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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롬5: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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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 참고 : | 순복음중앙교회 |
말 씀 :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사랑할 수 있으면 해답이 보인다.” 이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는 끝없는 경쟁과 미움과 알력과 투쟁과 전쟁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9월 11일 오전 미국 뉴욕시의 쌍둥이 무역센터와 국방성 펜타곤에 대한 무자비한 테러로 7천여 명의 무고한 생명이 살상되는 장면을 보고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천인공노할 사건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타락한 인간의 마음에서 생겨난 비극인 것입니다.
<본론>
1. 아담의 타락과 부패한 인간 심성
우리가 이 근원을 아담의 타락과 부패한 인간의 심리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담 이후 타락한 사람들의 마음은 언제나 자아 중심적 자존심 때문에 상대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일로 말미암아 자기를 되살펴 보고 회개하려고 하지 않고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라고 몰아 부치는 그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의 심성은 언제나 자기주장만 옳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만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모든 자기의 언어, 심사, 행동을 정당화 하고 남을 비평하고 평론합니다. 또한 타락한 인간의 자기 유익을 먼저 구하는 마음이 뿌리 내려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 유익을 최대로 보장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유익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바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난 다음에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사건 속에서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누가 네게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하더냐.” 고 하시니 아담은 자기가 잘못한 것은 조금도 회개하지 않고 그 하나님의 질문에 대해서 자기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고 “하나님 책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여자 하와 책임입니다.” 그렇게 책임을 남에게 돌렸습니다.
창3장 12~13에 보면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기에서 아담은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고 하와에게 전가했지 자기가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만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체면을 세워야 되겠다고만 생각하지 회개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타락하자마자 아담의 속에 생겨난 부패한 심성인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만 그러느냐? 아담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와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야훼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와는 구차스러운 변명이지만 뱀에게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뱀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를 타당화 했습니다. 자기가 선악과를 먹은 것을 타당화 하고 자기의 체면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에덴에서 쫓겨나서 가정을 이루고 난 다음에 처음 낳은 아들이 가인이고 둘째가 아벨이었는데 그들이 장성하매 다 분가하여 나가서 때가오매 하나님께 재단을 쌓았는데 가인은 자기가 손으로 지은 농산물을 제단에 얹고 아벨은 양을 잡아 피를 흘려 재단에 얹은즉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재물은 돌보지 아니하시고 아벨의 재물은 돌보아서 그 재물을 기쁘게 받아 주셨습니다. 그 결과 가인은 마음에 분노가 생겼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내 재물을 받아들이지 않았느냐 그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장차 메시아가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질 것을 아담에게 가르쳐 주셨고 아담이 그 자손들에게 설명해 주어서 메시아를 상징하는 어린양을 잡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을 배웠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는 자기 자랑으로 자기 손으로 지은 재물인 곡식을 재단에 얹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하나님 뜻대로 양을 잡아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재물을 응답해 주셨는데 자기 계획에 하나님이 응답 안한 것은 아벨 때문에 그렇다. “내 탓이 아니고 네 탓이다. 아벨 너 때문에 나는 하나님께 응답을 받지 못했다. 나는 내가 손으로 지어서 만든 곡식을 하나님께 드린 것은 타당한 일이다. 정당했다. 네가 정당하지 않았다. 네가 내 체면을 손상시켰다. 그러므로 너는 죽어야 되겠다.” 그래서 가인이 아벨을 밭에서 돌을 들어 쳐서 죽였습니다. 인류역사상 첫 살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마음 바탕에서 있어서 가정, 사회, 국가, 국가 간의 갈등과 분쟁은 그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기중심적인 자존심과 자기만 옳다고 하는 자기주장과 자기 유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마음을 이기고 평화공존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방법은 무엇입니까? UN이 그 해결책입니까? 국가기관이 해결책입니까? 사회단체가 해결을 할 수 있습니까? 안됩니다. 인간은 역사이후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미움, 시기, 분노, 질투, 싸움, 분쟁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자기의 주장을 희생할 수 있고 자기 타당화를 희생할 수 있고 자기 유익만 구하는 마음을 희생하고 남을 나와 동등하게 나보다 귀하게 생각할 수 있는 희생적인 마음이 생겨야 인간의 분쟁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2. 사랑 이외의 해답은 없다
그런 문제가 무슨 힘으로 해결될 수 있습니까? 사랑 이외에 해답은 절대로 없습니다. 하늘 아래 사랑 이외에는 이 문제의 해답이 없습니다. 여러분 인간 세상에도 사랑이 자존심, 자기 고집, 자기 유익 등을 희생할 수 있는 힘이 되어서 이웃과 화해하고 함께 손을 잡고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남녀 간의 진정한 사랑도 진실한 부부의 사랑에 대해서 서로 화목하게 살게 만들어 준다. 사랑이 있어야 부부간에 서로 자존심, 자기 고집, 자기 유익 등을 희생하고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더 귀중히 여기고 함께 손잡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고구려 평원 왕 때 평강공주와 바보온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못생겼지만 온달이라는 유명한 바보가 늙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걸식하고 봉양하면서 살아서 모든 사람들이 그 삶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평원왕의 공주인 평강공주는 어릴 때 하도 자꾸 울어서 울보였습니다. 그래서 부왕이 울 때마다 “너 안 울면 좋거니와 계속 울면 바보온달에게 시집 보낸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고 울기만 하면 “너는 바보온달에게 시집 보네겠다.” 했으므로 평강공주는 자라나면서 머리가 세뇌가 되어서 자기는 운명적으로 바보온달에게 시집가야 된다고 결정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되어서 귀족에게 시집보내려 하자 공주는 평소 때 부왕의 말대로 온달에게 시집가겠다고 고집 부렸습니다. 왕이 대노해서 내어 쫓아 버리니까 그 길로 보따리 싸서 바보온달에게 가버리고 만 것 입니다. 바보온달에게 찾아가서 그는 자기 자존심도 자기 고집도 자기의 유익도 다 버리고 바보온달을 잘 받들면서 궁궐에서 갖고 온 패물을 팔아 생활하고 온달에게 무예와 학문을 배우게 하여 출중한 인물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왕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후주의 무제가 쳐들어오자 온달이 선봉이 되어 나가서 전쟁에서 적군을 무찌르고 대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니 왕이 너무 감동해서 정식으로 사위로 인정을 하고 큰 벼슬을 내렸습니다. 온달은 나라를 위해 훌륭한 장수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왕 때 그는 신라에게 뺏긴 한강 이북 땅을 되찾기 위해 출전했다가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온달의 애국심, 충성심, 용기가 삼국사기에 명문으로 전해지고 있었으나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은 공주의 숭고한 사랑이 자기가 공주임에도 불구하고 사랑 때문에 자존심, 자기고집, 자기유익 등을 다 희생하고 바보온달을 키워서 훌륭한 인물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일국의 공주쯤 되면 얼마나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 고집도 있고 자기 유익을 능히 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그것을 극복할 수 있어요. 사랑 아니고는 결코 자기를 희생하고 남을 도와줄 수 있는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도 여러분 한가지이지요.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언제든지 자기의 자존심, 자기 고집이나 자기 유익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부모 사랑이지요. 여러분 소설가 조창인 씨가 지은 ‘가시고기’라는 소설이 있어요. 올봄에만 해도 140만부가 팔려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이 가시고기는 암컷이 알을 낳고는 도망을 쳐버립니다. 그러면 수컷이 그 알을 품어서 새끼가 깨어나면 그 새끼에게 자기 고기를 뜯어 먹입니다. 그래서 새끼들이 그 아버지 고기를 다 뜯어 먹고 자라면 떠나게 되고 아버지는 죽게 됩니다. 그것이 가시고기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가 조창인 씨가 가시고기라는 책으로 만든 소설의 내용을 보면 부부간에 이혼을 하고 어머니는 미국으로 가버렸습니다. 아버지가 아들 하나 데리고 사는데 그 아들이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백약이 무효입니다. 아버지는 모든 직업을 다 버리고 그 아들에게 매달려서 목숨을 바쳐 구걸도 하고 동정도 하고 온갖 모욕과 굴욕을 참습니다. 아들 치료하는데 치료비가 엄청나게 드니까 친구들에게도 손 벌리고 제자들에게도 손을 내밀고 모욕을 당하고 그래도 자기는 죽더라도 아들은 살려야 되겠다. 이런 헌신적인 노력으로 아들은 살아나자 아버지는 과로로 간암이 걸려서 세상을 뜬다는 이야기입니다. 굉장히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저도 이 책을 손에 들고 첫 페이지에서 끝까지 읽어내려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시고기 엄마는 도망을 쳐버렸지만 아버지가 그 살을 뜯어 먹여서 그 백혈병 걸린 어린 아들을 살려 놓고 자기는 죽었다는 얘기인 것입니다. 이것은 부성애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모의 이와 같은 지극한 사랑이 있기 때문에 핏덩어리인 어린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인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이것을 할 수가 있지 여러분 부모가 자기 자존심 다 세우고 자기 고집 다 세우고 자기 유익을 다 주장한다면 길러낼 자식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웃과 평안하게 살려면 이웃 사랑이 실천되어야 되는데 사랑은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자존심도 자기주장도 자기 유익도 버릴 수가 있습니다. 사랑 이외에는 이와 같은 심정으로 이웃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이번 무역센터 참사현장에서 구조를 위해 진두 지위하던 뉴욕시의 최고 고참인 소방국장은 늘 부하들보다 가장 위험한 곳에 뛰어들어 구조 활동을 했는데 이번에도 쌍둥이 빌딩에 테러리스트의 비행기가 추돌해서 불이 났을 때 그는 최고 간부 5명과 함께 350명을 거느리고 붕괴직전까지 빌딩계단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구슬땀을 흘리면서 사람들을 구출하다가 빌딩이 무너질 때 거기에 파묻혀 죽었습니다. 여러분 왜 자기생명을 희생했습니까? 그 빌딩이 불붙어서 무너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부하들 거느리고 그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사람들을 구출하는 이 일은 사랑 때문에 자기를 희생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자존심도 자기 수양도 자기유익도 버릴 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역사가 없으면 오늘날 사회는 공존할 수 없으며 화평을 가질 수도 없으며 이런 사랑이 없으면 우리 사회는 발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의료봉사로 일생을 바친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도 똑같습니다. 루터교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대학에서 철학박사,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신학강의를 하고 있던 그는 탁월한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로써 활동했습니다. 이때 아프리카 흑인들의 생활상에 대한 글을 읽고 흑인 구제를 마음에 결심을 했습니다. 다시 의학을 공부하여 의학박사가 되고 의사자격증을 얻어 부인과 함께 아프리카의 가봉 랑바렌에 가서 닭장을 개조하여 병원을 세워 가난하고 병든 흑인들에게 사랑을 일생 몸소 실천하여 밀림의 성자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1952년 노벨 평화상을 받고 그 상금으로 나환자촌을 세워 사랑의 의술을 펴다가 90세에 건강이 나빠져 세계인의 애도 속에 그는 별세를 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30세까지는 내 자신을 위해서 살고 그 후로는 남을 위해서 살기로 결심한 뒤 자신의 행복을 버리고 흑암의 대륙에서 그 열악한 생활환경 가운데 일생을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하므로 본이 된 것입니다. 사랑 아니고는 자기를 희생하고 남을 위해서 남의 행복을 위해서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일은 이 세상에는 결코 없습니다.
여러분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를 잘 아시죠?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37세에 경남 여수 나환자 요양원인 애양원 교회의 전도사로 부임하여 평생을 나환자들과 함께 하며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내고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나환자가 되기를 소원할 만큼 주님의 사랑을 실천한 분입니다.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여수경찰서에 갇힌 지 5년간 옥고를 치르며 종신형을 선고 받았으나 해방이 되어서 그는 석방이 되었습니다. 1948년 여순 반란 사건 때 좌익계 폭도들에게 끌려가 기독학생이던 큰아들 동인이와 둘째 아들 동신이 마저 총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큰 슬픔에 통곡하고 울었으나 두 아들을 순교의 제물로 받아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국군이 순천을 탈환하고 주모자를 잡아서 재판하고 사형에 처하려고 할 때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사형장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사정하여 구출해 내어서 자기의 양자로 삼아 그 청년을 신학교까지 보내어서 훌륭한 목사로 만들었습니다. 6.25때 교회와 환자들을 돌보다가 인민군에게 잡혀 감옥에 갇혔어도 자기에게 들어오는 음식을 자기는 먹지 않고 이웃 사람에게 돌려주면서 전도했습니다. 공산군들은 그 입술로 전도한다고 끌어내어서 입술을 구두로 짓이겨서 입술을 다 찢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를 죽였습니다. 그는 48세에 순교했습니다. 그는 사랑의 원자탄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자기 자신을 온통 버리고 희생할 수 있어요. 자기 자식 둘이나 죽인 원수를 데려다가 양아들을 삼아서 먹이고 입히고 돌보고 신학교까지 보냅니까? 사랑이 아니고는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유고슬라비아 마게도니아의 유족한 집안 막내딸로 출생하여 소명을 받고 수도원에 들어가 수녀가 된 후 인도 캘커타에 파견되었습니다. 36살에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도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봉사하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사랑의 선교회를 창립하여 빈민가에 뛰어 들어가 극빈자들을 구호하고 나환자들을 씻겨 주고 에이즈 환자들을 끌어안고 희생적으로 돌봐 주었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다른 수녀들과 평생 동안 사랑의 실천을 보이며 세운 구호시설은 5백 개가 넘고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을 돌보며 매춘여성과 길거리에 죽어가는 자들을 불러다가 머리 씻기고 얼굴 씻기고 무릎에 눕혀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아들이게 해주었습니다. 1979년 노벨평화상 상급을 나환자 구호소 기금으로 썼고 그는 죽을 때 ‘서로 사랑하십시오. 진정한 사랑은 이것저것 재지 않습니다.’라는 유언을 마치고 87살에 세상을 떴습니다. 그 뜻을 이어 전 세계 123개국의 566개 구호센터에서 4,200명의 수녀들이 봉사를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인간의 타락한 자존심과 자기고집과 자기유익을 극복하고 희생하며 봉사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3. 가장 위대한 사랑
이 세상의 사랑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여러분 하나님이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신 것, 사랑 아니고는 이런 희생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자기 몸을 내주어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우리를 위해서 제물이 된다는 것은 사랑 아니고 할 수 있습니까? 육을 쓰고 오신 예수님도 사람인지라 살고 싶고 자기 자존심도 있고 고집도 있고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이 이것을 극복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고뇌를 보십시오. 자기가 살 것이냐, 인류구원이냐의 갈림길에서 그는 고민했습니다.
마26:36~38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쌔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얼마나 온 인류의 죄악을 짊어지는 것이 얼마나 고민스러웠던지 죄를 알지도 못한 그가 순 배설물 같은 인류의 죄악을 다 찌꺼기까지 들이마셔야 되는 그 처지에 얼마나 전율하고 고민했겠습니까?
막14:33~34에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이와 같은 고통과 마음의 괴로움을 예수님은 왜 택하십니까?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를 희생하신 것입니다. 그는 기어코 하나님 앞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나의 자존심도 있고 나의 고집도 있고 나도 살고 싶지만 그러나 아버지의 뜻이 인류를 위해서 내가 제물이 되는 것이 뜻이기 때문에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렇게 그는 기도해서 자기 자신을 내어 놓았습니다.
눅22:42~44에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 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얼마나 고민했기에 피하의 모세혈관이 터져서 땀구멍으로 피가 흘렀겠습니까? 몸을 찢고 피를 쏟고 그 결과로 마귀의 나라와 그 정사와 권세를 폭파시켜 버린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내가 다 이루었다 할 때 마귀의 나라와 정사와 권세가 여리고 성처럼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인류구원을 중지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예수를 죽이시고 그의 나라가 폭파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십자가의 사랑, 이를 통하지 않고는 우리가 사랑을 구할 데가 없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님의 희생을 묵상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사랑을 얻는 것입니다.
갈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중한 고통 당하사 대신 죽은 주 예수의 사랑하는 은혜요. 그 보배로운 피를 흘려 나를 위해서 대신 희생이 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가슴에 품을 때 비로소 우리 마음속에 자신을 이기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빌2:5~8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자기를 낮추고 자기를 희생시키고 십자가에 죽음으로 우리의 재물이 되어 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가 바라보고 묵상하고 믿을 때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고는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희생적인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부부간에 싸움이 생길지라도 내가 십자가를 생각하면 남편에게 복종할 수 있고 아내에게 복종할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의 희생의 그 사랑이 나를 강권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님께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시도록 구해야 됩니다.
롬5:5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하나님의 성령이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셔서 내 인간의 자존심을 극복하고 고집을 극복하고 자기 유익을 극복하고 희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이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십니다.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와 계신 것입니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충북 제천에서 38년간 1,200명의 버림받은 아이들을 양육한 65세 된 제인 화이트 여사는 갓 태어난 어린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버림받는 것에 충격을 받고 영아원을 세워 자신은 결혼도 않고 사랑으로 어린애들을 키워서 전 세계에 733명을 입양시켜 훌륭히 성장시켰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부어주신 사랑으로 어찌할 수 없이 사랑의 포로가 되어 이 불쌍한 어린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 일생을 보냈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한국 사람도 아닙니다. 백안의 서양여자입니다. 그 좋은 자기 환경을 다 버리고 한국에 와서 버림받은 고아들을 위해서 일생을 버린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속에 부어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스스로가 성령이 마음에 사랑을 부어 주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지 해야만 자존심, 자기주장, 자기유익을 이기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기반을 주시는 것입니다.
히12:2~3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하라.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갈3:1~3에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우리의 신앙생활은 항상 눈앞에 밝히 보이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살아야 됩니다. 아름다운 교회당이 우리 신앙의 목표가 아닙니다. 교회가 크고 작다는 것이 우리 신앙의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 신앙의 목표는 날 위하여 십자가에 몸을 찢고 피 흘려 달려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사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이 십자가를 잃어버린 사람은 종교인은 될지라도 크리스천은 되지 못합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어떠한 어려움에 처해도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지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극복할 수 있고 희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만이 자기와 세상을 이기고 화해와 평안과 함께 사는 세계를 만들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미국과 서방 자유세계와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과 극악무도한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라덴과의 전투가 임박해 있습니다. 그 뒤에는 거대한 이슬람교 국가들이 있습니다. 전체의 19억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이슬람권하고 기독교하고 문화적인 충돌로 최후의 전쟁으로 몰아갈 위험이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서로 자존심을 굽히지 않습니다. 서로 서로 자기들이 옳다고 타당화 합니다. 서로서로 자기 국가의 유익을 도모합니다. 아무리 정치적인 중재를 서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 문제의 해결은 어느 누구도 십자가를 바라보고 사랑을 가지고 자기를 희생할 수 있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개인문제, 사회문제, 국가문제, 국제정치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항상 그곳에서는 무력이 충돌하고 분쟁이 있고 살상이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결론>
고전13:1~8은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 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 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 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자연적인 속성은 아닙니다. 이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항상 바라보고 매일같이 거기에 자기를 못 박고 예수님의 사랑이 성령의 능력으로 가슴속에 부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자기를 희생하며 화해와 공존의 원동력이 될 수가 있습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울어도 못하네. 힘써도 못하네. 애써도 못하네.
오직 주님을 믿고 그리스도의 사랑 받아야 이 사랑이 자기의 타락한 심성을 극복하고 자기를 희생하고 사랑실천을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사랑이 아니고는 가정에 화평도 이웃 간에 화평도 사회와 국가의 화평도 없습니다. 국제간에 화해와 화평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의 사랑 이외에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다른 어떤 곳을 봐도 해결책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성령의 능력으로 자기 고집을 자아중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 가슴에 손을 얹고 우리는 남편으로써 아내로써 부모로써 자식으로써 성도로써 이웃으로써 국민으로써 과연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를 맡겼는가. 내가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강권함을 받아 이해와 동정과 사랑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는가 생각해 보게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 사랑이 없으면 종교는 허위에 불과합니다. 모든 종교적인 의식은 헌신짝보다 못합니다. 사랑이 없는 모든 것은 다 소용이 없게 되고 맙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믿는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핵심이요, 중심이 사랑인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사랑으로써 변화 받고 실천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사랑할 수 있으면 해답이 보인다.” 이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는 끝없는 경쟁과 미움과 알력과 투쟁과 전쟁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9월 11일 오전 미국 뉴욕시의 쌍둥이 무역센터와 국방성 펜타곤에 대한 무자비한 테러로 7천여 명의 무고한 생명이 살상되는 장면을 보고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천인공노할 사건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타락한 인간의 마음에서 생겨난 비극인 것입니다.
<본론>
1. 아담의 타락과 부패한 인간 심성
우리가 이 근원을 아담의 타락과 부패한 인간의 심리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담 이후 타락한 사람들의 마음은 언제나 자아 중심적 자존심 때문에 상대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일로 말미암아 자기를 되살펴 보고 회개하려고 하지 않고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라고 몰아 부치는 그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의 심성은 언제나 자기주장만 옳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만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모든 자기의 언어, 심사, 행동을 정당화 하고 남을 비평하고 평론합니다. 또한 타락한 인간의 자기 유익을 먼저 구하는 마음이 뿌리 내려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 유익을 최대로 보장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유익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바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난 다음에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사건 속에서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누가 네게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하더냐.” 고 하시니 아담은 자기가 잘못한 것은 조금도 회개하지 않고 그 하나님의 질문에 대해서 자기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고 “하나님 책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여자 하와 책임입니다.” 그렇게 책임을 남에게 돌렸습니다.
창3장 12~13에 보면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기에서 아담은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고 하와에게 전가했지 자기가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만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체면을 세워야 되겠다고만 생각하지 회개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타락하자마자 아담의 속에 생겨난 부패한 심성인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만 그러느냐? 아담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와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야훼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와는 구차스러운 변명이지만 뱀에게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뱀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를 타당화 했습니다. 자기가 선악과를 먹은 것을 타당화 하고 자기의 체면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에덴에서 쫓겨나서 가정을 이루고 난 다음에 처음 낳은 아들이 가인이고 둘째가 아벨이었는데 그들이 장성하매 다 분가하여 나가서 때가오매 하나님께 재단을 쌓았는데 가인은 자기가 손으로 지은 농산물을 제단에 얹고 아벨은 양을 잡아 피를 흘려 재단에 얹은즉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재물은 돌보지 아니하시고 아벨의 재물은 돌보아서 그 재물을 기쁘게 받아 주셨습니다. 그 결과 가인은 마음에 분노가 생겼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내 재물을 받아들이지 않았느냐 그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장차 메시아가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질 것을 아담에게 가르쳐 주셨고 아담이 그 자손들에게 설명해 주어서 메시아를 상징하는 어린양을 잡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을 배웠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는 자기 자랑으로 자기 손으로 지은 재물인 곡식을 재단에 얹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하나님 뜻대로 양을 잡아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재물을 응답해 주셨는데 자기 계획에 하나님이 응답 안한 것은 아벨 때문에 그렇다. “내 탓이 아니고 네 탓이다. 아벨 너 때문에 나는 하나님께 응답을 받지 못했다. 나는 내가 손으로 지어서 만든 곡식을 하나님께 드린 것은 타당한 일이다. 정당했다. 네가 정당하지 않았다. 네가 내 체면을 손상시켰다. 그러므로 너는 죽어야 되겠다.” 그래서 가인이 아벨을 밭에서 돌을 들어 쳐서 죽였습니다. 인류역사상 첫 살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마음 바탕에서 있어서 가정, 사회, 국가, 국가 간의 갈등과 분쟁은 그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기중심적인 자존심과 자기만 옳다고 하는 자기주장과 자기 유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마음을 이기고 평화공존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방법은 무엇입니까? UN이 그 해결책입니까? 국가기관이 해결책입니까? 사회단체가 해결을 할 수 있습니까? 안됩니다. 인간은 역사이후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미움, 시기, 분노, 질투, 싸움, 분쟁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자기의 주장을 희생할 수 있고 자기 타당화를 희생할 수 있고 자기 유익만 구하는 마음을 희생하고 남을 나와 동등하게 나보다 귀하게 생각할 수 있는 희생적인 마음이 생겨야 인간의 분쟁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2. 사랑 이외의 해답은 없다
그런 문제가 무슨 힘으로 해결될 수 있습니까? 사랑 이외에 해답은 절대로 없습니다. 하늘 아래 사랑 이외에는 이 문제의 해답이 없습니다. 여러분 인간 세상에도 사랑이 자존심, 자기 고집, 자기 유익 등을 희생할 수 있는 힘이 되어서 이웃과 화해하고 함께 손을 잡고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남녀 간의 진정한 사랑도 진실한 부부의 사랑에 대해서 서로 화목하게 살게 만들어 준다. 사랑이 있어야 부부간에 서로 자존심, 자기 고집, 자기 유익 등을 희생하고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더 귀중히 여기고 함께 손잡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고구려 평원 왕 때 평강공주와 바보온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못생겼지만 온달이라는 유명한 바보가 늙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걸식하고 봉양하면서 살아서 모든 사람들이 그 삶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평원왕의 공주인 평강공주는 어릴 때 하도 자꾸 울어서 울보였습니다. 그래서 부왕이 울 때마다 “너 안 울면 좋거니와 계속 울면 바보온달에게 시집 보낸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고 울기만 하면 “너는 바보온달에게 시집 보네겠다.” 했으므로 평강공주는 자라나면서 머리가 세뇌가 되어서 자기는 운명적으로 바보온달에게 시집가야 된다고 결정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되어서 귀족에게 시집보내려 하자 공주는 평소 때 부왕의 말대로 온달에게 시집가겠다고 고집 부렸습니다. 왕이 대노해서 내어 쫓아 버리니까 그 길로 보따리 싸서 바보온달에게 가버리고 만 것 입니다. 바보온달에게 찾아가서 그는 자기 자존심도 자기 고집도 자기의 유익도 다 버리고 바보온달을 잘 받들면서 궁궐에서 갖고 온 패물을 팔아 생활하고 온달에게 무예와 학문을 배우게 하여 출중한 인물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왕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후주의 무제가 쳐들어오자 온달이 선봉이 되어 나가서 전쟁에서 적군을 무찌르고 대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니 왕이 너무 감동해서 정식으로 사위로 인정을 하고 큰 벼슬을 내렸습니다. 온달은 나라를 위해 훌륭한 장수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왕 때 그는 신라에게 뺏긴 한강 이북 땅을 되찾기 위해 출전했다가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온달의 애국심, 충성심, 용기가 삼국사기에 명문으로 전해지고 있었으나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은 공주의 숭고한 사랑이 자기가 공주임에도 불구하고 사랑 때문에 자존심, 자기고집, 자기유익 등을 다 희생하고 바보온달을 키워서 훌륭한 인물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일국의 공주쯤 되면 얼마나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 고집도 있고 자기 유익을 능히 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그것을 극복할 수 있어요. 사랑 아니고는 결코 자기를 희생하고 남을 도와줄 수 있는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도 여러분 한가지이지요.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언제든지 자기의 자존심, 자기 고집이나 자기 유익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부모 사랑이지요. 여러분 소설가 조창인 씨가 지은 ‘가시고기’라는 소설이 있어요. 올봄에만 해도 140만부가 팔려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이 가시고기는 암컷이 알을 낳고는 도망을 쳐버립니다. 그러면 수컷이 그 알을 품어서 새끼가 깨어나면 그 새끼에게 자기 고기를 뜯어 먹입니다. 그래서 새끼들이 그 아버지 고기를 다 뜯어 먹고 자라면 떠나게 되고 아버지는 죽게 됩니다. 그것이 가시고기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가 조창인 씨가 가시고기라는 책으로 만든 소설의 내용을 보면 부부간에 이혼을 하고 어머니는 미국으로 가버렸습니다. 아버지가 아들 하나 데리고 사는데 그 아들이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백약이 무효입니다. 아버지는 모든 직업을 다 버리고 그 아들에게 매달려서 목숨을 바쳐 구걸도 하고 동정도 하고 온갖 모욕과 굴욕을 참습니다. 아들 치료하는데 치료비가 엄청나게 드니까 친구들에게도 손 벌리고 제자들에게도 손을 내밀고 모욕을 당하고 그래도 자기는 죽더라도 아들은 살려야 되겠다. 이런 헌신적인 노력으로 아들은 살아나자 아버지는 과로로 간암이 걸려서 세상을 뜬다는 이야기입니다. 굉장히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저도 이 책을 손에 들고 첫 페이지에서 끝까지 읽어내려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시고기 엄마는 도망을 쳐버렸지만 아버지가 그 살을 뜯어 먹여서 그 백혈병 걸린 어린 아들을 살려 놓고 자기는 죽었다는 얘기인 것입니다. 이것은 부성애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모의 이와 같은 지극한 사랑이 있기 때문에 핏덩어리인 어린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인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이것을 할 수가 있지 여러분 부모가 자기 자존심 다 세우고 자기 고집 다 세우고 자기 유익을 다 주장한다면 길러낼 자식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웃과 평안하게 살려면 이웃 사랑이 실천되어야 되는데 사랑은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자존심도 자기주장도 자기 유익도 버릴 수가 있습니다. 사랑 이외에는 이와 같은 심정으로 이웃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이번 무역센터 참사현장에서 구조를 위해 진두 지위하던 뉴욕시의 최고 고참인 소방국장은 늘 부하들보다 가장 위험한 곳에 뛰어들어 구조 활동을 했는데 이번에도 쌍둥이 빌딩에 테러리스트의 비행기가 추돌해서 불이 났을 때 그는 최고 간부 5명과 함께 350명을 거느리고 붕괴직전까지 빌딩계단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구슬땀을 흘리면서 사람들을 구출하다가 빌딩이 무너질 때 거기에 파묻혀 죽었습니다. 여러분 왜 자기생명을 희생했습니까? 그 빌딩이 불붙어서 무너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부하들 거느리고 그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사람들을 구출하는 이 일은 사랑 때문에 자기를 희생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자존심도 자기 수양도 자기유익도 버릴 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역사가 없으면 오늘날 사회는 공존할 수 없으며 화평을 가질 수도 없으며 이런 사랑이 없으면 우리 사회는 발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의료봉사로 일생을 바친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도 똑같습니다. 루터교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대학에서 철학박사,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신학강의를 하고 있던 그는 탁월한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로써 활동했습니다. 이때 아프리카 흑인들의 생활상에 대한 글을 읽고 흑인 구제를 마음에 결심을 했습니다. 다시 의학을 공부하여 의학박사가 되고 의사자격증을 얻어 부인과 함께 아프리카의 가봉 랑바렌에 가서 닭장을 개조하여 병원을 세워 가난하고 병든 흑인들에게 사랑을 일생 몸소 실천하여 밀림의 성자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1952년 노벨 평화상을 받고 그 상금으로 나환자촌을 세워 사랑의 의술을 펴다가 90세에 건강이 나빠져 세계인의 애도 속에 그는 별세를 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30세까지는 내 자신을 위해서 살고 그 후로는 남을 위해서 살기로 결심한 뒤 자신의 행복을 버리고 흑암의 대륙에서 그 열악한 생활환경 가운데 일생을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하므로 본이 된 것입니다. 사랑 아니고는 자기를 희생하고 남을 위해서 남의 행복을 위해서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일은 이 세상에는 결코 없습니다.
여러분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를 잘 아시죠?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37세에 경남 여수 나환자 요양원인 애양원 교회의 전도사로 부임하여 평생을 나환자들과 함께 하며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내고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나환자가 되기를 소원할 만큼 주님의 사랑을 실천한 분입니다.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여수경찰서에 갇힌 지 5년간 옥고를 치르며 종신형을 선고 받았으나 해방이 되어서 그는 석방이 되었습니다. 1948년 여순 반란 사건 때 좌익계 폭도들에게 끌려가 기독학생이던 큰아들 동인이와 둘째 아들 동신이 마저 총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큰 슬픔에 통곡하고 울었으나 두 아들을 순교의 제물로 받아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국군이 순천을 탈환하고 주모자를 잡아서 재판하고 사형에 처하려고 할 때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사형장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사정하여 구출해 내어서 자기의 양자로 삼아 그 청년을 신학교까지 보내어서 훌륭한 목사로 만들었습니다. 6.25때 교회와 환자들을 돌보다가 인민군에게 잡혀 감옥에 갇혔어도 자기에게 들어오는 음식을 자기는 먹지 않고 이웃 사람에게 돌려주면서 전도했습니다. 공산군들은 그 입술로 전도한다고 끌어내어서 입술을 구두로 짓이겨서 입술을 다 찢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를 죽였습니다. 그는 48세에 순교했습니다. 그는 사랑의 원자탄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자기 자신을 온통 버리고 희생할 수 있어요. 자기 자식 둘이나 죽인 원수를 데려다가 양아들을 삼아서 먹이고 입히고 돌보고 신학교까지 보냅니까? 사랑이 아니고는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유고슬라비아 마게도니아의 유족한 집안 막내딸로 출생하여 소명을 받고 수도원에 들어가 수녀가 된 후 인도 캘커타에 파견되었습니다. 36살에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도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봉사하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사랑의 선교회를 창립하여 빈민가에 뛰어 들어가 극빈자들을 구호하고 나환자들을 씻겨 주고 에이즈 환자들을 끌어안고 희생적으로 돌봐 주었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다른 수녀들과 평생 동안 사랑의 실천을 보이며 세운 구호시설은 5백 개가 넘고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을 돌보며 매춘여성과 길거리에 죽어가는 자들을 불러다가 머리 씻기고 얼굴 씻기고 무릎에 눕혀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아들이게 해주었습니다. 1979년 노벨평화상 상급을 나환자 구호소 기금으로 썼고 그는 죽을 때 ‘서로 사랑하십시오. 진정한 사랑은 이것저것 재지 않습니다.’라는 유언을 마치고 87살에 세상을 떴습니다. 그 뜻을 이어 전 세계 123개국의 566개 구호센터에서 4,200명의 수녀들이 봉사를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인간의 타락한 자존심과 자기고집과 자기유익을 극복하고 희생하며 봉사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3. 가장 위대한 사랑
이 세상의 사랑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여러분 하나님이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신 것, 사랑 아니고는 이런 희생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자기 몸을 내주어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우리를 위해서 제물이 된다는 것은 사랑 아니고 할 수 있습니까? 육을 쓰고 오신 예수님도 사람인지라 살고 싶고 자기 자존심도 있고 고집도 있고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이 이것을 극복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고뇌를 보십시오. 자기가 살 것이냐, 인류구원이냐의 갈림길에서 그는 고민했습니다.
마26:36~38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쌔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얼마나 온 인류의 죄악을 짊어지는 것이 얼마나 고민스러웠던지 죄를 알지도 못한 그가 순 배설물 같은 인류의 죄악을 다 찌꺼기까지 들이마셔야 되는 그 처지에 얼마나 전율하고 고민했겠습니까?
막14:33~34에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이와 같은 고통과 마음의 괴로움을 예수님은 왜 택하십니까?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를 희생하신 것입니다. 그는 기어코 하나님 앞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나의 자존심도 있고 나의 고집도 있고 나도 살고 싶지만 그러나 아버지의 뜻이 인류를 위해서 내가 제물이 되는 것이 뜻이기 때문에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렇게 그는 기도해서 자기 자신을 내어 놓았습니다.
눅22:42~44에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 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얼마나 고민했기에 피하의 모세혈관이 터져서 땀구멍으로 피가 흘렀겠습니까? 몸을 찢고 피를 쏟고 그 결과로 마귀의 나라와 그 정사와 권세를 폭파시켜 버린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내가 다 이루었다 할 때 마귀의 나라와 정사와 권세가 여리고 성처럼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인류구원을 중지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예수를 죽이시고 그의 나라가 폭파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십자가의 사랑, 이를 통하지 않고는 우리가 사랑을 구할 데가 없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님의 희생을 묵상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사랑을 얻는 것입니다.
갈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중한 고통 당하사 대신 죽은 주 예수의 사랑하는 은혜요. 그 보배로운 피를 흘려 나를 위해서 대신 희생이 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가슴에 품을 때 비로소 우리 마음속에 자신을 이기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빌2:5~8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자기를 낮추고 자기를 희생시키고 십자가에 죽음으로 우리의 재물이 되어 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가 바라보고 묵상하고 믿을 때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고는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희생적인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부부간에 싸움이 생길지라도 내가 십자가를 생각하면 남편에게 복종할 수 있고 아내에게 복종할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의 희생의 그 사랑이 나를 강권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님께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시도록 구해야 됩니다.
롬5:5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하나님의 성령이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셔서 내 인간의 자존심을 극복하고 고집을 극복하고 자기 유익을 극복하고 희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이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십니다.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와 계신 것입니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충북 제천에서 38년간 1,200명의 버림받은 아이들을 양육한 65세 된 제인 화이트 여사는 갓 태어난 어린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버림받는 것에 충격을 받고 영아원을 세워 자신은 결혼도 않고 사랑으로 어린애들을 키워서 전 세계에 733명을 입양시켜 훌륭히 성장시켰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부어주신 사랑으로 어찌할 수 없이 사랑의 포로가 되어 이 불쌍한 어린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 일생을 보냈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한국 사람도 아닙니다. 백안의 서양여자입니다. 그 좋은 자기 환경을 다 버리고 한국에 와서 버림받은 고아들을 위해서 일생을 버린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속에 부어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스스로가 성령이 마음에 사랑을 부어 주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지 해야만 자존심, 자기주장, 자기유익을 이기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기반을 주시는 것입니다.
히12:2~3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하라.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갈3:1~3에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우리의 신앙생활은 항상 눈앞에 밝히 보이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살아야 됩니다. 아름다운 교회당이 우리 신앙의 목표가 아닙니다. 교회가 크고 작다는 것이 우리 신앙의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 신앙의 목표는 날 위하여 십자가에 몸을 찢고 피 흘려 달려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사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이 십자가를 잃어버린 사람은 종교인은 될지라도 크리스천은 되지 못합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어떠한 어려움에 처해도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지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극복할 수 있고 희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만이 자기와 세상을 이기고 화해와 평안과 함께 사는 세계를 만들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미국과 서방 자유세계와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과 극악무도한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라덴과의 전투가 임박해 있습니다. 그 뒤에는 거대한 이슬람교 국가들이 있습니다. 전체의 19억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이슬람권하고 기독교하고 문화적인 충돌로 최후의 전쟁으로 몰아갈 위험이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서로 자존심을 굽히지 않습니다. 서로 서로 자기들이 옳다고 타당화 합니다. 서로서로 자기 국가의 유익을 도모합니다. 아무리 정치적인 중재를 서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 문제의 해결은 어느 누구도 십자가를 바라보고 사랑을 가지고 자기를 희생할 수 있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개인문제, 사회문제, 국가문제, 국제정치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항상 그곳에서는 무력이 충돌하고 분쟁이 있고 살상이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결론>
고전13:1~8은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 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 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 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자연적인 속성은 아닙니다. 이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항상 바라보고 매일같이 거기에 자기를 못 박고 예수님의 사랑이 성령의 능력으로 가슴속에 부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자기를 희생하며 화해와 공존의 원동력이 될 수가 있습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울어도 못하네. 힘써도 못하네. 애써도 못하네.
오직 주님을 믿고 그리스도의 사랑 받아야 이 사랑이 자기의 타락한 심성을 극복하고 자기를 희생하고 사랑실천을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사랑이 아니고는 가정에 화평도 이웃 간에 화평도 사회와 국가의 화평도 없습니다. 국제간에 화해와 화평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의 사랑 이외에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다른 어떤 곳을 봐도 해결책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성령의 능력으로 자기 고집을 자아중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 가슴에 손을 얹고 우리는 남편으로써 아내로써 부모로써 자식으로써 성도로써 이웃으로써 국민으로써 과연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를 맡겼는가. 내가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강권함을 받아 이해와 동정과 사랑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는가 생각해 보게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 사랑이 없으면 종교는 허위에 불과합니다. 모든 종교적인 의식은 헌신짝보다 못합니다. 사랑이 없는 모든 것은 다 소용이 없게 되고 맙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믿는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핵심이요, 중심이 사랑인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사랑으로써 변화 받고 실천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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