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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를 보았다

요한복음 최용우............... 조회 수 1530 추천 수 0 2009.01.13 21: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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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20:1-118 
설교자 : 이재철 목사 
참고 : 주님의교회 

한 성도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주관되는 여러 행사가 나름대로 다 은혜스럽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것은 초신자들을 위한 학습 세례식이라고 말입니다. 이유인 즉은, 만약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더라면 본래 불신자였던 그 분들이 언제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참 생명을 얻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주님의 교회'로 인해 이미 주님을 믿던 분들의 믿음이 더 성숙해진 경우도 있습니다. `주님의 교회'가 미래 교회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주님의 교회가 이 땅에 있어야 할 단 하나의 본질적인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이 땅에 많은 교회가 있는 가운데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를 하나 더 세우신 것은, `주님의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하실 영혼들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교회'가 아니라면 참 생명을 알지 못한 채 오히려 자기의 생명을 갉아먹으면서 오랫토록 방황할 영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이 땅위에 또 하나의 교회인 `주님의 교회'를 세우신 절대적인 이유입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절대적인 이유가 죄 가운데에서 죽어 가는 인간들에게 영원한 생명, 참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요한복음 20장 31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록된 성경을 주신 이유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생명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땅에 있는 교회의 절대적인 존재 이유 역시 이 생명으로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욕망과 탐욕에 찌들어 하루 하루 죽음을 향해 행진하고 있는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생명의 한 가운데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의 행사중 초신자를 위한 학습 세례식이 가장 감동적이라는 그 성도님의 의견에 우리는 전적으로 동조치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의 행위 중 무엇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겠습니까? 우리의 어떤 행동이 하나님께 가장 감동적일 수가 있겠습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이 생명으로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진리로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고, 생명을 주셨고, 교회를 주셨고, 가정을 주셨고, 일터를 주셨고, 무엇보다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이 생명의 증인, 이 생명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이에 따라 우리 생명의 의미와 가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지 사흘째 되는 날 이른 새벽,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발라 드리기 위하여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다가, 응당 그곳에 있어야 할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으므로 인하여 무덤 앞에서 통곡하고 애곡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측은한 막달라 마리아에게 친히 나타나셨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부활은 상상치도 못한 채 단순히 묘지 관리인인줄만 알았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마리아의 이름을 다정스레 불러 주셨습니다.

"마리아야!"

그제서야 막달라 마리아는 비로소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말하자면 그녀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뵙는 첫 번째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때 막달라 마리아의 기쁨이 얼마나 컸겠는지에 대하여는 지난 주일 상세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은 그 이후의 일을 이렇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막달라 마리아는 그 길로 제자들을 찾아가 외쳤습니다.
"내가 주를 보았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막달라 지방의 천한 창녀였던 마리아는 이 이전까지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주님을 믿던 사람이었습니다. 창녀였던 자신이 주님을 만나므로 인하여 주님으로부터 얻게 되었던 평안, 위로, 소망, 새 삶으로 인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이 순간부터 타인에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을 깨트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 생명을 증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내가 주를 보았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녀는 거침없이 생명의 통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부활의 첫 증인이기에 주님의 부활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막달라 마리아는 본문 18절을 끝으로 요한복음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다시 말해 요한복음이 이 이후 막달라 마리아가 어떻게 여생을 보내었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치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요한복음의 카메라의 촛점이 막달라 마리아에서 제자들에게 옮겨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막달라 마리아가 여생을 어떻게 살았겠는지를 보여주는 실례가 이미 요한복음에 소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수가성에 살던 한 여인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5명이나 되는 여자였습니다. 말하자면 창녀였던 막달라 마리아와 다를 바가 조금도 없는, 비천한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이 어느 날 우물가로 물을 길으러 갔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이야말로 유대인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구원자 되신 메시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임을 알았습니다.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므로 마치 시체와도 같이 부패했던 그녀의 삶은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새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어 주신 참 생명의 능력과 기쁨을 그녀는 자기 홀로만 간직하고 있을 수가 도저히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4장 28절로 30절이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리에 들어가서 사람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저희가 동리에서 나와 예수께 오더라."

여인은 물동이를 우물가에 버려둔 채 동리로 뛰어 들어가 외쳤습니다. 그 요지는 바로 두 가지였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그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담고 그 생명을 증거 했을 때 동리 사람들이 그녀를 따라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한번의 증거로 만족하고 증언을 그쳐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 39절이 이렇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 하므로 그 동리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그 여인은 한번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그 이후로 계속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로 인하여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 얻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을 충실히 수행했다는 의미에서 한때 사람 같잖았던 이 여인은 누구보다도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셈입니다.

이 수가성 여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의 여생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수가성 여인이 그 정도로 사람을 살리는 역할을 해내었다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첫 증인이 된 막달라 마리아야 두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날 이후 그녀는 만나는 사람에게 마다 말했을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그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녀는 본래 인간의 생명을 갉아먹던 창녀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인간을 살리는 생명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그 변한 참 생명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왔겠습니까? 사람을 살리는 그녀의 여생이 얼마나 값지고 보람되었겠습니까? 사람을 살리는 그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웠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그녀야말로 진정한 교회요, 참된 교회였습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라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즐겨 행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서두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누가복음 15장 4절에서부터 7절에 걸쳐 답변해 주고 계십니다.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100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 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길을 잃고 죽음의 벌판을 방황하는 양 한 마리를 찾아내는 것,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죄인 한 명을 생명의 길로 인도해 내는 것, 즉 사람을 살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하여 계곡 낭떠러지마저 마다 않고 찾아 나서는 목자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숭고하고 거룩한 사랑의 모습입니까? 내가 참 생명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일뿐만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거룩하고 숭고한 사랑의 사람으로 가꾸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 더 귀한 일은 없습니다.

올 초에 한 구역장님이 이색적인 제의를 했습니다. 자기 구역에는 부부동반으로 참석하는 가정이 여섯 가정인데, 이 여섯 가정이 이런 목표를 세웠답니다. 올해 내로 각 가정이 반드시 한 가정씩을 주님께로 인도하기로 하고, 그 목표가 달성될 때 자축연을 갖기로 했는데 그때 꼭 참석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목표의 달성 여부를 떠나 그 뜻 자체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저는 흔쾌히 그러겠노라 대답했습니다.

지난 주초에 그 구역장님이 찾아 왔습니다. 여섯 가정으로 출발한 구역이 목표를 초과하여 부부동반으로 참석하는 가정만 17가정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그 분의 말을 들으면서 그 구역식구들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생각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불과 몇달동안 6가정이 17가정으로 늘어나기 위해서는 구역식구들이 얼마나 기도했겠습니까? 모두 한 마음 한 믿음을 갖지 않고서야 한 가정도 빠짐없이 그 일을 해 낼 수 있었겠습니까? 믿지 않는 가정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그 구역식구들이 얼마나 본이 되는 삶을 살았겠습니까? 본래 6가정의 삶이 전혀 그리스도인 답지 않았다면, 불신자들이 볼 때에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면, 그 분들의 인도로 어찌 11가정이나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왔겠습니까? 6가정이 수개월만에 17가정으로 늘어났다는 것은 바로 그 구역식구들이 생명의 삶을 살았음을 증명하는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생명만이 생명을 깨웁니다. 생명만이 생명을 이끕니다. 생명만이 생명을 살립니다. 이제 월말이 되면 저는 그 구역의 자축연에 참석하여 그분들의 기쁨에 동참함과 아울러 그분들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직접 보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 2장 19절∼20절을 통해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께서 오실 때에, 그 분 앞에서, 우리의 희망이나 기쁨이나 자랑할 면류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야말로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입니다."(표준새번역)

사도 바울은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을 향해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이 주님 앞으로 인도해 낸 사람들,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게 한 사람들 뿐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이요, 그것만이 자신의 삶을 숭고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길임을 사도 바울은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어떠하십니까? 여러분들은 몇 사람이나 생명이신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해 내었습니까? 하나님에게 자랑할 사람의 명단이 얼마나 됩니까? 혹 여러분에게 아직 하나님께 자랑할 명단이 없다면 그것은 여러분들이 주님의 진리와 생명을 입으로만 전할 뿐, 여러분의 삶으로 증명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닙니까?

마태복음 25장에는 유명한 달란트 비유가 나타나 있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각각 달란트를 나누어 준 뒤 세월이 흐른 뒤에 그 달란트로 얼마나 남겼는지를 셈한다는 내용입니다. 자칫하면 이 비유를 달란트의 양적 관점에서만 잘못 이해하기가 쉬운데 그것은 본문과 전연 동떨어진 관점입니다. 마태복음 25장 전체의 주제는 `생명'입니다. 누가 참 생명을 소유하고 있으며 누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생명으로 인도하는지를 설명하시는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열 처녀 비유',`양과 염소의 비유',`마지막 심판 비유'와 더불어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달란트 비유의 핵심은 달란트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달란트를 도구로 삼아 얼마나 많은 사람을 생명으로 인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호흡을, 가정을, 일터를, 물질을 주신 까닭은 그 모든 것을 통해 사람을 살리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셈하실 때에는 우리에게 맡기신 달란트 자체를 셈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달란트를 선용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렸는지 그 머릿수를 셈하시게 됨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을 잊지 않을 때 우리는 최소한 비인격적인 물질 때문에 사람을 해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으며, 나아가 내게 맡겨진 모든 달란트를 동원하여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를 우리 삶 속에 실제로 적용해 보기 위하여 올 봄 각 구역에 20만원씩을 나누어 드렸고, 이제 그 마감일이 10월 말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더 많은 달란트를 남기는 사업적 수완을 배양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모든 달란트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지 스스로 성찰하기 위함입니다. 내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도구로 쓰여지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함입니다. 나의 궁극적인 관심이 사람을 살리려는 생명인지, 아니면 사람을 죽이려는 욕망인가를 가려보기 위함입니다. 오늘이라도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면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명단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 보기 위함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나의 삶이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신앙 간증인지 아니면 불신의 웅변인지를 확인키 위함입니다.

"우리 주께서 오실 때에, 그 분 앞에서, 우리의 희망이나 기쁨이나 자랑할 면류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야말로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내일이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면 우리는 과연 준비되어 있습니까? 우리가 정녕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들이라면 지금부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자랑거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의 생명을 생명으로 살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참 생명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 드리시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달란트로 사람을 살리기보다는, 그 달란트때문에 오히려 사람을 해치는 우를 더 많이 범했습니다. 사람의 생명에 관한 한 우리의 인생의 손익계산서는 언제나 붉은 적자 투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고 맡겨 주신 달란트로 한 사람이라도 더 사람을 살리는, 진정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해 주십시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생명이신 주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우리의 삶 자체가 `내가 주를 보았다'`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생명의 간증이자 진리의 찬양이 되게 해 주십시오. 세월이 흘러 갈수록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자랑 거리가 쌓여 가게 하시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게 해 주십시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으로 떠나가기까지,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도구 되는 삶보다 더 값지고 더 거룩하고 더 아름다운 삶이 없음을, 오직 그 삶만이 영원함을 망각치 않고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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