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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주시는 하나님

사도행전 최용우............... 조회 수 1817 추천 수 0 2008.03.10 13:2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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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5:31 
설교자 : 김남준 목사 
참고 : 열린교회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행5:31)

I. 하나님과 세계

하나님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와의 존재적 관계는 인간의 영혼과 육체의 존재적 관계와 흡사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압니다.
우주의 크기는 우리가 산술적으로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엄청납니다. 그러나 우주의 맨 끝이라고 해도 하나님을 벗어 날 수 있을까요? 온 우주 안에 하나님 밖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 높고 높은 별부터 이 낮고 낮은 땅까지 모두 뒤진다고 할지라도 거기서 하나님을 발견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세계와 초자연적인 신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말 가운데 범신론이 있습니다. 불교, 동양의 종교들이 대부분 범신론입니다. 불교는 범신론의 극치 아니겠어요? 이 모든 세계가 곧 신과 맞닿아 있고 신과 같은 본질인데 형태만 계속 바뀌어 갈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그런 점에서 모든 세계가 하나님 안에 포섭되어 있다고 하는 점에서는 범신론과 상당히 유사한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차이점은 온 우주는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을 벗어날 수 없이 하나님 안에 포섭되어 있지만 그중 어느 것도 하나님 일 수 없다는 것이 범신론과 뚜렷한 구별점입니다. 이 모든 세계가 하나님 안에 있으나 하나님 자신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 일 수는 없지만 모든 세계는 하나님 안에 있다고 하는 것을 가리켜서 내재신론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아주 독특한 신앙을 형성합니다. 안 계신 곳 없이 계시지만 아무데도 안 계신 하나님, 아무데도 안 계시지만 그러나 어디에든지 당신이 계신 증거를 남기시는 하나님, 이런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함께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를 보면서 하나님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작은 미생물로부터 시작해서 광활하고 끝없는 우주에 이르기까지 한없이 펼쳐집니다.
하나님의 거소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를 혼란시킵니다. ‘하나님을 여기 계시다 저기 계시다 말하지 말라 하나님은 바로 너희 안에 계시느니라.’(눅17:21) 전작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는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너희 안에는 없고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분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이러한 세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나면 조금도 혼란스러울 것이 없고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이 이 모든 세계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친밀한 교통을 느끼고 동시에 어느 피조세계도 하나님은 아니기 때문에 또한 하나님이 내 안에 있고 내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갈망하게 됩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초월성과 역사성을 형성하는 단초(端初)가 됩니다. 하늘의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을 믿게 되었지만 살아가는 것은 이 땅입니다. 이 땅에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이 우리가 딛고 사는 이 세계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면서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론적인 거소를 단초로 해서 기독교 속에 두 개가 하나의 큰 맥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역사성과 초월성입니다. 이 시간과 공간 안에 주어진 이 삶을 아주 사랑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이 세상을 사랑하면서 이 안에 구현되는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절대로 하찮게 생각하지 않고 영원한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힘을 동시에 이 땅 자신에서 공급받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인 하나님, 그분에게로부터 부어지는 신비스런 신앙을 통해서 우리가 공급받으며 살아갑니다. 기독교인은 현실주의자가 되기 위해서 신비주의자가 되어야 하고 진정으로 신비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현실적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II.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A. 하나님 안에 있는 인간적 생명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며 사는 사람들에게 초월적인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셔서 이 세계에 있는 모든 사물과 인간과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그 맺으신 관계는 매우 특별한 관계입니다. 식물의 생명현상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을 식물생물학이라고 하고 동물은 동물생물학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인체생리학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생명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조절 작용들은 결국 하나의 목적을 향해 갑니다. 전체적인 것을 통솔하는 그 원천적인 힘은 어디서 나오느냐 하는 것은 누구도 설명을 하지 못합니다. 저는 생명이 각각의 피조물 속에 역사하고 있는 하나님의 힘이라고 정의합니다. 생명이 하나님의 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거의 할 말이 없는 것처럼, 신학을 보더라도 하나님이 하신 일을 공부하는 것이지 하나님 자체가 무엇인가? 하나님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힘의 작용들입니다. 하나님과 피조세계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이런 것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하나님이 만드신 다음에 내팽개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하나를 하나님이 관계를 맺으시면서 당신의 힘을 여기에 작용하여 작은 식물 하나로부터 시작해서 하늘에 떠 있는 우주 천체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우주가 하나님의 힘으로 꽉 차있는 것입니다. 이 힘은 바로 하나님의 영의 움직임입니다.
1. 창조 시 : 영적 생명 안에서
창조 시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런 모든 사물들이 함께 거미줄처럼 연결을 이루면서 각기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힘인 생명을 받으면서 자연적인 교통을 이루고 영적인 교통을 이루면서 하나님의 창조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피조 세계는 물질이고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피조물과 하나님이 만나는 이 관계는 인간과 하나님이 만나는 관계보다는 간접적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육체로서는 자연과 똑같은 관계에서 하나님과 만나지만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으므로 영혼과 영이신 하나님과의 만남은 모든 피조물보다 훨씬 하나님과 가까운 본질로서의 만남이기 때문에 보다 직접적이고 이 관계가 직접적이라고 하는 사실은 인간의 존재의 의미가 창조 목적에 대해서 직접적이라는 뜻을 갖는 것입니다.
2. 타락 후 : 영적 생명 밖에서
인간이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죄가 들어오면서부터 이 모든 창조세계의 대부분의 연결이 끊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인간의 영혼 사이에 맺어졌던 이 관계는 대부분 끊어져 버립니다. 간접적인 관계들만이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죄 때문에 이 모든 세계와 맺으신 당신의 영광스런 관계를 끊으시고 이 모든 인간과 피조물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단절된 가운데 고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이렇게 당신의 충만한 영혼을 거두어 가시고 영적으로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맺은 이 관계들이 끊어졌는데, 자연적인 관계 속에서 영혼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놀라운 이점들, 지성, 추리력, 논리, 아름다움에 대한 직관, 이런 것들 중에 상당 부분을 하나님이 그냥 보존해 두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지성의 능력은 아주 뛰어나게 지니고 있으나 이것을 어떤 목적으로 향해야 될 것인가 라고 하는 도덕적인 판단의 능력은 거의 사라진 것입니다. 창조 목적 자체를 자기 자신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그리고 필요한 자원을 손에 넣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그 욕구들이 나라와 나라가 부딪히게 되면 치열한 전쟁이 발생하게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알 수 없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B. 구원하시는 삼위하나님

하나님이 이러한 상태에 있는 인간들을 차마 보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행동을 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행동입니다. 구원하시는 역사에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이 모두 여기에 참여하시는 것입니다.
1. 성부의 사랑
첫 번째 동기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신 장본인이셨습니다. 당신의 계획을 따라서 성자를 통해 성령 안에서 이 세계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창조세계는 주님이 이루신 세계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창조하신 세계가 인간에 의해 파괴되었을 때 가장 많이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세계를 말씀 한마디로 무로 돌아가게 하고, 다시 창조하시며, 인간을 빚으셔서 새롭게 하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타락한 인간을 치료하시고 망가진 세계를 고치셔서 당신의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 성자의 희생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런 사랑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인간의 죄에 의해서 타락한 이 세계를 구원할 계획을 세우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사랑 때문에 성자 그리스도는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이 모든 인간들 속에 사람의 모양으로 함께 사시고 마지막에는 그들이 지은 모든 죄를 대신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성자의 희생의 동기가 된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보이지 않는 사랑이지만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사람의 몸을 입고 내려오셔서 희생하신 아들의 사랑은 보이는 사랑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보이는 그 사랑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3. 성령의 은혜
그러나 인간을 위한 구원의 사역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성령의 참여하심으로 더욱 찬란한 영광이 나타나게 됩니다.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의 뒤를 이어서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을 실 때부터 중요한 사명을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에게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고 경험하게 만들어주시는 그 일을 위해서 성령님이 강림하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그리스도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심으로 생생하게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목격한 사람의 수는 이후에 구원받을 모든 인류의 수에 비하면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위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사역에 성령이 참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살아서 사람의 몸을 입고 계셨기 때문에 그분은 역사적인 인물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역사적인 인물이 되셨기 때문에 역사의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성령이 이후에 구원받을 인간들 속에 역사하시는 은혜는 이 기록이 아주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셨을 때에 이 기록을 통해서 사람들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렇게 탁월하신 그분이, 죄 없으신 그분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형벌을 당하는 그것이 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 자기의 죄를 회개하게 됩니다. 그때 고백하는 죄는 본질적이고 원천적인 것 죄에 대한 회개입니다. 본질적이고 원천적인 죄는 자기 존재 그 자체가 죄의 덩어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 덩어리에서 빚어진 각종 물상들의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의 반죽덩어리를 놓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됩니다. 자기가 죄악의 덩어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죄 이외에는 자기에게 아무런 선한 생각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진노를 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 자각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회심하기 이전에는 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는 것이 세상이 가르쳐준 도덕적 규범들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이것들을 안 저질렀으면 자기는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서로의 행복을 위해서 자기들끼리 만든 것입니다.
생애 최초의 회심이 구원의 결정적인 표가 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떠나서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었던 것에 대한 심오한 회개 없이는 누구든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특히 성인의 경우에는 말입니다. 깊이 회개하게 될 때 자신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이 그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자기가 당해야 할 비참한 형벌을 당하신 것을 성령을 통해서 성경의 기록으로 말미암아 생생하게 현재적으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때에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 의존적인 믿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III. 인간의 회심과 그리스도

예전에 자신의 인생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었던 모든 길들을 이제는 전적으로 포기하고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떤 혼란이 생길 수 있냐면 예전에 과연 우리가 구원을 필요로 했는가? 라는 의문이 떠오릅니다. 자기가 비참하고 멸망 받을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얼마든지 불행해지고 나빠질 수 있는 존재라고는 생각합니다. 내 인생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불행해지고 나빠질 수도 있으니 거기에 대비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인간이면 누구나 합니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이 상태가 지속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지금 불행하지 않고 행복한 사람은 이 상태가 지속되기 위해서 노력을 할 것입니다. 아니면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그 모든 것이 그 당시의 차원으로 보면 구원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치열하게 구두쇠처럼 돈을 번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돈에는 별로 취미가 없지만 지식을 많이 쌓아서 남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공부가 구원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아니면 얼굴을 예쁘게 만들어서 구원 받을 길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을 모두 버리는 것입니다.
잠시 있는 이 세상에서 통용되는 것일 뿐 나를 영원히 행복해 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존재를 다 팔아서라도 그분을 사고 싶은 것, 자신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얻게 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절대 의존적인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을 바로 가질 때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반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A. 회심하게 하심

많은 사람은 여기에서 혼란을 느낍니다. 그렇게 죄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뼈 절이게 아파보고 싶은데 그것이 마음대로 안 됩니다. 그리스도 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절대적인 믿음을 행사해 봤으면 좋겠는데 안 생긴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의 작용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해도 혼란은 생깁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의지의 신비한 관계가 드러납니다.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우리의 회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은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인간의 의식 속에서 인간의 의지와 조화된 가운데 발생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결을 따라서 역사하십니다. 그 마음은 상당부분 자기의 것입니다. 인간의 의지와 하나님의 은혜가 신비하게 결합이 되면서 인간의 책임도 면할 수 없고 인간은 스스로의 공로를 내세울 수 없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회심하고 주님 안에서 행복을 얻은 모든 사람은 자기 잘났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돌아보면 자기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는데 무엇인가 근원을 알 수 없는 하나님 사랑의 힘에 떠 밀려서 자기를 회개하고 주님을 꼭 믿도록 만들어 주셨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바로 구원 받은 증거입니다.
회개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그렇게 다루어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다루기 위해서는 정직하게 인간의 죄를 보여주고 그 죄로 말미암는 자기 자신의 비참과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단절된 가운데 살아가는, 영생으로부터 멀어진 가운데 살아가는 인간을 향해 자신의 처지가 너무 비참하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주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못 박혀 죽은 것이 유일한 길로 보여서 그 도피성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피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다루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정직하게 지적을 해서 빗겨가지 말고 깊게 참회하고 예수의 생명에 접붙이도록 정면 도전을 해야 되는데 이 사람의 관심이 있는 것이 이 세상에서 번영하는 것입니다. 그쪽으로 모는 것입니다. 신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인생을 그렇게 사느냐고 욕을 하는데도 너무 신나는 것입니다. 다 설교를 듣고 난 후 나도 성공해야지 하고 올라오는 것입니다.
진짜 필요한 것은 ‘성공도 쓸데없구나. 무릎을 꿇고 회개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인생의 태도가 바뀌는 것입니다.

B. 접붙이시는 그리스도

그렇게 회심한 사람들을 예수님께서는 머리이신 그리스도 당신에게 붙어있는 몸에 접붙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부분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로 회개하사 죄 사함을 받게 하시려고 예수님이 임금과 구주가 되셨다.” 그렇게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게 된 이유를 즉시 배워야 되는 것은 임금이신 주님의 통치에 복종하고 구주이신 주님께 감사하면서 사는 것, 그분의 생명의 원리에 접붙여 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구원받은 후에 제일 먼저 배울 것은 사랑과 복종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져서 교회를 통해 흘러들어오는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공급받으면서 살아가는 것, 세우신 질서에 복종하고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교회를 사랑하고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 일체를 이루시는 삶, 이것이 배워야 될 삶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 접붙여지게 될 때 하나님이 주시는 그리스도를 누리는 삶이 됩니다. 그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예전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일들이 삶 속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예전에는 고통을 받고 혹은 헛된 희망을 걸어보거나 혹은 그 속에서 고통의 원인이 되는 사람을 원망하고 아니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좌절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이루어진 영생의 관계를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당신의 생명을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깊이 마음을 모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은혜가 흘러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인데 하나의 은혜는 태양빛과 같습니다. 하나의 햇빛이 프리즘을 통해서 일곱 가지 색으로 찬란하게 분광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를 통해 접붙여진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는데 주어진 이 은혜가 상황과 만날 때 찬란한 빛으로 나타납니다. 그 빛 하나하나가 하나님에게는 너무나 아름다운 빛깔로 보이는 것입니다. 당신의 초시간적인 은혜가 시간과 공간에 있는 인간의 마음을 통해 상황과 맞부딪혀 발산이 될 때 그렇게 찬란한 빛깔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볼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IV.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있음

회심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주시지 않았더라면 그의 몸에 그리스도께 접붙이지 않았더라면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삶의 어떤 상황이든지 간에 그것을 통해서 자기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롬11:33) 말문이 닫혔던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분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너희의 믿음이니라”(요일5:4)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그것이 내 안에서 한없이 넘쳐나게 될 때 그것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흘러가서 세상을 섬길 때 그들은 생생하게 자신 안에는 없는 어떤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들어온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 실제의 근원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됩니다. 거기에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 구원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탁월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 그 자체가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라고 하는 자체는 우리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탁월하심을 바라보고 탁월하심이,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의 그 은혜가 얼마나 우리의 충족한 믿음의 생활을 위한 자원이 되는지를 깨닫고 그분께로만 붙어있기로 결심하는 것, 그분을 의지하고 고난이 오고 슬픈 일이 일어날 때마다 그분의 십자가를 꼭 붙들고 나의 인생의 계획이 그분의 계획안에 있는 것을 믿는 것, 그리고 그분을 사랑하고 믿고 의지할 때 오늘의 큰 고통도 결국은 내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소중한 선이 될 것임을 믿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의무는 이 물질과 번영 속에 욕망으로 치닫는 삶의 잠시 눈을 감고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많이 소유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을 가지고 마음의 평정을 찾으면서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분의 얼굴빛으로 비추는 그 은혜를 받으면서 우리들이 고난과 시련을 이기고 내 인생에 이렇게 놀라운 교통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날마다 고백 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우주 안에 가득한 그리스도의 영광, 그 모든 피조물들 위에 가장 뛰어난 예수의 탁월하심, 그 안에 우리도 있고 우리 안에 그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행복입니다.

2008-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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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 요한복음 평강이 있을찌어다 요20:19-23  이재철 목사  2009-02-02 3989
460 요한복음 주께서 말씀하셨다 요20:1-18  이재철 목사  2009-01-13 1673
459 요한복음 내가 주를 보았다 요20:1-118  이재철 목사  2009-01-13 1530
458 요한복음 만지지 말라 요20:1-18  이재철 목사  2009-01-13 1440
457 요한복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요14:27  조용기 목사  2009-01-02 1821
456 요한복음 행복하게 사는 3대 비결 요15:7-11  이한규 목사  2008-12-26 1864
455 요한복음 막달라 마리아의 복된 신앙 요20:1-18  이한규 목사  2008-12-23 2022
454 요한복음 시체 뉘었던 곳 요20:1-18  이재철 목사  2008-12-10 1417
453 요한복음 돌아오지 않는 탕자 요10:22-23  이우근 변호사  2008-12-06 1642
452 요한복음 울고있더니 요20:1-18  이재철 목사  2008-12-05 1579
451 요한복음 돌아가니라 요18:1-18  이재철 목사  2008-12-05 1459
450 요한복음 개켜 있더라 요20:1-18  이재철 목사  2008-12-05 1787
449 요한복음 막달라 마리아 요20:1-18  이재철 목사  2008-12-05 2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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