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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엣 것은 잊어 버리라

빌립보서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808 추천 수 0 2008.05.13 23: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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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빌3:13-16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순복음중앙교회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뒤엣 것은 잊어 버리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이 사는데는 항상 쓰레기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쓰레기를 늘 치우고 깨끗하게 환경을 정리정돈하며 살아야 합니다. 쓰레기 치우기 싫다고 그대로 내버려두면 그로 인해 각종 벌레 및 전염병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도 스레기가 생깁니다. 사회생?속에 온갖 정신적인 쓰레기가 마음에 쌓이는데 이것을 청소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면 각종 정신적인 인격적인 장애가 생겨나고 불행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뒤엣 것을 잊어버리라고 말했습니다.

첫째로 죄와 미움, 실패와 좌절, 불안과 공포 성공까지라도 과거의 일은 뒤에 버려 두고 잊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죄는 양심의 가책을 가져오고 이것이 쌓이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집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그냥 죄를 지었으니 입 닦고 지나가면 그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한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아들 방 앞에 와서 큰 대못과 망치를 들고 그 문에다가 박았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그 못을 뽑으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얼굴을 찡그리면서 그 못을 뽑았어요. 못은 분명히 뽑혔는데 뚜렷하게 못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보아라 네 문이 얼마나 깨끗하고 아름다운 문이었느냐 그러나 못을 박고 난 다음에 못은 뽑았지만 여기에 못 자국은 남아 있지 않느냐 죄는 그와 같아 너는 아름다운 문과 같지만은 네가 죄를 짓고 죄는 잊어 버려도 그 죄가 가져온 죄책감은 영원히 남는다 이 죄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지 않고는 이 상처를 씻을 수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니면 이 상처가 쌓이고 쌓여서 나중에 마음속에 온갖 심리적인 불안 공포 초조 절망이 생겨나고 심신이 병이 들게 됩니다. 이 말을 아버지가 했다는 것을 기록해 읽어 본적이 있습니다.

죄는 짓고 나면 반드시 양심의 가책이라는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이 상처는 없애지 않습니다. 죄는 잊어 버려도 상처는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뿐아니라 저의 상처를 씻어서 깨끗이 정리 정돈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9장 2절에 "오직 너희 죄악(罪惡)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罪)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개로 죄와 죄책을 청산하여야 하는데 하나님은 회개한 죄를 씻어 주시고 상처를 없애 주시고 기억도 하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의 죄를 그냥 잊어 버렸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죄책인 상처가 영혼을 곯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는 진실로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서 청산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청산해 버리면 하나님도 그 죄를 다시 기억지도 아니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 마음에 쓰레기가 미움입니다. 미움은 마음에 독이며 이것이 육체의 건강도 해치는 것입니다. 옛날의 잘못을 마음에 쌓아 놓지 말고 청산해 버리고 미움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부분 부부가 싸움을 할 때 언제나 부인이 남편에게 당신 과거에 이렇게 이렇게 했지 않느냐 이런 잘못을 하고도 건방지게 또 마느냐, 그런 말을 많이 합니다. 대게 부인들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낱낱이 기억하고 있다가 컴퓨터처럼 남편하고 싸울 때 과거를 들추어냅니다. 그러면 상당한 충격을 남편이 받게 되지요. 또 남편도 부인의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고 있다가 그것을 파헤치고 들어냅니다. 그로 말미암아 서로 상처를 두게 되고 미움이 강물 같이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를 씻어 버려야 합니다. 과거를 말하면 안됩니다. 더구나 부부간에 가족 간에는 과거에 잘 못이 있었으면 용서하고 잊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싸움이 오더라도 그것으로 싸워야지 과거를 들추어내면 안되는 것입니다. 과거를 들추어내면 미움이 사라지지 아니하고 그러므로 말미암아 사이가 영원해 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싸울 땐 싸우더라도 싸우고 난 다음에는 옛날은 잊어 버려야 합니다. 옛날의 상처를 가슴속에 쌓아 놓으면 그것이 계속해서 미움의 강물을 흐르게 하고 상처를 더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양천에 계시는 성도 한 분이 내게 편지를 보내 왔는데 그의 가족은 남편과 함께 열심히 주일 성수하고 철야기도하고 가정 예배를 드리고 잘 믿었습니다. 하나님이복을 주셔서 집안에 살림이 굉장히 부유해지자 그만 남편이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수주일 하지 아니하고 기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술 먹고 방탕하고 도박했습니다. 있는 살림 다 날려버리고 집까지 잡혔습니다. 가정이 패가 망신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은 가슴에 상처를 안고 눈물을 흘리며 수요 일날 제게 와서 안수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때 제가 말했습니다. 참고 견뎌라. 남편의 과거의 잘 못을 지적하지 말라 그리스도의 보혈과 함께 용서하고 잊어버리고 오직 위해서 기도하라 . 그래서 그 자매님이 남편이 다시 회개하고 돌아오기 위해서 9년을 기도했습니다. 끊임없이 낙심하지 않고 9년을 계속 기도했는데 그 9년 동안에 남편에게 당신이 도박하고 외도하고 방탕해서 있는 재산 다 날리고 우리 가정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지 않느냐, 그런 말 한 마디도 안했습니다.

그런 말을 했더라면 남편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과거의 잘 못을 한 마디도 말하지 않고 그저 위해서 기도만 하고 눈물로 간구했는데 9년 만에 남편이 회개하고 돌아 왔습니다. 돌아오고도 지금까지 결코 과거를 말하지 않습니다. 과거는 이미 씻어 버리고 잊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또 다시 복을 주셔서 온 가정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만들이 주시는 것입니다.

잠언 10장 12절에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미워하면 끊임없이 다투지요, 미워하면 자꾸 과거를 들추어내지요 과거를 들추어내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과거를 들추어내면 여러분 살아 남을 사람이 없습니다. 용서하면 잊어 버러야 하는 것입니다. 미움을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습니다. 덮어 주어여 합니다. 우리는 서로 자꾸 벗기지 말고 덮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노아가 술에 취해 누웠을 때 그 아들 함은 아버지를 보고 나와서 형들 앞에서 아버지를 조롱했습니다. 야, 형들 아버지가 벌거벗었어 대 낮에 벌거벗고 들어 누웠어요, 형들 와봐 그러나 셈과 야벳은 천을 들고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기 위해서 뒷걸음질하고 들어가서 뒤로써 아버지를 덮어 주고 나왔습니다. 아버지가 술에서 깨어나서 이 말을 듣고 난 다음에 뭐라고 말했습니다. 함은 저주를 받아 형제의 종 중에 종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셈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서 셈의 장막에 야벳이 거하게 하시고 야벳을 창대케 한다고 축복을 해 주었습니다. 여기에 아버지를 벗겨 놓고 조롱
하는 함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아버지를 덮어 주었습니다.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 덮어 주면 축복을 받지만은 서로 벗기면은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벗기면 미움을 자꾸 쌓아 놓게 되고 자꾸 덮어 주면은 사랑을 넘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 속에 과거의 미움이란 다 용서하고 덮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덮어 버려야 합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운다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실패와 좌절도 과거의 것은 전부 잊어 버려야 합니다. 자기를 실패자로 생각하고 무력자기 되는 이가 많은데 사람은 특정한 일에 실패했다고 해서 실패자가 되지 않습니다. 베드로 보십시오 가야바의 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마지막 부인 할 때는 자기 선생인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하고 맹세하여 가로되 나는 저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한 어마어마한 잘 못을 저질렀습니다. 큰 실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갈릴리 해변에서 다시 제자들을 만났었을 때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한 것을 세 번 긍정하게 만들었습니다. 베드로야 이 모든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여 사랑하나이다 내 양을 먹이라고 베드로야 이 모든 사람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하나이다 네 양을 처라 그 다음 베드로야 이 모든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한즉 주가 아시나이다 네 양을 먹이라 주님은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세 번 다시 긍정하게 만들고 과거를 다 청산해 버리고 그로 하여금 제자 중에 제자가 되고 복음 증거의 위대한 사도로 변화 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패는 그 일에 경험이 쌓인 것 뿐, 인생에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실천 팔기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일곱 번 넘어지더라도 여덟 번째 일어나면 성공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일에 실패했지 한 가지 일에 실패했다고 실패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에 실패했지 실패자는 아닌 것입니다. 일곱 번 실패해도 여덟 번째 성공을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잠언 24장 16절에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찌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과거의 실패와 좌절도 그것을 우리 마음 속에 다 잊어버리고 나아가야지 과거의 실패에 좌절했으니 항상 실패자다 현재에 일하는 것마다 나는 실패자다, 실패자다 이렇게 말하고 나가면 그 사람은 앞날을 약속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는 또한 불안과 공포도 과거의 체험한 것은 다 잊어버리고 새롭게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삶의 어떤 때에 큰 불안과 공포를 당하고 그 기억을 청산하지 않음으로 마음에 불안정이 들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어떤 자매님의 신앙 상담을 왔는데 결혼을 해서 신접 살림을 시작했는데 남편이 중동에 일하러 갔습니다. 그리고 혼자 집에 남게 되었습니다. 상당히 불안하고 겁이 났습니다. 그런데 아닌게 아니라 밤중에 방안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기에 눈을 떠보니 강도가 들어 왔습니다. 그는 이제 갓 결혼한 아직 철없는 신부로써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말도 못하고 있는데 이 강도가 달려들어서 그를 강간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반항을 하다가 낮에 고함 고함을 치니깐 옆방에서 사람 소리가 나니깐 이 강도가 도망을 쳤습니다. 그는 그 남편에게 그것을 알렸고 남편은 한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남편 없이 이제 도저히 살 수 없으니 같이 살아야 한다고 부인이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중동에 가는 것도 그만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로부터 시작해서 세월이 상당히 흘렀지만은 그 부인은 불안증에 걸렸습니다. 잠을 잘 자지 못하고 깜짝 깜짝 놀라고 늘 불안 초조하고 늘 사람들이 옆에 따라 다니는 것 같고 완전히 정신적으로 파탄에 이르렀습니다.

병원에 가서 많은 치료를 받아도 낫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게 신앙 상담을 왔습니다. 제가 자매님께 말했습니다. 자매님 이 시간 눈을 감고 옛날에 혼자 살 때에 강도가 밤에 들어온 그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목사님 끔찍해서 그 장면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 장면을 생각하세요. 강도가 지금 들어와서 자매님을 겁탈하려고 하는데 그 때에 자매님이 안 본 것이 있습니다. 강도만 그곳에 와 있는 것이 아니라 곁에 예수님이 와 계십니다. 예수님이 와 계시기 때문에 강도가 당신에게 손을 델 수가 없습니다. 왜 강도만 바라보고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습니까? 이제는 당신의 마음 속에 강도가 왔으면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예수님이 곁에 와 있는 것을 마음 속에 상상해 보십시오. 한번 그렇게 해 보십시오. 마음이 편안합니까? 안 합니까? 잠시 후에 강도만 바라볼 때는 몸이 떨리더니 내 옆에 예수님이 와 계신 것을 내가 마음 속에 그려보니깐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와 함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사막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날 캄캄한 밤에 강도가 들어 왔을 때에도 자매님은 몰랐을 지라도 예수님은 함께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당신을 구출해 준 것입니다. 예수님이 늘 계신 것을 바라보고 생각하십시오. 불안증에서 고침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를 해 주었는데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늘 생각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계신 것을 알자 과거에 경험했던 그 모든 불안과 공포를 다 잊어버리고 마음이 안정되고 새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성령이 언제나 우리를 도와 주심으로 우리는 불안과 공포에서 해방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 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와 항상 같이 계신 것을 우리 마음 속에 생각하고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과거의 불안과 공포를 다 없애 버리고 현재 예수님과 함께 인생을 걸어감으로 강하고 담대한 심정으로 살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안과 공포도 과거의 것은 다 청산해 버려야 합니다.

그 다음 과거의 성공과 위대한 승리도 잊어 버려야 합니다. 과거에 내가 크게 성공했고 위대한 승리를 했다고 거기에 취해 있으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는 낙후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이 왜 IMF를 당했습니까? 우리가 88올림픽을 대 성공하고 온 세계의 찬양을 받았습니다. 한국은 이제 선진국 대열에 들어 왔다고 박수를 쳤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자만하고 심취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그만 앉아 가지고서 우리가 선진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투자하고 연구하고 개발하지 아니하고 땅 투기나 하고 정권에나 투자하고 재테크에 몰입하고 그리고 빚을 내어서 해외 여행을 가서 탕진하고 그렇게 몇 년 동안 하는 동안에 세계는 앞으로 앞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나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우리가 팔아 먹을 것은 하나도 없고 세계 자랑할 것은 낙후되었습니다. 그 길로부터 시작해서 IMF로 곤두박질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만하는 동안에 세계는 앞으로 나가 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일본이 세계의 경제 대국이었습니다. 미국 다음으로 가장 큰 경제력을 가진 일본입니다. 온 세계가 일본을 찬미하고 얼마 안 있으면 미국을 따라 잡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자만했습니다. 그들은 경제 개혁을 계속하지 아니하고 정치 구조 개혁을 계속하지 않고 자만해서 세계 제일의 경제 대국이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1990년도에 세계 경쟁력 3위였던 그들이 2000년에는 세계 경쟁력 16위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 와서는 일본은 660조 엔의 공공 부채를 끌어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으로 말하면 6,600조원의 공공부채를 안고 있습니다. 6,600조입니다. 이것은 도저히 상상 할 수 없지요. 거기에다가 60조엔 한국으로 말하면 600조의 부실채권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본 경제가 도저히 일어 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 많은 660조 엔의 공공 부채를 청산하고 60조 엔의 부실채권을 정리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왜냐 일본이 자만하고 있는 동안에 경제적인 사회적인 정치적인 개혁을 계속해서 나가지 않고 자기의 성공에 심취해서 주저앉아 있는 동안에 세계는 앞으로 나가고 처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성공에 안주하는 것은 위험한 일인 것입니다. 승리에 안주하는 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옛날 말에도 전쟁에 이기고 난 다음 투구를 벗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 성경에 뒤에 것은 잊어버리라고 했습니다. 뒤에 있는 잘못된 것도 잊어버릴 뿐 아니라 잘한 것조차도 잊어버리고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성경에는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나가라고 말한 것입니다.

앞에 있는 푯대는 우리가 무엇을 두고 나아가야 하겠습니까? 궁극적인 삶의 의미의 푯대를 우리는 분명히 세워야 합니다. 무엇을 먹을 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이 세상에 사는 중에도 한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살의 궁극적인 의미를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인생은 조만간 다 죽는 다는 확실한 사실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안 죽고 살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우리는 반드시 죽게 되고 죽고 난 다음에 우리가 갈 곳을 우리가 확실히 알고 푯대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요사이 과로사로 30-40대 한창 살아야 할 사람들이 쓰러지고 있는 것입니다. 암, 고혈압, 심장병, 뇌졸중, 당뇨병 등 성인병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사람이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절에서 25절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1씀이니라" 복음 이외에는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에 취하여 자기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를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행인과 나그네같이 살고 있지만 종국적으로 천국 아버지 집에 가야만 한다는 목표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죽지 않아요 주님 말씀하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게 일렀으리라 내가 내일을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배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을 떠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버지 집에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궁극적인 삶의 의미와 목표를 완전히 푯대로 삼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한 부자가 곳간에 곡식을 많이 쌓아두고 내 영혼아 즐거워하고 기뻐하라 곡식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매년동안 평안히 먹고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성경에 보니깐 하나님의 말씀을 이 사람아 오늘 저녁에 내가 네 영혼을 거두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이 있다고 오래오래 사는 것 아닙니다. 우리는 행인과 나그네와 같이 지나갈 따름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빨리 지나가고 어떠한 사람은 늦게 지나가지만 100년이 지나면 똑같이 다 지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 아버지 집에 가야 한다는 목표 의식이 뚜렷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매일 매일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며 살겠다는 삶에 목표를 정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같이 살면서 우리 삶의 현장에서 선택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선택할 것인가 세상 나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 우리 삶이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삶이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가정의 사람 다 모두가 하늘 나라를 선택할 것인가 그러면 우리는 찬송가도 듣고 성경도 읽고 신앙계도 읽고 그러나 세상 나라를 택할 것이냐 세상 노래를 듣고 세상의 잡지와 오락 같은 것을 보고 음란하고 방탕한 비디오를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평범한 생활에 우리는 하늘 나라를 택할 것이냐 세상 나라를 택할 것이냐 우리는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 나라를 택할 마음에 목표를 설정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집에 그림 하나만 그려도 하늘 나라를 위한 그림을 붙이고 음악을 들어도 하늘 나라, 비디오를 갔다 놓아도 하늘나라의 비디오, 언제나 하늘 나라를 선택하고 세상 나라를 선택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택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 의의는 즉 예수님이고 불의는 즉 마귀입니다. 우리의 생각 위에 내가 예수님 편 들 것이냐 마귀 편 들 것이냐 이것이 끊임없이 선택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업 현장에서도 내가 예수님 편을 들어서 사업을 할 수도 있고 마귀의 편을 들어서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오락을 해도 예수님 편을 들어서 오락을 하고 마귀의 따라서 오락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를 분명히 매일 매일 나는 하나님의 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구하며 살겠다고 마음의 목표를 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여러분 우리의 삶이 올바르게 살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말씀 공부와 정해진 기도 생활을 하겠다고 목표와 푯대를 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안 정해 놓으면 말씀 읽지 않게 됩니다. 저는 매일 같이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하겠다고 푯대를 정해 놓았기 때문에 우리 교회에서 발행하는 우리 성경 읽기 그것을 통해서 구약과 신약과 시편을 매일 매일 꼭 읽게되고 마음에 푯대를 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꼭 기도하게 됩니다. 사람이 마음에 푯대를 정해 놓지 아니하면 그대로 하지 못합니다.

히브리서 4장 2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 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말씀을 읽으면 그 말씀이 살아서 운동력을 있어 언제나 의와 거룩함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우리가 늘 기도하게 되면 우리의 개인적인 문제 가정 문제 생활문제 사업 문제를 주님께 기도하게 되고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동부 성전의 허주암 권사는 1988년 교통 사고로 왼쪽 발목에 쇠를 심는 대수술을 두 번이나 했습니다.

왜냐하면 왼쪽 발목이 완전히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수술로 왼쪽 다리가 쇠를 박아 넣었기 때문에 7cm나 달라졌습니다. 이러므로 걷기가 무척 힘듭니다. 9개월 입원 치료해도 역시 짧아진 다리를 고치지 못해 퇴원했는데 지팡이를 집고 절뚝절뚝 다녀야 하니 이제는 심방 가기도 힘들도 세상에 돌아다니기도 굉장히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 짧은 다리를 고쳐 주시옵시고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쇠다리를 박았는데 어떻게 길어집니까?
우리가 이성적으로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보통 다리가 짧았으면 길어지겠는데 뼈가 바스러져 가지고서 쇠를 박아서 쇠다리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 다리를 길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지 않아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기 때문에 우리 권사님은 낙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장년 겨울 동부성전에서 위성으로 예배를 드릴 때에 당회장이 신유시간에 오늘 한쪽 다리가 짧은 사람이 있는데 주님이 고쳐서 정상으로 길어지게 되었다고 말을 했답니다. 깜짝 놀라서 일어나서 할렐루야 외치고 이제다 나았다. 그 주위 사람이 완전히 이건... 쇠다리를 박아 놓고 어떻게 다 나았냐? 보통 다리가 좀 길어지면...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도 하루를 지나고 안 길어지고 이틀이 지나도 안 길어지고 사흘이 지나고 안 길어지고 지팡이를 집고 절뚝 절뚝하니깐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아요. 나흘째가 지나고 난 다음에 보통은 다리가 늘 저리고 아픈데 아프지 않거든 거울 앞에서 일어나 보니깐 기울어지지 않고 딱 섰습니다. 완전히 길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현대 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었던 7cm미터 짧은 다리를 정상으로 고쳐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합니다. 그 체험을 하고 난 다음에 하늘도 새로워지고 땅도 새로워지고 만물이 새롭게 보이고 너무 감격되고 귀로만 듣던 하나님이 몸에서 살아서 역사한 것을 체험하고 난 다음 완전히 인생이 새로워졌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여러분 기도는 이와 같은 위대한 기적을 우리에게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말씀 읽고 기도할 것을 마음에 목표로 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 그리고 우리는 사랑 실천의 목표를 삼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목표로 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드리며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국민일보 5월 20일자 보니깐 충남 부여 중앙성결 교회 김경환 성도가 지난 5일 산에서 캔 110년된 산삼 한 뿌리와 80년된 산삼 두 뿌리를 가져와 목사님 교회를 위해 좋은 곳에 써 주십시오 해서 인삼 연구소에 감정결과 시가 1억을 넘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믿은지 1년이 되었고 형편도 어려운데 산삼을 먼저 교회로 가져와서 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 안했으면 이게 왠 떡이냐 산삼이다 얼씨구나 좋다 그냥 팔았을 것입니다. 예수님 안 믿은 사람이 보면 그 사람 돌
은 사람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1억이나 넘는 산삼을 먼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제 두고 보세요 하나님이 이제 산삼이 아니라 그분에게 천삼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마음에 목표로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족 사랑할 것을 마음에 목표로 세워야 합니다. 요사이 많은 남편이 부인에게서 이혼을 당합니다. 남편이 부인을 이혼시키는 것이 아니라 옆구리 신장됨으로 이젠 여자가 남자보고 나가라하는 것입니다. 많은 남편이 이혼을 당합니다. 물론 이유야 있지요 경쟁 사회에 너무나 피곤하고 지치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밤늦게 집에
돌아오고 그 다음에는 스트레스 푼다고 해서 쉬는 날에는 친구들하고 등산가고 골프 치러가고 놀라가 버리고 아내와 자식은 고아와 과부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옛날에 부인들은 꾹 참고 살았지만 요사이 현대 여성들이 그것을 참지 않습니다. 나를 보리 자락으로 생각하느냐 아무리 생활이 어렵고 환경이 어렵지만 가족을 어떻게 두고 그러냐? 그래서 요사이는 좋다 나가라 당신 같은 사람 없어도 우린 잘 살 수 있다. 요사이 부인들도 직장을 구할 수 있고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으니깐 많은 남자들이 부인에게 발길로 차여서 쫓겨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가족사랑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먹고 입고 마시는 사업과 직장도 중요하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자기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남편을 쳐다보고 있는 아내와 자식들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순서를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가 그 순서를 알아야 합니다. 아내와 자식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사랑을 해야 합니다. 또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목표를 세우면 그렇게 못해요. 그러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과부와 고아를 그 환란 중에 고치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 참된 경건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고난 당하는 이웃에게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베풀어야 됩니다. 국민 일보 5월 17일자에 보니깐 경기도 광주 화제로 8명이 사망을 했는데 원생 최나영은 20살인데 불이 나자 자기 혼자 뛰어 도망쳤으면 되었을 텐데 동료들에게 불이 난 사실을 알리자 40명이 대피해서 살았으나 자기는 빠져 나오지 못하고 질식해서 죽었습니다. 자기가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으면 자기 혼자 생명을 살렸을 텐데 자기 하나 죽고 40명이 살아 난 것입니다. 극단적인 예이지만은 우리는 우리가 서로 함께 살기 위해서 서로 서로 이웃을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사는 이웃 사랑을 하고 살기로 마음에 결정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는 자연 사랑하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환경 오염이 되면 여러분 아무리 돈만 벌고 잘 살아도 환경 오염으로 온갖 질병이 들어서 고통 당하다가 죽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중국이 경제 대국으로 급부상하는 반면에 세계 오염 10도시 중에 8개 도시가 가장 오염된 나라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중국에 붙은 우리에게는 황사 현상이 다가와서 물도 공기도 오염되어 있어 우리도 골치가 아픕니다. 여러분 오염은 결국 자연을 훼파하고 삶을 파멸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음식 쓰레기가 10조원에 육박하는데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한해에 8조 억으로 추산되나 유통 기한 지난 식품 쓰레기 처리비들 합치면 10조원이 넘고 생활 쓰레기 중 음식 쓰레기가 35%가 된다는 것입니다. 온 강산이 쓰레기 강산이 됩니다. 어디가나 쓰레기가 썩어져 넘쳐나고 강물이 나빠지고 샘물이 나빠지고 이 세상이 완전히 오염으로 꽉 들어 차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보세요 낙시터에 가서도 쓰레기가 더미나 산이나 강이나 해변 놀이터에 가도 쓰레기 더미가 산을 이룹니다.
우리가 환경에 관심을 가지지 아하면 환경이 우리를 복수합니다. 이제 벌써 우리가 복수를 당하고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자연 사랑을 해야합니다. 자연 사랑을 하지 않고 환경을 잘 다스리지 아니하면 우리는 환경에 복수를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에 나라 사랑하기로 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라가 가난해 지면 세상 어느 곳에 가도 대접을 못 받습니다. 나라가 약하면 어느 곳에 가도 멸시를 당하고 맙니다. 오늘날 가난한 동남아 국가 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일하는데 얼마나 멸시와 천대를 당하고 고통을 당합니까? 나라가 강하면 그렇게 멸시와 천대 당할 턱이 있습니까? 우리가 조국을 떠나보면 우리 조국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조그마한 일에도 나라 사랑 할 수 있도록 나라가 부흥할 수 있도록 우리가 협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요사이 가뭄이 왔는데 수돗물 쓰는 것도 세수할 때 그냥 물을 틀어 놓고 막 세수를 합니다. 물을 얼마나 소모합니까? 어느 정도 물을 담아 놓고 해야하는데 저는 절대로 수돗물을 틀어 놓고 세수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물을 조금 모아서 모은 물로 해야지. 부엌에서 그릇 씻을 때도 수돗물을 틀어 놓고 합니다. 얼마나 소모가 많습니까? 어느 정도 물을 담아 놓고 그곳에서 해야지 물 쓰기부터 시작해서 전기 쓰는 것 이 모든 것이 절약하면 나라 사랑하는 것입니다. 거창스러운 독립운동을 해야 나라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환경에서 절약하는 것이 나라 사랑하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한국 갤럽 조사 연구소가 3차로 장년에 조사한 것을 보면 한국인의 종교 실태와 의식의 조사 보고에 따르면 종교인이 한국 국민의 47%인데 그 중에 개신교가 20.3% 불교가 18.3% 천주교가 7.4% 기타 0.9% 순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천주교와 기독교를 합치면 기독교가 30%를 넘습니다. 5천만 동포에 여러분 30%는 1500만이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에 1500만이면 우리 한국을 변화시키고 남아있습니다. 여러분 바닷물에 소금 끼가 5% 있습니다. 5%의 소금끼가 온 바닷물을 소금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민족의 여러분 거의 30%의 예수 믿는 사람이 있으면서 온 한국을 기독교로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잘 못 믿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나라 사랑을 통해서 우리 교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 언제나 일선에 나와서 나라 사랑 운동을 한 것이 기독교인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기독교인들이 먼저 앞장서서 나라 사랑운동에 서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이 성경은 뒤에 것은 잊어버리고 앞을 향하여 나아갈 때에 반드시 상급을 얻을 것을 기대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뒤에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푯대를 향하여 뛰어 나가는 절도있는 삶을 살면 상급이 다가옵니다. 그 상급은 이 세상 살 동안에 마음에 평화, 삶의 성취와 의미를 얻게 되고 기쁨 행복,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6장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했었습니다.

시편 36편 8절에는 "저희가 주의 집의 살찐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수로 마시우시리이다" 오늘날 직장인 3명중 2명은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상 위협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4명중 1명은 병이 날 정도로 심각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뒤에 것은 잊어버리고 가치 있는 목표를 향해 나가면 이 모든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심심히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웃음이 묘약이라고 말했습니다. 백혈구의 일종으로 암세포를 공격하는 혈액 중에 뇌출혈 킬러가 있는데 이 뇌출혈 킬러 세포의 움직임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웃는 것이라고 오사카 대학원에서 발표했습니다.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까?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마음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웃으면은 암을 죽이는 뇌출혈 킬러 세포가 일어나서 암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우리가 예배드리고 하나님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안에 걸리지 않아요 그러므로 뒤에 것은 다 부정적인 것을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나가면서 즐거워하면 건강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이미 건강 장수의 은총을 상급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천국에 가면은 여러분 상급이 있지요 천국에 가면 면류관이 다 다릅니다.
생명이 면류관 야고보서 1장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생명의 면류관도 있고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이와 같이 순교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생명의 면류관도 있고 의의 면류관도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8절에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열심히 주를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을 증거한 주의 종들이나 셀 리더들은 의의 면류관을 얻게 되실 것입니다.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도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4절에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목자의 면류관입니다. 이는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도 있고 또 금 면류관도 있지 않습니까? 요한계시록 4장 4절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 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일반 성도들이 주를 믿고 나간 성도들에게 주신 그 면류관 그 다음 기쁨의 면류관도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9절에서 20절에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降臨)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기쁨의 면류관,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한 사람에게 주는 면류관인 것입니다. 영광이 다른 몸입니다. 면류관만 하늘에 가서 스스로 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의 영광도 다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1절로 42절에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여러분 그러므로 하늘 나라에 가서 받을 상급은 해와 같은 영광의 몸, 달과 같은 영광의 몸, 별과 같은 영광의 몸. 별과 별의 차이가 있는 영광의 몸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 권세와 작은 권세도 또 하늘에 와서 상급으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열 므나의 비유 가운데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으러 가기 전에 그 종이 열 명을 불러 각 한 므나씩 주었는데 열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열 고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고 다섯 므나를 남긴 자는 다섯 골을 따는 권세를 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면 하늘에 가서 하나님이 권세를 주시되 큰 권세 중간 권세 작은 권세가 달라집니다. 권세 있는 삶이 또한 상급으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상급은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그 상급은 여러분 하늘나라에 가서
영화로운 집을 얻을 수 있고 중간쯤 되는 맨션을 얻을 수 있고 오두막 살이 맨션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급을 바라보고 열심히 일해야 되는 것입니다. 뒤 일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은 이 세상에서 상급을 줄 뿐 아니라 하늘 나라에 가면 면류관이 다르고 영광의 광채가 다르고 그리고 권세가 다르고 우리가 사는 처소의 상급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늘 청소와 목욕을 하는 것처럼 마음도 청소하고 목욕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 뿐이니라 삶의 목표와 의미와 가치를 옳게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혼돈하지 않고 바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삶의 일생이 끝나면 천국에서 상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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