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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메시아인가

고린도후 소재열 목사............... 조회 수 700 추천 수 0 2008.01.21 00:10:57
.........
성경본문 : 고후5:11-21 
설교자 : 소재열 목사 
참고 : 의정부평안교회 http://www.uppch.org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베푸시기 위한 구원자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2천년 전에 오신 예수님은 심판 주로서 오신 것이 아니라 그의 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이 다음 재림 주로서 이 땅에 오실 그 때는 구원자로서가 아니라 이제 심판하시려고 오신다고 했습니다.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구원자로 오셨다면 그분은 고난을 받고 죽으려고 오셨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구약성경에 그렇게 예언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 그렇게 예언하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또한 초대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심지어 바울도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를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나중에 그 사실을 고백하면서 자신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말씀 따라 그의 생애를 이 바른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을 위해서 바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이 오해했던 것처럼 예수님을 오해하고나 있지 않습니까? 우리 집에 어린 자녀들이 부모님을 어떠한 부모님으로 이해하고 있느냐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거짓 이단자들, 기독교 이름으로 가장한 숱한 많은 지도자들은 이 하나님의 아들의 개념을 혼란하게 하였습니다. 기독교 종교를 한낱 인간적인 종교로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 이단자들은 이 복음의 본질을 훼손시키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우리들 역시 바른 신앙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용만 하려고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까지 이용하고 교회까지 이용하려고 합니다. 도대체 그들은 어떠한 하나님을 믿고 있고 어떠한 예수님으로 믿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이 초대교회의 싸움이었습니다. 초대교회가 하나님을 모르는 로마와의 싸움이 아니라 자칭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의 종이라는 일꾼들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참으로 그러한 불행한 일들이 오늘날에도 우리 교회들에게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을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세상에 모진 풍파를 인내하며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며 사는, 그런 무게 중심을 가지고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바울의 고민

바울이 선포한 복음인 은혜로만,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바울의 사상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사도직이 예루살렘의 12사도들과 같은 그런 사도가 아니라고 의심을 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사도직을 의심하는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는 언제나 그의 사도직을 변호합니다.
고린도교회가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하는 교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고전1:1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이라고 하고, 고후1:1에서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고후 10-13장에서 가장 격렬한 어조로 자기 사도직을 변호합니다. 자기 사도직을 의심하는 자들을 거짓 사도들이고 사단의 사자라고 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진정한 사도와 주의 종이 누구라는 것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고린도후서는 아주 감동적인 말씀입니다.
어느 세대를 불문하고 진정한 그리스도의 종이 되고자 하는 자들은 이 말씀의 깊은 의미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막연하게 돈만 많이 내면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의 종들은 교회의 살림을 전혀 무시하고 무관심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바울의 사도직 변호의 심경을 16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고후5: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바울이 말하는 거짓 사도들이 예루살렘 총회의 사도인 베드로나 야고보나 요한의 추천 편지를 보이면서 자신들이 진정한 성지 출신의 사도들이라고 하면서 바울에게 그런 추천장이 없는 것을 보니 바울더러 가짜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 안된다는 사상이 16절 말씀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고후 3장에서 그 이야기에 답변하고 있습니다.
고후 3:1-3을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 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이 말씀은 고린도교회 성도들, 너희들이 내가 사도로서 처음 복음을 증거할 때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았는데 그것이 곧 나의 사도직이 옳고 내가 증거한 복음이 정당함을 증명하는 나의 추천서가 아니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종이 쪼가리 써 가지고 다니면서 행세하는 그런 시대는 지났다는 것입니다.

2. 바울의 인식변화

고후 5:16-17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바울은 자신이 과거에는 예수를 지정한 메시아로 인식하지 않고 그를 적대하고 그를 믿는 자를 핍박했던 것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때는 육신적인 관점에서 보았기 때문이라고 인정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바로 인식의 대 변화입니다. 그 인식의 변화는 5:14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후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바울은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러 가는 순간까지 예수님의 죽음이 예수님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예수님을 메시아,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를 믿는 자들을 죽이려는 헛된 열심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시고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나타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자기 죄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고 방금 읽은 14절 말씀 따라 모든 사람의 죄 때문에 죽는 대속의 죽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식과 믿음의 변화입니다. 이같은 깨달음을 더 5:21에서 정확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은 죄가 전혀 없는 예수님에게 우리의 죄를 담당하도록 하고 우리의 죄에 대해 속제의 제사가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인들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였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떠한 메시아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그러나 유대인들, 혹은 거짓 사도들은 어떤 메시아, 즉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구약 성경 삼하 7:12-13에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다윗의 자손가운데 한 가지를 일으켜서 그 나라를 견고케 하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예언하고 있고 그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나라를 예언해 주고 있는데 그들은 이 말씀을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당시 이방민족을 다 정복하고 다윗 왕조를 세웠듯이 로마와 같은 이방 압박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다윗과 같은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시대와 같은 경제적인 풍요와 사회적인 정의, 평화를 이루는 그런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즉 다윗왕가를 재건하여 이방민족들을 굴복시킬 그런 군사적인 영웅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소위 그런 메시아, 왕을 기다렸습니다.
이런 유대인들의 관점에 볼것 같으면 예수님이 이런 일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출시키는 커녕 처참하게 십자가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로마의 일개 지방관인 빌라도에게 처참하게 죽음을 당한 자가 어떻게 모세와 같은 선지자이며, 건고한 다윗왕조를 재건할 메시아이겠습니까? 정치적인 자유, 경제적인 풍요,사회적인 정의를 가져오기는 커녕 도리어 처형당했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고난과 죽음을 당하게 했지 않습니까?
따라서 유대교의 메시아의 사상에 볼것 같으면 예수님은 메시아일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지금까지 예수님을 메시아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습니다. 구약 성경을 전혀 다르게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도 저 유대인들 처럼의 메시아관을 가지고 잇는 자들은 혹 없습니까? 그분이 우리들에게 경제적인 풍요를 가져다 줄 때에만이 그분은 메시아입니까? 그분을 우리 집의 평화만을 가져다 주는 예수님으로 생각하고 있지나 않습니까? 나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는 그런 식의 예수님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그것은 고쳐야 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바울의 복음 선포 바울은 유대교의 그런 메시아관은 가짜라고 합니다. 진짜 메시아가 하는 일은 그런 풍요와 정치적인 해방과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그런 일이 아니라 죄 많은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죽는 그런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복음의 핵심을 고전15:3-4에서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우리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요 6장에 유월절 무렵에 5천명을 먹이는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적은 무엇을 표징(표적)하고 있느냐면 이 세상에서 우리들에게 잘먹고 잘 살게 해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이 표징으로 드러난 것이 아닙니다. 밥은 생명을 주는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적은 예수님이 생명을 주는 자임을 표징(표적)하고 있는 말씀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기적은 단순히 우리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수단으로서 예수님을 들먹거려서는 안됩니다.
요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6: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믿고 있습니까? 어찌보면 기독교가 유대교의 메시아관을 가지고 있지나 않습니까? 우리 다시 한번 우리들의 믿음과 생활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의정부평안교회 http://www.uppc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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