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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천

요한일서 복음............... 조회 수 2718 추천 수 0 2007.12.01 23:27:06
.........
성경본문 : 요일3:14-18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http://je333.com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일제시대 일본에 나가노 목사님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5년 동안 성도 한 명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미신이 강한 곳에서 가난과 핍박의 고통을 견디며 사랑을 실천했던 분입니다. 어찌나 사랑이 많은 분이었던지 차츰 목사님의 아름다운 삶이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하루는 나가노 목사님 집에 결핵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리던 가난한 신학생 한 명이 찾아왔습니다. 결핵에 걸리면 죽어야 했던 시절, 가난한 살림살이와 아이들이 전염될지도 모를 위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도 때도 없이 각혈하는 이 신학생을 나가노 목사님은 가족으로 받아들여 지극한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이때 이 신학생은 나가노 목사님을 통해 ‘신앙은 곧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은 말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임을 깊이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어차피 죽을 거라면 자신도 사랑을 실천하다가 죽기로 결심한 이 신학생은 빈민굴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던지는 심정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병이 낫게 됩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빈민굴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죽을 고비에 처해 있었을 때 그리스도의 참사랑을 보여준 나가노 목사님의 삶을 따라 빈민굴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갔습니다. 이 신학생이 바로 훗날 20세기의 성자로 불리게 되는 가가와 목사님입니다.
패전 후 많은 일본인들이 피살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군에 의한 피해가 가장 컸던 중국 거주 200만 명의 일본인들은 오히려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을 분할시키려던 연합국의 당초 계획이 취소된 것입니다. 평소 가가와 목사님의 삶을 깊이 존경하고 있던 중국의 장개석 총통이 오직 이 가가와 목사라는 일본인 1명 때문에 200만 명의 일본인들을 무사히 돌려보냈고 일본 분할에 적극 반대함으로써 이루어진 일이었다고 합니다.
장개석 총통은 “일본인들은 내 민족의 원수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을 위해 지금도 뜨겁게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있을 가가와를 생각할 때 나는 그들을 미워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가가와 목사님이 위대했던 것은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남에게 더 크게 갚았던 사랑의 삶을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가가와 목사님은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신앙은 사랑이다. 사랑은 실천이다. 사랑은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신앙은 사랑의 실천이며 그리고 사랑은 언제나 이웃의 뒤치다꺼리를 기꺼이 감당하는 경건의 생활입니다.
성경에는 사랑에 관한 많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몇 가지를 읽어보겠습니다.
(잠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습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요13:1) "유월전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13:34- 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
(고전8: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고전8:3)
(엡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엡5:1-2)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요일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사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4: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영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영국의 성자로 알려진 죠셉 스크라이브는 신학교에 다니던 시절 해변에서 만난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처녀는 병에 걸려서 몸이 허약한 나머지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사랑했던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일로 말미암아 사랑한 사람을 잃었다는 마음의 상처를 달랠 길이 없어서 스크라이브는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그의 아픔을 잊을 수가 없었고 가슴의 상처는 지울 길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여행하던 어느 날 스크라이브는 교회 앞에서 다 헤어진 옷을 입고 몸에 상처가 난 체로 구걸을 하고 있는 거지를 만나게 됩니다. 그 거지는 상처를 입었을 뿐만이 아니라 기진한 상태로 자기를 향해서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손을 들어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크라이브는 자기 가슴에 있는 첫 사랑을 잃은 아픔 때문에 그 거지의 호소를 그만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그 마음 속에 주님의 음성이 그의 마음속에 들려 왔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 피를 흘렸건만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주었느냐? 네가 그처럼 한 여인에게 주고 싶었던 그 사랑, 그 여인 한 사람에게 주고 싶었던 그 사랑을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 어떻겠느냐?"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스크라이브는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집 나간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던 어머니는 병들었습니다. 그 어머니에게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서 그 마음 속에 떠오르는 시상을 기록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그 고통... 병든 어머니의 가여운 모습.... 나의 생애 동안 만나는 근심 걱정 모두를 주님에게 맡겨 버리라는 격려가 그로 하여금 주옥같은 찬송가를 탄생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찬송가 487장입니다.
한번 같이 1절만 부르겠습니다.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 까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은 당연히 지켜야 할 가장 큰 계명입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끼리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부모님께서 자녀들이 부모님을 공경하고, 또 형제 자매간에 우애와 사랑으로 살기를 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자녀가 그 부모를 닮듯이 우리들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형제를 멸시하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예물을 드리며 찬송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이웃 사랑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 이웃에게 어떤 사랑을 줄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합니다(눅 10:27).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이웃)를 사랑할지니라”(요일4:21)고 했고,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이웃)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형제(이웃)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4:20)고 말씀했습니다. 또한 요한일서 4장 11절에 “하나님이 이같이 (그 아들을 화목 제물로 보내심)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이 누구입니까?(눅10:29)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라는 물음은 율법사가 예수님께 질문한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이 질문에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하신 후에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눅10:36)고 물으셨고 율법사는 “자비를 베푼자니이다”(눅10:37)고 대답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웃이란 ‘도움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를 말합니다. 옆집에 산다고 이웃이 아닙니다. 한 교회 다닌다고 무조건 이웃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될 때 참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강도 만난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눅10:30) 강도 만난 자란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도와주지 않으면 죽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경제적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소년일 수도 있습니다. 남편에게 매를 맞고 일시적으로라도 집을 나와 피신해 있는 여성일 수도 있습니다. 보육원과 양로원에 있는 분들일 수도 있습니다. 공산체제 하에서 죽지 못해 사는 휴전선 이북의 형제자매들일 수도 있습니다. 사단 마귀에게 영혼을 빼앗기고 지옥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가족과 친지, 그리고 주변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합시다. 예수께서 결론으로 하신 말씀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선한 사마리아인처럼) 하라”입니다. 사랑 실천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마리아인처럼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본문 말씀에“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고 했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갖가지 도움(육신적 정신적 영적)이 필요한 이웃들을 살피면서 사랑을 실천합시다. 그래서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자기 자신에게는 큰 기쁨과 무한한 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합시다.

얼마 전 타임지에서 앙상하게 뼈만 남은 우간다의 한 어린이가 비어있는 그릇 바닥을 들여다보며 굶어 죽어가고 있는 사진을 보고 너무 측은해서 보는 이마다 눈물을 흘린 기억이 있습니다. 한해 동안 우간다에서 굶어 죽는 사람 수는 무려 1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오늘날 기아 문제는 날로 극심해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잘먹고 잘입고 편안하게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통계 자료에 의하면 1992년도에는 아프리카 대륙에서만 7천만 명이 굶주림 속에 있었으며, 서기 2천 년에 이르면 배고픔 속에서 잠자리에 들어야 할 사람이 무려 6억 4천 5백만 명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낮은 곳에 처한 모든 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나만 잘입고 잘먹고 잘살면 된다는 이기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율법주의자가 되어 비판하면서 그냥 지나치면 안 됩니다. 외식주의자가 되어 풍경 구경하듯 바라보면서 그냥 지나쳐도 안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행위로써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을 증거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온전한 사랑과 화해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면서 사랑을 생활 가운데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고전13: 1)

사랑은 가장 강하고 위대한 힘의 근원입니다. 순직도, 순교도, 자식을 향한 끝없는 부모의 헌신도, 용서할 수 없는 자를 용서함도, 불이익을 당하고도 긍휼을 잃지 않는 힘도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사랑만이 인류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전쟁도, 기근도, 압제와 불의도 사랑이 있을 때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그의 형상, 곧 의롭고 거룩하고 진리와 지혜의 존재가 되게 하셨고,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심어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하셨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 땅에 결코 이뤄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랑을 알아야 하고 행해야 합니다. 사랑이 빠져버린 인간관계는 불신과 이기주의와 다툼과 허영이 난무하고 사회는 불신과 부조화를 이루며 질서 파괴와 약육강식의 논리만 상존할 뿐입니다.
신자가 비록 방언과 천사의 말과 예언과 지식과 산을 옮길 믿음과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인내의 옷을 입었어도 사랑이 없으면 마치 띠를 매지 않은 옷처럼 불완전하고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있었던 사랑의 동산(에덴)을 잃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사랑의 계약을 어기고 사단의 말을 더 믿고 주어진 자유의지의 결정으로 죽음을 자초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십계명 외에 하나님 편에서 곧 사랑의 능력을 상실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조건 없이 차별 없이 순전히 은혜로 일방적 사랑을 선포하셨습니다.
지식과 가문, 성별, 민족, 종족, 색깔, 재산을 보지 않습니다. 이것은 전적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 사랑의 징표가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것이고 죄 없는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나의 죄를 담당케 하셨습니다.
이제 구원 얻을 사람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믿는 일만 남겨 놓으셨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곧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구원을 위해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대속의 제물 삼으신 속죄 은혜를 입은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새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사랑의 자발적 의무의 열매를 말합니다. 곧 십자가에 나타난 사랑, 예수 피로 사신 교회, 지체들의 최우선적 과제인 온전하고 성숙한 예수의 사랑을 닮아가는 예수의 몸을 사랑의 관계로 이루어 가는 교회론적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제자 삼으라"는 말씀과 맥을 함께 합니다. 따라서 전도, 선교의 비전을 품고 이를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살기 위해 서로 발을 씻는(섬김) 일과 서로 종노릇(겸손)하고, 서로 받고(용납), 서로 돌아보고, 서로 짐을 지고(고통분담),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서로 죄를 고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온 세상의 불의와 미움과 전쟁과 민족적 갈등과 죽음을 용해할 수 있는 사랑의 공동체 곧, 교회가 됨을 가르쳐줍니다.
새 계명, 곧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은 온 인류를 예수의 피로, 복음으로 서로의 관계가 되는 예수의 지체 삼으라는 교회적 은혜의 대 선언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랑의 공동체를 만드는 데 힘쓰는 선한 일꾼들이 돼야 할 것입니다.

아주 돈이 많은 과부가 있었는데 이 과부는 시간이 남아돌아서 사회활동을 많이 하고 세계 여행을 많이 합니다. 집에 있는 때가 거의 없습니다. 그 과부에게는 16살 된 소아마비에 걸린 딸이 하나 있는데 어머니를 무척 그리워합니다. 어머니가 무척 잘해 줍니다. 여행을 다녀오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림책이니, 보석이니, 시계니, 향수니, 장난감이니, 안 사다 주는 것이 없습니다. 으레히 남이 부러워할 정도로 한 아름씩 선물을 안겨 줍니다. 그 과부는 외국에 가 있을 때 딸의 생일을 맞으면 자기의 전속 간호원에게 시켜서 화분을 딸에게 보냅니다. 돈은 많고 딸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전속 간호원이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행 중에 간호원을 시켜서 딸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화분을 선물하고 자신이 돌아올 때는 더 좋은 선물을 사오겠다는 말을 전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그 소아마비의 딸은 "엄마, 선물은 싫어요. 내게 필요한 것은 엄마예요. 엄마가 나하고 같이 있어 주는 것 이외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아요."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 딸이 원하는 것은 어머니였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어머니의 돌봄, 어머니의 손길, 어머니가 같이 있어주는 그것이었습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3)

몇 년 전 한 기독교계 잡지에서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비 기독교인들의 눈에 비친 기독교인의 모습은 "교회에선 어떤지 몰라도 이기적인 경우가 많았다"라는 응답에 31.4%의 비율이 나왔고, "생활에 성실하기는 하나 인격적으로는 문제가 있었다"라는 질문에 응한 사람의 비율은 22.9%였습니다. 그리고 "비 기독교인들보다 위선적이고 자기 중심적으로 보였다"라는 질문에 18.6 %의 응답률을 나타냈으며 "모범적인 생활태도와 인격이 느껴져 사귀고 싶었다"고 응답한 사람은 17.1%에 불과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사랑의 실천이 중요합니다.
여기 계신 성도 여러분들도 사랑의 실천으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사랑하는 자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이웃에게 행함과 진실함의 참사랑을 실천하며 살게 하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상에서 보혈을 흘려주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태릉고등학교 교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선교사 지망생

매우 추운 날 새벽 3시, 선교사 지망자가 면접시험을 치루기 위해 선교국에 찾아왔으나 미리 약속이 되었던 시험관은 아침 8시에야 어슬렁 어슬렁 나타났다. 한마디 사과도 없이 시험관은 "자! 시작해 볼까요?"라고 하고서는 "학교(school)라는 단어의 철자를 말해보시오"했다. 지망생은 그 국민학생들의 문제같은 것에 답변했다. 시험관은 "좋소, 그러면 숫자에 대해서 물어봅시다. 2의 두배는 얼마요?" "네, 4 지요" 시험관이 자리를 툭툭털고 일어나며 지망생에게 말했다. "참 좋습니다. 잘하셨습니다. 당신은 합격되었습니다. 당신은 선교위원회의 시험에 합격했으므로 내일 아침 선교사로 임명할 것을 건의하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시험관은 선교위원회에서 그를 극구 칭찬하며 그가 자격이 충분함을 설명했다. "첫째, 극기시험에 합격이다. 추운날 새벽 3시에 오라고 했는데 아무런 불평이 없었다. 둘째,그는 시간을 엄수했다. 그는 신뢰와 약속의 시험에 합격이다. 셋째, 다섯 시간을 기다리는 인내의 시험에 합격했다. 넷째, 어린이 시험문제로 시험을 보는데도 기분나쁜 표정한 번 짓지 않아 겸손의 시험에도 합격했다. 우리가 요구하는 선교사로서의 자격요건을 다 갖추었으므로 기꺼이 선교사로 보낼 것을 추천한다." 이 세상은 크리스천들의 시험장이다 언제 어떤 문제로 시험을 치루게 될른지 모른다. 남을 이롭게 하는 시험, 인내의 시험, 겸손의 시험, 신뢰의 시험, 사랑의 실천시험... 우리가 제대로 쓰임받기 위해선 부지불식간에 치루어 지는 이런 주님의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당신은 어떤가? 이 선교사 지망생과 같은 느닷없는 상황속에 쳐해 졌을때 당신의 반응은? 우리의 인격과 됨됨이는 이와같은 데에서 평가되어진다. 그리고 그 그릇에 따라 쓰임받게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2. 묵상 및 토의:
0 당신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고 있습니까?
0 나는 문둥병자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겠는가?
0 나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 받는 사람인가?
0 나의 사랑은 분별력 있는 사랑입니까?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0 나는 세상의 판단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는가?
0 나는 내가 사랑 없는 세상에 사랑을 심어야 하는 자인 것을 아는가?
0 내 사랑과 관심이 주변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는가?
0 예수님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0 헛된 사랑은 허무함을 낳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랑할 대상인 주님을 사랑함으로 참된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까?
0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살고 있습니까?
0 나를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지는 않습니까? 혹시 나의 사랑이 계산적이지는 않습니까?

3. 예화(1): 진실한 사랑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있었다. 어느 날 남자가 군대에 가게 되었고, 급기야, 월남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위험한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도 곧 사랑하는 여자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싸우던 남자는 부상을 당하고야 말았다. 폭탄의 파편을 맞아, 양팔을 절단하게 된 것이다.
이런 모습으로 그녀를 힘들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전사했다는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는 행여나 여자의 눈에 뛸까 숨어살았다. 얼마 후 그녀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음이 아팠지만 그녀가 행복하기를 기도했다. 몇 년이 흐른 뒤 남자는 그녀의 모습을 멀리서나마 지켜보려고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담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니 그녀는 양팔과 양다리가 없는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한 채 살고 있었다. 사랑하던 남자를 생각하며 월남전에서 양팔과 양다리를 잃은 남자를 보살피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 예화(2): 사랑은 실천입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제인 애덤스는 척추에 병이 생겼습니다. 의사의 권고로 휴양차 유럽을 여행하다가 런던의 빈민가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 곳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살아왔던 풍족한 삶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 후 그녀는 봉사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미국으로 돌아와 빈민들을 위한 탁아소, 가출 소녀들을 위한 숙소를 만들었고,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당시 미국의 200만 명에 달하는 아동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악관 아동회의를 창설하기도 했습니다. 1931년, 71세가 되던 해, 그녀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어려운 이웃에 관한 기사를 접하면 누구든지 안타까운 마음을 갖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이 내 손과 발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는 나의 만족을 위한 염려일 뿐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데는 노력과 땀이 필요합니다. 그 노력과 땀이 존경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얼마 전 서울의 한 병원에서 간을 기증받아 새 생명을 얻은 50대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 여성에게 간을 기증한 사람은 경북 상주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님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지난 2003년 10월에 말기 간 환자를 살리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으나 지방간 수치가 높게 나와 환자를 살리지 못한 것이 늘 마음 아팠다고 합니다. 그는 이전에도 정신지체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만성신부전증을 앓던 한 청소년이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신장을 익명의 환자를 위해 기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한 부분을 아픈 사람들을 위해 내어 놓으며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행동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우리 사회가 어둡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그 어두운 세상을 스스로 밝히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류 중 현

* 예화(3): 교회와 천국과의 거리

'교회는 천국과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하지만, 천국과 가장 먼 곳이기도 하다' 라고 우찌무라간조는 말했습니다.
우리 몸 안에서 가장 세균이 많이 서식하는 곳은 입안인데, 사랑하는 마음으로 키스를 하면 어떤 세균이든 입에서 입으로는 전염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병균이 옮을까봐 말로만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교회는 천국과 가장 먼 교회입니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사랑하는 교회는 천국과 가장 가까운 교회입니다. 말로는 뭐는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행함으로 하는 사랑입니다. 그것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이야말로 참사랑이 아니겠습니까? 교회는 믿는 형제 자매들끼리 교회 안에서 자기들끼리만 사랑하지 말고, 교회 밖에서 나를 미워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가슴을 열고 오늘부터 작은 사랑을 먼저 실천해 봅시다. 길가면서 휴지, 돌, 유리를 주우세요. 먼저 인사하세요. 친절한 말을 연습합시다. 거울 앞에 앉아 웃는 연습을 합시다.

* 예화(4): 초대교회의 사랑

4세기 유명한 배교자였던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는 로마 제국의 전통적인 종교를 부활시키기 위해 기독교의 급성장을 막아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분투는 좌절되었는데, 그는 그 이유로 기독교의 사랑을 꼽았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신의 형상을 앞에 놓지도 않고 하나님을 부르고 예배하는 것을 보고 기독교인들을 무신론자라고 불렀다. 그는 그 무신론자들의 비상한 사랑과 비교해 자신이 속한 종교의 비참함과 초라함에 대해 이렇게 탄식했다. “무신론(즉 기독교 신앙)은 나그네들에 대한 친절한 봉사와 죽은 자들의 매장에 대한 관심을 통해 현저한 발전을 이루었다. 유대인 가운데 단 한 명의 거지도 없으며, 무신론자인 갈릴리 사람들은 자기네 극빈자들을 돌볼 뿐 아니라 로마의 극빈자들까지 구조하고 있다. 반면, 우리 종교에 속한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 도와주기만을 바라고 있으니 창피한 일이다.”
성령 충만에서 오는 뜨거운 확신, 세상을 경악시킬 만한 비범한 사랑과 우애, 세상을 향한 이타적 사랑의 실천,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부드러움과 용기는 하나님 나라가 발산하는 무지개 빛깔이요, 하나님 보좌를 아우르는 영광의 실체다. 우리는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사랑을 실천하자

* 예화(5): 이웃사랑실천

몇년 전 강철왕 카네기의 고향인 스코틀랜드 덤펌린시에 있는 포도원교회 부흥회를 인도했다. 집회 후 현지 선교사와 함께 골프연습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왼쪽 발목이 시퍼렇게 멍이 들고 부었으며,아파서 걸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응급실로 갔다. 의사는 인대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응급치료를 받은 후, 치료비를 내려고 했더니 거절했다. 우리나라에 와서 사고로 몸을 다친 것도 미안한데 어찌 치료비를 받겠느냐며 웃었다. 알고 보니 스코틀랜드에서는 누구든지 병원비는 무료였다. 사회복지가 세계에서 제일이라고 자랑했다. 이런 복지를 위해 기업하는 분들이 돈을 많이 벌어 세금을 서로 많이 내겠다고 나선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메리 여왕 때 순교의 피를 흘린 선조들의 신앙과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 정신이 생활로 이어진 것이다. 여러 개의 작은 그릇들은 큰 그룻 속에 모두 들어간다.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이 큰 계명을 실천하면 율법의 613개 조항을 다 지킨 것과 마찬가지다.
/최낙중목사 (해오름교회)

4. 금언
0 인간의 운명은 대부분 그 사람이 주위에서 받는 사랑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인간의 가치는 얼마만큼 남에게서 사랑을 받느냐보다는 얼마만큼 그 가 그의 주위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있었느냐에 달려 있다.(에픽테투스)
0 사람은 사랑할 때 누구나 시인이 된다.
0 사랑하는 곳에 고생은 없다. 만일 고생이 있다고 한다면 그 고생이야말로 즐거움이다.
0 사랑은 인생의 소금이다.
0 사람이 건강을 잃고 명예를 잃는다는 것은 커다란 손실이다. 그러나 사람으로서 자비심을 잃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가장 큰 손실이다. 어떠한 사상도 금전도, 음악도, 예술도 자비심이 없으면 남을 감화하지 못한다.(서양 격언)
0 불이 빛의 모체가 되는 것처럼 사랑은 항상 평화의 모체가 된다.(칼라일)
0 사랑의 비극이란 없다. 오히려 사랑이 없는 곳에 비극이 있다.(테스카)

5. 찬송: (4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죄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용서 하셨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측량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http://je333.com(한태완 목사 설교 예화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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