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

요한복음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403 추천 수 0 2008.04.25 15:22:59
.........
성경본문 : 요4:5-18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여의도순복음교회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정오에 햇빛이 쨍쨍 비추고 무더운 어느 날 사마리아를 통과하시다가 수가성 어느 곳에 가서 우물 곁에 앉았습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찾아 시내로 들어갔는데 예수님은 누구를 간절히 기다리는 심정으로 그곳에 앉아 계셨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사마리아 여인이 물동이를 걸머지고 총총이 오더니만 좌우를 살펴 보지도 아니하고 예수님이 앉아 계신 곳에 눈길도 주지 아니하고 그는 우물가에 나와서 동이를 내려놓고 물을 길으기 시작합니다. 그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내게 물을 좀 주시오, 그 여자가 놀라서 예수님을 쳐다보면서 아니 당신 유대인들은 우리 사마리아인을 개로 취급하고 사마리아인들과는 상종도 안하는데 더구나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합니까? 예수께서 하나님의 선물과 물을 좀 달라는 이가 누군 줄 알았더라면 구했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당신에게 주었을 것입니다. 그 여자가 웃으면서 하는 말이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물은 깊은데 어디에서 생수를 길러 나에게 주신다는 말입니까? 이 물은 우리 조상 야곱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고, 여기에서 당신의 자녀들과 짐승들이 다 물을 마셨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말씀에 이 물을 마시면 다시 목 마르거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고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러면 그 물을 내게도 주시옵소서. 이 곳에 와서 물 길을 필요도 없고 목마르지도 않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 고개를 끄덕끄덕하시고 당신 남편을 데려 오시오. 여자가 고개를 푹 수그러드니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맞았어요, 당신은 참말을 했습니다. 당신 남편이 다섯이 있는데 지금 살고 있는 남자는 오다가다 만난 남자로써 당신 남편이 아니지요. 이 대화를 통해서 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인 것을 알게 되고 그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심으로 일생 일대에 큰 행복과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기를 원하시는 귀한 말씀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왜 이 여자는 다섯 번이나 우물을 바꿔 마셨습니까?

남편을 다섯 바꾸었다는 것은 우물을 다섯 번이나 바꿔 마셨다는 상징적인 의미인 것입니다. 저는 이 사마리아 여인이 남편을 다섯 명씩이나 바꿔서 까지 자기 마음에 행복을 추구하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한 뜨거운 열정에 관해서는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이 여자가 남편을 다섯이나 바꾼 사연을 저는 곰곰이 생각해 볼 때가 많습니다.
아마 처음에 여자는 돈 많은 사업가에게 시집을 갔을는지 모릅니다. 그는 돈 많은 사업가에게 시집을 가서 돈도 많이 쓰고 잘입고 잘먹고 잘 살아 보겠다고 갔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보니 남편은 사업한다고 동분서주하면서 항상 집을 비우고 남편과 서로 만나서 대화하거나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이 없으므로 너무나 적적하고 외로운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러고 또 물질이 풍부하고 환경이 좋으니깐 그와 비례해서 마음이 공허가 넘칩니다. 옛날에는 돈 벌고 잘 살아 볼려고 애쓰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그것이 있으니깐 마음에 공허가 꽉 들어차서 무엇 때문에 사는지 의미를 알 수 없고 허무맹랑한 심정이 생겼습니다. 그뿐 아니라 사업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계절을 따라 변화하기 때문에 거기에 다가오는 여러 가지 물질적인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그는 부자와 살아보니깐 물질이 부요하고 풍부하다는 것 뿐이지 삶의 의미와 가치는 그 속에 없는 것을 발견하고 이 속에 내가 안주 할 수가 없다, 삶의 의미와 가치가 행복을 추구하는 곳에 살 필요가 없다. 그래서 그 부자와 이혼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여자는 생각하기를 정치인과 결혼하면 신바람이 날 것이다. 그래서 아마 정치인하고 결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권력이 가져오는 삶의 편리를 누렸습니다. 권리가 있으면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모든 사람이 굽신 거리니깐 아주 사는 것이 편리해졌습니다. 그리고 화려한 사교계에 나가서 좋은 옷을 입고 사람들과 교제하고 인정을 받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시간의 스케줄이 없이 살아가는 그런 남편에게 끌려 다니다가 지치고 말았습니다. 밤 늦게, 혹은 아침 늦게, 혹은 밤에 들어오지 아니하고 이와 같은 물질서한 삶 속에 혼돈 속에 빠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들의 삶은 해바라기 삶이었습니다. 위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이 사람만 쳐다보고 따라가면서 미소를 지어야 하고 또 유권자에게 허리가 아프도록 고개를 숙여 절하여야 하고 그러한 생활 가운데 그는 지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언제나 정치인의 생활은 현재에도 미래에도 불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 속에 알찬 삶의 의미와 가치와 행복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집어치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존경받는 교수님에게 시집을 가서 교수와 함께 살아보자, 그는 잘 중매를 해서 훌륭한 교수에게 시집을 갔을 것입니다. 교수에게 시집을 가니 교수님 사모님, 사모님 존경을 받고 한동안 기분이 좋았습니다. 또 생활도 안정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아침 정시에 출근을 하고 저녁에 정시에 퇴근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생활에 안정이 되고 가끔 가다가 대화도 하게 되고 밥도 마주 먹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만, 교수 생활에 쥐꼬리만한 월급 받아 오니깐 생활에 쪼달립니다.
화려하게 살았는데 생활이 쪼달리고 먹고 살기가 힘드니깐 늘 경제적인 문제로 남편과 다투고 입씨름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으니깐 도무지 교수 생활에 매력이 없습니다. 교수는 학문하고 결혼했지 자기하고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책하고만 살고 자기하고는 살지 않습니다. 거기에 자기 스스로의 꿈과 미래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애라 교수도 치워 버려라
그러고 난 다음 그는 농부하고 결혼을 했을 것입니다. 농장에 들어가서 자연과 함께 살자. 종달새 울음소리 듣고 아침에 깨어 일어나고 저녁에는 하늘 총총한 별빛을 바라보고 자는 것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싱싱한 채소도 먹고 싱싱한 과일도 먹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농부하고 결혼을 해서 생활을 해보니깐 싱싱한 야채는 다 돈번다고 내놓고 벌레 먹은 것만 먹게 되고 과일도 좋은 과일은 다 시장에 내 보내고 떨어진 과일 벌레 먹은 과일만 먹으니 도무지 결혼하기 전 생각과는 틀립니다. 그리고 농촌의 생활이 얼마나 고달픈지 아침 새벽에 일어나면 저녁에 별을 보고야 들어오는 이러한 삶입니다. 그리고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을 해도 항상 빚에 쪼달리고 경제적인 어려움에 괴로워했습니다. 얼마 지나다가 거울을 들여야 보니 얼굴은 완전히 엉망입니다. 화장도 하지 못하고 좋던 피부는 거칠어질대로 거칠어지고 자기도 몰라 볼 정도로 나이가 들어 보였습니다. 안되겠다 여기 있다가는 신세 망치겠다. 여기에 자연과 함께 생활한다는 꿈도 다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여기도 걷어 집어치웠습니다.
이제는 어부하고 결혼을 해야 되겠다. 출렁이는 파도에 세상 근심 다 씻어 버리고 살아야지. 그래서 내 귀는 소라 소리를 그리워하오, 시를 읖조리며 얼마나 로맨틱하게 살겠는가, 또 사실 바닷가에 살면은 싱싱한 생선을 잡아오면 회도 처먹고 싱싱한 생선도 먹고 아주 건강도 좋고 이렇게 살면 좋지 않은가. 그렇게 해서 어부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고기를 잡아오면 잡아오는데 싱싱한 고기를 다 팔고 죽은 고기만 가져옵니다. 눈이 다 썩은 것을... 싱싱한 것은 돈 만들어야지 무슨 소리 하는거냐, 싱싱한 것은 팔아서 돈을 만들어야 되고 돈 안되는 죽은 고기나 먹어야지.. 그래서 항상 죽은 고기만 먹었습니다. 그리고 로맨틱이 어디에 있습니까? 항상 일기 예보에 귀를 기울이고 날이 흐리고 바람이 불면 배가 뒤집어지지 않을가 싶어서 늘 걱정하고 기후가 다가오면 고기를 못 잡으니 마음에 조마조마하고 왜 울고 웃고 긴장 속에 살다보니 애라 이것도 안되겠다 이 속에 무슨 삶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가., 이것도 집어치워버려...
그렇게 살다보니깐 다섯을 갈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모든 꿈도 포기하고 희망도 포기했습니다. 인생이란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내 영이 없는 것이다. 애라 오다가다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밖에 없겠다. 그래서 기대를 저버린 나그네의 삶으로서 그는 오다가다 만난 남자와 결혼도 하지 않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남편을 다섯을 갈면서 우물물을 다섯 번 갈아 마셨지만은 계속 목마르지 않으냐!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생토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두 번째 예수님의 말씀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은 무엇입니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 속에 샘물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그 속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실 때에 그 생기가 바로 우리 마음 속에 영혼의 샘물인 것입니다. 이 영혼의 샘물을 가지고서 그 샘의 물을 마시면서 살 동안에는 삶의 의미도 있고 가치고 있고 행복도 있고 평화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배반하고 나올 때에 이 샘물이 말라버렸습니다.
성경에는 예레미야 2장 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生水)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貯蓄)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생수의 근원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샘의 근원이 되었는데 그 하나님을 버리니깐 그 스스로 속에 있는 샘의 근원을 버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샘물을 못 마신 사람의 갈급함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견딜 수가 없지요.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 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그러나 사람들은 마음의 생수를 쫓아 버리고 마음의 샘물이 말라버리니깐 인간 스스로가 죽을 힘을 다해서 우물을 팝니다. 스스로 우물을 팠으나 성경은 말씀하기를 이는 터진 우물이라. 물을 저장치 못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사야1장 28절에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敗亡)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님 대신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샘물 대신에 인간 스스로가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문화를 통해서 우물물을 파서 물을 저장하여 삶의 의미와 가치와 행복을 찾아보려고 하지만은 실패했습니다. 무신론, 유물론에 근거한 공산주의를 보십시오. 공산주의란 우물을 파서 그곳에 물을 저장하려고 하나 70년동안 파고 보니 터진 우물이었습니다. 공산주의에는 패망하고 그를 따라가던 사람들은 모두다 처절한 절망에 처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국의 20대에서 30대에 사람들은 52%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지 모를때가 많다고 삶의 가치 판단에 혼돈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이신 생수를 마시지 아니하고 갈증이 생겨서 갈바를 모르는 그런 삶 속에 살기 때문에 20-30대의 우리 한국 동포 중에 52%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오른지 가치 판단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리처스 1천명 조사에서 나왔었습니다. 그리고 58%가 우리 사회는 정당한 노력만으로 성공하기 힘들다 그리고 42%는 우리 사회에서는 법과 질서를 지키면 손해를 본다. 법을 어기면 손해를 안 본다 이렇게 되었어요, 가치
판단이 흐려지고 가치가 전도되었어요. 이것은 하나님의 생수를 마시고 하나님을 알게 되면 모든 것이 밝히 보이게 될 것인데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나니 삶의 의미도 가치도 판단도 다 흐려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마음에 샘은 바로 하나님인 것입니다.
잠언 14장 2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요한계시록 21장 6절에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마음 속에 모실 때에 마음 속에 하나님이 처음 주신 생명수가 넘쳐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다 생명의 샘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이 샘의 물이 가득해야 삶의 의미와 가치가 있고 행복이 있지. 이 샘을 잃어버리면 의미와 가치를 상실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국인의 삶의 대한 불만족도가 76%입니다. 왜? 마음의 생명의 샘을 잃어버린 사람이 사회 생활을 하는데 만족도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국인 30대 후반의 목표가 뭐냐고 물으니깐 51%가 경제적으로 부유해 지는 것이고 37%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경제적으로 아무리 부유해지고 가지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고 해서 행복하냐! 그런 것은 주위의 환경의 변화에 불가하지 마음속에 갈급함을 결코 채워 줄 수가 없습니다. 수가성 물가의 여인은 다섯 번 남편을 바꾸면서 삶의 부유도 추구해보고 자기 마음대로 생활 행동해 보았지만 그의 갈급함은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경제 문제가 해결이 되면 행복하겠지, 직업이 튼튼하면 행복하겠지, 자녀 문제가 해결되면 행복하겠지, 그러나 그것은 다 주위 환경의 문제입니다. 자기 마음 중심에 생명수가 없는 이상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없는 갈급함을 가집니다. 돈을 쌓아 놓고 권력을 얻어 놓고 좋은 집을 놓고 아름다운 환경을 갖다 놓고도 그 마음 속에 뿌듯한 갈급함이 없어 자꾸만 찾고 또 찾고 하는 것입니다. 환경과 쾌락으로는 도저히 채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계 중에 유명한 노벨 수상자인 헤밍웨이는 왜 사냥총으로 자살했습니까? 그러한 명예가 그 마음 속에 행복을 갖다 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돈도 있었습니다. 부인도 여러번 바꾸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찬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유서에는 나는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처럼 공허하다고 말했습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는 그는 모든 지위와 명예와 돈으로도 행복을 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의 30-40대 남자 10명 중 10명이 행복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왜 행복하지 않습니까? 행복의 근원되는 생수를 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AD900년 초에 압둘라만 3세는 당시에 세계에서 최강국의 강자였습니다. 그는 후궁이 3321명 자녀가 616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오랜 세월 명예로운 통치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행복을 누린 날은 단 14일 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세계적인 권력을 가지고 사람이 좋아하는 첩을 그렇게 많이 거느리고 자녀가 왕성하고 물질이 많아도 평생을 살면서 14일 밖에는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없다고 그랬습니다.
시편 42편 1절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渴急)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渴急)하니이다" 주를 찾아야 행복하지 주를 버린 자에게는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이 행복을 갖다 주지 못합니다.

그러면 셋째로 여기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 보십시다. 목마른 자는 내게 와서 마셔라 그리하면 너희 배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 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어요. 우리가 죄를 지으면 죄가 우리 하나님 앞에 나가면 길을 막아 버리고 맙니다.
이사야 59장 1절에서 2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救援)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鈍)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罪惡)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罪)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지은 죄를 인간의 힘으로 청산 할 수가 없어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함으로 죄가 있는 사람은 큰 죄나 작은 죄나 할 것 없이 다 하나님 앞에 장애물이 되고 우리가 뛰어 넘지 못할 큰 성벽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또한 불신앙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도 믿지를 않습니다. 불순종이 큰 장애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장애물을 누가 제하여 줄까요, 죄악의 장애물과 불순종의 장애물, 불신앙의 장애물을 누가 제하여 줄까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리셔서 인류의 모든 죄악을 다 청산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의 불순종과 불신앙을 깨뜨리고 이끌어 주심으로 우리가 아버지 앞에 나와서 생수를 마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에베소서 2장 16절 말씀대로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에베소서 1장 7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오늘 우리는 행복합니까? 우리가 힘써도 애써도 못하는 일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모든 죄의 장애물을 제켜 버리고 불순종과 불신앙의 장애물도 제켜버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대로가 하나님 보좌로 연결되었습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인생들이라고 해도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그 보혈의 대로를 통하여 아버지 앞에 나아가게 되고 아버지는 그 속에 생수를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마음 속에 믿고 나아가면 하나님의 성령의 생수가 우리 속에 넘쳐 나게 되는 것입니다.
스가랴 13장 1절에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고 말했습니다.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아닙니까?
요한복음 4장 13절에서 1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그러면 그의 배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흐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생명의 생물인 예수님 만이 생수의 강 같은 평화, 강 같은 기쁨, 강 같은 만족, 강 같든 행복을 우리에게 갖다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국인들이 뽑는 행복의 요소는 첫째가 가족의 화목이고, 둘째가 건강이고 셋째가 재산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46%나 되는 사람들이 돈만 있으면 행복하다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구라파나 미국 사람들에게 가서 당신에게 행복이 있느냐고 물어 보십시오. 돈이나 환경으로써 행복은 살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래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그 생수의 샘, 이것을 복구 시켜서 그 속에 샘물이 넘쳐 날 때에 비로써 우리는 삶의 의미와 가치와 행복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평안과 기쁨, 만족과 행복은 영적인 것이요, 환경이나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부귀 영화 공명 쾌락 지식 문화 그 무엇이라도 몸에 끼어 입은 옷에 불과한 것입니다. 옷은 아무리 끼어 입어도 마음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텅 비었는데 아무리 속옷 끼어 입고 겉옷 끼어 입고 외투를 끼어 입고 밖을 화려하게 해도 속이 빈 사람이 밖을 채워 넣는다고 채워지지 않습니다. 마음은 생수이신 예수님을 모셔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은 예수님을 믿고 모셔드리자 순식간에 마음에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마음에 삶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과 행복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시편 49편 16절에서 20절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치부하여 그 집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 말찌어다 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저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찌라도 그 역대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존귀(尊貴)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만물의 영작이요,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가 깨달아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그 보혈로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섬겨서 우리 속에 생수가 넘쳐나게 하기 전까지는 결코 인간에게 행복도 기쁨도 삶의 의미도 가치고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출세는 끼어 입은 옷입니다. 부귀도 끼어 입는 옷입니다, 영화도 끼어 입는 옷입니다, 환경을 아름답게 해 놓아도 아무리 입을 끼어 입어도 그 속에 굶주린 사람은 그 끼어 입은 것으로 배가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환경으로 말미암아 행복이 다가온다는 것은 미혹된 것입니다. 속은 것입니다.
아무리 환경을 끼어 입어도 밥을 먹지 아니하면 속은 비어 있고 배는 고픕니다. 아무리 세상 부귀 영화 공명을 가지고 다 치장을 하더라도 예수 믿고 하나님 모시지 아니하면 그 속에 영적으로 굶주려 있게 되고 영적인 굶주린 사람에게 의와 평강과 희락 믿음 소망 사랑 행복은 찾아 오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사마리아 여인과 같은 우물가의 여인은 삶의 의미와 가치와 기쁨과 평안과 행복을 찾기 위해서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 제끼고 우물물을 다섯 번 바꿔 마셔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모두다 환경에 끼어 입은 옷과 같았습니다. 그 굶주린 심령을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그 굶주린 심령이 순식간에 채워지고 그 마음속에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삶의 기쁨과 행복을 얻고 사마리아 동네로 뛰어 들어가서 나는 메시아를 만났다고 외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오늘 이 시간에 우리들은 모두다 마음 속에 우물물을 가지고 태어났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버리면 이 우물물이 터져 버립니다. 아무리 세상 것 가지님께서 우리에게 우물물을 가지고 태어나게 하셨고 채워 놓아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아버지 하나으니 이 우물물은 하나님으로 채워 놓아야 생수가 넘쳐 나는 것입니다. 예수 모시고 하나님 믿고 우리 마음 속에 우물물이 채워지고 강물 같이 넘쳐 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sort 조회 수
596 마태복음 오직 생명으로만 마6:25-34  최만자 자매  2008-05-13 1557
595 빌립보서 열린 예수, 열린 교회 빌2:5-11  한완상 형제  2008-05-13 1890
594 마태복음 주님의 기도 마6:9-13  정양모 신부  2008-05-13 1763
593 요한계시 전해야 할 말씀 계10장  강종수 목사  2008-05-11 1531
592 요한계시 충재와 전쟁 계9:장  강종수 목사  2008-05-04 1564
591 요한계시 나팔재앙 계8:장  강종수 목사  2008-04-27 1669
590 시편 예수님의 고난 시22:1-21  조용기 목사  2008-04-25 2482
» 요한복음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 요4:5-18  조용기 목사  2008-04-25 2403
588 히브리서 하나님이 그리시는 그림 히11:11-12  조용기 목사  2008-04-25 2287
587 출애굽기 야웨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출14:10-14  조용기 목사  2008-04-25 2398
586 요한일서 하나님을 아는 길 요일4:7-12  길희성 형제  2008-04-25 1992
585 요한복음 바이블 코드 요5:39  민영진 목사  2008-04-25 2240
584 로마서 참 올리브 뿌리와 접붙인 야생 올리브 가지 롬11:17-21  이경숙 교수  2008-04-25 1918
583 요한복음 현실주의를 뛰어넘어 믿음의 결단으로 요11:28-44  권진관 형제  2008-04-25 1847
582 마태복음 예수 없는 교회와 신앙고백 마11:1-6  한완상 형제  2008-04-25 1686
581 에배소서 그리스도 안의 통일 엡1:7-10  박동현 목사  2008-04-25 1874
580 누가복음 기도의 감각을 살리자 눅18:1-8  강종수 목사  2008-04-24 1923
579 히브리서 땅 위의 나그네 히11:8-16  길희성 형제  2008-04-21 1986
578 사도행전 성령의 사귐속에 있는 삶 행2:40-47  채수일 목사  2008-04-21 2155
577 요한계시 창조와 안식 계2:1-2  서창근 목사  2008-04-21 1812
576 사도행전 경계를 넘나드는 교회 행10:9-16  김상근 목사  2008-04-21 1694
575 요한계시 두 부류의 구원 계7:장  강종수 목사  2008-04-21 1820
574 마태복음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 마13:1-9  조용기 목사  2008-04-18 3438
573 창세기 우리 이름을 내고 창11:1-9  조용기 목사  2008-04-18 2250
572 창세기 자기부정과 자기긍정의 긴장관계 창3:6-7  최만자 자매  2008-04-18 1984
571 마태복음 일용할 배고픔 마6:11  서중석 목사  2008-04-18 1664
570 마태복음 예수님의 진노, 오늘 누구에게 향할까? 마23:29-36  한완상 목사  2008-04-18 1706
569 골로새서 하늘 문. 골1:15-20  민영진 목사  2008-04-18 2700
568 마가복음 관계를 넓히시는 하나님. 막7:24-30  권진관 형제  2008-04-18 1764
567 고린도전 강함이 되는 약함 고전1:27-29  한태완 목사  2008-04-16 2254
566 여호수아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창조적 특권의식). 수14:6-12  김필곤 목사  2008-04-14 2977
565 요한계시 적그리스도의 출현 계9:장  강종수 목사  2008-04-13 1796
564 시편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시146:1-10  조용기 목사  2008-04-11 2608
563 열왕기하 병고침 받는 7단계 왕하5:8-14  조용기 목사  2008-04-11 2540
562 디모데전 남자의 뇌구조 분석3 딤전3:11  전병욱 목사  2008-04-11 3055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