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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징계

히브리서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269 추천 수 0 2008.05.30 19:23:35
.........
성경본문 : 히12:5-3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순복음중앙교회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엄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징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신세대 부모의 가장 큰 문제는 자녀를 너무 과보호하여 기른다는 것입니다. 자녀의 잘못된 응석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끝없이 받아주고 잘못된 행실조차 기를 죽이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꾸짖지를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란 자녀가 나중에 커서 사회에 나가서 생존경쟁에 올바르게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릴 때 엄하게 징계하여 길러주신 부모님을 훗날에 존경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학교에서도 무섭게 공부시켜 주신 선생님을 후에는 존경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에도 눈물이 나게 혹독하도록 징계해주신 하나님을 후일에 깊이 감사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에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느 정도 연륜이 있는 성도이면 돌이켜 보면 몇 번이고 하나님께 매를 맞은 체험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당신의 받으시는 자녀를 징계하실까요?

<본론>
1. 징계하시는 이유

첫째로, 징계하시는 이유를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기대가 크시기 때문에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부모는 자식에 대하여 기대와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는 못되어도 자식은 자기보다 훨씬 잘되기를 원하는 것이 부모의 소원인 것입니다. 그 기대와 꿈을 이루기 위하여 부모는 자식을 편달합니다. 도와주기도 하고 꾸짖기도 하고 매를 때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식이 잘되기를 원하는 부모의 소원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잠13:24에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신8:5~6에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찌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왜 하나님은 무능한 우리를 하나님처럼 닮으라고 하시는가!‘ 생각해 보아도 도저히 우리는 하나님처럼 닮을 수가 없는데 왜 무리하게 하나님이 우리로 그렇게 되기를 원하시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는 자녀가 가장 훌륭하게 되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그렇게 될 수 없을지라도 부모의 기대는 자녀가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자기가 못된 대통령 되기를 원하고 자기가 못된 판검사 되기를 원하고 자기가 못된 훌륭한 사업가가 되기를 원합니다.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자녀이기 때문에 최고의 인물이 되기를 원하는 부모의 바램이 있으므로 부모는 자녀를 징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까지 자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까지 자랄 수 없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기대는 우리 같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까지 자라기를 원하는 것이 자녀에 대한 소망인 것입니다. 그 때문에 독려하시고 편달하시고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엡4:13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고 말했습니다.
마5:48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벧전1:16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온전한 것 같이 우리도 그처럼 온전하고 아버지가 거룩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거룩하라. 얼마나 높고 고상한 목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아니면 절대로 우리에게 이런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친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최고, 최선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편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징계하실 때 언제나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의 양심에 부드럽게 타이르는 것입니다. ‘네가 이것 잘못했다. 너는 더 열심을 내어 말씀을 공부해라. 더 열심히 성경을 읽으라. 더 열심히 기도하라. 혹은 더 열심히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라.’양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수차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언제나 하나님께 듣고 있습니다. 내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내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조건하고 처음부터 채찍을 들지 않습니다. 양심에 거듭거듭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양심에 권고를 우리가 무시하면 그 다음에 하나님은 꾸짖으십니다. 양심에 가책과 말씀을 통하여 혹은 환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통렬히 그때는 꾸짖으셨습니다. “너 이럴수 있느냐! 이길로 가면 안된다.”그러나 우리가 거기에 귀를 막아 버리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채찍을 때리십니다. 하나님이 채찍을 때릴 때는 희망을 잃을 정도로 때리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냥 살짝 채찍을 때리는 것은 아닙니다. 좌절하고 절망하여 희망을 잃을 정도로 가혹하게 하나님이 때리시는 것입니다. 요나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처음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니느웨에 가서 니느웨 백성들에게 나의 경고를 전하라”고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권고하심을 버리고 그는 다시스로 갈려고 욥바에 내려가서 배를 탔는데 양심에 고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혹한 경고를 마음속에 내려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나가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두려워서 배 밑창으로 내려가서 그를 막아 버리고 잠이 들었습니다. 양심에 가혹한 꾸짖음과 가책을 그는 외면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등을 돌렸습니다. 그러자 풍랑이 다가왔습니다. 인정사정 보지 않는 가혹한 풍랑이 다가왔고 그 결과로 요나는 물에 던져졌고 물고기 배속에 들어가서 3일 주야를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채찍을 때릴 때는 가혹하게 때리는 것입니다.
욥5:17에 “볼찌어다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찌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징계하실까요?

2. 징계의 목적

둘째로, 징계의 목적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는 것은 회계시켜 세속에서 하나님께로 나오게 하려고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하시는 그 이상적인 삶을 버리고 점점점점 삐뚫게 나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권고하시고 양심에 가책을 주시고 그 다음에는 안 되면 하나님께서 가혹하게 때리는데 하나님이 자기의 자식이기 때문에 세상으로 흘러가서 멸망하지 않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길거리 걸어가다가 흙탕물에 양복을 입고 들어앉아서 장난을 치는데 그가 남의 자식이면 우리가 ‘쯧쯧쯧 참 자식 잘못 길렀다.’ 그렇게 말하고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내 자식이면 우리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좋은 옷을 입혀서 내보내는데 흙탕물에 앉아서 온몸이 흙탕물 투성이가 되면 내 자식이면 가만둡니까? 절대로 두지 않습니다. 그대로 끌고 나가서 혹독하게 꾸짖고 혹은 채찍을 때리고 그 흙탕 옷을 벗기고 목욕을 시키고 새롭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징계하는 것은 회계시켜 세속에서 하나님께로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욜 2:12에 “야훼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 쉬운 일이 아닙니다. 멀리 멀리 떠난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오기 위해서는 굉장한 회개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요계3:19~20절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는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열심을 내고 회개하도록 하나님이 때린 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의 생애 속에서 밀쳐 냄을 받았으나 다시 그 사람 속에 들어와서 하나님이 주인과 임금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탕자의 비유를 보십시오. 탕자가 자기의 욕심대로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아버지가 없는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그 결과 징계가 내려왔지요. 그 나라에 큰 흉년이 와서 있는 것 다 소모해 버리고 그는 들판으로 가서 돼지를 치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돼지 쥐엄열매를 먹고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 고통 속에서 그는 인격도 건강도 돈도 다 상실했습니다. 가장 캄캄한 좌절과 절망 속에서 주저앉았을 때 그는 생각했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품꾼들도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많은데 나는 이곳에서 주려 죽는구나. 이제 내가 돌이켜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그 젊은이에게 항상 기근이 다가오지 않고 항상 좋기만 하고 아름답기만 했으면 절대로 아버지께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떠난 그 길로 점점 멀리 세상으로 나가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기근이 다가오고 돼지하고 같이 살게 되고 그 심신이 병들고 비참하게 되니까 그는 그때야 깨닫고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오기로 결심하고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여러분! 하나님을 떠나고 난 다음 하나님 징계가 오지 아니하면 버림받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식이 아닌 사람은 멀리멀리 떠나도록 내버려 놓습니다. 이런들 어쩌 하면 저런들 어떠하리. 내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녀로 택한 사람은 절대로 주님께서 내버려 놓지 않습니다. 그대로 가면 지옥까지 떨어지고 말 것이니까 하나님께서 앞을 막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징계인 것입니다. 권고하시고 꾸짖으시고 그 다음에는 혹독하게 하나님께서 매를 때리시는 것입니다. 징계를 통하여 하나님은 아집과 고집을 깨뜨려 순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계란을 깨뜨리는 데는 별로 힘들지 않습니다. 손으로 꽉 쥐어도 계란을 깨어지지요. 사람이 아직까지도 완악하게 되지 않고 부드러운 마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징계의 채찍을 약하게 때려도 ‘아이쿠 하나님! 나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쉽게 돌아옵니다. 대게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고 하면서도 마음은 원하는데 육신이 약하여 세상으로 나가다가 하나님이 딱 한 대 때리면 부리나케 돌아옵니다. 대게 여러분은 다 약간만 때려도 돌아오는 계란들입니다. 손만 대면 바싹 깨어집니다. 그러나 문제는 점점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하여 살다가 호도가 되어 버리면 문제가 다릅니다. 호두는 여러분 살짝 쥐어서 깨지지 않아요. 호두는 망치로 때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호두를 손으로 깨어본 사람 있어요? 호두는 입으로도 안 깨집니다. 망치로 때러야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그 마음이 완악해 지고 양심이 굳어진 사람은 권고해도 꾸짖어도 듣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망치로 때리는 것입니다. 아파요. 깨어지는 것이 여러분 쉽지 않습니다. 굉장히 아픕니다. 징계란 것은 눈물, 콧물 흘리게 만들고 금식하고 통곡하며 부르짖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야 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 거룩한 사람, 신령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껍질이 벗겨지고 육신의 껍질이 깨어질 때 비로소 사람은 속사람이 사는 것입니다. 겉에 세상과 육신의 사람이 둘러 진처 있으면 속사람은 완전히 숨도 못 쉬고 완전히 살았다가 죽은 형태가 되는 것입니다. 속사람이 목이 졸려 죽으려고 하고 이제는 기도도 못하고 말씀도 읽을 기회를 안주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도 못하도록 세상과 육체가 내리 쪼일 때 그때 하나님이 망치를 들어서 세상과 육의 사람을 내려쳐서 박살을 내어 버리면 속사람이 “아이고 이젠 나 살았다. 이젠 내가 숨쉴 수 있다. 이젠 기도할 수 있고 말씀 읽을 수 있고 교회에 나갈 수 있다.” 양심과 속사람이 살아나서 기지개를 키고 일어날 수가 있는 것 입니다.
엡4:23~24에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을 입고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사람이 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 그 사람이 여러분 야들야들 할 때는 쉽게 깨어지지만 호도처럼 굳어졌을 때는 잘 깨어지지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망치로 때리는 것입니다.

3. 징계 받을 때

그러면 우리가 징계 받을 때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됩니까?
여러분 하나님께 징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채찍을 맞는다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징계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채찍으로 때릴 때 가볍게 생각하고 하나님께 오히려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반항하고 불평합니다. “하나님 내가 뭘 잘못했어요. 왜 때려요. 왜 때려.” 자식을 징계할 때 자식이 부모에게 대들 때 그때 참 기가 막힙니다. “너 잘못했지 않느냐? 왜 아침 해가 돋도록 늦잠을 자고 공부하지 않느냐? 왜 방탕 하느냐? 왜 나쁜 친구 사귀냐?” 부모가 징계할 때 “왜 때려요. 왜 욕해요. 왜 괴롭혀요.” 달라 들면 이야말로 부모는 분기충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징계를 가볍게 생각하고 하나님께 반항하고 불평하면 그때로부터 모진 매를 맞습니다. 모진 매를 맞아요. 하나님께서 여러분 정상참작을 안 하게 되면 그때는 어마어마하게 맞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징계 받을 때 그 징계를 가볍게 생각하고 우습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채찍을 들었을 때는 이미 하나님은 각오하고 드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징계를 두려워하며 떨며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징계가 내리거든 당장 두려워하고 떨며 회개해야 됩니다. 자식들을 징계해보면 어떤 자식은 반항하고 회개하지 않고 입을 딱 다물고 부모가 때려도 꼼작 안하고 있으면 많이 맞아요. 그러나 부모가 채찍을 들면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아유, 잘못했어요. 잘못 했어요~” 그러면 채찍을 들었다가도 불쌍한 마음이 생깁니다. 회개하는 자식을 보면 부모는 불쌍한 마음이 생겨서 때리더라도 약간 때리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 네가 이렇게 하면 진짜로 혼날 줄 알아라.” 그러고 말죠. 하나님이 징계의 채찍을 들거든 여러분 두려워하고 떨며 회개해야 됩니다. 이것이 공경하는 태도인 것입니다. 변명이나 자기 타당화를 하면 버림받습니다. 사울 왕이 왜 버림받았습니까? 사무엘이 와서 사울 왕을 꾸짖었습니다. “왜 왕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았나이까? 왜 아말렉의 왕을 살리려고 양떼와 소떼를 거느리고 왔습니까?” 그러거든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내가 그만 마음에 탐욕이 생겨서 눈이 어두워서 그랬습니다.”라고 하면 좋았는데 자기 타당화를 했습니다. “아~ 아말렉을 진멸하고 아각 왕을 살려온 것은 전리품으로 데려온 것이고 그리고 여기에 소나 양을 가져온 것은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하자고 해서 살찐 짐승들을 살려왔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왕이여, 하나님께서 양이나 수양의 기름으로 제사 드리는 것을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즐겨 하신 줄 아나이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는 사술의 죄와 같고 우상사신에 절하는 것과 같습니다.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하나님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않게 하였나이다.” 사울은 하나님의 징계를 거볍게 여겼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변명하고 타당화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진노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왕인 다윗은 사울보다 더 큰 죄를 지었어요.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고 우리아를 일선에 보내서 죽였습니다. 그는 살인죄에다가 간음죄를 지었습니다. 선지자 나단이 와서 다윗에게 꾸짖을 때 다윗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보좌에서 내려와서 무릎을 꿇고 “내가 범죄 하였나이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시51편에도 보면 다윗은 눈물을 흘리며 자기의 잘못을 시를 지어서 온 천하에 공개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나단을 통해서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도 왕의 죄를 용서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두려워하고 떨며 회개하면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러나 가볍게 생각하고 반항하고 불평하고 거역하면 혹독하게 매를 맞고 그래도 돌이키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버리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여러분 회개하고 난 다음 지은 시51:11~12 보세요.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는 간절히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했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징계를 받을 때 우리는 돌이켜 복종해야 됩니다.
시 119:71에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당하고 징계 받은 것이 내게 유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전에는 불순종했는데 이제는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었다고 시편기자는 말했습니다.

우리 영등포대교구 이용구 안수집사님의 간증을 제가 읽어 보았습니다.
그는 고난을 통하여 복종하는 신앙가족이 된 것을 간증하였습니다. 평소 치매로 고생하시던 어머니가 중풍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온 식구가 매달리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마주 오는 차와 정면충돌을 했습니다. 그래서 차가 휴지조각처럼 구겨졌고 현장에서 정신을 잃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에 응급실에 실려와 있습니다. 자기는 생각하기를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사고를 당하고 보니 하나님에게 제일 먼저 표현되는 것이 원망입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하십니까? 어머니는 치매에 걸려있어 온가족이 매달려서 돌봐야 되는데 내 나름대로 잘 믿으려고 했는데 왜 내게 이러한 혹독한 시련이 다가옵니까?” 그래서 자기 스스로 생각하기를 불쌍한 생각이 나고 자기연민에 빠져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아무 불평도 하지 않고 어머니 열심히 수발하고 집사님 돌보고 아이들 돌보고 새벽기도까지 하고 또 교구의 기도처 이전을 위하여 그 어려운 형편인데 남편이 와서 우리 기도처를 위해서 헌금도 하고 기도처 위해서 헌신하자고 부탁을 해서 그는 작정도 했습니다. 아내의 간절한 기도 덕분에 치료가 빨라 2주 만에 퇴원했습니다. 그러나 평소 위궤양이 심했는데 교통사고 충격으로 위가 4센티미터 찢어졌어요. 그래서 이것을 꼬매고 6개월 동안 치료해야만 병원에서는 나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재입원하라고 하는데 마침 또 어머님이 세상을 떴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할 여가 없이 어머니 장례를 지내고 그 다음에는 병원에 가지 않고 최자실 금식기도원에 올라가서 주님께 간절히 회개하고 부르짖어 기도했는데 낫는다는 확신이 왔습니다. 그래서 기쁨으로 내려와서 병원에 와서 진찰을 해보니까 의사선생님이 입을 딱 벌리고 말을 못해요. 왜냐하면 위가 4센티나 찢어졌고 위는 위궤양으로 찬물도 못 마실 정도가 되었는데 궤양도 온데간데없고 4센티미터 찢어진 것도 자연적으로 봉합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 체험 이후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이 너무 뚜렷해져서 우리 안수집사님의 부부나 온가족이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하고 은혜가 충만하고 전에 순종하는 것보다 몇 배로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 일에 열심하게 되었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그처럼 하나님 살아계신 것을 알 수 없었고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섬기지 않았는데 고난이 결국 가져온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신 체험과 치료와 하나님께 대한 뜨거운 사랑과 충성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고난을 이겨 나가면 항상 그 고난과 동등 혹은 그 이상의 축복이 반드시 다가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징계의 벌을 달게 받고 우리가 인내해야 돼요. 징계가 오면 달게 받아야 돼요. 그것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쓰디쓴 마음에 독을 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잠3:11~12에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징계를 싫어하면 안돼요. 징계가 오면 싫다고 몸부림을 치지 말고 사랑하는 아버지가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한다고 그랬습니다. 기뻐하지 않는 아들을 징계하지 않아요.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하는 것이란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징계하는 것이니 싫어하지 말고 징계를 즐겁게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징계 받을 때 해야 될 일이 있어요.
성경은 히12:12에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라고 했습니다.
피곤한 손을 일으켜 세우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손을 가지고 뭐합니까? 손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징계받기 전에는 봉사를 안했어요. 이 손가지고서 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을 따라서 살고 세상을 위해서 이 손가지고 살았는데 징계 받고 난 다음 이 손을 가지고 하나님 봉사에 힘을 쓰라는 것입니다. 피곤한 손을 일으켜 세우라. 여러분 하나님의 사업에 피곤해져서 하나님을 봉사하는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을 징계를 받고 난 이후로는 이 손을 가지고서 하나님 사업에 열심히 해라. 셀 리더로 열심히 하고 교회 출석도 열심히 하고 교회 와서 봉사도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봉사의 손을 굳건하게 세우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벧전4:10에“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우리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은사를 받고 있어요. 자기가 은사를 파묻어 놓아 버렸어요. 한 달란트 받은 사람 파묻어 놓지 않았습니까? 은사는 다 하나님 앞에 받아서 하나님을 봉사하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혹은 전도하고 혹은 위로하고 혹은 불쌍한 사람 찾아서 격려하고 구제하고 온갖 은사가 다 주어져 있어요. 자기 은사를 다시 발견해서 그 은사를 따라서 봉사를 하는 이러한 삶으로 돌아와야 징계의 효과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라고 했는데 연약한 무릎은 뭡니까? 무릎이 연약하다는 것은 기도를 안 한다는 것입니다. 징계받기 전에는 온갖 변명을 하고 기도를 안 해요. 아침에 너무 피곤해서, 저녁에 너무 늦게 돌아와서, 사업한다고 너무 바뻐서. 무릎이 연약해요. 온갖 변명을 다하고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그런데 징계를 받으면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라는 것은 확실한 기도생활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징계를 받고도 기도생활을 회복하지 아니하면 아직까지도 징계의 효과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징계 받으면 기도하게 돼요. 고통이 다가오면 새벽기도도 하게 되고 철야도 하게 되고 금식기도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확실하게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워야 돼요.
대하7:14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고 말한 것입니다.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국민일보와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공동으로 미국에 테러사건이 난지 한 달을 기해서 전국 그리스도인 대상으로 갤럽조사를 해본 결과 미국의 테러사건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요 이를 계기로 가족의 소중함을 돌아보고 신앙생활을 반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압도적인 성도들의 의견이 나타났습니다. 미국의 뉴욕 세계 무역센터 테러사건은 하나님의 경고라고 대답한 것이 47.8%. 하나님이 미국에 징계를 하셨다. 미국이 세상과 마귀를 쫓아 나가고 청교도적인 신앙을 버렸기 때문에 돌아오라고 하나님이 때리신 것이다. 47.8%의 성도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삶과 죽음을 한번쯤 생각하게 되었다는 성도가 46.4%.‘야~ 죽는구나! 항상 사는 줄만 생각했는데 갑작스레 죽음도 오는구나!’자기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는 사람들이 46.4% 구원관이 확고해졌다는 응답이 32.8%, 확실히 내가 예수를 믿고 있느냐. 어느 순간에 죽어도 천당 가겠느냐. 그것을 다시 확인해 보는 과정이 되었다는 것이 32.8%입니다. 교회 출석에 대한 태도에 변화가 있었는가 물어보니까 신앙에 훨씬 더 열심을 갖게 되었다는 사람들이 36.4%이고, 예배에 꼭 참석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23%로써 응답자의 60%가 신앙에 더 충실해야 되겠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이 뉴욕의 참사를 보고 개인적인 기도시간이 늘어나고 뜨거워졌다는 사람이 10.2%이고 약간 늘어났다는 사람이 42.8%, 이번 사건으로 가족과 교인들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다는 응답은 78.2%, 가족이 이렇게 소중하고 성도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이러한 일을 당하면 제일먼저 누구에게 전화 하겠느냐 하니까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부부간에 전화하겠다는 사람이 82.2%입니다. 부모에게 전화하겠다는 말은 없어요. 자식 키워봤자 맨 헛것입니다. 부부에게 전화하겠다는 것이 82.2%이고 그럼 유언을 할 때 뭘 하겠느냐? 하니까 부부간에 “나는 당신을 사랑했다. 그것이 55.6%이고 나가고 난 다음에도 신앙생활 잘해라.” 그렇게 말할 것이라는 사람이 33.2%로써 사랑이 얼마나 귀중하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이러한 큰 충격을 받게 되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분 충격을 받게 되면 히12:13 말씀대로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고 한 것입니다. 저는 다리는 천국의 절름발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왜 접니까? 세상에 한 다리 주고 하늘나라에 한 다리 주고 세상으로 갔다가 하늘나라 갔다가 절룩절룩~ 절름발이 신앙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징계를 받았으면 이제 저는 다리를 바로 세워라. 세상에 한다리 얹고 천당에 한다리 두고 절름거리지 말고 완전히 세상 중심의 삶에서 천국중심의 삶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요일2:15~16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세상 중심으로 세상을 사랑하고 살지 마라. 세상은 우리가 버릴 수 없이 세상에서 우리 입고, 마시고 살지만 그것을 사랑하지는 말아라. 사랑은 하나님만 사랑하고 예수님만 사랑해야지 세상, 부귀, 영화, 공명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다리를 고쳐라. 그 다음 곧은길을 만들어라. 다시 말하면 정의의 대로로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불의와 부정과 부패를 가지 말고 곧은길로 만들어라.
암5:14~15에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찌어다. 만군의 하나님 야훼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찌어다. 만군의 하나님 야훼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그러므로 스스로 우리가 정의의 대로를 걸어가고 구부러진 부정의 길을 걸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론>
징계는 즐거운 체험은 아닙니다. 징계는 정말 슬픈 체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의 받으시는 아들이기 때문에 우리를 유익하게 하기 위하여 종국적으로 거룩한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받을 때 우리는 사생자가 아니요, 하나님 아버지의 택하신 자식이라는 확신을 갖고 하나님께 공경함과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징계의 채찍을 참고 회개와 변화를 체험하고 나면 세상 누더기를 다 벗어 던져 버리게 되고 마음에 성령께서 함께 계시는 참된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징계가 즐겁지가 않습니다. 징계는 고통스럽고 괴롭고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그러나 내 아버지 하나님 징계하지 않고 자란 자식이 어디 있습니까? 사랑하는 자식은 부모가 징계하고 미워하는 자식은 부모가 징계하지 않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시고 사랑하고 기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크고 작은 징계를 내리시사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고 종국에 하나님의 거룩한 천국에 참여하기를 원하시지 않사옵니까? 그러므로 징계가 당시에는 즐겁게 보지 못하나 징계를 다 통하여 변화 받은 연단한 사람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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