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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태어났다

고린도후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461 추천 수 0 2008.06.20 12: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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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후4:16-18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순복음중앙교회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태어났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고난은 싫습니다. 고난의 터널을 지날 동안에 수많은 의심과 좌절과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고난의 어두운 밤중에는 하나님조차 무정하게 느껴집니다. 아무리 부르짖어도 침묵만 하시는 하나님 같습니다. 바로 욥이 체험하고 몸부림친 사실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왜 나만 이런 고난을 당하는가! 다른 사람은 다 잘살고 있는데 나 혼자 이런 고통 당하는구나 하고 탄식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옛날에 한 재미있는 우화를 보면은 고난은 다 각자에게 체험하는 바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나무꾼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어요. 칡넝쿨을 거두려고 붙들었는데 그게 하필 그늘에서 잠자고 있던 호랑이의 꼬리를 잡아 당겼다고 합니다. 잠자는 호랑이를 건드려서 깜짝 놀라 나무에 올라갔는데 호랑이가 나무를 흔드는 바람에 나무에서 떨어졌는데 마침 호랑이 등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힘껏 호랑이의 등을 끌어 안으니까 호랑이가 이 사람을 떨어 뜨리려고 몸부림을 쳐봤자 안떨어 지니까 이 사람을 등에 얹은 채 힘차게 달렸습니다. 그런데 나무꾼은 살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호랑이의 등을 더 꽉 껴안고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침 한 농부가 무더운 한 여름에 밭에서 일하다가 이 광경을 보고는 불평을 했습니다. "나는 평생 땀 흘려 일해도 사는 게 이 꼴인데 어떤 놈은 팔자가 좋아서 빈둥빈둥 놀아도 호랑이 등만 타고 다니니 어디 살겠는가?" 라고 탄식을 했다는 것입니다. 죽지 아니면 살기로 호랑이 등을 붙들고 있는 나무꾼이 농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실상을 알고 보면 다른 사람은 편하고 나는 고통 당한다고 생각하지만은 내용인즉 모든 사람들이 다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고난은 이상한 일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고난의 둥지 안에서 태어난 것이니 고난 당하는 것이 당연지사입니다. 우리가 사는 둥지가 바로 고난의 처소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난은 인생 그 자체로 우리가 받아 들여야지 이상한 일 당한 것 같이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처음 지으신 에덴에는 고난이 없었습니다. 동산을 다스리게 주님께서 하시고 그 동산에 각종 아름다운 열매 맺는 과인 나무가 나게 하시고 그 동산은 기쁨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임재가 넘쳤으며 그 동산에선 강물이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그 땅에는 정금과 보배가 있고 향기로운 꽃들이 만발하였습니다. 정말 진선미의 아름다운 낙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한 이후로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사람은 종신토록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사는 고난의 땅으로 변하고 만 것입니다.
(창3:17-18에 보면)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18) 이땅이 네게 가시덤불고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그러기 때문에 아담은 고난의 조상입니다. 죄와 마귀와 슬픔과 병과 저주와 가난과 미움과 분노와 싸움과 죽음의 가시둥지가 바로 여러분 우리의 고향입니다.
(창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려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롬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명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른즉 고난은 모든 사람의 몫으로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기 때문에 고난 없는 삶이란 이 땅에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아니한 분 계셨습니다.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분도 십자가에 처절한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구원을 베푼 것은 고난을 없엔 것이 아니라 고난을 극복하고 이기게 해주신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심으로 우리의 고난을 이겼었지 고난을 없애 버리신 것은 아닌 것입니다.
(히5:7-9)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9)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2:15) "정사오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주님은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하셨습니다.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지 이 세상에 주님께서 고난을 완전히 없애 버린 것은 아닙니다. 고난은 여전히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면 우리가 고난을 능히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에 든든한 무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회오리 바람처럼 우리 주위에 닥쳐오고 거센 파도처럼 우리에게 처옵니다. 그 고난에 대한 우리 마음 자세가 분명하면 우리는 그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해변가에 바위를 보십시오. 파도가 쳐서 그 바위를 때리면 흰 물보라가 바위를 덮어 버리고 바위는 사라진 것 같으나 얼마 있지 않으면 물은 산산조각으로 깨어지고 바위는 그대로 우뚝 서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의 파도가 쳐와도 우리 마음이 만세반석이 되어 있으면 고난은 우리에게 와서 산산조각 깨어지고 우리는 여전히 주안에서 승리하며 건재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을 이기기 위해서는 진리 즉, 예수 그리스도로 허리띠를 매야 되는 것입니다. 허리라는 것은 몸의 중심이 아닙니까? 허리가 튼튼하면 몸이 튼튼합니다. 허리가 휘청거리면 온몸이 휘청거립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심을 예수 그리스도로 힘차게 묶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힘차게 서지 않고는 결코 고난을 이겨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고난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로 허리띠를 힘차게 묶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가슴에 채워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면 마귀가 와서 "너는 죄인이다. 너 같은 사람은 하나님이 생각도 안 한다. 너는 버림받은 사람이다. 무작위한 사람이다." 이렇게 협박을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죄책과 정죄감을 느끼고 점점 위축되는 것입니다. 우리 고난을 당할 때 알아야 될 것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용서와 의를 얻고 영광을 얻은 사람이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설수 있고 하나님이 같이 계신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함을 얻었지 우리의 행위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고난 당할 때 와서 "너는 이런 결점이 있고, 저런 결점이 있고, 이것도 잘못했고 저것도 잘못했다" 고난 당하면 마음이 약해기 때문에 마귀는 와서 과거의 지난간 약점들을 다 들추어 내서 자꾸 마음을 위축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아 주님 앞에 영접 받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와 긍휼로 말미암아 그 보혈로 인해서 용서와 의로움을 얻었기 때문에 우리의 가슴속에 믿음으로 의롭게 된 믿음을 확실히 갖고 정죄 받지 말아야 되고 위축당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예수님의 피값으로 구속 죄사함을 받았지 우리의 선한 행위로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선한 행위로 되었다면 우리는 주님 앞에 설 자격이 없을 것입니다.
(엡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그것이 너희에게 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장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용서를 선물로 주시고 의로움을 선물로 주시고 영광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에 선물은 자격이 없어도 주시는 사람의 호의로 주는 것이므로 믿음으로 받아 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고난 당할 때 마음속에 정죄당하지 말고 위축 당하지 말아야 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믿으므로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었다."는 확식을 가지고 있어야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고난 당할 때 여러분의 생각 속에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사상으로 꽉 채워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그 보혈로 말미암아 죄에서 용서 받고 의롭다함을 얻고 영광을 얻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세상도 이기고 마귀도 이겼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때문에 성령이 내게 와서 계시며 성령이 나를 붙들어 주신다"는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입니다.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모든 마음에 슬픔은 주님이 제켜 버리고 육신의 질병조차 주께서 짊어지고 가시고 치료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나는 마음의 슬픔과 육체의 질병에서 놓여 남을 받은 사람입니다. 2000년 전에 이미 나는 해방된 사람이라는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지식이 없으면 망합니다. 모르며 협박을 받을 수 있지만 알면 담대하게 설수가 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배로움 피로 말미암아 모든 저주에서 이미 해방을 얻었고 모든 가난에서 놓여 남을 받았고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은 자요 그리스도의 형통 속에 있는 사람이요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들어가도 복을 받고 집에 와도 복을 받고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짐승을 길러도 그 새끼들이 복을 받는다. 나는 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그런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사망과 음부에서 해방을 얻었고 주님께서 부활과 영생과 천국을 주셨다. 그러므로 나는 내일에 희망이 창창하다. 나는 버림 받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등돌림을 받지 않았다. 나는 하나님께 사랑 받고 있는 사람이다" 이와 같은 오중복음으로 여러분 마음을 채워놓고 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란 것을 알아야 되요.

(시103:1-5)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恩澤)을 잊지 말지어다(3) 저가 내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4) 네 생명을 파멸(破滅)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5) 좋은 것으로 내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좋으신 하나님 우리에게 영원히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 마음 속에 확실하게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호세아가 말하기를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했습니다. 지식이 없으면 망해요. 그러나 내가 확실한 지식을 알면 그 지식을 만세 반석위에 서서 어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고난을 이겨 나가려면 모든 것을 하나님을 믿음으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에 보고, 귀로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하는 이런 것에 의지하면 한시도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성이나 감각이나 경험에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Ed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함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에 굳세게 서야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예수를 믿을 때 각 사람에게 다 분량대로 나누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믿음을 가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믿을 것 이냐 믿지 않을것이냐 하는 것은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가 와서 아무리 흔들어도 내가 믿겠다고 결심하면 그 믿음을 빼앗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롬4:17)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 하나님께 서고 감각과 이성과 그리고 환경에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롬8:31-32)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원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겠느뇨" 종국적으로 주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마귀는 너희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간다고 협박하지만은 종국적으로 그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가 이기는 것은 믿음으로 이기는 것이지 감각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 당할 때 우리는 축복의 평안을 예비한 약속의 말씀 위에 서야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많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약속을 어겨도 하나님은 약속을 어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잡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말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우리에게 약 7,000여 가지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우리가 읽고 듣고 마음에 묵상하고 그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아 들이면 내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온 세상은 거짓되게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아무리 마귀에게 공격을 당한다 해도 하나님 약속을 보세요.

(눅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制馭)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나는 너무 힘이 없어요. 주님이 힘을 주신 것 아닙니다. 권세를 주셨습니다. 권세는 아무리 힘이 없는 사람이라도 권세 있는 말씀으로써 모든 것을 다스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 말씀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권세를 사용하여 우리 주변에 다가오는 원수 마귀를 대적하고 또 대적하고 또 대결하고 또 대결하면 우리가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영적인 마귀, 영적으로 마귀와 전쟁 상태에 있습니다. 영적인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은 여러분 단기전에 좀처럼 없습니다. 하루 만에 전쟁에 이기지 않아요. 미국이 그 막강한 힘으로 아프칸의 탈레반과 싸우되 지금은 벌써 두 달째 싸우고 있습니다. 육신적으로 싸우는 데도 두 달 걸리는데 영적인 전쟁은 우리가 마귀에 대해 싸웁니까?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공중에 권세 잡은 악의 영들에게 대함으로 우리가 단호한 결심을 가지고서 싸워야 됩니다. 전쟁에는 내가 상처를 입기도 하고 고통을 당하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내가 계속해서 밀고 나가면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기는 싸움을 싸우는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마귀를 무장 해제해 버리기 때문인 것입닏. 그러므로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단호한 결심을 하고 약속의 말씀에 서서 내가 권세를 가지고 마귀를 대적하고 또 대적하고 또 일어나 대적하고 또 일어나 대적하면 종국적으로 마귀는 일곱길로 도망을 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장 우리가 경계해야 될 것은 낙심입니다. 우리를 뒤흔들어서 낙심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우리는 좀 나아가다 낙심해서 그만 뒤로 물러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 하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약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이것이냐 저것이냐 판단을 잘못하고 망연 자실 할 때 주님께 나가서 간절히 부르짖으면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과 몰약과 재능과 지식을 주셔서 잘 분별하고 판별해 나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었습니다. 이것도 약속입니다. 이와 같은 약속이 7,000여 가지나 있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굳게 잡고 우리가 말씀 위에 서서 기도하고 나간다면 우리는 어떠한 시험과 환란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것이 우리 마음에 낙심과 좌절입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농장에서 큰 우유 통이 있는데 그 우유 통에 우유가 가득 찼는데 개구리 두 마리가 빠졌어요. 그 우유에 빠졌고 두 마리가 아무리 뛰어봐도 우유 통이 높으니까 뒤어 나올 수 없으므로 한 마리는 헤엄 치다가 낙심해서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힘이 들어서 이젠 못하겠어. 나는 포기해" 그리고 빠져서 꼬르륵하고 죽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 한 놈은 계속해서 "나는 죽을 때까지 노력해 보겠다." 계속해서 헤엄을 치는데 우유를 자꾸 저으니까 버터가 되었어요. 얼마 있지 않다가 버터 위에 딱 올라 앉아 가지고서 꽥꽥꽥하고 노래 불렀어요. 아, 목장주가 와보니까 개구리가 우유 통에 앉아서 꽥꽥하니까 "이런 놈의 개구리가 있나?"고 건져서 던져 살아 났습니다. 끝까지 헤엄을 쳤기 때문에 우유가 변해서 버터가 된 것 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쉽게 낙심합니다. 우리는 얼마 기도해 보고 난 다음에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시대에 성도들은 오래 견뎠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아들 주실 것처럼 약속을 받고 25년을 기다리면서 기도해서 100살에 아들을 얻었습니다. 야곱은 아브라함의 후손, 이삭의 후손이 되리 것을 믿고 20년을 기도해서 응답 받았습니다. 요셉은 17살에 종으로 팔렸지만 13년 동안 고난을 참고 기도하고 기어코 애굽의 국무총리로 올라갔습니다. 모세는 광야에 나가서 40년을 기도했습니다. 40년 후에 그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 한 열흘 기도하고 난 다음 낙심해 버리고 한달 기도하고 낙심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마귀와 싸울 때 우리는 날짜를 계산하지 말고 오직 고지를 향해서 전진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세례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는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승리라는 목표 고지를 향해서 침노해야 하는 것입니다. 쓰러지면 일어나고 쓰러지면 일어나고 자빠지면 일어나고 자빠지면 일어나고 목표를 향해서 밀고 나가면 우리가 좀 상처를 입을지 몰라도 반드시 승리는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당할 때 좌절과 포기할 것인가? 믿음과 기도로 고난을 휘젖고 이겨나갈 것인가? 이것은 우리의 마음에 중대한 결정인 것입니다.
셋째로 고난과 씨름 할 때 우리는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당할 때 우리 혼자 내버려 두지 않고 우리를 돕기 위해서 주님이 보내신 분이 계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인 것입니다. "주께서 내가 너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다시 네게 오리라. 내가 아버지께 고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내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혼자 인생을 살고 혼자 고난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과 함께 인생을 살고 성령님과 함께 고난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난을 헤쳐 나갈 때 끊임 없이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 하십시오.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업고서 고난의 큰 홍수를 지나가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41:10-11)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고 주님께서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은 마음에 강하고 담대 하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마음에 강하고 담대해야 됩니다. 내 마음은 내가 붙잡아야지 다른 사람이 붙잡아 주지 않습니다. 내가 낙심하면 누가 나를 일으키겠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고 강하고 담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후5"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끝까지 믿음으로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수1: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뭐 내가 불을 받아서 온 몸이 뜨겁고 감동되고 전율이 오기 때문에 하나님이 같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같이 계신다고 약속했으면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아무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은 나와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감각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변하지 아니하시는 성실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히13:5-6)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과연 주님은 여러분을 떠나지 아니하고 과연 여러분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것을 여러분께서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 당할 때에는 열정적으로 기도 하십시오
(약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 지니라"고 말씀했었습니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목숨을 다하여 부르짖는 것입니다. 고난 당할 때 우리는 절박함 심정으로 마음에 한 서린 마음으로 주님께 매달려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김양숙 집사님의 간증을 보면 지난해 12월 5일 남편은 조문하러 친구들과 춘천에 갔는데 자정이 넘어도 오지 않고 연락이 두절 되었습니다. 마음이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다음날 아침 오전 10시쯤 서울 한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위급하다는 것입니다. 사건은 문상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 오던 날 눈길과 빙판에 시계가 제로였습니다. 조심조심 차를 몰아 서울 근교쯤 왔을 때 앞차들이 엉켜서 15중 충돌을 하고 그 남편도 그 차를 가지고 트럭에 부딪혀서 온 전신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의사는 남편 장기 대부분이 파열되어 뱃속이 피로 가득 갔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 말을 듣자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이제껏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애써온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인가! 사람들은 고난 당하면 충격을 받자 마자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사는 말하기를 지혈이 안 되 수술을 못한다고 하며 가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크게 낙심하고 있을 때 선교회 식구들이 찾아와서 위로해 주고 작정기도를 하자 일주일 만에 지혈이 되어서 재수술을 했습니다. 재수술은 잘 되었지만 지혈이 오랫동안 안되어서 여러 장기가 이미 염증이 넓게 퍼져 있어서 의사는 말하기를 "죽음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너무 억울하여 새벽기도회에 나가 목숨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그때까지는 그런 기도를 안 했는데 이제는 목숨을 걸고 몸부림 치며 기도했습니다. 불신 남편이 지옥가면 안되므로 40일 새벽기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부르짖어 기도하자 열이 40도까지 올라가던 남편이 차도가 생기기 시작하고 심방 온 성도님들 기도와 권면을 듣고 남편은 드디어 회개하고 침상에서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 하심으로 모든 장기의 염증이 퍼져 죽는다고 했는데 치료 받아 4개월 말에 완전히 나아서 퇴원하고 지난 4월 교회에 나와 결신하고 신앙생활을 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난의 긴 터널을 통과할 때 너무 괴로웠으나 그 끝을 빠져 나온 지금은 하나님 은혜에 감사합니다. 그런 고난 당하지 않았었다면 남편이 결코 회개하지 않았을 것인데 그 고난을 통해서 남편이 깨어지고 회개하고 또 그 고난을 통해서 온 가족 식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크게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당할 때는 괴로우나 고난을 소화하고 나면 우리에게 큰 은혜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인내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참아야 되요. 입에 달 때 받아 들이고 입에 쓰다고 밷어 버리면 안됩니다. 고난 당할 때 우리는 주의 말씀 잡고 끝가지 참아야 되요.

(약5:10-11)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약1:2-3)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정원사가 장미꽃을 가꿀 때 옆에 좋지 않은 뿌리는 뽑아내고 또 봉오리가 맺은 장미 꽃이라도 잘라내고 장미 남은 꽃을 잘 가꾸게 하면 좋은 꽃을 피게 하는 것입니다. 과수원지기는 부실한 과일나무의 가지를 미리 다 잘라내는 것처럼 여러분 하나님은 인생 가지치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인생 가지치기를 당할 때 우리는 이러다가 죽지 않느냐. 나 이 고난 당하다가 죽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고통 과정을 잘 통과하면 탐스러운 꽃 열매 맺는 자기를 발견하게 되실 것입니다. 여러분 영국의 북해 청어잡이 하는 어부들의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해서 북해에서 런던까지 살아있는 청어를 가져올 수 있냐는 것입니다. 북해에서 런던까지 길이 길므로 청어를 물통에 담아서 싣고 오는 동안 다 죽어 버려요. 죽은 청어는 값이 안 나가요. 그런데 다른 사람의 청어는 다 죽는데 한 사람의 어부는 북해에서 런던까지 청어를 싣고 와도 청어가 싱싱하게 살아있어 비싼 값을 받습니다. 친구들이 다 물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있냐고. 안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도 간청을 하니깐 나중에 말하기를 나는 청어를 담는 큰 통에 청어만 넣지 않고 메기도 가져다 같이 넣는다고.. 메기는 청어를 잡아 먹습니다. 메기는 넣어 놓으면 메기가 청어를 잡아 먹으려고 자꾸 따라 다니니까 많이 잡아 먹어 봤자 두 세 마리 밖에 못 잡아 먹고 다른 청어들은 안 잡아 먹히려고 눈을 부릅뜨고 피해 다니니까 안 죽고 싱싱하게 살아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시험과 환란을 당하는 것은 여러분과 제가 회개하고 부르짖고 기도해서 영적으로 싱싱하게 살아 있게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안 그래 놓으면 잠들어 버리고 말아요. 말세가 될수록 우리가 깨어서 기도하고 신앙이 살아있기 위해서는 시험과 환란이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에 우리가 잠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고 하나님을 알고 믿게 해줍니다. 그리고 잠시 받은 고난이 크고 영원한 영광에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이야말로 우리를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하는 하나님의 채찍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난 당하는 것을 피하지 마십시오. 고난을 받아서 기도로써 소화시키면 고난은 어떤 것보다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큰 축복을 갖다 주고 성숙한 그리스도의 백성이 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는 이 세상에 살 동안 고난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이 바로 고난의 둥지요. 고난의 처소입니다. 고난이 우리 인생들의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 고향입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여 우리는 고난을 피할 수 없으나 고난을 극복하고 고난이 우리에게 오히려 유익 되게 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성령을 의지하고 말씀에 굳게 서서 고난이 우리의 밥상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고난의 밥을 많이 먹고 영혼이 잘되고 법사가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튼튼하고 성숙된 성도들이 다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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