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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골3: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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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 참고 : | 200060507 |
< 교회사랑을 통한 자녀의 축복 >
시골에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6.25때 군에 입대해 27살에 별을 달았습니다. 전쟁 후에 그는 경찰서장을 대동해 집으로 와서 어머님 앞에 별 달린 모자를 놓고 큰 절을 올리며 말했습니다. “어머님! 제가 별을 달고 왔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잘했다. 그런데 그 별은 언젠가 떨어질 별이야. 나는 네가 하늘의 별을 달기를 원한다. 너는 항상 영혼 구하는 일과 교회 세우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그 뒤 그는 어머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군부대에 수많은 교회를 세웠고 전역 후에는 자신의 재산을 다 드려서 서울 약수동에 큰 교회를 세웠습니다. 성전 봉헌 후, 그는 예배당 사진을 찍어 어머니 앞에 찾아갔습니다. “어머님! 제가 건축위원장으로 좋은 예배당 하나를 봉헌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잘했다. 이제야 네가 하늘의 별을 달았구나.” 그분이 바로 국방부 장관을 지냈던 김성은 장로입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성공은 자녀교육의 성공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이 하늘의 별을 달도록 신앙으로 잘 양육해야 합니다.
< 자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
어떻게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잘 키울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자녀 교육을 위한 몇 가지 실천 원리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격노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낙심할까 함이라.” 왜 자녀들이 격노케 됩니까?
1) 자녀를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잠시 부모에게 잘 기르도록 맡겨진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아무리 부족해도 하나님의 자녀로 생각하고 왕자와 공주처럼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자녀에게 어떤 단점과 장애를 주신 이유는 내가 누구보다 그 단점과 장애를 잘 이해하고 사랑하고 그 부족한 점을 보충해줄 수 있다고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녀를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 3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돌이켜 이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구절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는 말은 자녀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심방 받을 때도 자녀들에게 “너희들은 나가 놀아라!”고 하지 말고 가능하면 예배의 능동적인 주체로서 예배 태도를 미리 주의시키고 같이 심방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마태복음 18장 5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아이 한 명을 세워놓고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자녀를 존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2) 자녀에 대한 무관심 때문입니다.
어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말로만 사랑하고 행동으로는 아주 무관심한 부모들이 있습니다. 학교 운동회를 할 때 자녀들이 “엄마! 오세요!”라고 하는데 특별한 일도 없으면서 바쁘다고 오지 않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부모들이 아무리 “사랑한다!”고 수없이 말해도 그 사랑을 제대로 믿지 않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많이 내야 합니다.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만큼 비례해서 늙었을 때 자녀들이 함께 해줍니다. 사랑은 관심입니다. 자녀들에게 관심을 두고 함께 하는 시간만큼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지나친 관심은 때로 독이 되기도 하지만 적절하고 지혜로운 관심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관심을 주는 것은 물질을 주는 것보다 훨씬 소중합니다.
3) 부모의 위선 때문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대로 먼저 행동해야 합니다. 자녀가 공부 잘하기를 원하면 부모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자녀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면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또한 부모는 약속도 잘 지키고 자녀 앞에서 교통 법규도 잘 지켜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 앞에서 신호등을 한번 위반하는 것은 자녀의 무의식과 양심에 깊은 상처 하나를 남기는 것입니다.
또한 부모는 자녀가 보는 데서는 인터넷 게임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 그런 것을 하려면 자녀 없는 데서 해야 하지만 사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최대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들이 안 보는 것 같아도 신기하게 다 보고 느낍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어떻게 사는지, 어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교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봉사하는지 다 보고 배웁니다.
무엇보다 바른 언어를 써야 합니다. 말은 인격의 표시입니다. 물론 사람이 다 말에 실수가 많고 때로는 불평과 비판과 험담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자녀들 앞에서는 그런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험담을 거의 안 하는데 이상하게도 정치인 얘기만 하면 무섭게 비판을 합니다. 그런 정치인 비판도 자녀 앞에서는 주의해야 합니다.
부모의 마음이 맑지 않으면 자녀의 마음도 맑지 않게 됩니다. 부모의 말과 행동이 바르지 않으면 자녀의 말과 행동도 바르지 않게 됩니다. 무엇보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최대의 길을 죄를 멀리하는 것입니다. 죄는 자식에게 죄의 열매를 남깁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 때문입니다. 대개 문제 부모가 문제아를 만듭니다.
나쁜 일로 돈을 벌면 나중에 자기 자녀가 타락하고 죄에 빠집니다. 가정을 놔두고 딴 짓 하면 자녀도 한눈파는 사람과 결혼해 마음고생을 하고, 심하면 자기 딸이 돈에 의해 팔려 다닐 것입니다. 그처럼 자녀가 내 죄를 닮고 결국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 대로 먼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4) 일관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큰 죄나 허물이 아닌 것 같지만 자녀의 마음에 큰 분노를 일으키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부모의 일관성 없는 태도입니다. 어제는 이렇게 하라고 하고 오늘은 저렇게 하라고 하는 모습, 아빠 말과 엄마 말이 다른 모습, 그리고 부모가 중심이 없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스트레스가 커지고 뚜렷한 이유 없는 분노가 생깁니다.
부모는 기분이 좋을 때는 엄청나게 잘해주고, 기분이 나쁠 때는 버럭 소리를 지르는 다혈질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다혈질인 사람이 제일 잘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뒤끝이 없다!”는 말입니다. 자기는 금방 푸는 사람이라는 말인데, 그런 말을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자기만 생각하는 무책임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본인은 금방 풀었다는 것처럼 나쁜 죄는 없습니다.
그런 다혈질 아빠와 살면 언제 소리를 버럭 지를까봐 항상 불안합니다. 그런 감정이 어릴 때는 감추어져 있다가 나중에 폭발하면 반항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보통 “사춘기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춘기라서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위선과 일관성 없는 태도에 대한 분노가 감추어져 있다가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부모는 감정의 기복이 심해서도 안 되고 태도의 변화가 심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 모습은 자녀 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이 됩니다. 때로는 부모가 태산처럼 든든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부모들이 예수님의 반석 위에 굳게 서서 자녀들의 작은 반석이 되어줄 때 흔들리는 자녀들도 굳게 서고 자녀 우울증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5) 부모의 비교와 편애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는 어떤데 너는 왜 그러니?”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다 다릅니다. 재능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고, 비전도 다릅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보고 비교하면 자녀에게 분노가 생기고 교육 효과도 없습니다.
어느 날, 한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서 야단을 쳤습니다. “왜 너는 이 모양이냐. 링컨은 네 나이 때 어렵게 살아도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아니?” 아들이 항상 참기만 하다가 그날따라 한 마디 했습니다. “아빠! 링컨은 아빠 나이 때 대통령을 했어요.” 그처럼 비교는 도전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분노만 키웁니다.
편애도 주의해야 합니다. 왜 요셉이 형들로부터 팔리게 되었습니까? 야곱이 요셉을 유난히 편애했기 때문입니다. 비교와 편애는 열등감을 자극하고 적개심을 가지게 합니다. 고부간에 갈등도 편애 때문에 생깁니다.
어느 날, 한 어머니가 미국의 아들집에 갔습니다. 그러자 며느리는 편히 있고 아들은 손자를 보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여성을 존중하는 미국 문화를 몰라서 이 시어머니가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며느리와 한바탕 하고 근처에 사는 딸집에 갔습니다. 그랬더니 딸은 앉아 있는데 사위가 집안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이 어머니는 사위를 기특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왜 그런 모순이 생깁니까? 며느리는 딸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했으면 며느리도 딸과 똑같은 자식입니다. 그처럼 며느리를 진짜 딸처럼 생각하면 고부간의 갈등은 사라질 것입니다. 편애와 편견은 잘못된 사랑입니다. 우리는 편애와 편견의 벽을 잘 깨뜨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벽을 잘 깨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지만 벽을 깨지 못하면 나중에 본인의 행복이 깨지게 됩니다.
2. 자녀를 힘써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왜 자녀를 격노케 하지 말아야 합니까? 자녀가 낙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21절에서 “낙심할까 함이라!”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자녀 격려의 중요성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 닮아서 그래? 웬수야! 나가 죽어라!”라는 말들입니다. 말이 씨가 되고, 말한 대로 됩니다. 원수라고 하면 진짜 원수가 되고, “나가 죽으라!”고 하면 언젠가는 정말 나가 죽게 됩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사랑한다! 잘했구나! 훌륭해!”라는 말을 많이 해주어야 합니다. 특별히 자녀들이 듣지 않는 데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자녀들이 있는 데서 그런 말을 하면 공치사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내에게 2-3일에 한번씩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자녀를 주셔서 너무 감사한다.”는 말입니다. 저의 부족한 모습을 생각하면 정말 너무 좋은 자녀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서 아이들이 없을 때 우리끼리 그런 말을 하지만 그 말들이 자녀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겠지만 영혼에는 들릴 것입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습니다. 내 말을 자녀가 안 듣는 것 같지만 자녀의 영혼은 다 듣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들이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 곳에서도 격려와 칭찬의 말을 많이 해주어야 합니다. 그 말이 신비하게 자녀의 영혼에 전달되어 자녀에게 큰 힘을 줄 것입니다.
우리는 비관적인 말로 가족들을 낙심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말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모세가 12정탐꾼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할 때 10명이 “우리는 메뚜기 같다”고 부정적인 보고를 해서 백성들을 낙심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낙심케 한 사람과 낙심한 사람 모두가 축복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처럼 낙심한 사람도 저주받았다면 낙심케 한 사람은 얼마나 더 저주를 받겠습니까?
우리는 믿음 없는 부정적인 말로 자녀와 가족과 교인을 낙심케 하지 말고 장점을 찾아 크게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또한 부모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자녀들 앞에서 우울한 표정, 우울한 언어, 우울한 모습을 보여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 자녀들이 부모님을 한편으로는 동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크게 낙심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적어도 가족과 교우만은 결코 낙심케 하지 말아야 합니다.
3. 말씀으로 잘 가르쳐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에는 오늘 본문과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 구절에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은 간단히 말하면 “말씀으로 양육하라!”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주일성수를 철저히 가르쳐야 합니다. 월드컵 경기가 있어도 예배 시간에는 TV를 끄고 교회에 나와야 하고, 아이들이 공부 때문에 주일에 학원에 가려고 할 때도 “얘야! 교회는 절대 빠지면 안 된다!”라고 해주어야 합니다.
자녀에게 십일조 훈련도 꼭 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자녀의 욕심을 죽이고 비전을 살리는 길입니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지만 비전은 축복의 지경을 넓힙니다. 그렇게 헌신하는 아이가 나중에 부모를 위해서도 기쁘게 헌신하고 효도합니다. 나이 들어서 힘이 없을 때 자녀들이 부모들을 귀찮게 생각하고 반말을 하면서 부모를 업신여기는 것은 어렸을 때 십일조와 헌신생활을 가르치지 않은 부모의 자업자득입니다.
때로는 자녀들에게 엄히 훈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훈계가 없으면 자녀를 망치게 됩니다. 열왕기상 1장 말씀을 보면 다윗이 죽기 얼마 전에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좌에 오르려고 반역을 꾀합니다. 그 아도니야에 대해 성경은 열왕기상 1장 6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요 체용이 심히 준수한 자라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아도니야는 외모가 아주 준수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다윗이 한번도 훈계를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잠언 13장 24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훈계를 안 하는 것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면 원하는 것을 다 채워주기보다 바르게 키우고 권위에 순종하는 법을 철저히 가르쳐야 합니다.
가끔 배우자와 자녀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자녀 편을 드는 사람이 잇습니다. 그것은 가정을 무너뜨리는 길입니다. 배우자는 자녀 앞에서 서로를 철저히 높여주어야 합니다. 배우자가 자녀를 꾸짖으면 자신은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그때 자녀 편을 들어 가정에서 순종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그 자녀는 사회적으로도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자녀가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원하면 자녀를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로 양육해야 합니다.
4. 사랑의 폭을 넓혀주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너희 자녀를”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내 자녀뿐만 아니라 모든 자녀를 뜻합니다. 즉 우리는 모든 자녀들을 내 자녀같이 여겨야 합니다. 모든 자녀가 다 잘 돼야 결국 내 자녀도 잘 됩니다. 우리는 폭넓은 사랑을 실천해서 자녀가 폭넓은 사랑을 가지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가끔 사랑을 소유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사랑에는 배타성이 있어야 합니다. 부부는 서로에 대해 집중해야 합니다. 폭넓은 사랑을 한다고 여러 남자, 여러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불륜이고 배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남편의 소유가 아니고 남편은 아내의 소유가 아닙니다. 결혼은 ‘내가 배우자를 소유로 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꺼이 배우자의 소유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비슷한 것이지만 차이가 큽니다.
우리가 한 사람만 사랑하는 배타적인 사랑을 해야 할 때는 그렇게 해야 하지만 보편적으로는 모든 사람을 폭넓게 사랑해야 합니다. 질투심도 잘 극복해야 합니다. 사람이 질투심을 이기는 것이 쉽지 않지만 십자가를 지는 훈련을 잘하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잘 생각하면 상처가 되는 일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폭넓은 사랑을 배운 우리 성도들의 제일 과제이고 행복하게 사는 길입니다.
작년 10월에 안식년 대신 2주 휴가를 가면서 설교를 곧 목사 안수를 받는 김 전도사님에게 부탁했습니다. 김 전도사님이 설교를 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배 후에 전화를 하니까 전도사님이 정말 설교를 잘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성도들이 제가 없을 때 새로운 신선한 설교로 은혜를 받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게 기분 좋게 휴가를 마치고 귀국해서 주일 설교를 끝내고 내려오는데 한 권사님이 저에게 기뻐하며 말해주었습니다. “목사님! 전도사님이 지난주에 설교를 은혜롭게 잘했어요. 이제 자주 나가세요.” 그 말씀을 하시자 옆에 같이 계시던 권사님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셨습니다. “눈치도 없이 그런 말을 하느냐?”는 눈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그 말에 제가 섭섭해 하며 “아니! 자주 나가라니? 어떻게 권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나? 내 설교가 싫다는 말인가?”라고 반응을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권사님이 내가 없을 때 나도 저렇게 칭찬하시겠구나! 나를 조금이라도 더 편히 쉬게 하려고 저런 말씀을 해주시는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권사님의 말을 듣고 그 권사님이 더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우리가 이해력을 넓히면 내게 상처가 되는 것 같은 말도 나를 높여주고 사랑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처럼 사랑의 폭을 넓히면 얼마든지 상처와 오해를 사랑과 용서로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랑의 폭을 넓히는 구체적인 실천원리로 여건이 되면 입양도 하고, 선교와 구제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1992년 10월, 저는 미국 기독교선교연맹(CMA) 총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해 미국 시카고 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때 저는 가난한 전도사였습니다. 간신히 비행기표와 비상금 100불을 마련해 총회로 향했습니다. 그때 목사 안수 동기는 현재 뉴욕 어린양교회의 김수태 목사, 워싱턴 몰간타운 한인교회의 김성화 목사, 텍사스 주님의 교회의 이상호 목사, 몽골 선교사인 임병철 목사였습니다.
시카고에 도착했을 때 저는 새로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매년 한인 목사 안수 동기들이 관례적으로 감사선물을 하는데 그때에는 한인 총회 사무실에 컴퓨터를 한 대 기증하기로 하고 200불씩 걷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총 100불밖에 없었던 저는 비참한 기분이었습니다. 한 동기가 제 사정을 알고 조용히 200불을 대신 내주어서 감사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었지만 총회 기간 내내 저는 의기소침했습니다.
그때 제 곁에 와서 위로자가 되어준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가난한 전도사를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그분은 밤늦게까지 저의 대화상대가 되어주었고, 시카고 여행도 시켜주고, 자기 집까지 초대해 식사도 사주었습니다. 그가 시카고 참빛교회의 담임목사였던 이준 목사님이었습니다. 당시 그분 교회는 크지 않아서 목사님은 직접 세탁소 일까지 하면서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 뒤에도 교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아 세탁소 일은 계속되었습니다. 너무 무리하는 모습에 건강이 걱정되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국 병이 찾아왔습니다. 이틀 전 미국 CMA 한인 감독인 문형준 목사님이 이준 목사님의 생명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급히 전해왔습니다. 너무 무리해서인지 신장이 거의 불능상태가 되어 신장이식만이 유일한 생명연장 방법인데 지금 전혀 수술비조차 마련할 길이 없다고 합니다.
어제 뉴욕에 계신 감독 목사님과 그 문제로 통화했는데 너무 비용이 커서 어떻게 도와야할지 막막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목사님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지금 큰 교회는 물질이 넘치지만 많은 작은 교회 목사님들은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극빈자 이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 작은 교회 목사님들에게도 살 길을 열어드려야 합니다. 이런 기도제목이 있으면 우리 교인들은 누구보다 앞서 호주머니를 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인터넷으로 동참하실 분은 요삼일육선교회 신한은행 구제사역 계좌를 이용해주세요 - 이곳 클릭)
요새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이단이 바로 물질주의 이단입니다. 그 이단에 넘어가지 않게 하려면 부모가 선교와 구제에 힘쓰는 실천적인 삶을 보여줌으로 자녀들에게 사랑의 폭과 시야를 넓혀주려고 애써야 합니다.
< 자녀 양육에 성공하십시오 >
결론적으로 사랑을 아는 자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사실 자녀 교육의 기초는 믿음과 사랑입니다. 인간의 노력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있으면 아무리 부족한 자녀도 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화가 운보 김기창 화백은 8살 때 장티푸스로 청신경이 마비되어 후천성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림에 집중해 천재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고백했습니다. “듣지 못해서 아무거나 부수고 싶은 한이 있을 때마다 그 한을 그림에 쏟았습니다. 귀가 들렸다면 오늘의 내가 없었을 것입니다.”
성공에는 환경적 조건보다는 우리의 믿음과 긍정적인 생각,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요즘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재교육을 시킨다고 야단들이지만 그것 때문에 아이들도 스트레스를 받고 결국 인생의 후반전이 약한 자녀들이 됩니다. 한 연구 논문에 의하면 어렸을 때부터 너무 많이 가르치면 초등학교 입학 때는 차이가 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차이가 없어지다가 20세 이상부터는 역전 현상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여행을 할 때도 가이드를 따라 여행하면 다음에도 그 나라에 혼자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혼자 지도 보면서 찾아다니면 힘은 들지만 그 다음부터는 혼자 다닐 수 있습니다. 부모의 지나친 가이드는 성년이 되어도 혼자 다닐 수 없는 인생을 만듭니다. 중요한 것은 일일이 자녀의 삶에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과 용서를 알고 환경을 극복하는 능력과 마음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중요하고, 말씀을 듣는 기회가 되는 주일성수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다른 성공은 못해도 자녀 양육은 성공하고, 특별히 자녀 신앙 교육만은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의 상당 부분은 부모의 책임입니다. 이제 자녀의 의식주뿐만 아니라 신앙과 인격 문제도 지혜롭게 잘 책임짐으로 자녀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자녀로 만드는 복된 부모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hanqy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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