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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있더니

요한복음 최용우............... 조회 수 1577 추천 수 0 2008.12.05 01:3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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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20:1-18 
설교자 : 이재철 목사 
참고 : 주일 설교말씀 1997년 9월 14일 
제목: 울고 있더니
본문: 요한복음 20 : 1∼18
설교: 이재철 목사 (주일 설교말씀 1997년 9월 14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 가신지 사흘만에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사실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이른 새벽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발라드리기 위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깜짝 놀란 그녀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뛰어가 그 사실을 알렸고, 거의 모든 제자들이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허탄하게 여기며 믿지 않은 가운데, 베드로와 요한만은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가 정말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다는 마리아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와 요한은 별 생각없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를 깨닫지도, 깨달으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3년 동안이나 주님의 제자로 주님을 따랐건만, 그리고 주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그 엄청난 사실을 자신들의 두눈으로 직접 확인하였건만, 아무 생각없이 베드로와 요한이 그냥 자기 집으로 되돌아가는 그 순간, 그들과는 정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등뒤로 하고 오는 주님의 무덤을 되찾아가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 였습니다. 그녀만은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것을 안 이상 그냥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막달라의 비천한 창녀였던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 새로워진 자신의 삶을 생각할 때, 그녀는 비록 비어있을 망정 주님의 무덤을 되찾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마땅히 그곳에 있어야할 시신이 사라져 버린 무덤으로 되돌아간 막달라 마리아는 그곳에서 무엇을 하였습니까? 본문이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무덤밖에 서서 울고있더니(11a)"

그곳에서 마리아가 할수있었던것은 그저 우는것 뿐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울다'는 동사 klaio는 단순히 울먹이거나 혹은 소리없이 흘리는 눈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땅을 치며 소리를 내어 통곡하는 것, 간장이 끊어지듯 애곡하는것을 뜻하는 동사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으로 되돌아간 막달라 마리아는 땅을 치며 통곡하고 애곡하였습니다. 이른 새벽 아직까지 거의 모든 예루살렘 사람들이 잠들어 있을 시각에, 골고다 언덕으로부터 새벽의 정적을 찢으며 울려 퍼지는 막달라 마리아의 울음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이 세상에서 가장 천하다는 창녀였기에 남편도, 자식도, 번듯한 친구 한 명도 없었을 그 가련한 여인이 울부짖는 애곡소리는 얼마나 애절합니까? 막달라 마리아는 그렇게 통곡하고 또 애곡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막달라 마리아는 왜 이렇듯 슬피 목놓아 울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단 한가지―그녀가 구세주로 믿고 사랑하던 주님의 시신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제기해 보겠습니다. 만약 이날 새벽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속에 그대로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랬었다면 그녀는 결코 이처럼 울부짖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본래 계획했던 대로, 가지고 간 향품을 예수님의 시신에 정성스럽게 발라드렸을것입니다. 예수님의 장례식후 예수님의 시신을 찾은 첫 번째 사람이 자신임을 알고서는 어쩌면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되었을 경우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겠읍니까? 막달라 마리아가 이날 아침 통곡치도 않고 애곡치도 않는 대신 그녀에게는 영원한 소망도, 영원한 생명도, 영원한 구원도 결코 주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무덤속에 시체로 누워 썩어 가는 예수님이라면 절대로 영원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일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학자 Lenski는 본문을 주석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까닭에 울었으나 만약 그날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속에 있었더라면 그녀와 우리는 영원히 울게 되었을 것이다."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속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생명과 부활의 종교인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외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생명을 지닌 우리는 언젠가 슬피 울며 이 땅에서의 삶을 절망 가운데에서 마감하고 말 것입니다. 이 땅은 소망도 구원도 없는 거대한 공동묘지 이상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가 갔을 때 예수님의 시신은 보이지 않고 무덤은 비어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는 통곡하며 애곡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신이 그곳에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울부짖음은 그날 그 한시간만으로 족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녀의 통곡은 기쁨으로, 애곡은 찬양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기 때문에 그녀는 부활하신 주님을 새로이 만났고, 그 주님으로부터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한순간 목이 쉬도록 통곡할망정 에수님의 시신은 그곳에 없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속에 없었기 때문에 그 분은 무덤과 죽음을 뛰어 너머 우리의 부활, 우리의 생명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그곳에 없었기 때문에 부활하신 그분은 지금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시신이 그곳에 없었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 곁에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그분의 기쁨으로 우리를 위로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시신이 그곳에 없었기에 그분은 절망에 빠진 우리를 일으키사 소망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시신이 그곳에 없었기에 주님은 오늘도 우리 앞에서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만약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을 때 예수님의 시신이 그곳에 있었더라면 이 모든 일은 전혀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금년 1월 2일 미국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대학 동창생으로부터의 전화였습니다. 새해 첫날부터 목사인 저로부터 축복기도를 받고싶어서라고 했습니다. 그때가 미국시간으로는 1월 1일 이른 아침이었던 것입니다. 작년 5월, 대학을 졸업한지 25년만에 미국에서 만났을때만해도, 그때가 자식을 잃은 직후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에 대해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친구였기에, 새해 첫날 이른 아침부터 기도를 받기 위해 미국에서 한국으로 다이얼을 돌렸다는 그의 전화는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친구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를 드린 다름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한달 여가 지났을 때 그 친구로부터 장문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십대 갱단의 총격으로 잃었을때의 울분과 비통, 복수의 칼을 갈며 술독에 빠져있을때의 고통과 번민 등을 그는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었습니다.

"친구여! 고백하건대 지난 1년 남짓동안, 난 사실상 이 땅에서의 삶을 끝장내기 위해 나름대로 마음 준비를 단단히 했었네.

혼자서 마음속으로 무수히 맹세하며 부르짖었지―`장렬한 최후를 갖자. 아들의 생명을 앗아간 갱 집단을 반드시 내 손으로 처단하고 내생의 끝을 맺어버리자. 비록 홀로 복수 극을 벌릴 힘과 자금과 조직이 내게 없을지라도, 늙어 가는 이 몸이나마 온 세포 온 마디마디를 갈고 닦고 곧추세워 그놈들을 죽인 뒤 장렬하게 사라져 버리자'고 말일세. 반드시 원수들의 간을 꺼내 내입으로 씹어야겠다는 일념에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절치부심하면서 독주만을 퍼 마셨다네. 나이 들어가는 몸에 밤낮 독주를 들이붓다보니 오장육부마저 다 망가져 모진 설사와 구토가 계속되었지만, 그러나 술없이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네. 그것도 아들녀석이 피살당했던 그 현장에 차를 세워놓고는 차속에서 독주를 들이키는것이었지. 말하자면 나로서는 매일 죽은 아들을 위해 치르는 의식이었던 셈이지―.`아가야, 내 꼭, 이 못난 아비가 반드시 네 원수를 갚아줄께. 그리고 난후 네가 있는 곳으로 가마. 암! 이 애비가 반드시 복수를 해주고 말고'―이런 독백을 안주 삼아서 말일세. 정신을 잃을 만큼 퍼마신 상태에서 차를 몰고 집으로 가다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어 수갑을 차고서 수감된 것도 세번씩이나 되었다네. 그럴수록 아들을 죽인 놈들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는 더욱 불타올랐지.

어느 날 불한당 같은 갱단의 총격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버린 아비의 심정이 어찌 이와 같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이 친구의 편지를 읽으면서 흐르는 눈물을 몇 번씩이나 닦아야했던것은, 아들을 빼앗긴 아비의 비통한 심정 때문만이 아니라,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이 친구가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 아니 이 친구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었습니다. 무려 16장에 걸친 그 친구의 편지는 그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얻은 주님의 사랑, 주님의 평강, 주님의 은총 그리고 주님께서 주신 삶의 기쁨을 고백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었습니다. 실로 믿기 어려운 대 반전이었습니다.

올 4월 코스타리카를 다녀오는 길에 그 친구를 미국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 친구는 작년에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더 이상 복수의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더 이상 증오의 화신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들을 죽인 갱들을 이미 용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며 위하여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비록 아들이 이 땅에서 비명에 갔을망정 영원하신 주님의 품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어있었습니다. 참으로 신비스럽기 짝이 없는 주님의 구원의 대역사였습니다.

만약 막달라 마리아가 안식후 첫날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을 때 예수님의 시신이 그 무덤속에 그대로 있었다면, 그 친구에게 이 신비스러운 대 역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것입니다. 만약 시신이 그곳에 있었다면 막달라 마리아는 그날 아침 통곡치 않았을 것이지만, 그러나 이 친구는 육체도 마음도 영혼도 영원토록 고통속에서 번민하며 울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친구가 증오심과 복수심, 고통과 번민, 괴롬과 슬픔으로부터 진정 자유하는 그리스도인된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날 무덤에 계시지 않던 주님, 무덤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친구의 곁에서, 그 친구의 앞에서, 그 친구의 안에서, 그 친구와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전도자인 동시에 시인이었던 톰슨은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 되시니
구주예수 떠나가면 죄중에 빠지리
눈물이 앞을 가리고 내맘에 근심 쌓일때
위로하고 힘 주실 이 주 예수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소망되시니
이 세상을 떠나갈 때 곧 영생얻으리
한없는 복을 주시고 영원한 기쁨주시니
나의 생명 나의 기쁨 주 예수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을때 예수님의 시신이 여전히 그 무덤속에 있었더라면 어찌 그분이 오늘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분이 지금 나의 힘, 나의 소망이 되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모든 이유는 하나 - 그분은 무덤속에 누워계신 시신이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즐비하게 늘려있는 무덤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 또한 새로와져야 합니다. 누구든지 무덤을 보면서 그 속에 누워있는 시신만을 생각하며 슬퍼하는 자라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무덤속에 누인 시체는 결코 시체 그대로 존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땅속에 묻힌 모든 시신은 썩어져 흙으로 화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무덤은 언젠가는 시신이 소멸해버린 빈 공간, 빈 무덤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시신을 안장한 무덤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미래의 빈 무덤에 불과한 것입니다. 시신을 장사지내건만 언젠가는 그 속이 텅비어버리게될 무덤―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얼마나 위대한 주님의 메시지입니까? 시신이 썩어 없어진 그 빈 공간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이 차고 넘치는 참 생명의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덤은 끝이 아니고 시작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누구든지 무덤을 보고서 그 속에서 썩어지는 시체가 아니라, 그 육체를 떠난 영혼이 그리스도안에서 누리고 있을 영원한 생명을 보고 느끼는 자가 있다면, 그는 두말할것도 없이 참 그리스도인인것입니다.

작년 말에 소천하신 저의 어머님은 생전에 당신이 입으실 수의를 친히 준비해두셨습니다. 그리고 생각나실 때마다 당신의 수의는 어디에 들어있노라 일러주시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수의를 한번도 직접 본적이 없었던 저는 어머님의 수의도 일반수의와 같으려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막상 어머님께서 소천하신뒤 어머님의 수의를 직접보고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비단으로 만들어진 그 수의의 색깔이 일반적인 통념을 깬 분홍색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연유를 아내는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이야말로 그토록 사랑하던 주님을 친히 뵙는 순간임을 분명히 믿고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신랑을 맞는 신부의 심정으로 주님을 뵙겠다는 신앙고백의 증표로 당신의 수의를 친히 분홍색 비단으로 만드셨던 것입니다

저는 추석을 맞이하여 내일 부모님의 산소를 찾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35년전에 돌아가신 아버님의 시신을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머님의 시신에 입혀졌던 분홍색 수의를 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시신과 수의를 뛰어너머 기도하시던 중 운명하실정도로 주님을 사랑하셨던 아버님, 분홍색 수의를 친히 만드실 정도로 주님을 그리워 하셨던 어머님 - 그 두분이 그리스도안에서 지금 누리고 계실 영원한 생명의 기쁨에 동참할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부모님의 산소를 찾는 진정한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추석을 맞이하여 단순히 조상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무덤을 찾는 어리석은 짓은 이제 그만 두십시다. 8월 첫째주일에 베드로전서 3장과 4장 그리고 사도신경 원문을 통하여 깊이 생각해 보았듯이, 음부에 내려가시어 음부에 있는 영혼까지 품어주신 참 구원의 주님, 영원한 생명의 주님을 만나기 위해 무덤으로 나서십시다. 돌아가신분들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누리고 있을 참 생명과 그 생명의 기쁨에 동참키 위해 무덤으로 향하십시다. 우리는 그곳에서 이천년전 무덤을 이기시고 부활하시사 지금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주님, 나의 힘 나의 소망 나의 생명이 되신 주님을 친히 뵐 것입니다. 그래서 조상의 죽음을 통해 참생명의 의미를 깨닫게해주는 추석이야말로 주님께서 이 민족에게 주신 크나 큰 선물입니다.

기도 드리시겠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 때문에 통곡하고 애곡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날 주님의 시신이 그곳에 있었더라면, 그녀와 우리는 영원히 울어야만했을 것입니다. 우리민족을 사랑하시사 추석을 허락하시고, 죽음과 무덤의 의미를 깊이 생각케 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조상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부까지 품어주신 생명의 주님을 만나기 위해 성묘길을 나서게 하옵소서. 고인들이 그리스도안에서 누리고 있을 참 생명과 그생명의 기쁨에 동참키 위해 귀향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거기에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우리의 힘, 소망, 생명, 기쁨이 되시는 주님을 친히 뵈옵게 하옵소서.

이 추석을 기하여 우리의 통곡이 그리스도안에서 정녕 기쁨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추석이 단순한 민족명절이 아니라, 신앙인의 영원한 축제일이 되게 하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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