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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데살로전 오강남 교수............... 조회 수 4621 추천 수 0 2003.06.19 19: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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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살전5:16-18 
설교자 : 오강남 교수 
참고 : 새길교회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오강남 교수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새길교회는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제 마음의 의지처와 같은 교회입니다. 캐나다에 있으면서도 자주 새길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여러분과 보이지 않는 유대를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새길 교회에서 여러분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즐거운 일인데, 더욱이 이렇게 말씀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대단히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김용덕 형제님과 설교할 차례를 양보해주신 길희성 형제에게 감사합니다.

서론

오늘 본문에 의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 세 가지라고 합니다.

첫째는 항상 기뻐하는 것,

둘째는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

셋째는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2년 전 가을 이 교회에서 설교한 적이 있는데, 그 때는 마침 추수감사절이라 오늘 읽은 본문 중에서 세 번째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을 가지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것을 가지고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다음에 언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때는 어쩔 수 없이 첫째 것, “항상 기뻐하라”는 것을 가지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나중에 아시게 되겠지만 이 셋은 서로 연결된 것이기 때문에 오늘 기도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이 기쁨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하는 셈이 됩니다.

본론

우리가 다 잘 아는 대로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하였지만, 종교학자 닐스 페레는 이 말을 조금 고쳐, “나는 기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기도란 세계 여러 종교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독일 종교학자 프레드릭 하일러라는 사람은 이 사실을 그의 유명한 책『기도』(Das Gebet)라는 책에서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 없는 종교 생활이란 불가능하다고 해도 조금도 틀릴 것이 없다고 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오늘 본문에서 본 것처럼, 기도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세 가지 중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제가『예수는 없다』라는 책을 쓰고 나서 여러분들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고맙다는 편지도 많았지만, 그 중에는 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편지도 더러 있었습니다. 동의하지 않으시는 분들 중 상당히 많은 분들이 저에게 “기도를 하십니까?”하는 질문을 해왔습니다. 보수주의적인 신앙을 가지신 분들에게는 이른바 진보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이들이 기도를 하지 않는 이들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저는 결론부터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보수적인 신앙인에게든 진보적인 신앙인에게든 우리 모두에게 기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중에서 기도의 중요성을 간과하실 위험이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에 대해 잘 알고 끊임없이, 쉬지 말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의 종류

1. 탄원기도

기도에는 몇 가지 종류의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라고 하면 우선 탄원기도를 생각합니다. 영어로 petitionary prayer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여 주시옵소서, 도와주시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간구하나이다, 비나이다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탄원 기도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탄원 기도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부산에 가려 합니다. 제 운전대를 지켜 주셔서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게 하여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도움을 간구하는 것은 내가 나의 한계성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내 스스로가 내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재확인하고 하느님의 능력에 의지해 살아가겠다는 결의를 다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해 내겠다는 나의 교만(휴브리스)를 없애고 하느님 앞에서 나를 비우는 것입니다. 억지를 멀리하고 순리를 따르는 무위(無爲)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탄원기도는 위험하기도 합니다. 자기의 이기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물에 논밭이 타는데도 교회 야유회를 가야 하기에 비가 오지 않기를 비는 것, 옆집 가게는 망하더라도 자기 가게만은 잘 되게 해달라고 비는 것, 가만히 앉아서 돈이 생기기를 빌거나 건강 법칙을 어기면서도 건강하기를 비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기복신앙을 조장합니다. 하느님을 복덕방망이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엄격하게 말하면 하느님의 팔을 비틀고 옆구리를 찔러 자기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시도록 강요하는 것입니다.

하바드 대학교 종교심리학 교수였던 Goldon Allport는 이처럼 이기적, 육체적 욕구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도를 강조하는 종교는 “미성숙한 종교”라고 하였습니다. 요즘 미국이나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른바『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에서 강조하는 기도, “원하건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혀주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환란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는 이런 기복적, 이기적 탄원 기도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관조적 기도

그런데 기도가 다 이런 탄원기도 만이겠습니까?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 밤을 세우시며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또 광야에 가서 40일간 기도하셨다고도 합니다. 만약 기도가 탄원기도 만이었다고 한다면 그렇게 밤이 이슥하도록, 혹은 40일간이나 길게 기도할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내일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칠 터인데 큰 목소리를 주시옵소서. 사람이 많으면 배를 타고 가르칠 터인데, 배를 한 척 마련해주십시오. 5천명을 먹일 능력을 주시옵소서. 병자들을 고칠 수 있는 치유의 역사를 보여 주시옵소서...” 이런 식으로 빌 것이 설령 100가지라 하더라도 10분 이상을 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기도가 탄원 기도만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기도에는 탄원 기도 이외에 이른바 관조적 기도, 관상기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어로 contemplative prayer라고 합니다. 하느님께 말을 하면서 매달리는 기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 그와 교통하는 것 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덴마크의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올은 우리가 “기도에 깊이 들어갈수록 기도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탄원 기도만 드린다면 이것은 환자가 의사에게 가서 자기 아픈 증상만 잔뜩 이야기하고 의사의 말은 듣기도 전에 일어서 나와 버리는 것과 같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기도도 탄원 기도만이 아니라 이런 관상기도, 혹은 명상기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런 기도를 제일 강조하는 교회가 퀘이커입니다. 퀘이커 모임에 가면 아무런 말없이 한 시간 동안 모두 가만히 앉아 명상만 합니다. 그러다가 하느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으면 그 말씀을 듣고 다른 이들에게 말해줍니다. 이런 일을 그들은 “내면의 빛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독일의 종교학자로 유명한 루도르프 옷토는 그의 책『신성의 의미』(Das Heilige, 이 교회 길희성 형제님이 번역했습니다.)에서 개신교는 퀘이커 교우들에게서 이런 침묵의 예배를 배워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실 퀘이커의 기도모임은 여러 모로 참선과 비슷합니다.

베트남 스님으로 부처님과 예수님을 다 같이 스승으로 모신다고 하는 틱낫한 스님, 지금 프랑스에서 살면서 지난 3월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그 스님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으로만 보여주지 말고, 조용히 앉아서 명상기도를 하시는 분으로도 묘사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으실 때 실험적으로 “기도”라는 말을 “명상” 혹은 “명상기도”라고 바꾸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기도라고 하면 탄원 기도가 연상되는데, 명상이나 명상 기도라고 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의 본 뜻과 더욱 부합하는 경우가 많음을 발견하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 가지 기도 중에서 제가 여분에게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예수의 기도”(Jesus Prayer)라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번역하고 이제 곧 나올 책으로『순례자의 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사람에 의하면 러시아 혁명 이전 톨스토이의『전쟁과 평화』, 도스토옙스키의『백치』와 함께 러시아 3대 걸작에 속하는 작품이라고까지 합니다. 이 책은 러시아 어느 무명의 작가가 1800년대 후반에 쓴 것인데, 자기가 “예수의 기도”를 실천하면서 순례의 길을 걸음으로 얻는 무한한 기쁨과 축복을 아주 생생하고 감명 깊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무명의 순례자는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바울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밥을 먹거나 기타 활동을 하면서, 혹은 잠을 자면서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가? 그 방법이 어떤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순례길에 올랐다가 어느 스승으로부터 “주 예수 그리스도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하는 기도를 처음에는 하루에 3천 번, 얼마 가서 6천 번, 다시 얼마 가서 만2천 번, 나중에는 수를 세지 않고 계속 반복하여 외우는 “예수의 기도”를 실천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렇게 하면 밥 먹을 때도 잠 잘 때도 기도가 저절로 나오게 된다고 하고, 이것이 이른바 “끊임없이 하는 기도” 혹은 “쉬지 말고 하는 기도” 영어로 ceaseless prayer 혹은 praying without cease입니다. 이런 기도를 계속함으로 즐거움이 뼈마디 하나하나를 적시면서 몸 전체를 흐르고 행복감이 온 몸을 휩싸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하늘에 간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세상에서 이미 하늘을 맛보는 삶을 살게 됨을 그림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사실 로마 가톨릭이나 거기서 나온 개신교와 달리 동유럽이나 러시아에 퍼진 동방정교에서는 ‘하시캐즘’이라는 아주 중요한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는 기도 방법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런 기도방식은 많은 종교에서 가르치는 바입니다. 가장 가까운 예로 불교에서 “옴마니반메흠”을 외운다거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여러분들도 이 순례자처럼 길을 걸으시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는 기도를 계속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중에는 심장이 뛰는데 따라 기도가 저절로 나옴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도를 “심장의 기도”라고도 합니다. 하루에 만2천 번을 외우라고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무슨 일을 반복하실 때 이 기도를 드려보시면 다른 데 주의를 빼앗기는 일이 없어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리스도의 임재를 느끼시게 되시리라 믿습니다.

결론

기도에는 이 외에도 구체적인 방법 면에서 다른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 감각이나 감정 하나하나의 마음을 쏟고 우리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마음 다함”(mindfulness)도 훌륭한 기도의 일종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예수의 기도” 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겠습니다.

기도는 종교적 삶을 진정으로 풍요롭고 신나게 하는 삶입니다. “반갑도다 기도 시간”하는 찬송은 기도의 참 맛을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부를 수 있고, 또 저절로 나올 수 있는 찬송입니다. 기도 없는 삶은 바이올린에 공명통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는 바이올린에 공명통을 붙이는 일입니다. 납작해진 솜 방석을 다시 부풀게 하여 부드럽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 생활을 통해 여러분의 삶이 더욱 풍요롭고 복되시기를 빌겠습니다.

하느님,

저희의 삶이 기도의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언제나 당신의 임재를 체험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께서는 하늘에 계실 뿐만 아니라

저희의 기도를 통해 저희 안에도 계시다는 사실을

체감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기쁨의 삶, 감사의 삶이 됨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당신께서 저희들에게 바라시는 세 겹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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