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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 속에서 감사하라

데살로전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883 추천 수 0 2008.11.25 21: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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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살전5:16-18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3년 11월 16일 주일2부설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평범 속에서 감사하라」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1603년 영국의 제임스 1세가 영국 왕위에 오르자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영국 국교회를 믿지 않는 모든 신교회 교인들을 극렬하게 핍박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신교도들은 청교도라고 불렀었습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은 이 극심한 탄압을 견디지 못해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을 향해 1620년 9월 102명이 작은 범선인 메이플라워를 타고 영국 플리머스 항을 떠났었습니다. 그들은 두 달이 넘는 힘든 항해 끝에 구사일생으로 11월에 북미의 동부 연안에 도착했고 12월에는 메사추세스 주의 한 곳을 플리머스라고 이름을 붙여서 어렵게 정착을 했습니다. 그 해 겨울 혹심한 추위와 식량부족과 풍토병으로 그들의 대표자인 존 카버 지사를 위시해서 절반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 남은 사람들은 윌리암 브레드포드를 새 지사로 선출하여 서로 격려하며 나무를 베어내고 먼저 교회당을 짓고 집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필사적인 개척정신으로 농토를 개간했습니다. 그들은 인디언들의 습격에서 보호해 주기를 기도하며 이 다음 봄 그들은 도와주려는 인디언들로부터 그 지역 품종의 옥수수 경작법을 배워서 열심히 농사한 결과에 가을에 풍성히 거두게 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은 추수를 끝내고 친절하게 대해준 추장과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곡식과 과일과 야생칠면조와 사슴을 잡아 3일간 추수감사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예배를 드리고 기쁨으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선조인 청교도들이 지킨 추수감사절의 기원이며 우리나라에도 선교사들을 통해 전해져서 한국 교회가 추수감사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미국에서 시작했든 미국에서 전래되어서 한국에서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든,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도록 하셨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노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고 했었는데 미국이 청교도들의 백절불굴의 개척정신으로 미국 땅을 개간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것을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여 주셔서 이 날을 오늘 우리 대한민국에까지 기념하고 감사를 드리게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주변에서 가장 평범한 것을 통해서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1.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을 감사하라

첫째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을 우리가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만물을 보시고 일곱 번 좋았더라고 하셨으니 이 좋은 것을 우리에게 매일매일 주셔서 누리게 하시니 당연히 감사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물로 드렸는데 그 좋은 것을 받고도 감사하지 아니하고 이것을 방구석에 던져 버리든지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면 얼마나 주신 분이 섭섭하겠습니까? 가장 좋은 것을 선물로 주면 너무나 감사해서 그를 귀중해 여기면 준 사람이 영광을 느끼고 더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우주와 만물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했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으니 인간이 보기에는 얼마나 좋습니까? 이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우리가 감사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45편 10절에 "여호와여 주의 지으신 모든 것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가 주를 송축하리이다"라고 말했으며,
시편 148편 3절로 5절에 "해와 달아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아 찬양할찌어다 하늘의 하늘도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찬양할찌어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은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하나님이 지어서 우리에게 참 좋다고 누리라고 주신 것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첫째 날에 빛을 지으시고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빛에 대해서 감사해야 됩니다. 여러분 밤만 계속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가 겨울철에 스웨덴에 집회를 갔다가 정신적으로 큰 혼란에 이를 뻔한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침 10시에 태양이 떠가지고 공중에 좀 빙글빙글 돌더니 오후 3시면 밤이 됩니다. 오후 3시부터 밤이 되어서 아침 10시까지 어두운 밤인데 사람이 호텔방에 앉아 있으니까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겠지만 도저히 그 기나긴 시간을 견딜 수가 없어 몸부림을 쳤습니다. 밤이 너무 길다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것입니다. 내가 북극에 있는 어느 나라에 갔더니 우리 한국 대사관 대사님이 저를 초청해서 식탁을 하면서 “목사님, 나는 이곳 북극대사로 와서 내 몸을 망쳤습니다”. “왜 그러느냐”라고 물었더니, “겨울철에 오후 3시부터 밤이 되어 아침 10시까지 캄캄한 밤에 할 일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먹지도 못하는 포도주를 마셔가지고서 이곳에서 심신을 완전히 망쳤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어두운데 있어봐야 빛의 고마움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밤이 지나고 낮이 다가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빛이 있어야 우리가 삽니다. 여러분 모든 식물은 빛 공장에서 음식을 만들어 냅니다. 탄소동화작용이라고 해서 모든 식물은 햇빛을 받아들여 가지고서 물과 탄소를 동화시켜서 오늘날 양분을 만들어 냅니다. 물속에 있는 플랑크톤도 햇빛을 받아서 탄소동화작용으로 양분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을 물고기들이 먹고 물고기가 자랍니다. 모든 동물들은 이와같이 햇빛이 만들어낸 양식을 먹고서 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물고기도 먹고 곡식도 먹고 동물도 먹지만은 직접으로나 간접으로나 햇빛을 먹는 것입니다. 햇빛이 만들어 놓은 양식을 우리가 먹는 것이니 빛 공장에서 만든 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께서 이 아침에 오실 때 아침식사를 드시고 오셨는데 모두 다 식사를 드신 것이 아니라 빛을 드시고 오신 것입니다. 빛이 없으면 모든 생물은 있을 수가 없고 모든 식물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빛을 주신 하나님께 우리가 감사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평범한 것에 감사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빛을 지으시고 보기에 좋았더라 했는데 이 좋은 빛을 주셨는데도 우리가 감사하지 않고 무심하게 지낸 것은 너무나 잘못된 것입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궁창을 보고 감사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둘째 날에 궁창을 지었었는데 이 궁창은 장차 예수님이 마귀를 궁창에서 쫓아 내시고 그곳을 어린양을 혼인잔치하는 곳으로 만드실 곳입니다. 지금은 타락한 마귀가 타락한 천사들과 함께 궁창을 점령하고 우리에게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한 일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궁창을 지으시고는 보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나 장차 우리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궁창에 있는 마귀를 쫓아내시고 재림 때 그곳을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장엄한 혼인잔치를 그곳에서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 9절에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궁창을 볼 때마다 감사해야 됩니다. 지금은 마귀가 궁창을 점령하고 온갖 방해를 다하고 있지만 장차 청소되고 그곳이 우리의 혼인 잔치의 거룩한 장소가 될 것을 생각하고 궁창을 주신 하나님께 우리가 감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셋째 날에 바다와 육지를 지으시고 보기에 좋았더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출렁이는 바다가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가 보더라도 마음에 치료를 가져오고 상쾌함을 가져옵니다. 또 바다가 있으므로 온 세상에서 오염된 물이 들어올 때 바다가 출렁거려서 이것을 모두 다 정화시켜서 그곳에 수증기를 발생하여 우리가 깨끗한 물을 마시고 살게 해주시며 바다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바다의 해초와 생선을 우리가 먹고 살수 있지 않습니까? 육지는 우리가 서서 걸어 다니며 집을 짓고 공장을 짓고 사업을 하고 농사를 지으며 사는 것이 우리 육지 아닙니까? 바다와 육지를 주신 하나님께 우리가 감사를 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각종 열매 맺는 나무와 풀을 보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종 열매있는 나무와 풀을 만드시고 보기에 좋았더라 했습니다. 오곡백과 무르익었을 때 참으로 보기에 좋습니다. 가을이면 감을 먹습니다. 밤을 따먹습니다. 그리고 쌀농사가 가을에 추수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사실은 우리가 전쟁하는 비용을 다 녹색사업에 들인다면 이 세상 인류들이 다 배불리 먹고도 남을 것입니다. 수많은 재화를 전쟁하는데 싸우는데 사용하는 이 어리석은 인류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히 주셨으나 사람들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부요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의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에 오늘날 이 세상이 이렇게 불행한 것입니다. 우리는 각종 열매 맺는 나무와 풀과 풍성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어 본적이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 감사 집사가 있었는데 이 감사집사 때문에 목사님이 홍역을 치릅니다. 이 목사님은 원고를 읽지 않고는 설교를 못하시는 목사님이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글을 씁니다. 주일까지 원고를 다 적어가지고 주일날 성도들 앞에서 설교 원고를 읽는데 이 감사집사가 원고를 읽을 때마다 감격을 받아서 “아멘! 할렐루야~” 그런데 그럴 때마다 목사님은 깜짝 깜짝 놀라며 그만 원고 줄을 놓쳐 버려가지고서 원고 줄 찾는데 애를 먹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교회에 지사를 시작해서 유명 인사들이 참석한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열심히 설교를 준비해서 도지사로부터 유명한 인사들이 감동을 받도록 다 만들어 놓고 난 다음에 큰 걱정이 생겼습니다. “저 감사집사가 또 앉아서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하면 또 거기에 놀래 가지고서 원고 줄을 잃어버리면 더듬거리기 시작하니까 안되겠네...” 연구 끝에 그 교회 옆에 있는 기도 준비실에 집사님을 불렀습니다. “집사님! 오늘 예배 할 동안에는 집사님이 이 기도실에 앉아 가지고서 이걸 읽으세요.”하고 지리책을 주었습니다. 제일 재미없는 것이 지리책입니다. 산은 높고 바다는 몇 미터고 중국은 여기 있고 소련은 여기 있고 영국은 여기 있고 하는 지리책입니다. 절대 성경도 읽지 마시고 찬송도 부르지 마시고 내 설교도 듣지 말고 이 지리책을 읽으세요.

또 집사님은 목사님 명령을 잘 듣는 집사님이라 “예!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지리책을 받습니다. 목사님이 한참 설교를 해나가는데 아 갑자기 그냥 기도실에서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온 교인이 그리 다 쳐다보고 목사님도 당황해서 설교 줄을 놓쳐 버렸습니다. 그래가지고 설교가 엉망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너무 화가 나서 예배를 마치자마자 가서 “집사님! 도대체 집사님 사람입니까? 아닙니까? 지리책을 보고 뭘 감사합니까?” 그러니 “목사님 모르는 소리 마십시오. 목사님이 지리책 읽으라고 해서 제가 읽었잖아요. 읽는데 보니까 필리핀 연안에 바다 깊이가 1만 미터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 미가서 7장 19절에 보면 하나님의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졌다고 했는데 1만 미터나 깊은 바다에 죄를 던져 버리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그러니 목사님이 할말이 없어집니다. 감사를 하기 시작하면 지리책을 들고도 감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정말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볼 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해와 달과 별들로 인하여 여러분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해는 광명한 빛을 비춰주고 따뜻한 열기로 온 우리를 더웁게 해주지 않습니까? 만일 태양의 따뜻한 열기가 없다면 이 세상은 순식간에 얼음 덩어리가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달은 밤을 비추고 별빛은 소망차게 우리를 비춰주지 않습니까?
시편 136편 5절로 9절에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해로 낮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하나님이 지으신 천체를 감사하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너무나 무심하게 태양을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달을 보고 감사합니까? 저 수많은 은구슬, 금구슬 같은 별들은 보고 우리가 감사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만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으시고 참으로 좋았다고 하신 좋은 선물을 주셨는데 무관심하게 지냈습니다. 너무나 무심하게 지냈습니다. ‘무얼 감사하란 말인가!’ 너무나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를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중의 새와 물속의 물고기로 인하여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새들이 날아가 버리고 물고기가 다 죽어 버리면 인생도 같이 죽습니다. 여러분 공중에 새들이나 물고기들은 우리와 함께 이 지구상에 사는 동서인(同棲人)들인 것입니다. 환경이 오염되어서 새들이 못살게 되고 물고기가 물에서 죽어 넘어지면 얼마 있어 사람들도 다 죽게 되는 것입니다. 함께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새들을 주어서 새들이 공중에 나르고 물고기가 물에서 헤엄치면 얼마나 살기 좋은 환경이 되는 것입니까? 공중의 새와 물고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공중이 적막하지 않고 물속이 적막하지 않잖아요. 한강이 오염되었을 때 한강에 물고기가 사라졌습니다. 그 물은 우리 시민들도 마실 수 없는 오염된 물이 되고 맙니다. 요사이는 한강에 물고기가 다시 살아나서 물고기가 떼를 지어 논다고 합니다. 그것은 시민들이 그 물을 마셔도 괜찮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우리는 땅에 기는 것과 짐승들로 인하여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곤충들도 주님이 다 목적이 있어 만드신 것입니다.

지렁이를 보십시오. 지렁이는 땅을 분해 시켜서 땅을 산성화하지 않게 만들고 풍성하고 비옥하게 만듭니다. 오늘 쓰레기 더미에 지렁이를 넣어 놓으면 지렁이가 쓰레기를 다 분해 시켜서 좋은 옥토로 만드는 것입니다. 지렁이가 얼마나 땅 환경을 우리가 농사짓고 살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어 놓았을 때는 다 필요하고 아름답게 지어 놓은 것이므로 우리가 감사해야 됩니다. 짐승들이 있으니 우리가 짐승들을 통해서 도움을 많이 받지 않습니까? 또한 우리는 짐승들을 식물로 사용해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미국의 농아였던 헬렌 켈러는 태어나서 열병을 앓다가 장님되고 귀머거리되고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작가도 되고, 자선가도 되고,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헬렌 켈러가 쓴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책에 보면 우리가 매일 삶 속에서 감사해야 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헬렌 켈러는 말하기를 “나에게 3일만 볼 수 있게 해주시면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하겠다.” 우리는 한 평생을 보고 있는데요. 나는 67년을 보고 있는데요. 그래도 나는 감사를 별로 안했습니다. 헬렌 켈러는 3일만 볼 수 있게 해준다면 얼마나 감사하겠는가. 만약 내가 사흘간 볼 수 있다면 첫째 날에는 나를 가르쳐주신 썰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겠다. 둘째 날에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 터오는 모습을 보고 저녁에는 별들을 보겠다. 셋째 날 아침 일찍 큰 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없어봐야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헬렌 켈러가 그렇게 감사할 조건들은 다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감사할 수 없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주신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해야 됩니다. 매일매일의 삶 속에 우리가 누리고 체험하는 것을 무심히 넘기면 안됩니다. 유심히 바라보고 우리는 하나님께로 받은 은혜를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아닙니까?
사도행전 14장 17절에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하셨으니 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골로새서 3장 17절에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자연만물과 우리의 환경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감사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특별한 일이 생기면 감사하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평범한 생활환경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인하여 우리가 감사하고 찬양하는 우리들이 되도록 노력하십시다.

2. 예수님의 구원을 감사하라

둘째로,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을 감사해야 됩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했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수많은 사람 가운데 어찌하다가 여러분은 택함을 받아 주님 자녀가 될 수가 있었습니까? 보는 눈, 듣는 귀, 깨닫는 마음을 주셔서 예수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깨닫고 믿어서 구원을 받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에베소서 1장 5절로 6절에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십자가에 몸을 찢고 피를 흘리셔서 우리를 위하여 온갖 고초 다 당하시고 우리 일생의 죄의 빚을 주님이 혼자 다 청산하시고 그리고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이제는 공짜로 선물로 믿기만 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선택함을 받은 것을 감사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시장에 가서 물건 살 때 선택하지 않습니까? 옷가지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가구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더구나 오래 살 집 같은 것은 많이 집을 보고 선택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만인 중에 여러분을 하늘나라에 백성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하나님의 후사로 만들기 위해서 선택하여 세웠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여러분을 좋아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좋아하시고 우리를 선택해 주신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매일같이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다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고 장차 올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살 수 있게 되었는가 너무나 감사한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이 되게 한 것입니다.

왕은 다스리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 중에 왕노릇한다 했습니다. 우리는 마귀가 가져온 여러 가지 흑암의 파괴적인 세력을 다스릴 수 있는 왕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사탄을 다스려야 됩니다. 가족신문에 소개된 어느 교사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는 골수암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너무나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암에 걸려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내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 암에 걸렸으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회개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암에 걸렸다고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회개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눈물로 그는 감사를 드렸었습니다. 그런 다음 항암 치료를 받고 기도하면서 한쪽 다리를 잘랐습니다. 그래도 그는 말했습니다. “그래도 다리만 잘랐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두 다리 다 잘랐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한 다리는 잘랐으니 크러치(crutch - 목발)를 짚고라도 다른 한 다리로 걸을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그 다음 엑스레이를 찍으니 암이 폐로 전이되어 의사가 고개를 흔들며 손댈 수 없으니 가라고 했습니다. 목발을 짚고 집에 왔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골수암만 걸린 것이 아니라 폐암까지 걸렸으니 감사합니다.” 몸이 너무 아파 누워있는데 자꾸 감사를 드리니까 하나님 성령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이 사람아 이 모든 병은 귀신이 가져왔으니 이제부터 내 이름으로 다스려라! 너는 왕같은 제사장이다.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물리쳐라!’ 그렇게 말씀하시거든요. 그래서 그는 일어나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암귀신아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땀을 흘리고 계속해서 고함쳤습니다. 그러자 온 전신이 사시나무 떨 듯이 떨리더니 폐에서 뭔가 공기처럼 확확 튀어 나왔습니다. ‘아 암귀신이 떠나갔구나.’ 그리고 일어나 앉으니 몸이 날아갈 듯이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병원에 다시 가서 CT촬영을 하니 의사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골수암도 폐암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깨끗하게 나아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 때 왕같은 제사장으로 만들었어요. 왕이요, 마귀를 다스리고 마귀가 가져온 것을 다스릴 수 있는 왕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 사람은 불치의 병에 들렸을지라도 원망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야 이 사람아! 왕이니 너에게 온 이 귀신을 쫓아내라!’ 그는 말씀대로 쫓아내고 건강을 얻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기 때문에 생명의 열매인 의를 누리고 평강을 누리고 희락을 누리고 믿음, 소망, 사랑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를 왕으로 쓰면서 생명의 왕으로 만들어 주셨으니 생명은 의와 평강과 희락이요, 믿음, 소망, 사랑이 아닙니까? 성령 안에서 이를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담대하게 기도할 수가 있고 마귀의 일은 예수 이름으로 물리쳐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제물을 드릴까요? 여러분 오늘 제물 드리러 온 제사장입니다. 엿새, 이레 중에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 일째는 제물로 드리는 날인 것입니다. 나를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앉아서 예배드리는 것은 바로 여러분이 제사장으로써 이 나를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6장 2절에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제사장으로써 나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야 됩니다.

또한 제사장으로써 십일조의 제물을 드려야 됩니다. 오늘날 주의 종들까지라도 십일조 안드리고 장로님, 안수집사, 권사님 직분 가진 사람들이 십일조를 안드리고 있습니다. 이것 정말 너무나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십일조를 안드려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 발상자체가 큰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십일조를 안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십분의 구는 너의 것이고 십분의 일은 나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어떻게 목사, 전도사 노릇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 목사, 전도사중에 십일조 안내는 사람이 수두룩한 것을 보고 제가 놀랬습니다. 우리 장로님들 중에 십일조 안내는 장로님들이 너무나 많아. 그 명단을 제가 모두 다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큰 문제입니다. 도적질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게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드리고 예수 믿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말라기 3장 10절로 11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하는 것은 주님께서 너희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성경 십계명 중에는 도적질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도적질하는 주의 종이 무슨 주의 종이며, 도적질하는 직분자가 어떻게 떳떳하게 직분을 행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십일조의 재물을 반드시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사장이니까 찬양의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하나님께 늘 감사하고 찬양을 드리는 것 이것 찬양의 제사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제사장으로서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산 제물을 드리라고 말했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가 사는데 있어서의 말이나 행동이나 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되는데요. 어느 교회에 직분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회를 하고 난 다음에 “우리 목이 컬컬하니 호프집에 가서 술 한 잔 마시자.” 실제로 있은 일입니다. 모여 가지고서 예배드리고 난 다음 호프집에 가서 그곳에서는 장로님도 있고 권사도 있고 안수집사도 있고 모여 가지고서 술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그 술 마신 장면을 보고 고발한 사람이 안믿는 사람이 내게 고발을 했습니다. 안믿는 사람이 내게 편지하기를 “이렇게 해도 당신네 예수 믿는 사람이 정말 예수 믿는다고 하겠습니까? 나는 안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은 안보이지만은 예수 믿는 사람은 우리 눈에 보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이름을 불러 가면서 호프집에서 우리 안믿는 사람처럼 술을 마시는데 우리는 그것을 보고 환멸을 느꼈습니다. 그런 교인이요, 그런 교회라면 우리는 절대로 교회 나가지 않겠습니다.”그러한 고발장이 날라 왔어요. 나는 너무 쇼크를 느꼈습니다. 아무리 현대화되고 신시대 진보적인 신앙이라고 해도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고 그리스도의 얼굴에 침을 뱉는 행동을 하게 되고 하나님께 칭찬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산 제물이 되라고 말했습니다. 제물이란 희생입니다. 아니 예배보고 목이 컬컬하면 집에 가서 찬물 마시던지 사이다를 마시지 왜 호프집에 가서 맥주 마시고 있습니까? 이렇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회가 세상에 손가락질을 당하고 지도력을 상실하고 사회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사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자체가 제물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또한 말하기를 우리가 거룩한 나라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6절에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얼마나 좋습니까? 나라가 있으니까 우리가 편안히 먹고, 입고, 자고, 깨고, 예배드리고 일할 수 있잖아요. 나라는 그 나라를 다스리는 분이 계신데 우리는 거룩한 나란데 왜 거룩한 나라냐, 우리의 임금님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임금님이요, 우리는 예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우리가 나라요, 그러므로 사람들은 예수님의 나라를 보고 하늘나라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보고 우리를 평가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사람들은 하나님은 안보이잖아요. 예수님도 안보이고.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 임금이고 우리가 거룩한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임금이 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지 않습니까?

그리고 성경은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다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물입니다.
시편 100편 3절로 4절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소유된 백성이요, 주님이 기르시는 양입니다. 마귀의 소유물은 이 세상입니다만 우리는 세상에서 건져내서 하나님의 소유물이 되고 하나님의 기르시는 양이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땅의 삶이 끝나면 하나님은 여기에서 옮겨서 우리에게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영원한 천국에 살게 해주시는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 것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교회로 인하여 감사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22절에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우리의 머리는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받들어 섬기고 모시면서 사는 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가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찬양드리고 영적양식을 먹고 성도의 교제가 있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으니 교회가 정말로 여러분 고마운 것이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교통을 나누고 좋잖아요. 그 다음에 영적으로는 교회에 와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과 성도들과 한 가족으로 교제를 하고 영적인 집으로 살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나의 교회, 나의 목사, 나의 장로님, 안수집사, 권사님 그리고 셀지역장, 구역장들이 있고 성도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주의 종과 제직들로 인하여 우리는 늘 감사해야 돼요.
갈라디아서 6장 6절에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은혜와 말씀을 인하여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이 우리와 같이 계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주옥같이 우리에게 주어졌으니 말씀을 먹고 나면 얼마나 영적으로 기쁨이 충만하고 믿음, 소망, 사랑이 넘치잖아요. 성령께서 하나님 말씀을 우리에게 먹여 주시고 영적으로 살아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시니 얼마나 좋아요.
베드로전서 1장 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미국의 역사에 메뚜기 재앙에 대한 기적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네소타 주에서 일어난 일인데 1874년부터 77년까지 미네소타 주의 일대를 메뚜기 떼가 휩쓸어 농작물에 큰 재해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주지사 필수베리 씨는 1877년 4월 27일을 기하여 모든 사람이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자고 했습니다. 메뚜기 떼가 습격해 와서 곡식은 모두 다 망쳐 놓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땅이 없어진 것이 아니냐. 농사꾼들이 건강을 해치는 것이 아니니 하나님이 땅을 지켜 주시고 건강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보태어서 메뚜기 떼 전체를 없애 주시도록 우리 기도하자. 그래서 그들은 모여서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하고 메뚜기 재앙을 없애주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는데 그해 여름에 극성스럽던 메뚜기 떼가 완전히 그 지방에서 사라지고 그 감사의 능력의 결과로 메뚜기 떼 없는 부유하고 풍요한 수확을 얻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니까 하나님이 오셔서 메뚜기 재앙조차도 없애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 않아요. 감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더 은혜와 축복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감사는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미시간 호수에 배 한 척이 침몰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노스웨스트 대학의 한 학생이 호수로 뛰어 들어가 23명의 생명을 구원했습니다. 그 수십 년 후에 유명한 토레이 목사님이 한 교회에서 설교하면서 이 실화를 들어 그 청년의 용기를 칭찬하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 노인이 “내가 바로 그 청년입니다.” 토레이 목사님이 너무 감격해서 이 노인을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강단에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물었었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 혼자서 구사일생으로 23명의 생명을 헤엄쳐서 건졌는데 어떤 감격이 있습니까?” 그러자 그는 “23명중 단 한사람도 고맙단 말을 한 일이 없다는 것이 나에게 깊은 인상입니다.” 23명을 살려 주었는데 한 사람도 그때나 그 이후로 감사하다는 말을 안했다. 원한은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고 사람들은 너무나 은혜 받은 것을 잊어버립니다. 우리 신문에도 보지 않았습니까? 얼마 전 지하철에서 어떤 사람이 지하철 노선에 떨어진 어린아이를 목숨을 무릅쓰고 구해줬는데 그 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도망쳐 버렸습니다. 감사하다는 것이 부담이 되어서. 그런 고약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목숨을 바쳐 애를 구원해 주었는데 얼마나 엎드려 고맙다고 감사해야 될 것 아닙니까? 애를 데리고 줄행랑을 쳐버렸습니다. 괴심하고도 야속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는다면 이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영영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몸을 찢고 피를 흘리고 필사적인 노력을 다하여 재물이 되시고 우리를 값없이 구원해 주었는데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 사람들과 다를 게 무엇입니까? 더 고약하지요. 주야로 예수 그리스도 은혜에 대해서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 내사 우리를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만들어 주신 것을 우리는 쉬지 않고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셋째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하셨는데요.
시편 50편 23절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활 속에 늘 감사할 것을 찾아야 돼요.

마태복음 13장 12절에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했습니다.
있는 것을 보고 감사하면 더 주시고 자꾸 있는 것을 보지 않고 없는 것을 보고 불평하면 있는 것조차 빼앗는다는 것입니다. 비열한 자는 은혜를 원수로 갚고 평범한 사람은 은혜 받고도 입 닦아버리고 참으로 훌륭한 사람은 은혜를 감사로 갚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애 속에 내가 받은 것을 항상 헤아려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은혜를 받았는지 늘 헤아려 보고 거기에 대해서 감사를 드려야 됩니다.
에베소서 1장 3절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하나님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셨으니 이를 늘 생각하고 우리가 받은 것을 헤아려 감사하고 받지 않은 것을 헤아려 불평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사람은 앉아서 늘 없는 것을 찾아서 불평하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 있는 것을 찾아서 감사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독일의 재무장관을 지낸 마르티 바덴의 이야기가 참 감격적입니다. 자유주의 사상을 지닌 그는 당시 집권세력인 극보수파에 밀려나 젊은 시절 고생을 무척 많이 했습니다. 한번은 어느 지방에 여행을 갔다가 돈이 없어 싸구려 여관에서 하룻밤을 묶게 되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깨어보니 도둑놈이 와서 구두를 훔쳐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맨발을 벗게 되었습니다. 어찌 화가 나든지 도둑놈을 보고 있는 욕을 다하고 없는 욕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도 살아 계시면 무심하지 도둑놈이 이 가난한 구두를 훔쳐 가도록 뻔히 보고도 내버려 놓는 법이 어딨냐?”고 하나님은 너무나 무심하다고 그러는데 그날이 주일이라 그 여관 주인이 “그러지 말고 나하고 예배나 보러 가자” “신발이 없는데 어떡합니까?” 창고에서 헌 다 떨어진 신발 하나 주시거든. 그래서 그것을 신고서 목사님과 예배를 보러 갔는데 예배에 딱 앉는데 마침 앉는다는 것이 두 다리가 없는 사람 옆에 딱 앉았어요.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이 옆에 앉았는데 가만히 보니까 그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니까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이 삭막한 세상에 소망 가지고 살게 해주신 것을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이분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습니다. 부끄러움으로요. 이 사람은 두 다리가 없어도 감사하는데 나는 두 다리가 멀쩡하게 있는데 신은 다시 사서 신으면 될 것이지 신 잃어 버렸다고 훔쳐간 사람은 저주를 하고 욕을 하고 하나님께 불평을 했으니 얼마나 미안합니까? 그래서 그 자리에서 그는 무릎을 꿇어 하나님께 회개를 했습니다. “하나님, 두 다리 있는 것을 감사합니다. 이 분은 두 다리가 없는데도 감사하는데 나는 두 다리가 있음을 감사합니다. 주님 신발을 잃게 하신 것은 좋은 신발 주시려고 낡은 신발 그만 신으라고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좋은 신발 주실 것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그 인생이 그날로 완전히 달라졌다고 그는 간증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는 감사생활을 하고 원망하지 않았더니 마르티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어 마침내 독일의 재무장관이 되어 국가에 크게 봉사하며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정치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조그마한 한 사건이지만 그 일생을 변화 시킨 위대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게 있는 것을 늘 헤아려 감사하십시오. 없는 것을 헤아려 불평하지 마십시오. 내게 있는 게 뭡니까? 너무나 많잖아요. 있는 것을 헤아려 감사하십시오. 오늘 아침만 해도 여기 앉아서 여러분 감사할 일이 너무나 많아요. 우리 교회 있는 걸 감사하지요. 우리나라에 평안 있는 것 감사하지요. 오늘 건강하게 교회 와서 예배드릴 수 있는 것 감사하지요. 또 설교해줄 목사가 설교하고 있으니 감사하지요. 뭐 감사할 것 이리 말로다 할 수가 없어요.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셨으니 좋은 것은 좋아서 좋고 안좋은 것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좋게 만들어 주실 것이므로 좋은 것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던져져도 다 나를 버려도 주님은 나를 안버리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나와 같이 해서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해 주신다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원수가 오면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원수가 오면 원수에게 이기라고 진수성찬 차려 주시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주셔서 오히려 잔이 넘치게 만들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 것입니까? 좋을 때는 좋아서 감사하고 좋지 않은 것은 합동하여 유익을 이루어 주실 것이니 감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있는 것을 감사하지 않고 모자란 것만 찾습니다. 옛날에 고생하던 것 비교하면 지금 얼마나 잘삽니까? 6.25 사변 때 우리가 당한 그 고생을 생각하면 몸서리치지요. 그때 비교하면 너무나너무나 잘살기 때문에 뼈가 으스러지도록 감사해야 되겠는데 그때 것은 다 잊어버리고 지금 우리가 일본처럼 잘 못살고 미국처럼 구라파처럼 잘 못산다고 자꾸 비교 가난을 가지고서 불평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멕시코의 어떤 마을에 가면 냉천과 온천이 솟아오릅니다. 그래서 아낙네들이 빨래를 온천에 삶아 가지고서 냉천에 가서 헹구어서 빨래를 합니다. 그래서 관광객들이 그곳에 와보고 머리를 흔듭니다. 어떻게 여기에 온천이 오고 여기엔 냉천이 있느냐. 그래서 여기에 오는 아낙네들은 너무너무나 감사하겠다고 하니까 멕시코 안내원이 말하기를 “아니오. 감사 안합니다.” “어떻게 감사 안합니까?”하니까 “이 사람들이 말하기를 왜 하나님이 온천도 주시고 냉천도 주시면 비누도 솟아오르게 안해주시냐! 왜 우리가 비누를 가지고 오게 하느냐? 하나님은 불공평하시다.”이것 보십시오. 뜨거운 물도 주고 찬물도 줬는데 비누까지 안준다고 불평을 합니다. 사람이 있는 것을 헤아려서 감사를 해야지 자꾸 주어도 없는 것을 지적해서 불평을 말하면 우리의 일생은 불평이 끝이 없습니다. 받지 않는 것을 헤아려 불평할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을 헤아려 감사하고 없는 것을 헤아려 불평할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가지고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야기 하나만 더하고 내 오늘 끝마칠게.

어느 잡지에 실린 예화를 제가 읽어 보았는데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사는 한 주부가 남편을 팔겠다는 이색 신문광고를 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말이 되면 남편은 집에 있는 것보다 사냥이나 골프를 즐기려고 외출을 하기 때문에 불만이 점점 쌓여서 하루는 그 부인이 결정을 했습니다. 팔아 버려야 되겠다. 그래서 신문에 ‘남편을 판다. 그리고 남편을 사가는 사람에게는 사냥총하고 골프채하고 사냥개도 보태어서 주겠다.’ 광고를 보고 흥미를 가진 여성들로부터 60 여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남편을 구입하겠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어떤 편지냐, 어떤 전화냐. “남편이 살아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라. 당신 남편 죽고 난 다음 얼마나 외로운지 아느냐? 사냥이나 하고 골프를 치고 다니는 남편이라도 있는 것을 감사하라. 나는 우리 남편이 죽고 살아보니 너무나 외롭다.” 그 전화가 왔고요. 또 한 과부는 전화를 걸어서 “골프치고, 사냥하는 것은 약과다. 바람 안 피우는 것 고맙게 여겨라. 바람피우면 더 골치 아프다.” 또 다른 한 주부가 전화하기를 “내가 남편과 헤어진 뒤에 혼자서 애들을 키우려니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남편이 집에 있지 않더라도 남편 이름이 있고 그림자라도 있으면 애들을 키우기가 좋은데 집에 남자가 없으니까 애들이 말을 안들어주고 키우기가 너무나 힘드니 남편이란 이름만 걸치고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해라”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생활 속에서 불평하고 원망할 조건을 찾지만 우리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보면은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남편 팔겠다고 광고내지 마세요. 나쁜 남편도 효성스러운 자녀보다는 낫습니다. 악한 처도 자식보다는 낫다고 그럽니다. 나쁜 것을 바라보지 말고 좋은 것을 헤아려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목사였던 스펄전 목사는 그 설교할 때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감사하면 영원한 천당을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외식하는 신자는 위급한 때 하나님께 기도할 줄 안다. 그러나 그 위험에서 건짐을 받았을 때는 감사할 줄 모른다. 이는 위선자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일본의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오는 아무리 이해가 깊고 열심히 뛰어난 행동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께 향한 높은 감사심이 없다면 생명 있는 신앙생활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신학자인 매튜 헨리는 진정한 사람은 누더기를 입고 살지라도 그것을 은혜로 안다. 그 이유는 보석은 진흙 가운데서도 보석인 까닭에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결론>
여러분 불평을 하기 위해서는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면 혼자서도 혹은 두세 사람이 모여도 쉽게 입이 침이 마르도록 불평을 하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감사나 찬양의 말을 하기 위해서는 결심을 하고 마음에 노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불평에는 부정적인 마음과 불신과 절망이 따라옵니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긍정적인 삶과 믿음과 꿈과 희망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망과 불평과 탄식은 내버려 놓아도 그냥 나옵니다. 그러나 그 결과에는 불평과 불신과 절망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기 힘든 감사와 찬양을 하면 그 결과로 긍정적인 삶과 믿음도 생기고 꿈도 생기고 희망도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감사하는 생각과 말을 하도록 결심하고 실천하는 노력을 다 해야 됩니다.
감사하는 개인, 감사하는 가정만이 기쁘고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감사주일에 우리는 스스로 돌이켜 보고 너무나 감사하지 못하고 살은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오늘날 우리의 개인과 가정과 사회가 이렇게 혼란하고 물고 찢고 싸우고 복잡한 것은 감사할줄 모르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이옵니다. 적은 것으로부터 감사하기 시작하면 그 감사는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고 모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그러므로 오늘부터 우리 각오하고 결심하고 주님 안에서 감사생활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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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4 디모데후 하나님의 목적에 이끌린 삶 딤후1:6-11  이한규 목사  2008-12-26 1921
703 디모데후 말세의 도덕성 딤후3:1-5  강종수 목사  2008-12-14 1788
702 디모데후 뒤돌아본 바울의 삶 딤후4:6~8  조용기 목사  2008-11-21 1940
701 디모데전 밥과 말씀 딤전6:7-10  류상태 목사  2008-10-05 1564
700 디도서 구원의 계획을 따라 살자 딛2:11-12  김남준 목사  2008-08-27 2169
699 디도서 늙어서 할일 딛2:2-4  한태완 목사  2007-11-07 2356
698 디모데후 좋은 군사. 딛2:3-8  한태완 목사  2008-03-01 2386
697 디모데후 성경의 힘 딤후3:15-17  강종수 목사  2008-02-26 2046
696 디모데후 큰그릇 딤후2:20-21  한태완 목사  2007-12-27 3043
695 디모데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딤후3:14-17  한태완 목사  2007-11-23 2812
694 디모데후 성경이라는 책 딤후3:14-17  한태완 목사  2007-11-07 2376
693 디모데후 말세의 정신 file 딤후4:3-5  강종수 목사  2007-02-11 1950
692 디모데후 속지 마라 file 딤후3:12-15  강종수 목사  2006-11-05 1768
691 디모데전 남자의 뇌구조 분석3 딤전3:11  전병욱 목사  2008-04-11 3060
690 디모데전 경건한 생활 딤전4:7-8  한태완 목사  2008-02-21 2571
689 디모데전 양심 마비증 딤전4:1-2  한태완 목사  2007-11-07 2368
688 데살로후 평강의 주께서 친히 살후3:16-18  서인선 교수  2008-01-31 2507
687 데살로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살후3:1-15  서인선 교수  2008-01-31 2068
686 데살로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살후2:1-17  서인선 교수  2008-01-31 2035
685 데살로후 교회에 편지하노니 살후1:1-12  서인선 교수  2008-01-31 1762
684 데살로후 기이히 여김을받으리라 살후1:1-12  우남식 목사  2008-01-31 1973
» 데살로전 평범 속에서 감사하라 살전5:16-18  조용기 목사  2008-11-25 1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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