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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후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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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2년 12월 29일 주일2부설교 |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 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영광은 환난이 피우는 꽃이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꽃의 여왕인 장미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꽃이 피어있는 가시넝쿨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시넝쿨이 없는 장미는 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 다 인생의 성공과 영광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성공과 영광은 환난이란 가시넝쿨에서 피는 꽃입니다. 작은 환난의 가시넝쿨에서는 작은 영광의 꽃이 큰 환난의 가시넝쿨에서는 큰 환난의 영광이 꽃이 피는 것입니다.
성경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환난과 영광
오늘 첫째로, 구약시대에 환난과 영광을 체험한 인물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벨론에 포로가되어 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큰 환난을 당하지 않았으면 영광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요, 그들의 이름이 천추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환난이 다가왔기 때문에 영광을 얻게 되고 그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고 천추에 남게된 것입니다. 그들은 환난의 깊은 시련에도 굳센 신앙으로 환난을 영광으로 변화시키는 주역들이 되었습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왕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귀족청년들을 잡아서 공부를 시켜 왕궁에서 일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왕은 막강한 힘을 과시하며 두라평지에 황금신상을 세우고 그 신상을 헌당하는 날 전 영토에 문무백관을 다 모아서 그 우상에 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 문무백관중에 도열에 섰으면서 음악이 연주될 때 우상에 절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이것이 느부갓네살왕에게 알려지자 느부갓네는 치를 떨며 그들을 불렀습니다. ‘어찌하여 네가 내가 세운 신상에 절하지 않느냐? 고의적으로 그렇게 했느냐. 다시한번 기회를 줄테니까 음악이 연주될 때 우상에 절을 하라’. 그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말했습니다. ‘왕이여, 왕이 그렇게 우리에게 명하더라도 우리가 순종하지 않고 우상에 절하지 않을줄 왕은 너무나 잘알지 않습니까?’. 왕이 말하기를 ‘그러면 일곱배나 더한 뜨거운 풀무불에 너희를 던져 넣으리라’. 그러나 다시 그들이 말하길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 내실 것이요. 안건져 내어도 우리는 결코 우상에는 절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분노가 극에 달한 왕은 엄명을 내려서 그들을 일곱배나 더한 풀무불에 던져 넣으라고 했는데 얼마나 명령이 엄했던지 그들을 던졌던 병사들이 그불길에 타죽는 비극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불구덩이속에 던져 졌을 때 왕이 놀란 것은 세사람을 던졌는데 네 번째 사람 하나님의 아들같은 분이 와서 함께 그들과 춤을 추고 있는데 이 네사람은 불에 타지도 아니하고 그슬리지도 않았습니다. 너무나 놀래서 느부갓네살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불러 내셨습니다. 보니 머리카락도 타지 않고 불에 그슬른 흔적도 없습니다. 시험을 당할 때 믿음을 져버리지 않고 굳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주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환난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평소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환난때 하나님의 큰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이 환난의 큰 시련을 통해서 그 무시무시한 불신의 왕 느부갓네조차 마음이 녹아지고 변화를 받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 지위가 더 높아지게 된것입니다. 성경 다니엘서 3장 28절로 30절에 보면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 터를 삼을찌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고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
여러분 이것 보십시오. 환난의 용광로가 느브갓네살의 완악한 불신앙의 마음조차 녹여 버리고 오히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더 영광스럽게 만들고 만것입니다.
우리는 다니엘의 환난과 영광도 잘알고 있습니다. 메데와 파사왕 다리오때 왕이 다니엘을 사랑해서 국무총리로 삼으려고 할 때 관료들이 시기를 해서 모함을 했습니다. 왕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왕이요 지금부터 30일동안 왕을 신으로 삼고 다른 신에게 예배하는 사람은 잡아서 사자굴에 넣게 하소서’. 왕이 듣기에 좋은 말이었습니다. 왕은 곧 칙서를 발표했으며 시행토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어놓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이것을 곧장 관료들이 왕에게 고발했습니다. ‘왕이여 왕의 명령을 어기고 다니엘이 자기의 신에게 하루에 세 번씩 경배합니다’ 그때야 왕이 ‘아! 다니엘을 모함해서 잡아 넣을려고 이들이 이렇게 했구나’ 알았지만은 이미 자기가 명령을 내린지라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을 잡아서 사자굴속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리고 굴문을 막고 밤새도록 왕은 식음을 전폐하고 가무를 전폐하고 그는 마음에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왕이 사자굴 앞에 나와서 말했습니다. ‘다니엘아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능히 건지셨더냐?’ 그때 굴안에서 다니엘이 말했습니다. ‘왕이여 만세소를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그 사자를 보내사 나를 지켜 사자가 나를 물고 찢지 못하게 하였나이다. 이것은 내가 아무 죄도 짓지 아니했으며 왕에게 반역도 하지 아니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왕이 너무나 기뻐서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꺼내어 보니 할퀸 자국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원수들을 하나님이 잡아서 가족과 함께 사자굴 속에 던져 넣으니 그 몸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사자가 키대로 일어나서 그들을 깨물어 빼까지 부스러 뜨리고 말아 버렸습니다. 바로 이 큰 환난을 통해서 다니엘은 메데와 파사의 국무총리가 되고 더 영광스럽게 된 것입니다. 다니엘서 6장 26절로 28절에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찌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만일 다니엘이 이런 환난을 당하지 아니했더라면 그 이름이 이렇게 세세토록 성경에 기록되지 아니할 것이고 그가 다리오왕시대 국무총리도 되지 아니했을 것이고 영광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환난은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누구도 환난을 당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요, 환난은 그것을 참고 견디면 반드시 동등 그 이상의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2. 구주 예수님의 환난과 영광
오늘 둘째로, 우리는 구주 예수님의 환난과 영광을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 하나님의 아들되신 예수님이 환난을 당하지 않았나요?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도 환난을 당하시나요? 하나님이 육신을 쓰시고 우리를 구원하러 세상에 오셨을 때 그는 형언할 수 없는 환난을 당했습니다. 환난의 극한 시련을 통해서 그는 인류를 구원하고 만왕의 왕 만주가 되는 영광의 극치에 도달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군중과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버림을 당했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박으 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하고 외쳤습니다. 마가복음 15장 13절에 "저희가 다시 소리지르되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예수님이 저들을 먹여 주고 입혀 주고 병고쳐 주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소망을 주었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그러한 아주 흉악한 마음이 있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찌 하나님의 아들이 베푼 그 한없는 은혜를 종국적으로 그들은 원수로 갚습니다.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그 군중속에는 예수님에게서 밥을 얻어 먹은 사람도 있고 병고침 받은 사람도 있고 위로와 격려를 받은 사람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조차도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쳤습니다. 마태복음 26장 56절에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 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그는 십자가 짊어지고 골고다 산을 향해서 외로운 발걸음을 옮겨 갔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여러분 고난의 극치입니다. 사람이 그냥 사형을 당해도 괴로운데 십자가에 못을 박아 공중에 매달려 놓고 서서히 피를 흘려 죽게 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육체적인 고난만 당한 것이 아닙니다. 온인류의 죄를 다 짊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을 당한 그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주님은 창세 이후로 하나님과 분리된 적이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과 같이 하였는데 그가 십자가에 못박혀 온인류의 죄를 다 짊어졌을때는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외쳤습니다. 마태복음 27장 46절에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주님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는 그 한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버림을 당했다는 것은 지옥의 고통입니다. 지옥이란 뭡니까? 하나님이 안계신 곳이 지옥인 것입니다. 지옥의 고통을 당했었습니다. 그런 큰 시련과 환난과 고통을 통해서 죽으시고 무덤에 들어가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주님은 승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지극히 큰 영광을 얻으시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2장 5절로 11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성경 이사야 52장 13절로 15절에는 예수 그리스도 오시기 600년 내지 700년전에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실 것과 영광을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주님이 얼마나 맞았던지 그 얼굴이 부어서 눈과 코와 입을 분간할수 없을 정도로 상했었습니다. 사람들마다 보고 너무 놀랬습니다. 그런 고난 당한 그가 지극히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으신 영광의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도 친히 그 영광의 보좌를 그냥 얻은 것이 아닙니다. 한없는 시련과 환난과 고난을 겪고 난 다음에 고난의 열매로서 영광의 꽃을 주님께서 피우게 되신 것입니다.
3. 우리가 환난 당할 때
그러면 셋째로, 우리가 환난 당할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로마서 5장 3절로 4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전혀 시험과 환난을 안당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행히 어떤 사람은 적은 시험과 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심히 큰 시험과 환난과 죽음의 고통을 당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환난과 시험이 전혀 없는 자는 한사람도 없습니다. 티끌이 불티가 하늘로 올라감같이 인간은 환난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욥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우리는 어떻게 그 환난에 대처하냐에 따라서 환난이 우리를 죽이는 사형틀이 될 수도 있고 우리를 영광으로 꽃피게 하는 장미꽃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세와 태도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환난이 우리에게 먹구름처럼 다가오고 폭풍우처럼 불어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여러분 환난이 다가올 때 환난에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받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환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련하기 위해서 보낸것이기 때문에 환난을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더 고통스럽습니다. 환난은 다가올 때 우리가 가슴을 펼치고 순순히 환난을 우리의 운명의 태인 것으로 받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난은 참는 것입니다. 환난을 참지 못하고 발버둥을 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욕을 하고 주먹질을 하면 점점 환난은 더 족쇠처럼 조여오는 것입니다. 더 괴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을 당할 때 우리는 환난은 인내를 시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내해야 됩니다. 참아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지날 때 참지 못하고 계속 원망, 불평을 했습니다. 광야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난 땅이란 영광스러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통해야 하는 장미꽃 가시밭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이 주시는 한과정인 것으로 알고 받아 들이지 아니하고 광야를 지날 때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저항하며 우리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반항했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환난의 족쇠에 조여서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환난은 우리가 받아 들이면 소화되고 우리의 영양분이 될 수 있지만 환난을 우리가 저항하면 그 환난의 족쇠에 묶여서 죽습니다. 여호수아 갈렙은 뭐라고 했습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가나안 땅의 그 높은 성벽과 네피림의 후손 아낙자손 대장부들이 지키고 있는 것과 그 토지의 주민을 삼키는 듯 광야같은 것을 보고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들어가자. 다 물러가자고 하는데 여호수아 갈렙은 그 환난과 고통의 땅이 우리의 밥이라고 말했습니다. 밥은 여러분 우리 좋으라고 주는 것이지 먹고 죽으라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 밥은 먹어야 건강하게 자라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잖아요.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메뉴중에 환난과 고난은 밥으로써 얹혀져 있는 것입니다. 그 환난, 고난을 물리친다는 것은 우리 삶의 밥상을 물리쳐 버린 것입니다. 밥을 안먹으면 굶어 죽잖아요. 약해지잖아요. 우리의 메뉴중에는 환난과 고난이 반드시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0절로 11절에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에 보면 환난을 소화해서 그 결과로 큰 영광의 꽃을 피운 사람이 있습니다. 욥입니다. 여러분 욥은 환난이 다가올 때 환난을 저항하지 않고 그 극심한 환난을 자기에게 보내준 하나님의 연단으로 받아 들인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쯤에 피할길을 내서 능히 감당케 하시는 하나님은 자비하고 긍휼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밥상 메뉴에 환난과 고난을 하나님이 넣어 주신 것은 이를 통해서 우리가 소화시키고 힘을 얻어 더 큰 영광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을 갖게 하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욥기 1장 20절로 22절에 보면은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여러분 욥은 원망할만 합니다. 있는 재산 다 잃어 버리고 자식들 다 비명행사하고 그의 몸은 치료할 수 없는 병에 걸려서 옷을 입을 수 없을 만큼 곪아 터졌습니다. 잿더미에 앉아서 기와장으로 몸을 끌고 있었습니다. 그는 패가망신 했습니다. 어지간한 사람이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 아내조차 와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으라 그리고 떠났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 시험과 환난을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내 평생에 좋은것도 주실수 있고 환난도 주실 수 있다. 그것을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시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환난중 원망하는 어리석음을 행치 아니했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적 행사를 겸허히 받아 들였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인간적으로 생각하기에 좋은일만 내게 보내주신 것이 아니라 내게 시험과 고난도 보내주신 것이므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저항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받아 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욥기 1장 21절에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언제 주셔서 좋을때는 웃고 하나님을 감사하고 거두어 가실때는 원망과 불평할 수가 있느냐. 내가 빈손들고 어머니 뱃속에서 나왔는데 갈때는 또 빈손들고 가지 않겠느냐. 살아있는 동안에 주신이도 하나님이시오, 거두어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니 그저그저 하나님께 감사할 것 밖에 없다고 긍정적으로 그 환난을 바라보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억센 환난 중에도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형제들 친척들, 친구들, 아내도 다 그를 고통주고 떠나갔는데 그는 말하기를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위에 설것이라’고 희망을 말했었으며 욥기 23장 10절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지금은 내가 단련을 받는 동안에 너무나 고통스럽지만은 단련 받은 후에는 정금같이 되어 나올 것이다. 그런 희망의 고백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했습니까? 환난이 지나고 난다음 연단을 받고 일어난 욥을 하나님이 축복하셨습니다. 욥기 42장 12절로 17절에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두배를 더주셨습니다. 그가 양 오천마리 였는데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거리와 암나귀 일천을 주셨으며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는데 그가 첫째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며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 아비가 그들에게 그 오라비처럼 산업을 주었더라 그 후에 욥이 일백 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 욥은 환난전에 보다 더 환난 후에 배로 더 하나님의 복을 받고 은혜를 입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도 욥이 환난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사막에 살던 한 촌장인 욥이 성경에 기록되고 세세토록 그 이름이 높임을 받고 사람들이 그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환난 안받았으면 욥은 이름도 없는 사람이요, 그는 저 아라비아 북부에 있는 어느 조그마한 촌락에서 태어났다가 이름없이 죽을 사람인데 환난이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환난이 그를 영화롭게 만들고 세세토록 그 이름이 빛나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때 욥처럼 우리는 환난을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보내주신 것을 알고 묵묵히 받아 들이고 인내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환난은 우리에게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를 연단하기 위해서 왔기 때문에 환난을 물리치면 교훈을 못받습니다. 선생을 물리치면 제자가 무엇을 배웁니까? 선생이 좀 심하게 다루더라도 선생을 받아들여야 제자가 배울수가 있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 성도들이 목사를 대적하고 목사를 미워하는데 목사를 대적하고 목사를 미워하면 목사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을 받아들일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 교회와서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목사가 맘에 들지 않고 목사가 싫으면 교회를 떠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 목사를 통해서 교훈을 받을수가 없고 은혜를 받을수가 없으니 그곳에서 영혼이 굶주려 죽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자기가 마음 편하게 말씀을 듣고 교훈을 받을수 있는 교회와 목사를 찾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학교선생은 무섭게 채찍을 때리더라도 그 선생을 통해야 교육을 받을수 있습니다. 요사이 자녀들을 너무나 과보호해서 선생님이 좀 꾸짖고 채찍만 때리면 부모에게 연락하고 부모는 뛰어와서 팔뚝을 걷고 ‘내자식 네가 낳았냐. 내가 기르는데 네가 왜 때리냐’ 야단법석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생에게 맞으면 그 자리에 핸드폰을 들고서 경찰서에 고발을 해가지고서 경찰관이 뛰어오게 합니다. 선생이 뭘 답답해서 학생 종아리를 때리겠습니까? 내자식도 아닌데 때려놓고 난 다음 좋은소리 못들을 것 번연히 아는데 선생이 왜때려요? 얼마나 답답해야 때렸겠습니까? 남의 자식 맡아서 불순종하고 공부 안하고 꾀부리고 공부하는 다른 사람까지 못하게 한 얼마나 못되게 굴어야 선생이 채찍을 들겠습니까? 그런 선생을 받아 들여야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선생을 원망하고 욕하고 고발하고 대항하면 선생이 낙심해 버리고 그 다음에는 삯군이 되는 것입니다. ‘에이 나 월급만 받아 먹으면 될터이니 자식들이 개망나니가 되던 못배우던 내가 상관할 것 뭐냐’ 그러면 삯군이 되요. 다 오냐 좋다. 이래도 좋다. 저래도 좋다. 삯군이죠.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이 환난의 채찍을 들고 올 때 하나님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면 연단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교훈을 받지 못하고 자라지 못합니다. 자라지 못하면은 더 큰 축복을 얻을수가 없는 것입니다. 환난이 가져오는 교훈을 반드시 받아야 되요. 시편 119편 67절 한번 따라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보세요. 고난 당하기 전에는 잘못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 당하고 난 다음에는 교훈을 배워 깨어져서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과 고난은 우리를 고치고 교훈을 해주고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환난과 연단을 물리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또한 환난과 연단이 다가 오거든 고집을 부리지 말고 깨어져야 돼요. 야곱이 고난을 당하여 깨어져서 지렁이가 될 때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야곱이 얼마나 고집이 셉니까? 성경에 야곱은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아닙니다. 야곱은 사기꾼입니다. 그는 형을 두 번이나 사기쳤고 그리고 외삼촌 집에 가서도 외삼촌을 속이기도 하고 외삼촌에게 속기도 하고 아주 다루기 힘든 고집많은 사람입니다. 나중에는 외삼촌 집에서 얻은 재산을 다 가지고 외삼촌 딸들을 자기 아내로 삼고 살았는데 데리고 외삼촌 몰래 줄행랑을 쳤습니다. 아주 요사이 말하면 못된 사기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얍복강에서 그와 씨름해서 그를 깨뜨렸습니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당한 그 극심한 시련, 형이 사백인의 군대를 거느리고 그를 죽이러 분노막심하고 뛰어오는 그 장면에서 그는 박살이 나고 깨어졌습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내 어디가리까. 시험과 환난을 당할 때 고집을 부리고 저항하면 그는 그 자리에서 박살이 납니다. 그러나 시험과 환난 앞에서 깨어져야 됩니다. 큰 풍파 일어나는 것 주님께서 세상줄을 끊고 더 하나님 앞에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4절로 15절에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같게 할 것이라" 지렁이는 스스로 돕지 못하지요. 땅에서 올라와서 땅위에서 꿈틀꿈틀하는 지렁이 안도와 주면 햇빛이 비취면 곧장 피부가 말라서 죽어 버리고 맙니다. 그렇지 않으면 까마귀나 까치가 와서 집어 먹어 버립니다. 지렁이는 도와 주어야 살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깨어져 가지고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도 못하는 완전히 바보 천치같이 깨어지면 그때는 성경에 뭐라고 말합니까? 내가 너를 도울것이라. 지렁이가 되어서 하나님께 완전히 내어 맡겨 버리면 이제는 스스로 돕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돕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전지전능, 무소부지하신 하나님이 도우시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경은 말하기를 ‘이빨도 없는 지렁이를 이가 날카로운 타작기계로 만들어서 산들을 쳐서 부스러뜨리며 작은 산들로 겨같게 할찌니’ 아니 이빨도 없는데 어떻게 타작기계가 되느냐. 그 타작기계는 뭐냐 이빨이 없어도 기도가 이빨이 되는 것입니다. 지렁이 같이 되어서 내가 아무것도 못할지라도 엎드려서 주님께 기도하면 그의 입에서 나오는 기도소리가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 기도가 타작을 하는 겁니다. 나가서 원수를 물어서 박살을 만들어 가루가 되어서 날라가게 하는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살았다고 힘있고 내가 주먹을 휘둘을때는 내 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깨어지고 내가 박살이 나서 주님 앞에 지렁이가 되면 그 엎드려 기도하는 기도가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가 되가지고서 막 부스러뜨립니다. 큰산도 부스러 뜨리고 작은산도 부스러뜨리고 가루를 만드는 기도의 용사가 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져서 부르짓는 기도가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험과 환난을 통해서 순종함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길을 버리고 주님이 인도하는데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환난 당하기전에는 자기길로 가요. 그러나 환난을 당하고 나면 이제는 깨어져서 주님이 인도하는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5장 8절로 9절에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주님을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지 순종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가면 안되잖아요. 그러므로 우리를 순종시키기 위해서는 환난과 고난이 다가와서 깨뜨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순종하게 되어요.
예수님을 믿지 않거나 술먹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 때문에 원망,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원망, 불평은 하면 할수록 우울증에 걸리고 낙심됩니다. 또한 바가지 긁는 아내 때문에 원망, 불평하면 원망, 불평할수록 자기 마음이 고통스럽고 괴로워집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런 남편도 이런 아내도 내 몫의 태인 십자가다. 내 팔자의 태인 십자가다. 왜 다른 사람은 안그런데 나는 그러냐 그러지 마십시오. 그건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 팔자가 있고 난 내 팔자가 있어요. 왜 내팔자를 다른 사람 팔자하고 비교하면 되나요? 이런 남편은 내 몫의 태인 십자가요. 이 아내는 내 팔자의 속안. 십자가이기 때문에 십자가는 끌어 앉고 매달려야 빨리 해결이 되지 안짊어질려면 따라와서 자꾸 짊어지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더 괴롭다고... 십자가에 매달려서 안죽겠다고 꿈틀거리면 팔과 다리가 더 고통스럽고 괴롭지 않겠습니까? 십자가는 죽으라고 준 형틀이기 때문에 그저 그런 남편이나 그런 아내가 오면 내 십자가로 알고 그냥 매달려 죽어야 돼요. 저항하는 자식이 오면 그 자식이 내 십자가로 알고 거기에 매달려 내가 죽어야 돼요. 내가 죽으면 그 다음에 남은 것은 뭐냐. 부활밖에 없는 것입니다. 죽음후에 부활있지 살아서 꿈틀거리는 사람 부활하는 것 봤어요? 살아서 꿈틀 거리는데 왜 부활을 해요. 계속해서 고통 당하며 꿈틀거려야지. 죽어야 돼요. 그러면 하나님이 부활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함을 배워서 내가 죽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면 하나님이 큰 부활의 영광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난과 고통을 통해서 내가 변화받는 것입니다 .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내가 큰 변화를 받게 된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기도하여 성령받고도 변화받지만 그보다 더 뼈속까지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환난과 고통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환난과 고통으로 회개하고 주님께 나가면 우리의 뼈속까지 변화되고 우리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이 십자가거나 고통스러운 상대일 때 상대를 억지로 변화시킬려고 하지말고 내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는 변화가 다가오면 상대방은 자연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남이 변화되어야 내가 변하겠다 하지말고 내가 변화되면 남도 변화됩니다. 거울을 보십시오. 내가 화를 내고 ‘죽일놈’이라면 거울에 있는 내 모습도 나를 보고 ‘죽일놈’하고 얘기를... 내가 생긋 웃으면 거울에도 생긋 웃습니다. 산을 향하여 내가 욕을 하면 산울림이 욕을 하고 내가 칭찬을 하면 산울림은 칭찬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먼저 내가 스스로 변화받고 기도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변화받고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는 변화되지 아니하고 남을 자꾸 변화하라고 고함을 치면은 남은 더 사나워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허물없는 사람 아무도 없고 죄없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나만 거룩하고 나만 올바르고 나만 온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큰 착각에 빠져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오십보 백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깨어지고 내가 회개하고 내가 변화되면 그 결과로 그 영향력이 상대에 미쳐서 상대도 깨어지고 회개하고 변화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지난해에 이혼이 13만 5천건이었습니다. 10쌍이 결혼할 경우 4쌍이 이혼을 했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참았으면 이혼 안했을 것인데... 이혼해서 갈아 치우고 또 다른 사람 채워 놓아봤자 별 볼일 없어요. 성경에 보면 남편을 다섯이나 바꾼 수가성물가의 여인이 있습니다. 하나 갈기 시작하면 계속 갈기 시작해요. 이것 갈아놓고 두 번째 보니 안되니까 ‘에이 기왕 한번 갈은김에 또 갈아보자’ 또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다섯 번 갈았으나 안되어서 예수님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이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른다. 또 갈아재켜 봐라. 또 목마르지. 다섯 번 우물물을 바꿔 마셨는데 다섯 번 목마르지 않느냐. 그러면 어떻게 할것이냐. 내가 주는 물을 마셔야 영원토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참 행복과 은혜가 있지 예수님 떠나서 세상에 자꾸 상대를 갈아 재킨다고 해서 좋은일이 생길 것 같은데 실제로는 좋은일이 생기지 않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수는 어디서 생산하는지 압니까? 발칸 산맥에서 나는 장미에서 나오는데 발칸산맥의 장미는 가장 춥고 어두운 시간인 자정에서 새벽 2시 사이에서 다 만듭니다. 가장 추울 때 어둡고 그리고 새벽 2시에 다 만듭니다. 그 이유는 한밤중에 가장 향기로운 향을 뿜어내기 때문입니다. 그 발칸의 산중에 있는 장미는 춥고 어둡고 가장 괴로운 새벽 2시에 향기를 뿜어낼 때 그때 향수를 만들기 위해서 그것을 따는 것입니다. 신앙의 향기도 가장 극심한 고통중에서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망의 고통의 밤을 지내면서 비로소 변화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때는 고통스럽고 괴롭지만은 골짜기를 벗어나 보면 내 옛사람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으로 나오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을 영광은 우리가 누리는 현재의 환란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인생에 태풍과 폭풍우를 당할 때 우리의 태도에 따라서 우리가 파멸당하기도 하고 위대한 영광의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파멸당하지 않고 영광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인내하고 연단을 받아 깨어져 순종하고 변화되어서 그 결과 건짐을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화로움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냐 곤고냐 핍박이냐 기근이냐 적신이냐 위험이냐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일에 우리를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어떤 환난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의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끊을수가 없습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2002년 한해를 지나면서 크고 적은 많은 시험과 환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건데 그 시험과 환난이 우리 주 예수 안에서 영광의 씨앗이 된 것을 체험하고
또 앞으로 그것이 2003년도에 우리의 삶에 영광의 꽃을 피우게 될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그러므로 욥처럼 환난과 시험은 하나님이 우리의 밥상으로 주신 줄 알고 받아 들이게 도와 주시옵소서.
물리치지 말게 도와 주시옵소서. 환난 당할 때 낙심하지 말고 원망,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꿈과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뻐하고 감사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저녁엔 울음이 깃들지라도 아침에는 웃음이 다가오리라 말씀했습니다.
눈물을 흘리고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둘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난의 씨앗, 환난의 씨앗은 영광의 열매를 맺는 것인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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