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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롬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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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민영진 목사 |
| 참고 : |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
"평정(平靜)을 비는 기도"
성서 본문: 로마서 8:26
민영진 목사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롬 8:26)
지난 한 해를 은총 가운데 무사히 보내고, 또 새로운 한 해를 은혜 가운데서 우리 모두 함께 맞이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금년 새해에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가정에, 그리고 여러분들께서 헌신하시는 교회와 여러분들께서 몸 던져 일하시는 직장에 복을 넉넉하게 베풀어주기를 빕니다. 여러분의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며 말씀을 나눌 수 있도록 이렇게 초대하여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 드립니다.
늘 기뻐하고, 매사에 감사하고, 특히 기도하는 일을 그쳐서는 안 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의 자세임에도 불구하고, 올바로 기도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다행이 모범적인 기도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그 기도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아마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 곧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며,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로 시작되는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곧 "주기도(主祈禱)"입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는 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바로 이 기도에서 출발하고, 우리의 모든 기도는 바로 이 기도에 비추어 올바르고 그릇됨을 판단 받게 되고, 이 기도에 비추어 우리의 기도를 반성하게 됩니다.
시편에 나오는 많은 기도 역시 우리의 기도의 모범이 될 수 있습니다. 시편 90편 모세의 기도는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1 주님은 대대로 우리의 거처이셨습니다. 2 산들이 생기기 전에, 땅과 세계가 생기기 전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3 주께서는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죽을 인생들아, 돌아가거라' 하고 말씀하십니다."로 시작되는 17절까지 이어지는 기도입니다({표준새번역} 시 90:1-3)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십시오"라는 말로 시작되는 성 프란시스의 기도도 우리의 심정을 하나님 앞에서 대변하는 기도입니다.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십시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맥아더 장군의 "아버지의 기도"도 유명합니다. "주님, 저에게 이런 아이를 주십시오: 약할 때에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가 있는 아이,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고 오히려 담대해지는 아이,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한 아이,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아이를 저에게 주십시오...."
저는 오늘, 최근 10여 년 동안 제가 늘 해온 감격적인 기도를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라인홀드 니이버(Niebuhr, Karl Paul Reinhold, 1892-1971)의 기도입니다. 니이버는 디트로이트의 베델 교회에서 13년 동안 (1915-28) 목회를 하였고, 1929년부터 1960년까지 약 30여 년 동안 뉴욕의 유니온신학교 교수를 역임한 미국 개신교 목사이며 신학자입니다.
기도 전문은 교회의 홈페이지에 영어 원문과 함께 잠정적인 우리말 번역을 실었습니다. 이 기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평정(平靜)을 비는 기도
- 라인홀드 니이버
하나님, 제가 변화시키지 못할 것은
그대로 받아드리는 평정(平靜)을 저에게 주십시오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변화시킬 용기(勇氣)를 저에게 주십시오
서로간에 차이(差異)를 알 수 있는
지혜(智慧)를 저에게 주십시오
하루를 살아도 한껏 살게 하여주십시오
한 순간을 즐겨도 한껏 즐기게 하여주십시오
고난은 평화에 이르는 길임을 받아들이게 하여주십시오
죄로 가득 찬 이 세상, 주님께서 그대로 끌어 안으셨듯이
저도 이 세상을 제 뜻대로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끌어안게 하여 주십시오
제가 하나님의 뜻에 항복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만사를 다 올바로 이룩하실 것을
믿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제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소박(素朴)한 행복(幸福)을 누리고,
지극(至極)한 행복은 영원한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Serenity Prayer
God,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I cannot change;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I can; and
Wisdom to know the difference.
Living one day at a time;
Enjoying one moment at a time;
Accepting hardship
As the pathway to peace.
Taking, as He did,
This sinful world as it is
not as I would have it.
Trusting that He will make
all things right
If I surrender to His will.
That I may be reasonably happy
in this life,
And supremely happy
With Him forever in the next.
- Reinhold Niebuhr
기도문 재해석
아직도, 우리 삶의 군데군데에, 지난해의 대통령 선거의 열기(熱氣)가 식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지난해의 선거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興奮)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선자를 낸 정당이나, 후보자가 낙선한 정당이나 가릴 것 없이 자체 정당의 쇄신을 위한 진통(陣痛)이 열병(熱病)처럼 번져 있습니다.
하나님, 변화시키지 못할 것은
그대로 받아드리는 평정(平靜)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우리 모두가 진정(鎭靜)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진정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걸리고, 어떤 창조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진정시키고 새로운 방향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즉 평정(平靜)을 찾고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말에서 평정이란 "마음이 평안(平安)하여 괴로움이나 갈등(葛藤)이나 흔들림 등이 없는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오랜 방황 끝에 신앙을 가지게 되어 마음의 평정을 얻는 것이라든가, 선거로 들뜬 분위기를 차분히 가라앉히면서 평정을 되찾고 삶을 새롭게 추스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정이란 그저 멍하니 가만히 정체(停滯)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평정이란 영어의 serenity [s r n ti]의 우리말 대응어입니다.
평정 상태에서는 사리 판단이 분명해지고 시비(是非) 곡직(曲直)도 잘 가릴 수 있습니다.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은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勇氣)를 얻고,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이 바로 평정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기도자는 변화와 개혁의 용기를 아울러 간구하고 있습니다.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변화시킬 수 있도록 용기(勇氣)를 주십시오
평정한 마음에서는 이러한 용기 외에 지혜(知慧)도 나옵니다. 우리의 경우 무엇이 지혜이겠습니까? 당선자를 지지한 사람들은 낙선자를 지지했던 사람들을 이해하고, 거꾸로, 낙선자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당선자를 지지했던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끼리도 서로 다를 수가 있다는 그 차이를 알고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일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만 서로간의 차이를 알고 인정하는 것에서 우리는 어떤 한 입장만 절대적으로 옳고 다른 입장은 절대적으로 그르다고 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서로간에 차이(差異)를 알 수 있는
지혜(智慧)를 주십시오
이제 우리는 어떤 마음 자세로 살아야 합니까? 지난 번 대통령 선거의 전과 후에 농담 겸 진담으로 가끔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아무개가 당선되면 나는 이민을 가겠다고 한 말을 심심찮게 들었습니다. 이민을 가고 안 가는 것은 개인의 자유일 것입니다만, 생각이 다르다고, 정책이 다른 정부가 들어섰다고 그런 환경을 피한다면 어디간들 자유스럽겠습니까? 지금의 우리나라 정도라면 그나마 살만한 나라 아닙니까? 아니, 살만하고 안하고 관계없이 우리나라이니까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날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가장 확실한 것은 지금 살아 있는 이 순간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오늘 주어진 삶을 한껏 사는 것입니다. 순간의 즐거움도 한껏 즐기는 것입니다. 물론 피곤하고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곤난(困難)은 평화에 이르는 통로(通路)로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자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한 날을 살아도 한껏 살게 하여주십시오
한 순간을 즐겨도 한껏 즐기게 하여주십시오
고난은 평화에 이르는 길임을 받아들이게 하여주십시오
이 번역에는 좀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말의 "한껏"이란 "최선을 다 해서"라는 말인데, 니이버 기도의 원문에는 "Living one day at a time; Enjoying one moment at a time;"이라고 하여 at a time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at a time의 기능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언급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루를 한꺼번에 살라고 해도 뜻이 통하지 않고, 한꺼번에 하루를 살라고 해도 말이 안됩니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친구들에게 물어보아도 시원한 답을 못 얻었습니다. 교회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것은 저의 잠정적인 번역입니다. 여러분들께서 더 고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해 주신 마태복음 6장 34절이 우리말 번역에서는 아주 난해한 구절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개역}을 통해서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라고 읽어 왔습니다. 특히,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라고 하여 <내일 염려는 오늘 미리 앞당겨서 하지말고 내일이 되거든 하라>는 말로 잘못 오해된 말을, {개역} 이후에 나온 {공동번역}(1971/77)과 {표준새번역}(1993)과 {개역개정판}(1998)은 각각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공동번역}),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표준새번역}),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개역개정판}) 라고 다 고쳤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지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어느 영어 번역도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를 의미가 통하게 번역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영어 {생활성서(The Living Bible)}를 보면, So don't be anxious about tomorrow. God will take care of your tomorrow too. Live one day at a time.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날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다고 한 본문이 여기에서는 Live one day at a time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내일 걱정 내일 하라는 말이 아니고 내일 걱정 하나님께 맡기라고 이해한 것, 이것은 이미 다른 여러 번역들이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한 날의 괴로움 그 날에 족하다는 말을 "Live one day at a time"이라고 한 LB의 영어 번역은 흥미가 있습니다. 이 영어 번역을 "하루 단위로 사는 것"으로 이해한 이가 있습니다.1)
우리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국면을 지적하거나 그 현상을 직접 보거나 경험합니다. 교회마저 여러모로 타락한 국면을 보일 때 우리는 실망합니다. 타락까지는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돌아가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개혁과 변화를 바라기도 합니다. 뭔가 나 같으면 이렇게 한 번 세상 바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자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죄로 가득 찬 이 세상, 주님께서 그대로 끌어 안으셨듯이
저도 이 세상을 제 뜻대로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끌어안게 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는 그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사를 다 당신의 뜻대로 올바로 이룩해 가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중요한 한 조건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항복하기만 한다면"이라는 조건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뜻에 항복(降伏)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만사를 다 올바로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믿게 하여 주십시오
비록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산다 하여도, 우리가 늘 기쁘거나 행복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리하여 기도자는 이 세상에서는 다만 이 세상에서 알맞은 행복, 소박한 행복만을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최고의 행복 지극한 행복은 영원한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누릴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소박(素朴)한 행복(幸福)을 누리고,
지극(至極)한 행복은 영원한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저 혼자서 지난 10여 년 동안 해 온 기도였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오늘 이 기도를 소개해 드립니다. 영어 사용 지역에서는 많이 알려진 기도입니다마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렇게 보편화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기도가 이번 한 해에도 우리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지켜주기를 바랍니다.
1) 유성은, [새벽기도는 모든 것을 이룹니다] (생활지혜사, 2002), 24-25쪽. at a time 이라는 영어 숙어는 "한꺼번에" "단번에" 라는 말이다. "Do one thing at a time"이라고 하면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Live one day at a time이라는 말은 그러기에 참으로 번역하기 어려운 말인데, 유성은 목사는 이것을 "하루 단위로 살아라", 곧 하루는 일생의 축소판이니까 하루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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