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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중보자 되심

히브리서 김남준 목사............... 조회 수 1881 추천 수 0 2008.02.10 23: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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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히7:25 
설교자 : 김남준 목사 
참고 : 2008-01-27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7:25)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로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중보자로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주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몸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려 영원한 제사장이 되셨으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가는 자를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I. 율법을 성취하신 예수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에서 창조목적을 떠나 죄 가운데 살며, 다시 돌아갈 길을 알지 못하는 인간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율법을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율법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인간을 그 창조의 목적대로 살게 하시기 위해 정하신 삶의 규칙입니다. 이 규칙은 모세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지만, 그러나 이미 그 전에 하나님은 이미 이러한 법칙을 세워놓으시고 그것을 인간의 마음에도 기록해 두셨습니다. 즉, 우리 몸밖에 새겨진 글씨가 없어도 우리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 때 행복하고 평안하고 기쁨을 누리도록 주님이 우리 안에 율법을 새겨놓으시고, 또 그 법칙을 어기면서 살 때에는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고통을 경험하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자 인간은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율법을 제대로 읽을 수 없게 되었고, 하나님과 같아지고자 하는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욕망은 인간을 점점 더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며 살아가는 존재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율법을 어긴 것은 죄며, 이 죄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정면적인 도전이고 무시이며 하나님을 향한 공격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율법을 어긴 죄는 그 크기가 아무리 사소하다 할지라도 그 율법을 어긴 행위가 가진 의미(하나님을 향한 적대감) 때문에 그 죄의 대가는 죽음이라는 형벌이 내려져야 했습니다.

A. 하나님 사랑이 동기

모든 인간은 이 율법에 따르자면 죄를 짓고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떠났기 때문에 멸망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없는 창조세계는 하나님에게 너무 의미 없는 것이기 때문에 율법을 어기고 죽어야 할 비참한 인간들을 위해서 자기의 아들을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보내기로 작정하셨습니다.인간이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은 결코 인간의 죄 때문에 맨 처음 이 세상을 창조하셨던 목적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아들을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내려 보내셔서 보이는 시간과 공간의 세계 속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자비와 은총을 찬란하게 비추심으로, 오히려 죄가 들어오지 않았으면 알 수 없었던 하나님 자신의 충만한 영광을 죄인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는 인간을 심판하고 멸망시키고자하지만 예수님은 그 아버지를 말리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당신의 온 몸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당신 자신의 사랑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볼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내려오시므로 그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주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망가뜨렸지만 하나님께서 여전히 인간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처음 인간을 창조하실 때 가지고 계셨던 그 아름다운 목적, 즉 삼위 하나님이 이 세상의 인간들과 상호교통하시고 하나님의 생각과 능력을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이 모든 세계를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다스려 자신도 행복하고 모든 피조물들도 복되게 하기 위하여 자기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내려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인간들의 죄를 위해 율법을 따라 범죄 한 인간들을 위해 율법의 요구대로 인간들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을 당하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자신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인간은 자기 출신의 근본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그가 무엇을 하든지 그는 한 줌의 흙처럼 짐승처럼 이 세상에 살다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B. 공의와 사랑을 만족시키심

흔히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입 맞춘 곳이라고 말합니다.
공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존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 공격하고 악을 행하는 인간들을 그 죄의 크기에 따라 갚으시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이 공의는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지키도록 만들어주어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위엄을 보고 인간의 도리를 깨닫게 해 준다는 점에서 공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이 결코 이기적인 목적으로 공의를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의 신앙을 보고 생겨납니다. 하나님 앞에 낮아지고 겸손해지는 인간 옆에서 교만한 인간들은 자신의 삶의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불순종하고 죄를 짓는 모든 인간들을 그냥 내버려 두신다면 이 땅에 누가 하나님을 공경하며 두려워하며 살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누구보다도 인간을 사랑하시지만 그 인간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짓자마자 영혼의 죽음이 들어왔고 인간의 육체는 짧은 시간 이 세상에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공의는 나타났습니다. 모세에 의해 율법이 들어오기 전에도 죄를 지은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속에서 육체의 수를 누린 후에 모두 죽어갔고 불멸하도록 창조된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채 죽어가는 인간의 삶을 향하여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공의는 단지 우리를 위협하기 위한 공의가 아니라 실제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에도 적용됩니다. 우리가 범죄하고 하나님께 불순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아직 죽이시거나 심판하시는 것은 아니지 우리의 마음속에 고통이 시작됩니다. 기도의 문이 막히고, 가슴에 깊이 꽂히던 하나님 말씀의 빛이 차단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깨뜨려지기 시작합니다. 사랑해야 될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공의가 우리 속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이 우리를 구원했어도 오히려 그것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온 몸과 살을 찢겨 처참하게 죽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면서 여러분들은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두려워서 떨어본 사람들만이 그리스도 십자가 앞에서 참으로 눈물을 흘릴 수 있습니다. 피로 물든 그리스도 십자가 앞에서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 얼마나 공정하게 심판하시는지 알고 치를 떨며 두려워한 사람만이 그 십자가가 어떻게 사랑의 십자가가 되는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공의로운 분이시지만 본질적으로는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인간을 향해 깊은 사랑을 가지시길 원하셨습니다. 그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신 아들, 예수를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보내시고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해 죽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죽을 수 없는 하나님이 죽을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이며, 존귀하신 그분이 멸시를 당해야 마땅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사랑을 시간과 공간속에 보여주시기 위해 늙음과 배고픔, 추위와 굶주림에 복종하는 지극히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입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인간의 본분은 사람의 몸을 입고 내려오신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분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탁월한 사랑 앞에서 자신이 이런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첫째가는 본분입니다.


II. 구원의 근거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구원의 근거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종교를 왜 그리스도교라고 부르는지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모든 세계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우리 인간도 그리스도를 통해 이 세상에 지은 바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창조세계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신성을 보면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이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죄가 들어옴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가꾸고 돌보아야 할 인간은 하나님께 정면 도전하고 주님의 거룩하심에 대해 공격을 하는 아주 불역 배도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잘 알지도 못하지만 혹 그것을 깨달았다 할지라도 그 길을 따라 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이 모든 세계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하였으니 그리스도를 통해 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작정하시며 자기 아들을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내려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시고 하나님 앞에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께 와서 자기의 죄를 자각하고 자기가 하나님을 떠나 행한 모든 불순종과 죄악이 얼마나 큰 죄악이었는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그 공의와 위엄 앞에 두려워 떠는 모든 사람,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돌아갈 길을 여신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에 앞에서 가슴 저미는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깨닫는 모든 사람,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의 근거로 삼으셨습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누군가가 쓰레기 같은 삶을 산 당신이 어떻게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III. 구원의 사역

그리스도의 중보자 되심은 그리스도의 죽음처럼 한번 하시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생각하게 됩니다.

A. 구원하신 중보자직

중보자이신 그분이 하신 이 섬김은 영원한 것입니다. 이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천하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해 지은바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이미 이 모든 세계를 향해 중보자이셨으며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찬송하게 되어 있습니다. 더욱 이런 영원한 중보자직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쓰레기 같은 죄인들을 위하여 대신 죽으신 이 고난을 통하여 더욱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고 죽으신 후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거기서도 그리스도의 중보자직은 계속 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는 선하고 완전하며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하나님의 본질과 맞닿을 수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계를 창조하게 하셨고 그 후에는 성령을 통하여 성령 안에서 이 모든 세계의 만물들이 상호교통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좋은 것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옵니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섬김은 우리들이 드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아버지께 바치는 섬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간절하고 마음이 녹는 자기 깨어짐의 기도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 이르기에는 불결하여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우리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순수하기 짝이 없는 사랑도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기에는 너무나 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그 사랑을 당신의 중보자직 안에서 중보하여 하나님 앞에 드림으로 말미암아 그 사랑은 그리스도의 중보를 덧입어 순결하고 깨끗한 지순의 사랑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영원한 중보자가 되시므로 그분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만큼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가 왜 그렇게 기도에 약한지 아십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그리스도가 그 사람의 마음에 많이 있으면 기도가 되고 그리스도가 사라지면 다른 모든 것이 있어도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마음에 많이 있으면 왜 그렇게 기도하게 됩니까? 중보자 되신 그리스도를 보면서 그분께 대한 깊은 의존을 느끼게 됩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오고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께 돌아가기 때문에 사실 우리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선악 간에 우리의 모든 것을 그분께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기도가 잘 때는 주님을 의존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젖어 있을 때입니다.

B. 중보자로서 간구하심

본문은 그런 분이 항상 살아서 우리를 향해 하시는 일이 또 하나 있는데 간구하시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간구한다고 하는 것은 간구함을 받는 이보다는 낮은 자리입니다. 하늘의 영광을 한 몸에 받으시고 보좌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이고 만주의 주이시지만 우리 인간의 구원받지 못한 처지를 생각하실 때에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다시 낮아지시는 분이 됩니다. 그 아버지 앞에 탄원하며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비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으면서도 그 사랑보다 더 좋은 것을 찾아서 그 사랑을 등질 때 여러분 혼자 주님을 등지는 것 같지만, 하늘 보좌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당신의 사랑을 등지고 아버지의 품을 떠나는 우리들의 뒷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빌 수 없을 때 그분이 간절히 우리를 위해 비십니다. 그리스도를 대신해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은 그러한 우리를 보시며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 가까이 가기에는 너무나 큰 죄가 있다고 믿을 때, 내가 너무나 많이 미끄러져서 내 힘으로는 아버지께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될 그때가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더 많이 기도하시고 계신 때입니다.

IV. 결 어

이 세상의 사람들의 사랑은 모두 한 송이 꽃과 같습니다. 만나서 한번 꽃 봉우리가 맺히는 때가 있는가 하면 활짝 피는 때도 있지만 세월이 지나면 그 사랑은 시듭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의 사랑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렇게 시드는 사랑이 아닙니다.
언제까지 그분 홀로 하늘 보좌에서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하도록 버려두시겠습니까? 왜 오늘은 안 됩니까? 왜 또 내일, 다음 주에 하려 합니까? 이제껏 우리를 강하게 얽매이던 모진 세상 사랑의 줄과 자기 사랑의 삶의 줄, 그리스도를 하찮게 여기고 자신을 그 자리에 두려고 하는 이 교만의 줄, 왜 오늘은 이것을 끊을 수가 없습니까?
우리에게 간절함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하려는 절실함,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서 보여주신 그 사랑과 은혜 앞에 그분의 십자가를 붙든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아들을 보내서 보여주신 이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지 말고 이 사랑으로 돌아오고 이 사랑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2008-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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