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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롬1:14-17 |
|---|---|
| 설교자 : | 소재열 목사 |
| 참고 : | 의정부평안교회 http://www.uppch.org |
오늘 주일은 종교개혁 478주년 기념주일입니다. 비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잡고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습니다. 당시 교회 성직자들이 권력과 결탁하고 사치스런 생활이 만연되어 교회는 그 본질적인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수도원의 성직자는 농지를 세주고 사냥이나 다니며 여자를 즐기고 수녀원은 일하기 싫은 돈 있는 사람들의 도피처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성직자들이 면죄부를 알선해 주기도 해서 성직자들의 비리가 극에 달했습니다.
당시 주교나 신부가 교권과 정권에 결탁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와 성직을 타락하게 했습니다. 이런 모순과 성경에도 없는 면죄부 판매로 야기된 미사(예배)는 돈을 버는 수단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교회는 내리막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을 그냥 두시지 않았습니다.
루터와 칼빈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복되어야 하고 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어져야 한다는 구호로 교회 청소운동이 벌어졌는데 그 운동을 토대로 생겨난 것이 우리 개신교입니다.
그래서 우리 개신교회는 그 개혁을 기념하기 위하여 “종교개혁기념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당시의 교회나 지금의 교회가 상당한 부분에서 비슷한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의 교회와 그 교회의 성직자들이 상당한 부분에서 그 위험수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같은 상황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릇된 이해로 인한 잘못과 그 말씀대로 실천하지 못한 잘못에서 야기된 불행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운동을 할 때 그 정신적인 뼈대를 롬 1:17절 말씀에 두었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죄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 인간의 어떤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 용서를 받는 것이 하나님께서 거져 주시는 선물이라고 하지 않고 내가 돈으로 천당 갈 티켓을 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거짓말이 어디 있습니까? 모든 신앙이 돈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부 가운데 루터는 성경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롬 1:17절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지 돈으로 천국을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루터가 이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바울이 발견한 복음, 루터가 발견한 이 복음을 우리들 역시 발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바울의 빚진 자로서의 자기이해(14절)
본문 14절에 보면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합니다. 빚이라는 것은 당연히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갚아도 되고 안 갚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처음부터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지금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고 다메섹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바울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해서 그들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바울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바로 이방인의 사도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그를 구원시켜 주셨습니다. 실로 바울은 이방인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생각하기를 이방인들 때문에 내가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언제나 그 이방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무엇 때문에 나를 구원시켜 주셨을 것이라고 생각됩니까? 무엇을 위해서 나를 불러 주셨느냐는 것입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스더4:14)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가 된 것은 유다인이 어려움에 빠져있을 때 그들을 구원해 내는 일을 위해 에스더 네가 왕후가 되었는지 어떻게 아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 역시 무엇인가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부터 부르심을 받았다는 그 일에 대해서 우리는 빚져 있는 것입니다. 꼭 그 빚을 갚아야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될 수 있는 대로 이방인들인 로마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15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1:15)
2. 우리가 왜 복음을 부끄러워 하면 안되습니까?(16절)
본문 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바울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이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그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든지 믿는 자는 구원을 갖게 하는 것이 복음이기 때문에 그 복음을 위해서 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복음은 유대인이나 헬라인, 즉 그리스인나 믿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어느 지역을 불문하고, 또한 어떤 인간이든지를 불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그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는 찬양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신앙생활 하다가 상대편이 나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무어라고 말합니까?
“저 사람은 전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혹은 “저 사람은 경상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고 시기하고 비난합니다. 아니면 “저 사람은 나보다 못 배웠기 때문에 그렇습니다”는 등 하나님의 교회를 허는 이리와 같은 사람이 있다고 성경은 지적합니다. 초가집에서 태어났든 아파트에서 태어났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농촌에서 태어났든 도시에서 태어났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누구를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들은 다 한 형제입니다. 서로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미워하고 흉보고 불평 불만하다가 예수 믿지 않고 죽으면 그 사람은 지옥에 갑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의로 믿음으로 살게 하는 복음 (17절)
본문 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첫째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있다는 말입니다. 둘째로 그 복음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셋째, 구약성경에도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입니다”라는 말씀한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합2:4).
합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첫째,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의란 무슨 뜻입니까? 옳은 의(義)를 써서 죄와 반대 개념으로서 거룩하고 의로운 일이라는 보편개념을 가리켜 “하나님의 의”라고 하지 않습니다.
6:33절에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보통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행위 자체를 “하나님의 의”라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이라는 말 안에 담겨진 뜻이라고 합니다.
복음이란 무엇이냐 단순히 “기쁜 소식입니다.” 그래서 집을 사도 기쁜 소식이니까 그것은 복된 소식 즉 복음이다 라고 성경은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 그 행동 자체를 가리켜 기쁜 소식이요, 곧 복음이라고 합니다. 그 복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말은 거져 하나님의 은혜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감사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 복음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믿음에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들에게 구원이 발생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내가 무엇을 했기 때문에 나에게 구원이 임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이 임했습니다.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무엇을 하는 것이지 무엇을 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 무슨 일을 하나님께 하고 있습니까? 그 일이 없다고 한다면 나에게 그 일을 하도록 가능하게 하신 믿음이 없다는 이야기와도 같습니다. 셋째, 구약성경에도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입니다”라는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합2:4).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의정부평안교회 http://www.uppch.org/
당시의 수도원의 성직자는 농지를 세주고 사냥이나 다니며 여자를 즐기고 수녀원은 일하기 싫은 돈 있는 사람들의 도피처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성직자들이 면죄부를 알선해 주기도 해서 성직자들의 비리가 극에 달했습니다.
당시 주교나 신부가 교권과 정권에 결탁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와 성직을 타락하게 했습니다. 이런 모순과 성경에도 없는 면죄부 판매로 야기된 미사(예배)는 돈을 버는 수단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교회는 내리막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을 그냥 두시지 않았습니다.
루터와 칼빈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복되어야 하고 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어져야 한다는 구호로 교회 청소운동이 벌어졌는데 그 운동을 토대로 생겨난 것이 우리 개신교입니다.
그래서 우리 개신교회는 그 개혁을 기념하기 위하여 “종교개혁기념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당시의 교회나 지금의 교회가 상당한 부분에서 비슷한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의 교회와 그 교회의 성직자들이 상당한 부분에서 그 위험수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같은 상황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릇된 이해로 인한 잘못과 그 말씀대로 실천하지 못한 잘못에서 야기된 불행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운동을 할 때 그 정신적인 뼈대를 롬 1:17절 말씀에 두었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죄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 인간의 어떤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 용서를 받는 것이 하나님께서 거져 주시는 선물이라고 하지 않고 내가 돈으로 천당 갈 티켓을 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거짓말이 어디 있습니까? 모든 신앙이 돈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부 가운데 루터는 성경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롬 1:17절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지 돈으로 천국을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루터가 이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바울이 발견한 복음, 루터가 발견한 이 복음을 우리들 역시 발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바울의 빚진 자로서의 자기이해(14절)
본문 14절에 보면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합니다. 빚이라는 것은 당연히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갚아도 되고 안 갚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처음부터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지금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고 다메섹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바울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해서 그들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바울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바로 이방인의 사도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그를 구원시켜 주셨습니다. 실로 바울은 이방인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생각하기를 이방인들 때문에 내가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언제나 그 이방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무엇 때문에 나를 구원시켜 주셨을 것이라고 생각됩니까? 무엇을 위해서 나를 불러 주셨느냐는 것입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스더4:14)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가 된 것은 유다인이 어려움에 빠져있을 때 그들을 구원해 내는 일을 위해 에스더 네가 왕후가 되었는지 어떻게 아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 역시 무엇인가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부터 부르심을 받았다는 그 일에 대해서 우리는 빚져 있는 것입니다. 꼭 그 빚을 갚아야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될 수 있는 대로 이방인들인 로마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15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1:15)
2. 우리가 왜 복음을 부끄러워 하면 안되습니까?(16절)
본문 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바울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이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그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든지 믿는 자는 구원을 갖게 하는 것이 복음이기 때문에 그 복음을 위해서 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복음은 유대인이나 헬라인, 즉 그리스인나 믿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어느 지역을 불문하고, 또한 어떤 인간이든지를 불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그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는 찬양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신앙생활 하다가 상대편이 나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무어라고 말합니까?
“저 사람은 전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혹은 “저 사람은 경상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고 시기하고 비난합니다. 아니면 “저 사람은 나보다 못 배웠기 때문에 그렇습니다”는 등 하나님의 교회를 허는 이리와 같은 사람이 있다고 성경은 지적합니다. 초가집에서 태어났든 아파트에서 태어났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농촌에서 태어났든 도시에서 태어났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누구를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들은 다 한 형제입니다. 서로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미워하고 흉보고 불평 불만하다가 예수 믿지 않고 죽으면 그 사람은 지옥에 갑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의로 믿음으로 살게 하는 복음 (17절)
본문 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첫째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있다는 말입니다. 둘째로 그 복음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셋째, 구약성경에도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입니다”라는 말씀한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합2:4).
합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첫째,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의란 무슨 뜻입니까? 옳은 의(義)를 써서 죄와 반대 개념으로서 거룩하고 의로운 일이라는 보편개념을 가리켜 “하나님의 의”라고 하지 않습니다.
6:33절에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보통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행위 자체를 “하나님의 의”라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이라는 말 안에 담겨진 뜻이라고 합니다.
복음이란 무엇이냐 단순히 “기쁜 소식입니다.” 그래서 집을 사도 기쁜 소식이니까 그것은 복된 소식 즉 복음이다 라고 성경은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 그 행동 자체를 가리켜 기쁜 소식이요, 곧 복음이라고 합니다. 그 복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말은 거져 하나님의 은혜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감사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 복음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믿음에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들에게 구원이 발생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내가 무엇을 했기 때문에 나에게 구원이 임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이 임했습니다.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무엇을 하는 것이지 무엇을 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 무슨 일을 하나님께 하고 있습니까? 그 일이 없다고 한다면 나에게 그 일을 하도록 가능하게 하신 믿음이 없다는 이야기와도 같습니다. 셋째, 구약성경에도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입니다”라는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합2:4).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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