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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본 바울의 삶

디모데후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940 추천 수 0 2008.11.21 23: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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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딤후4:6~8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3년 8월 31일 주일2부설교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뒤돌아본 바울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인생 40대까지는 거의 뒤돌아볼 여가 없이 앞만 보고 뛰게 됩니다. 그러나 40이 되면 삶의 중간 청산을 하게 됩니다. 제가 어렸을때 어른들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보면 ‘인생 40 고개가 가장 넘기기 어렵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어릴때 그 말을 듣고 굉장히 겁이 났습니다. ‘40이 되면 죽을병에 걸리는가 보다. 40 죽을 고개를 넘어야 사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해서 40이 되는 것이 굉장히 두려웠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40과 죽음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 40이 되면 삶의 성공과 실패의 분수령을 넘게 되기 때문에 힘들다는 것입니다. 40 이후부터는 지나온 과거를 가끔 생각해 봅니다. 그러다가 60이 넘게 되면 거의 70%쯤 과거를 뒤돌아 보는 시간이 많게 됩니다. 바울선생도 이제 나이 많고 순교당할 시점이 가까워졌다고 예감했을때 그 영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 선한 싸움을 싸우고

첫째로, 바울선생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왔다.’ 그렇게 간증을 했습니다.

인생 일생의 생존을 위한 경쟁이요, 싸움인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루도 생존경쟁을 위해서 우리가 몸부림치지 않고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예외없이 싸움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싸움은 악한 세상에서의 싸움이 아니라 선한 목적을 위한 싸움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해서 우리 신앙의 싸움이란 끊임없이 주님이 우리 위해서 예비한 천국을 향해서 우리가 투쟁해 나가는 싸움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순간부터 육적, 영적싸움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믿고 난 다음에 영적전쟁을 치르지 않는 성도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매일 매순간 그리스도를 따를 것이냐 마귀와 세상 유혹을 따를것이냐 이와같은 마음에 갈등, 투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 18절로 24절에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바울은 탄식했습니다. 끊임없이 우리 개인속에 갈등과 싸움이 있습니다. 내게 선을 행하겠다는 마음에 대해서 악으로 끌고 가는 내 육체속에 죄악의 법과 끝없는 싸움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왜 예수를 믿으면서 죄를 짓느냐! 옛날과 무엇이 다르냐! 그렇게 묻는 사람이 있는데 예수 믿는다고 당장 팔뚝밑에 날개가 달려 천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그 순간에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 들어오므로 선과 악의 싸움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거리낌없이 죄와 육신의 정욕과 세상과 마귀를 따라갔으나 이제는 예수님이 들어와 계시므로 이제는 끊임없는 육신의 정욕과 세상과 마귀와 싸우고 넘어지면 또 자빠지면서 상처를 비비고 일어나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이러한 투쟁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했습니다. 마귀와 그 사자들이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어찌하든지 다시 세상과 마귀의 권세로 끌어가려고 끊임없이 우리를 도전하고 유혹하기 때문에 우리는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끝없는 투쟁입니다. 바울이 말한것처럼 내가 선한 싸움을 평생토록 싸웠다고 하는 것처럼 우리 싸움이 없는 신앙생활이란 있을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가는 목표는 고상하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어떠한 목표보다도 가장 고상한 것이 예수 믿고 천국가는 것입니다. 목표가 고상할 수록 거기에 도달하는 길을 험하고 원수도 많습니다. 이 세상에도 목표가 낮으면 싸움도 없지요. 고상한 목표를 두고 나아가려면 경쟁도 많고 싸움도 많고 험난한 길을 걸어가야 되지 않습니까? 천국가는 길 어떻게 험난한 싸움이 없을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하늘나라를 향해서 걸어가려고 할 때 끊임없는 육체와 마귀와 세상과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애굽에서 바로왕과 싸워서 바로왕에서 해방을 쟁취하고 나와야 되었습니다. 그리고 홍해수가에 왔을때는 홍해 바다가 앞을 가로막고 바로가 대군대를 거느리고 그들을 또 사로잡으러 오매 거기에서 어마어마한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과 몸부림의 싸움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홍해를 건너와서는 광야에 자연과 싸워야 되었습니다. 물이 없습니다, 바람 붑니다, 해는 뜨겁습니다, 쉴곳은 없습니다, 양식은 부족합니다. 그들은 자연과 싸워야 했습니다. 또 가나안 땅에 들어올때도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주셨지만 미리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있는 일곱 족속과 싸움을 해서 한발자국 한발자국 점령해 나가야만 했습니다.

신명기 7장 1절로 2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천국에 이르기까지는 우리 앞에 놓여있는 원수들이 많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싸워야 되고 세상 유혹과 싸워야 되고 세상 살면서 느끼는 신앙생활의 갈등, 식어져 가는 신앙심과 싸워야 되고 핍박과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워야 살아 남습니다. 세상 살면서도 생존경쟁을 포기한 사람은 자살합니다. 이 세상 싸움에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고 도전에 응전할 수 없을때 생명을 종지부 찍어 자살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우리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싸워 나가야 되는데 영적인 싸움을 하기 싫은 사람은 영적인 자살을 도모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으로 자살해 버리면 그로써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로 5절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끊임없이 우리 영혼을 거스리는 싸움이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생활에 싸움이 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왜 내 마음속에 갈등이 있고 신앙 때문에 우리 가정에 갈등과 충돌이 있고 내 직장에서 사회에서 끊임없는 신앙에 고통과 갈등이 있느냐, 예수믿고 평안하다고 하는데 왜 이 갈등을 가졌느냐?

제가 불광동에서 목회할 때 홀로 과부가 되어서 아들과 딸을 기르는 자매님이 열심히 매일같이 보퉁이 장사를 하며 새벽기도 나와서 열심히 기도하고 주일날은 물건을 천막교회 갖다 놓고 예배드리고 물건들고 팔러 나가고 그렇게 했는데 하루는 제가 오더니만 “전도사님! 나 예수 그만 믿으렵니다.” 여태까지 새벽기도 열심히 오시고 주일날도 그렇게 열심히 하시고 그러신 분이 그만둔다면 어떻게 합니까? “내가 예수 믿기 전에는 편안하게 살았습니다. 거짓말도 하고요. 욕도 하고 싸움도 하고요. 내가 편안하게 살았는데 예수믿고 난 다음 왜 이렇게 마음에 갈등이 많습니까?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 좋기는 하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사니 좋기만 하지만은 너무나 갈등이 많습니다. 왜냐, 장사를 하자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데 옛날에는 거짓말해도 고통이 없었는데 이제 거짓말 하면 속에서 성령이 ‘이놈아~’ 거짓말하고 또 회개해야 되고 거짓말하고 또 회개해야 되고 그리고 옛날에는 마음대로 내가 배운게 있습니까? 팔뚝걷고 싸웠는데 이제는 싸우면 싸웠다고 또 하나님 꾸중하시지. 집에 와서도 늘 마음속에 회개하다가 볼일 다보고 그래서 애들 다 키워놓고 나이 늘어 죽기전까지 안 믿었다가 그때가서야 믿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자매님, 예수 믿는 생활이라는 것은 끝없는 싸움입니다. 믿기 전에는 마귀와 세상과 육체가 도전은 안했지만 예수님이 들어오자 마귀와 세상과 육체가 끊임없이 도전을 하니까 늘 씨름을 해야 됩니다. 싸우고 있다는 것이 영적으로 살아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안싸우면 죽었다는 증거지요. 그러므로 매일 싸우십시오. 매일 싸우고 매일 회개하고 매일 울고 그것이 살아있는 증거고 그로말미암아 저 높은 곳을 향해서 매일매일 신앙이 정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바울선생도 “내가 선한싸움을 평생토록 싸웠다.”고 말한 것입니다.

2. 달려갈 길을 마치고

둘째로,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한것입니다.

인생은 경주입니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는 천천히 걸어갈 수 없고 달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남보다 좀더 일찍 일어나고 더 열심히 일하고 늦게 까지 뛰고 이래야 남보다 좀더 잘살수 있지요. 내가 다 놀고 내 할일 다하고 게으름 피우다가 나가서 경쟁에 이길수는 없는 것입니다. 개인도 달려야 하고 국민도 국가도 달려야 되는 것입니다. 중국 보십시오. 열심히 국가적으로 뛰니까 오늘날 경제력이 한국보다 앞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경쟁력에 있어서 한국을 따라잡고 앞서기 시작한 것을 볼때 우리 가슴이 서늘하지 아니할수 없습니다. 여러분 국가와 국민도 달려야 되는데 정치란 국민이 잘 달리도록 환경을 정돈하고 길을 열어 주어야 하는 것이 정치인 것입니다. 정치가 국민들에게 꿈을 주고 방향을 제시해 주고 신뢰와 안정을 주어서 국민들이 열심히 아침부터 저녁까지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또 회사에서 뛰어 달릴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한국 정치는 싸움박질만 하고 있으니 어떻게 됩니까? 우리 국민들이 보면 정당은 정당대로 물고 찢고 싸우고 이전투구를 하고 노사간에 밀고 당기고 타협이 없지요. 사회 계층간에 서로 비난하고 공격하고 손가락질 하지요. 지역간에 서로 고통이 있지요. 님비현상으로 우리에게는 절대로 나쁜 시설을 가져올 수 없다. 다른데 가져가라. 이래서 국가 기관사업과 시설도 마음대로 할 수 없지요. 이러한 혼란가운데 국민은 갈피를 잡을수가 없고 뛸수가 없어요. 어느 방향으로 뛰어야 될지 알수가 없습니다. 안심하고 우리가 갈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경쟁에 이길수가 있어요. 달려갈 길을 달려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의 슬픔은 아무리 달려가려고 해도 달려갈 비젼도 없고 방향도 없고 신뢰를 할 수 없고 안정이 없기 때문에 그만 앉아서 관망하는 사이에 외국은 다 뛰고 달려가고 우리만 뒤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 낙오자가 결코 되지 말아야 돼요.

1988년 9월 서울 올림픽때 캐나다는 국가적인 영웅이고 세계적인 육상선수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밴 존슨이 약물복용으로 선수의 자격을 박탈당하여 그의 모든 기록이 깨끗이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캐나다 정부와 국민들은 전부 낙담했습니다. 밴 존슨은 세계적인 단거리 선수였는데 약물을 먹었습니다. 기자가 그에게 왜 약물 복용을 했는가 질문하자 “솔직히 저는 그동안 훈련을 게을리 해왔습니다. 의욕이 없었습니다. 챔피언의 명예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할수없이 약물을 복용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의욕을 상실하고 훈련을 피하면 낙오자가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나 의욕상실하고 훈련을 피하면 낙오자 되지요. 오늘날 우리 민족이 우리 나라가 낙오자가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왜냐하면 개인은 개인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의욕을 상실하고 투자를 게을리 하고 낙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낙오자가 되지요.

요사이 뉴스에 보면 애덤 킹 이야기가 나옵니다. 티타늄 다리의 천사라고 하는데 애덤 킹은 태어나면서부터 손가락이 모두 붙어 있고 뼈가 굳고 다리가 썩어 들어가는 희귀병을 앓았습니다. 그는 한국 어린이인데 지난 95년에 미국의 양부모 가정에 입양된 이후에 세차례 손가락 분리 수술과 허벅지 아래 절단하여 티타늄 다리 박는 대수술을 했습니다. 여러분 텔레비전 보았지요. 쇠다리 두다리 가지고 있는 어린 소년. 그럼에도 12살인 이 어린 소년은 좌절하지 않고 강한 정신력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태권도로 파란띠를 딸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번 경주에서 열리는 국제 여자 태권도 오픈대회에 명예 홍보대사로 한국을 방문해서 태권도를 하는 것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을 보고 제가 놀랬습니다. 다리도 없습니다. 티타늄 쇠 두 막대기만 달려있는 그런 다리를 가지고도 그가 말하기를 “사람이 무엇을 하겠다고 결심을 하면은 어떠한 장애인이라도 못할일이 없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굉장히 마음속에 감동을 느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도 경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출발하여 뛰어서 홍해로 나오고 홍해에서 또 광야로 뛰어가고 광야에서 그들은 여러 가지 시련과 환난과 싸우면서 가데스 바네아까지 와서 그다음 가나안까지 달려 들어오게 된것입니다. 그중에 많은 낙오자들이 생겼습니다. 불순종과 불신앙과 거역함이 낙오자를 만들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시편 106편 28절로 29절에 "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그 행위로 주를 격노케 함을 인하여 재앙이 그 중에 유행하였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시편 106편 24절로 27절에 "저희가 낙토를 멸시하며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저희 장막에서 원망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이러므로 저가 맹세하시기를 저희로 광야에 엎더지게 하고 또 그 후손을 열방 중에 엎드러뜨리며 각지에 흩어지게 하리라 하셨도다"

신앙생활 경주에도 우리가 끝까지 달려가지 못하고 중도에서 머뭇거리고 세상으로 돌아가면 버림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를 보십시오. 우리 교회는 1958년 대조마을에서 시작해서 그때부터 달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쥔 것 없이 맨발벗고 뛰기 시작한 것이 1961년 서대문으로 왔고 1973년도 여의도로 왔고 그리고 대한민국 전국으로 전 세계로 숨가쁘게 달려왔고 지금도 우리가 달리고 있습니다. 달리는 것을 그치면 그때로부터 후퇴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12절로 14절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신앙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쫓아가는 것입니다. 쫓아가는 것을 쉬면 안됩니다. 푯대를 향하여 우리가 출발했으면 끊임없이 달음박질 해야지요. 개인 신앙생활도 영적인 달음박질 입니다. 신앙이 매일 앞으로 앞으로 전진해야지 주저 앉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라고 말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37절로 38절에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게을러 주저 앉거나 불순종, 불신앙으로 반역하면 낙오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낙오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을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같이 달음질하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로 달음질하고 성경읽기로 달음질하고 전도로 달음질하고 봉사와 헌신으로 달음질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뛰기를 그치면 안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뛰고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뛰어서 경쟁에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뒤를 돌아보면 안돼요. 장비를 들고 뒤를 돌아보면 하늘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했습니다. 한번 출발했으면 끝까지 뛰어야지 뒤를 돌아보고 낙오하고 주저 앉으면 버림을 받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택해서 하늘나라를 주실려고 부르셨으니 우리는 부르신 부르심을 향해서 힘들어도 가야되고 울면서 가야되고 고통당하면서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때에 우리는 골인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믿음을 지켰으니

셋째, 바울선생은 ‘믿음을 지켰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달려가고 믿음을 지켰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끝까지 간수해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 그 땅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밟고 난 다음에 그만 그 땅을 못지키고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를 하고 세상과 마귀를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시편 106편 34절로 36절에 "저희가 여호와의 명을 좇지 아니하여 이족들을 멸하지 아니하고
열방과 섞여서 그 행위를 배우며 그 우상들을 섬기므로 그것이 저희에게 올무가 되었도다"라고 말했습니다.
140절로 41절에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맹렬히 노하시며 자기 기업을 미워하사
저희를 열방의 손에 붙이시매 저희를 미워하는 자들이 저희를 치리하였도다"라고 말합니다.

믿음에 도달했으면 우리가 믿음에 굳세게 서서 다시는 세상과 마귀와 타협하지 말고 나아가야지 세상과 마귀와 타협해서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세상이 꽉 들어오게 되면 그로써 우리는 버림을 당코 말게 될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지 못한 기독교 세계를 보십시오. 구라파는 기독교 문화만 남고 신앙은 잃어 버린 상태입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기를 구라파는 기독교 국가라고 했는데 과거에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군사, 산업 모든 것에 기독교의 형식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 문화는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면에 있어서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습니다. 제가 이번에 영국에 가서 우리 세계 하나님의 성회 실행위원회의에 참석했다가 들은 얘기에 의하면 영국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믿느냐고 갤럽조사를 해보니까 60%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영국 국민들이 주일 교회 나가는 숫자는 전체 국민의 5%밖에 안됩니다. 영국은 기독교 대국이었고 한때 기독교 대국이었을때 그들은 국력이 신장해서 세계를 점령한 리더였습니다만 오늘날에 와서는 아주 물거품같이 꺼져가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심을 잃어 버리고 하나님을 예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영국보다 훨씬 예수믿는 사람이 많고 실제 교회에 와서 주를 경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나를 믿는 백성은 머리가 되고 꼬리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않겠다고 했는데 하나님을 저버리면 하나님도 저를 져버리십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미국도 급속히 세속화 하고 있어서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미국 엘라바마주 법원 청사에 십계명 돌판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을때 그들은 십계명 돌판을 해서 세웠습니다. 그런데 치열한 논란끝에 8월 27일 철거했습니다. 여러분도 국제뉴스에서 보셨을 겁니다. 연방 대법원은 십계명이 국가가 특정종교를 장례 못하게 한 법을 어겼다고 철거 명령을 내렸습니다. 100명의 성도들이 모여 눈물로 철야기도했고 철거를 지양한 엘라바마주 대법원장은 정직되었습니다. 연방 대법원은 1980년 공립학교 교실벽에 십계명을 개치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기독교 국가로 출발한 미국이 얼마나 타락하고 세속화 되었든지 이제는 연방법원 안에 세운 십계명 돌판도 철거하라. 학교에 십계명을 걸어 놓은 것도 철거하라.
캐네디대통령 재직때인 1963년에 대법원이 국립학교에서 성경교육할 수 없다고 판결한 이후 30년간 국가적으로 얼마나 표류했든지 폭력 범죄가 560% 상승했고, 사생아가 400% 증가하고, 결손가정 아동이 3배가 늘고, 10대 자살은 200% 늘고, 대학입학시험 성적은 80%가 하락했다고 미국 전 교육부 장관 윌리엄 베넷이 책에 발표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면 인생은 자기를 버리고 사회를 버리고 국가를 버리고 내리막길 인생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국교회도 점점 형식화 되고 식어져 가고 있어서 큰 걱정입니다. 우리 한국이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복을 받은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정치를 잘했습니까? 경제를 잘 운영했습니까? 국민이 잘 단결해서 살아왔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늘 혼란과 혼돈속에 살았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 나라에 복을 주셔서 우리 국민의 25% 이상이 예수를 믿고 주님 안에 들어와서 1,200만의 성도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주님을 간절히 찾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나라에 오늘날처럼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요사이 우리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요한계시록 3장 15절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고 한 것은 우리 한국교회가 이제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고 미지근하게 되고 그렇게 열심있던 새벽기도나 철야기도나 모임이나 이런 것이 점점 약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어떠한 역경이 있어도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 이상 우리가 승리했습니다. 북한과 우리의 체제 경쟁을 보십시오.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와의 체제 경쟁에서 6?25사변난 후 1953년 이후에 오늘날까지 우리가 월등하게 공산주의 체제보다도 20배나 넘게 앞섰습니다. 우리는 체제를 통해서 볼때 이미 북한과의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북한은 져서 초조하고 어찌할바를 모르기 때문에 원자탄이라도 만들어서 자기 체제를 보호하려고 할 처지인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우리가 이런 체제 경쟁에서 이겼습니까? 북은 야웨를 경외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를 북한땅에서 몰아내어 쫓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의 자유가 있고 우리 국민 가운데 1,200만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섬기고 주를 찬미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초대 그 뜨거움을 잃지 않고 있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도 불광동이나 서대문, 여의도에 처음 나왔을때의 그 뜨거움은 말로 형용할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셀리더들의 뜨거운 열성과 헌신, 성도들의 뜨거운 기도는 가히 세계를 진동시켰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우리는 많이 식어졌다는 것을 사실 강단에 있는 저로부터 시작해서 고백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9절로 20절에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하여 열심을 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우리가 섰다고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조심하지 않고 오만이 행하다가는 넘어져서 박살이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숙성보다 수성이 어렵다. 성을 짓는 것 보다 성을 지키기가 어렵다. 사업도 사업을 시작하는 것보다도 사업을 이루어 놓은 것을 지키기가 더 힘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3대가는 부자가 없다고 합니다. 부자가 열심히 일을 해서 사업을 일으켜 부자가 되어도 그것을 3대로 지키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승리한 후에 이제 평화를 지키는 것에 더 고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라크하고 전쟁할 때 죽은 사람보다 전쟁에 이기고 난 다음 이라크를 평정하기 위해서 지키는데 오늘날 미국 병사가 더 많이 죽고 있는 것입니다. 유엔 사무소 자살 폭탄 테러로 23명이 죽었고 열흘만인 지난 29일 10년간 중동에서 발생한 최악의 초대형 차량 폭탄 테러로 미국의 이라크 통치에 적극 협력해온 이라크 시아파 최고 지도자중 한명을 포함한 95명이 사망하고 140명이 부상을 했습니다. 이보세요. 전쟁에 이기는 것보다도 이기고 난 다음에 평정을 지키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알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은 믿고 난 다음에 믿음을 지키는 것이 더 힘든 것입니다. 뜨겁게 시작했다가 나중에 물거품 같이 꺼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로마서 12장 11절로 12절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신앙을 뜨겁게 지키기 위해서는 성령님 하늘의 도움을 멀리하지 말아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도 도움을 바라면 도우미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아파트 당첨을 해도 아파트 도우미들이 도와 주지 않습니까? 우리 신앙의 도우미가 계십니다. 성령인 것입니다. 주님이 내가 너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내가 너희에게 오리라. 내가 성령을 보내겠다고 말했습니다.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끊임없이 구해야 우리의 마음이 식어지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했으므로 성령 보혜사는 여러분 예수 믿을때 시작한 성령께서 지금도 같이 계시고 천당갈때까지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4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우리가 늘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라고 되어있으니 연약하다고 탄식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도우심만 구하면 연약을 이길수가 있습니다. 기도 못한다구요. 성령이 도와 주십니다. 말씀 못읽는다구요. 성령이 도와 주십니다. 전도 못한다구요. 성령이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도우미가 있으니까 도움을 청하십시오. 말씀과 기도를 멀리하면 우리 신앙이 식어집니다.
마태복음 4장 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베드로전서 4장 7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유명한 디엘 무디 목사님은 거듭난 후에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살기로 서약했지만 늘 넘어지곤 했습니다. 이래서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산으로 들어가서 기도하고 부흥회도 쫓아다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받은 은혜가 한달을 못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나는 길가에 뿌려진 씨앗처럼 말씀의 씨가 자라지 못하는 마음밭인가 보다.”고 탄식했습니다. 무디는 탄식하며 자신을 혐오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펴본 말씀이 로마서 10장 16절로 17절 이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 말씀을 볼때 마음속에 깨달음이 왔습니다. ‘아~ 말씀이 믿음을 붙잡아 주는구나. 내 믿음이 흔들흔들 하는데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구나.’ 그래서 매일 새벽마다 성경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무디는 믿음이 강해져서 세계를 복음으로 흔드는 신앙의 거장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무디는 말하기를 “성경은 내게 필요할 때 침상이 되었고 어두울때 등불이 되었네. 일할 때 연장이 되었고 찬미할 때 악기가 되었네. 무지할 때 스승이 되었고 헛발을 디뎌 빠질때에 반석이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말씀이 우리를 붙잡아 줍니다. 매일같이 말씀을 읽어야 됩니다. 매일같이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넘어지고 쓰러지는 신자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이 뜨거운 신앙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헌신과 봉사를 멀리하지 말아야 됩니다.

베드로전서 4장 10절로 11절에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봉사해야 신앙이 살아 움직입니다. 봉사하지 아니하면 신앙이 식어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8절로 9절에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봉사하며 하나님을 늘 앙망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힘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에게 힘을 주지 일 안하는데 왜 힘을 줍니까? 성경에도 일하는 소에게 멍에를 씌우지 말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봉사하고 일할 때 하나님이 은혜를 늘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할때에 열심히 기도도 해야 되고, 그리고 열심히 일도 해야 됩니다. 어떤 나이 많은 어부가 젊은 어부에게 노를 맡겼습니다. 그 노를 맡아서 보니까 한쪽 노에는 ‘일하라’라고 써놓았고 다른 노에는 ‘기도하라’ 그렇게 써놓았습니다. 이 글귀를 본 젊은이가 “ 사람이 일만 열심하면 되지 뭐 일하면서 기도는 왜 합니까?” 그러자 할아버지는 “그러면 너는 노를 저을때 기도하라는 노는 젓지 말아라. 일하라는 노만 저어라.” 그래서 청년이 일하라는 노만 자꾸 젓는데 배가 뱅글뱅글 돌고 안나가는 겁니다.

“아~ 이것 뱅글뱅글 돌고 안 나가는데요.”
“거봐라. 일하라는 노도 젓고 기도하라는 노도 젓고 둘을 함께 저어야 앞으로 배가 나가지 않느냐! 그러므로 기도만 하고 앉아 있어도 안되고 일만 해도 안된다. 기도하고 일하고, 일하고 기도하면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 신앙도 한가지입니다. 우리가 일만 한다고 앞으로 발전 하나요? 반대로 나는 일 안하고 기도만 하겠다고 교회에 와서 엎드려 기도만 하면 됩니까? 우리는 일하면서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일할때에 앞으로 나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4.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음

넷째로, 바울선생이 말하기를 ‘이제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선한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 우리의 종말에는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끝까지 이긴 자에게 주는 면류관이 있습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면서 우리가 끊임없이 살아가면 종국에는 면류관을 받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 말한 것입니다.

황영조 선수가 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서 마라톤 42.195km를 달릴때 32km 지점에서 너무 힘이 들어 그냥 포기하려고 작정했습니다. 그가 하는말이 너무나 힘들어서 아주 달려오는 택시에 뛰어 들어가서 자살을 해보고 싶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뛴 이유는 금메달을 따서 어머니를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어서 그는 이를 깨물고 달린 결과에 금메달을 땄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포기하고 싶지만 고대하고 있는 어머니를 실망시킬 수가 없어서 그래서 끝까지 뛰어서 면류관을 땄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빅토르 프랑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나치 수용소에서 생활을 했었는데 그가 있는 수년 동안에 같이 들어간 사람들이 다 안개같이 사라졌습니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빅토르 프랑크씨는 끝까지 살아남아야 겠다, 잡혀 들어가기 직전에 결혼했기 때문에 어찌하든지 살아서 기다리고 있는 아내를 즐겁게 해줘야 되겠다는 투철한 결심이 그로 하여금 죽음의 벽을 넘게 하고, 결국에는 2차 대전이 끝날 때 살아서 나온 사람중에 한사람이 되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끝까지 참고 견디면 의의 면류관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절에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한 자에게 주는 면류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21절에 주인이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면서 끝까지 내가 올때까지 사업하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는 달란트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달란트가 많은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많고 적은 능력은 다르지만은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사람이 열 달란트 만들고, 두 달란트 사람은 네 달란트 만들었기 때문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받고 복을 받았지만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능력이 적다고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숨겨 놓았다가 나중에 그대로 오니까 저주를 받아 쫓겨 난 것을 우리가 알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을 하십시오. 옛날 우리 한국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노비제도가 있어서 한 부자가 많은 노비를 거느리고 크게 농사를 지었습니다. 큰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자기가 죽게 되니까 이제 내가 죽기전에 좋은 일이나 하고 가야 되겠다. 그래서 이달 섣달 그믐에는 “너희들에게 다 자유를 선포할테니까 이제는 노비생활하지 말고 다 자유롭게. 그날을 내가 너희들 앞에서 노비문서를 다 불태우고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노비들이 노비 문서를 태우고 자유를 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마구 주인님 좋다고 박수를 치지요. 그런데 섣달 그믐날에 주인이 말하기를 집한단을 주면서 “새끼를 가늘고 좋게 꼬아라. 밤새 새끼를 자 꼬아라. 너가 마지막 떠나기전에 나를 위해서 해줄 일이 이 일이다.” 그러니까 그 노비들 중에 한 부류는 “미쳤다. 영감! 미쳤어. 보내면 그냥 보내지 마지막날에 새끼를 꼬라니. 에라~ 빌어 먹을 것 아무렇게나 꼬아야지.” 그리고 새끼를 한줌 잡아 굵직하게 듬성듬성.... 그러나 그 중에 착한 노비들은 “아니야~ 끝까지 우리가 끝나기 전까지 주인을 잘 섬겨야지.” 더 열심히 정성을 해야지. 아주 곱게 곱게 밤새토록 가늘게 꼬았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노비들이 “저 병신들 내일 아침엔 자유가 되어서 떠날 것인데 네가 뭐 잘보이겠다고 그렇게 잘 꼬느냐?” 아침이 되니까 영감이 나와서 자기가 꼰 새끼를 다 들고 줄을 서라고 했습니다. 어떤 놈들은 굵은 새끼를 떡 들고서 다른 사람들은 약하고 가늘게 잘 꼰 새끼를 들고 있습니다. 그러자 영감님이 그를 데리고 광 앞에서 서니 광문을 확 열었습니다. 놀랐습니다. 광안에 엽전이 가득합니다. 엽전을 새끼에 다 꿰라. 굵은 새끼를 꼰 사람은 엽전이 들어가야 말을하지. 엽전 못 꼬았어. 그러나 약하게 꼰 사람 엽전을 가득 꼬았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나와라! 이제는 자유와 해방이다.” 집문서를 다 불태워 버렸습니다. 가늘게 꼰 사람들은 그게 엽전을 잔뜩 꾀어 가지고서 짊어지고 히히낙낙하고 가는데 굵은 새끼를 꼰 사람은 엽전 한푼도 못 꾀었기 때문에 빈손들고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십시오. 끝까지 충성을 다한 사람은 상급을 얻을수가 있지만 끝까지 충성을 다하지 않은 사람은 이 모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우리가 예수를 믿을때 끝까지 충성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 갈길을 다 달려가고 믿음을 끝까지 지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면류관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강림을 항상 사모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주시는 면류관입니다.

다니엘서 12장 3절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얼마나 놀랍습니까?

디모데후서 4장 7절로 8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다고 말한 것입니다. 의의 면류관. 우리가 다 의의 면류관을 써야 될것입니다.
여러분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도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3절로 4절에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또 생명의 면류관도 있어요.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야고보서 1장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요한계시록 4장 4절에는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여러분 우리는 의의 면류관,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 금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하나님께 면류관을 받고 하늘의 해와같이 별과같이 빛난 우리의 삶을 살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다 바울 사도처럼 영적 선한 싸움을 지치지 말고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시작한 믿음의 경주를 인내로써 달리며 낙오하지 말고 주님이 단번에 주신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힘써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유다서 1장 3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 서는 그날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일평생을 아프리카에서 고난을 당하며 선교한 선교사 부부가 배를 타고 뉴욕 항구에 도착하는데 뉴욕항구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모이고 큰 악기들이 팡파레를 울리고 야단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노 부부에게는 아무 관심도 없고 그 배를 같이 타고온 린도 버거라는 비행사를 위해서 그렇게 야단들이었습니다. 린도 버거는 처음으로 단발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서 불란서에 도착한 사람인데 그렇기 때문에 그를 환영하기 위해서 뉴욕시민이 다 출동을 하고 나팔을 불고 야단법석이었습니다. 선교사 부부가 내려 보니까 자기를 맞으러 온 아무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3등 여관에 들어가서 짐을 풀어 놓고 일생에 선교 사역을 하다가 지친 그 몸을 가지고서 침대에 걸터 엎드려서 통곡을 하고 울었습니다. ‘하나님! 린도 버거라는 젊은 사람은 비행기 운전해서 대서양 건너갔다고 저렇게 팡파레를 울리고 환영을 하는데 우리는 평생을 아프리카에서 선교하고 고향땅에 돌아왔는데 아무도 마중하는 사람이 없고 이렇게 쓸쓸할 수가 있습니까?’ 하면서 우니까 성령이 말씀했습니다. ‘ 린도 버거는 고향에 돌아왔지만 너희들은 아직 고향에 안돌아 오지 않았느냐? 너희는 아직 객지에 있지 않느냐? 이땅에 고향이 어디 있느냐? 너희 영원한 고향은 천국 아니냐? 너희도 고향에 돌아오는 그 날에는 천군, 천사들이 와서 나팔을 불고 팡파레를 울리고 하나님의 환영의 퍼레이드가 있을 것이다. 그날까지 참고 견뎌라!’ 우리도 고향에 돌아갈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서 이미 환영 아치를 세워 놓고 천사들을 동원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고 믿음을 지키십시오. 의의 면류관이 여러분을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이땅에 살면서 끊임없는 싸움에 지칠때가 많습니다.
선한 싸움을 안싸우는 날이 하루도 없습니다.
지치고 피곤하지만은 달려갈 길을 달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금보다 귀한 믿음을 지켜야만 하옵니다.
우리 아버지여,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낙오자 없고
낙심하고 뒤로 물러가는 자 없게 하여 주시옵시고
은총과 사랑과 축복으로 붙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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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9 디도서 늙어서 할일 딛2:2-4  한태완 목사  2007-11-07 2356
698 디모데후 좋은 군사. 딛2:3-8  한태완 목사  2008-03-01 2386
697 디모데후 성경의 힘 딤후3:15-17  강종수 목사  2008-02-26 2046
696 디모데후 큰그릇 딤후2:20-21  한태완 목사  2007-12-27 3043
695 디모데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딤후3:14-17  한태완 목사  2007-11-23 2812
694 디모데후 성경이라는 책 딤후3:14-17  한태완 목사  2007-11-07 2376
693 디모데후 말세의 정신 file 딤후4:3-5  강종수 목사  2007-02-11 1950
692 디모데후 속지 마라 file 딤후3:12-15  강종수 목사  2006-11-05 1768
691 디모데전 남자의 뇌구조 분석3 딤전3:11  전병욱 목사  2008-04-11 3060
690 디모데전 경건한 생활 딤전4:7-8  한태완 목사  2008-02-21 2571
689 디모데전 양심 마비증 딤전4:1-2  한태완 목사  2007-11-07 2368
688 데살로후 평강의 주께서 친히 살후3:16-18  서인선 교수  2008-01-31 2507
687 데살로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살후3:1-15  서인선 교수  2008-01-31 2068
686 데살로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살후2:1-17  서인선 교수  2008-01-31 2035
685 데살로후 교회에 편지하노니 살후1:1-12  서인선 교수  2008-01-31 1762
684 데살로후 기이히 여김을받으리라 살후1:1-12  우남식 목사  2008-01-31 1973
683 데살로전 평범 속에서 감사하라 살전5:16-18  조용기 목사  2008-11-25 1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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