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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오바고 영성

사도행전 최용우............... 조회 수 7963 추천 수 0 2005.05.28 09: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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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17:24-26 
설교자 : 김경재 목사 
참고 :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도입

   지난 무더웠던 여름, 아테네에서는 38도 보다 더 뜨거운 올림픽 메달경쟁이 있었습니다. 올림픽 성화가 꺼지고 난 요즘, 큰 대사를 치루어낸 그리스인들은, 지금은 가난해도 그 옛날 찬란했던 조상들의 문화적, 예술적 긍지를 느끼며 우리나라 상암
경기장처럼 돈 들여 새로 지은 경기장들의 효율적 관리이용에 맘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 100년 만에 발원지 아테네 올림픽제전은 테러도 없었고 큰 불상사는 없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재정적자 결산을 낸 올림픽이라고 우울한 소식지 전해지기 때문에, 가난한 그리스 국민들의 이마 주름살을 더하게 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테네 경기 도중 내내, 선전 포스터는 다름 아니라, 우리 눈에도 익은 아크로폴리스 언덕위에 기둥만 남은 파르테논 신전의 문화재 유물이었습니다. 3단 기단 위에 건축물을 떠받히고 있던 17개 직사각형 클로네이드 열주 17개의 남은 돌기둥만으로도 여전히 파르테논 신전의 건축학적 조형미, 조각기법, 대칭미, 주위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공간 배치 등이 자아내는 종교적 엄위와 미학적 아름다움으로 온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관광객들을 유치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다 허물어진 오늘의 파르테논 신전의 문화재가 그러하거든 하물며, 사도 바울이 아테네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당시에 웅장하고도 신성한 감정을 자아내던 파르테논신전의 위용을 우리는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 것 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아침 우리의 관심은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남은 문화재 파르테논 신전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북서 방향으로 약 1500미터 거리에 위치한 낮은 언덕 아레오파고입니다. 주후 1세기 이 아레오바고에는 시민법정 기능과 시민 공개토론 광장 기능 두 가지 복합기능을 감당하는 공회당과 열린 마당이 있었고, 사도바울은 ‘십자가와 부활의 도’를 전하는 기소당한 신분으로 거기에 서 있었습니다. 지금은 잡초만 우거져 형적도 없이 사라진 아레오바고 공회당 자리에는 사도행전 17장을 기억하면서 찾는 관광객들에게, 이곳이 바로 그곳이라고 알리는, 사도행전 17장 성경 본문을 그리스어로 양각하여 세워놓은 베니어판 크기의 아테네 문화재관리국이 세워 논 안내판이 있을 뿐, 전혀 사람들 눈에 뜨이지 않게 가려진체 잊혀지고 있습니다.

   저는 여름 내내, 올림픽 뉴스가 방영되는 시간마다, 아나운서가 저 파르테논 신전에서 1500미터 떨어진 지점엔 저 유명한 사도바울이 아테네 시민에게 기독교 복음을 변증하던 아레오바고 언덕도 있습니다 라고 안내해준다면 얼마나 멋있을까 라고 상상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기독교인이래서가 아니라, 인류정신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남은 파르테논 건축물은 건축미학 상 인류의 문화재유물로서 가치가 있을 뿐이지만, 아레오바고에서 행한 바울의 강론은 그것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진리와 21세기 종교 문화의 영성이 나아갈 지표를 설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나 이제나 세상은 언제나 그런 것입니다. 감각적 오관에 호소하는 외형적 업적물에 사람은 관심을 쏟는 법이고, 감각을 넘어서 있는 영원한 초월적 진리엔 둔감하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높은 산봉우리에만 눈을 주지만, 산봉우리를 있게 한 깊은 계곡은 잘 생각하지 않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입니다. 파르테논신전은 감각적 눈을 즐겁게 하는 ‘눈의 종교’를 상징하지만, 바울의 아레오바고는 진리를 듣고 진리에 순명 해야 하는 ‘귀의 종교’를 대표합니다.

[2] 아레오바고에서 들려진 복음의 진리

   바울이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행한 진리 강론의 핵심 세 가지는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현존처를 가르칩니다. 바울이 이르기를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거하지 않으시다는 것”(행17:24)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눈을 들어 보기만 하면, 아테네 시민들이 신성시하고 긍지를 느끼는 저 휘황찬란하고도 엄위로운 파르테논 신전이 눈앞에 버티고 있는데, 바울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참 하나님은 인간이 지은 신전 같은 건축물 안에 거주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갈파합니다. 더 적극적으로 말한다면 하늘과 땅의 우주공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담을 자리가 없기 때문에, 다석 유영모 님의 역설적 표현을 빌리자면 참 하나님은 ‘없이 계신 이’요 ‘비움으로 충만하신 이’요 ‘아니 계신 듯 계신 이’ 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아레오바고 진리 강론이 이미 있었고, 사제들은 사도행전 17장을 읽을 줄 알면서도, 2,000년 동안 기독교 역사는 파르테논 신전보다도 더 훌륭한 성전을 지어서, 하나님을 더 영구히 독점적으로 거주하게 하려는 어리석은 시도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중세기 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요즘도 그런 유혹은 끊임없이 다가오는지라, 큰 교회 건물 짓는 일에 헌금의 많은 부분을 사용해버리는 한국 개신교인들에게 도리어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가?’ 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경지가 되고 있습니다.

   둘째, 오늘 본문은 하나님은 어떤분이신가를 말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부족한 것이라도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행 17:25)는 것입니다.

   위대한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 제1조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옛날 세례문답 때 흔히 질문받던 요리문답 말입니다. 질문은 “사람의 제1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위대한 질문이고, 중요한 질문입니다. 언제나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염려하면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경이 근원적으로 묻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그 정답은 무엇입니까? 정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피조물의 가장 정당한 길은 창조주를 찬양하고, 감사하고, 진선미를 행하며, 신비한 생명을 거듭거듭 놀라운 탄성과 함께 음미하며, 자신을 향유토록 내어주시는 그 은총을 받아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 이라고 조상들은 가르쳤습니다.

   거기엔 조금도 하나님을 지켜드리고, 위해드리고, 물질로써 만족시켜 드린다는 따위의 생각은 없습니다. 이라크에 파병하여 적군을 무찌르고, 친미반공연맹을 더욱 강화해서 하나님을 안심시켜드리는 것이 옳다는 그런 생각도 없습니다. 열심있는 기독자들과 진리를 파수하는 성직자들과 신도들의 하나님을 보위해드려야 한다는 ‘경건한 망상’과 ‘거룩한 탐욕’이 오늘날 하나님 얼굴에 도리어 먹칠을 하고 십자가의 도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고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시요,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기동하면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바울 강론의 핵심입니다.(행 17:25,28)

   하나님은 앞에서 말한 대로 ‘없이 계신 하나님’이시요 ‘비우심으로 충만하신 분’이지만, 굳이 피조물 가운데 임재하기를 선택하신다면 돌벽돌과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만든 신전에 임재하시기엔 너무나 존귀한 분이십니다. 오직 한 곳 만을 택하시는데 그것은 사람의 생명 한 복판 ‘맘의 지성소’에만 임재하기를 원하시고 허락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성전은 45억년 걸려 지은 성전이며, 하나님을 닮았기에 열면 우주가 다 들어와도 헐렁헐렁하지만, 닫으면 바늘하나 꼽아둘 수 없는 신묘한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맘의 지성소’는 하늘과 땅의 모든 영기가 응어리져 열매 맺은 알곡의 배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가장 순수하고 온전한 것을 찾으시는 까다로운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맘 중에도 민초들의 맘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전에 역사엔 하나님 나라가 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역사참여와 역사변혁을 말하고, 자연 생태계를 말하지만, 하나님의 임재장소는 역사도 아니고 자연 생태계도 아닙니다. 오직 사람의 신령한 맘 뿐이며, 그분은 그 흙더미로 빚어진 피조물이 작은 입을 벌려 자기를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사건 속에서 가장 크신 영광을 맛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교계와 인류문명이 크게 환골탈퇴 하기 위해 진통을 하는 요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 신앙인으로 자문자답하게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거짓 없는 신실한 맘으로 조용히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실한 맘으로 믿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믿는 일이 곧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이다 라고 하셨지요. 세상에 이런 저런 많은 종류의 일이 있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가장 크고 근원적인 한 가지 일 밖에 없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잘 믿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무슨 이런 저런 많은 일을 하나님 위해 해드려야 하는 것인줄 금방 착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것이 아니고, 자기를 낳아준 아버지 어머니에게 당신은 나의 아버지시요 어머니이십니다 라고 감사한 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무슨 어려운 일일까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게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믿음이란 보험 들어두는 것처럼 적당하게 믿는 것이 아니라면, 예수처럼 온전하게 믿는 자리에로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는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신 바 있는 그 예수님을 정말 사랑하고 존경하고 그분 말씀에 순명해야 합니다. 인생 살아보면 볼수록, 인자 예수 같으신 분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마디로 단언하건데, 예수님을 맘과 뜻을 다해 진솔하게 사랑하지 아니하는 우리,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가 못된 사람들이요 죄인들입니다. 맘이 간악하고 인색하고 이기적인 존재들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을 통해 더러워진 우리 맘의 본래 모습을 닦아주신 예수, 죄많은 여인이 옥합을 깨트려 머리채로 그의 발을 감싸며 울게 할 만큼 여인을 사랑했던 예수, 세리 취급 받으면서 고독하게 살던 삭개오를 신명나는 사람으로 변하게 그를 불러주시고 격려하신 인자 예수, 마지막 밤 발 씻는 본을 보이시며 당신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성례예식을 남겨주신 예수, 그에게 창을 던지는 자를 위해 용서를 구하시는 예수, 베드로 같이 거듭거듭 약속을 배반하는 사람을 다시 찾아주시는 예수, 기어이 역사를 하나님 나라에로 변질시키고야 말겠다고 큰 서원을 하신 예수, 그 예수님을 우리는 믿기만 하지 말고 진정으로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명해야 합니다.

   예수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의 계명을 지켜야 하는데, 그것이 그를 사랑하는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킬지니, 나의계명을 지키는 자를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고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셨지요.

   셋째, 절대로 현재를 어둡게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심정으로 삶을 사랑하고, 고통과 고난 속에서 아파하는 뭇 생명있는 것들과 연대의식을 가지고, 힘 닿는 대로 함께 나눔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나의 작은 선행이 역사의 거대한 구조적 악을 어떻게 변화시키며,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라고 작게 생각해서는 아니됩니다. 테레사 수녀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 혼란해진 세계 속에서 우리는 다시 ‘아레오바고 영성’을 되찾아 삶을 사랑하고, 세계를 긍정하면서 힘차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http://saegilchurc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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