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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행2:40-47 |
|---|---|
| 설교자 : | 채수일 목사 |
| 참고 : |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
한국교회는 짧은 선교역사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성장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한국교회의 이런 빠른 성장의 배경에는 일제 강점기, 남북분단, 한국전쟁, 개발 독재와 근대화, 도시화와 산업화 등의 사회적 요인이 있습니다.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빈곤, 인구의 빠른 이동과 사회의 급격한 변화 등이 정신적 고향을 찾게 했고, 교회는 이들 정신적, 공간적 실향민들의 안식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때 대 부흥운동에서부터 시작된 성령운동이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의 중요한 배경이 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성령운동은 교회의 양적 성장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신자들에게 믿음의 확신과 소망을 주었습니다. 방언과 치유의 은사, 거듭남의 체험 등이 그것입니다. 성령운동은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차별 받던 여성들을 해방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또 교권주의적 교회질서 속에서 평신도의 능동적인 참여를 일깨우는데 기여했습니다.
성령운동이 이렇게 많은 기여를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많은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성령운동이 지나친 물량주의적 성장지상주의에 빠짐으로 인해 교인 쟁탈전을 벌려서 교회의 분열을 조장했다는 비판이 그것입니다. 큰 교회, 작은 교회, 은혜가 있는 교회, 은혜가 없는 교회 등으로 교회가 분열되고 있습니다. 또 가슴만 뜨겁게 만들었지 기독교인의 사회적, 역사적 책임을 외면하거나 무관심하게 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개인의 영혼구원에만 관심이 있지 다른 사람들 특히 고난받는 사람들의 사회적 구원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기주의자들이라는 비난도 있습니다.
한국교회 성령운동은 마치 양면에 날이 선 칼처럼, 두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교회와 신앙생활을 역동적이고 생명력 있게 일치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를 분열시킵니다. 성령 받은 교인과 못 받은 교인, 성령운동을 하는 교회와 안하는 교회, 능력을 받은 목사와 능력이 없는 목사 등으로 교회와 교인을 분열시키는 것도 성령운동입니다. 성령체험은 정말로 우리를 이기적인 영혼 구원론자로 만드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이 성령을 받을까요? 성령은 받은 표징이 어떠하며, 무슨 은사들이 있고, 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일까요?
성령은 회개하고 용서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행 2:38). 성령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을만한 업적을 쌓았기 때문에 주시는 것이 아니라, 값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하나님의 선물을 자기 자신의 특별한 영적 능력이나 경건 때문에 받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누가 성령을 받느냐는 것은 인간적 척도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결정하실 뿐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원하실 때, 원하시는 곳에 보내십니다.
성령의 은사는 다양합니다. 은사의 다양성은 공동의 이익, 곧 교회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의 다양성이 교회 안에서 파당을 짓거나 시기하고 질투하는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도바울은 은사의 다양성이 교회의 일치를 지향해야 하는 것을 사람의 몸과 지체의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고전 12:25-26). 은사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목적은 이 세계로부터 종교적 환상의 세계로 도피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갈등 속에서 그리스도의 해방하는 주권을 증언하기 위함입니다. 성령은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우리를 구원합니다.
성령의 사귐 속에 있는 교회는 교인들의 고통만이 아니라 영광과 기쁨도 나누어 가지는 공동체입니다. 성령의 사귐 속에 있는 교회 안에는 높고 낮음도, 귀하고 천함의 구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오순절에 베드로는 초대교회에 일어난 성령의 역사를 요엘 예언서를 인용하여 설명합니다: "마지막 날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나의 성령을 부어 주리니 너의 아들 딸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계시의 영상을 보며,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는 나의 남종에게도 여종에게도 나의 성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도 예언을 하리라"(행 2:17-18). 이로써 세대간의 평등이 탄생합니다. 누구도 너무 젊거나 늙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새로운 생명의 영을 받아들이는데서 평등합니다. 젊다는 것이 어떤 장점도, 늙었다는 것이 어떤 단점도 아닙니다. 아들과 딸들이 예언을 하고, 남종과 여종이 영을 받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평등합니다. 성령의 체험에서 남성과 여성, 남종과 여종, 늙은이와 젊은이 사이의 새로운 공동체가 탄생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사회적 차별을 지양합니다. 오늘 성령의 은사 속에 있는 삶은 남자와 여자, 늙은이와 젊은이, 주인과 종이 함께 어울려 평등한 삶, 충만한 삶을 사는 곳입니다. 병든 이들이 치유를 받고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는 곳입니다. 절망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미래에 대한 소망으로 다시 일어서는 곳입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그러나 일제 강점기 때 대 부흥운동에서부터 시작된 성령운동이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의 중요한 배경이 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성령운동은 교회의 양적 성장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신자들에게 믿음의 확신과 소망을 주었습니다. 방언과 치유의 은사, 거듭남의 체험 등이 그것입니다. 성령운동은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차별 받던 여성들을 해방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또 교권주의적 교회질서 속에서 평신도의 능동적인 참여를 일깨우는데 기여했습니다.
성령운동이 이렇게 많은 기여를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많은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성령운동이 지나친 물량주의적 성장지상주의에 빠짐으로 인해 교인 쟁탈전을 벌려서 교회의 분열을 조장했다는 비판이 그것입니다. 큰 교회, 작은 교회, 은혜가 있는 교회, 은혜가 없는 교회 등으로 교회가 분열되고 있습니다. 또 가슴만 뜨겁게 만들었지 기독교인의 사회적, 역사적 책임을 외면하거나 무관심하게 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개인의 영혼구원에만 관심이 있지 다른 사람들 특히 고난받는 사람들의 사회적 구원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기주의자들이라는 비난도 있습니다.
한국교회 성령운동은 마치 양면에 날이 선 칼처럼, 두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교회와 신앙생활을 역동적이고 생명력 있게 일치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를 분열시킵니다. 성령 받은 교인과 못 받은 교인, 성령운동을 하는 교회와 안하는 교회, 능력을 받은 목사와 능력이 없는 목사 등으로 교회와 교인을 분열시키는 것도 성령운동입니다. 성령체험은 정말로 우리를 이기적인 영혼 구원론자로 만드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이 성령을 받을까요? 성령은 받은 표징이 어떠하며, 무슨 은사들이 있고, 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일까요?
성령은 회개하고 용서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행 2:38). 성령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을만한 업적을 쌓았기 때문에 주시는 것이 아니라, 값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하나님의 선물을 자기 자신의 특별한 영적 능력이나 경건 때문에 받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누가 성령을 받느냐는 것은 인간적 척도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결정하실 뿐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원하실 때, 원하시는 곳에 보내십니다.
성령의 은사는 다양합니다. 은사의 다양성은 공동의 이익, 곧 교회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의 다양성이 교회 안에서 파당을 짓거나 시기하고 질투하는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도바울은 은사의 다양성이 교회의 일치를 지향해야 하는 것을 사람의 몸과 지체의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고전 12:25-26). 은사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목적은 이 세계로부터 종교적 환상의 세계로 도피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갈등 속에서 그리스도의 해방하는 주권을 증언하기 위함입니다. 성령은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우리를 구원합니다.
성령의 사귐 속에 있는 교회는 교인들의 고통만이 아니라 영광과 기쁨도 나누어 가지는 공동체입니다. 성령의 사귐 속에 있는 교회 안에는 높고 낮음도, 귀하고 천함의 구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오순절에 베드로는 초대교회에 일어난 성령의 역사를 요엘 예언서를 인용하여 설명합니다: "마지막 날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나의 성령을 부어 주리니 너의 아들 딸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계시의 영상을 보며,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는 나의 남종에게도 여종에게도 나의 성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도 예언을 하리라"(행 2:17-18). 이로써 세대간의 평등이 탄생합니다. 누구도 너무 젊거나 늙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새로운 생명의 영을 받아들이는데서 평등합니다. 젊다는 것이 어떤 장점도, 늙었다는 것이 어떤 단점도 아닙니다. 아들과 딸들이 예언을 하고, 남종과 여종이 영을 받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평등합니다. 성령의 체험에서 남성과 여성, 남종과 여종, 늙은이와 젊은이 사이의 새로운 공동체가 탄생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사회적 차별을 지양합니다. 오늘 성령의 은사 속에 있는 삶은 남자와 여자, 늙은이와 젊은이, 주인과 종이 함께 어울려 평등한 삶, 충만한 삶을 사는 곳입니다. 병든 이들이 치유를 받고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는 곳입니다. 절망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미래에 대한 소망으로 다시 일어서는 곳입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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