어떻고 충청도면 어떻고 강원도면 어떻습니까? 일반 세상 정치가들이 자신들의 야망과 지배욕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지역감정을 마치 교회가 그것을 차용하는 꼴이 되어져 버렸습니다.
광주사태을 지역감정으로 끌고 가는 정치가들의 수작에 몰고가면 안됩니다. 교회가 보는 광주사태는 지역감정으로 볼 것이 아니라 지배욕에 어두워 하나님이 주신 생명까지라도 자신들의 지배욕에 장애가 될 때는 제거하고야 말겠다는 사탄의 음모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에 교회 특정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지역감정으로 교단이 갈라지고 교회 분쟁을 조장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종도 아니요, 그것은 교회라고 볼 수 없습니다. 과거 유태인 학살때 독일교회가 침묵했습니다. 이제와서 그 침묵을 회개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차별당하고 있는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동일한 복음의 소식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유대인의 예루살렘에서도 아니요, 사마리인들의 그리심산도 아닙니다.전라도도 아니요,경상도도 아니요, 충청도도 아니요, 강원도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믿음 안에서 모두가 하나 되었습니다. 마귀는 이 하나됨을 파괴하기 위해서 지역감정으로 시험하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5. 메시아 곧 그리스도
우물가에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알아봤습니다. 어떻게 알아보았습니까?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통해서였습니다. 19절에서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입니다”라고 합니다.
25절에 “여자가 가로되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입니다”라고 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27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39절에 보면 사마리아인들이 믿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리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말씀에로 초대
예수님께서 14절에서 자신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영생하도록 솟아는 샘물을 주신다고 하자 사마리아 여인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여인이 15절에서 이렇게 답변합니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다음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니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예수님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 이러한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당장 우리들의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치신 의도대로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요4:41-42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예수님의 의도대로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 은헤와 역사를 35-38절까지의 비유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38절에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사마리아인들에게 구원을 베푸심으로 유대인들이 노력한 것 위에 거져 참여하는 구원의 축복을 이방인들이 누리게 되었다는 은혜의 말씀입니다. 이 것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 위에 임한 은혜의 축복입니다. 이 은혜를 늘 간직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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