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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승리

요한일서 권진관............... 조회 수 2102 추천 수 0 2008.01.13 16:4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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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일5:4-5 
설교자 : 권진관 형제 
참고 : 새길교회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사이에는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신학에서는 그리스도론을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려고 하는 논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론은 다시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계기를 제공해 줍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의 다른 질문은 상호 깊은 관련을 맺어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기 이전에도 일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을 성찰해 보면 우리에게는 무엇인가를 가치 있는 것으로 믿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은 우리의 삶을 결정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성찰하려면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안을 향한 내적인 여행을 감행해야 합니다. 가장 어렵고 위험한 여행은 우주로 날아가는 여행이 아니라, 나를 향한 내면으로의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를 알기 위해 우리는 예수를 알고자 합니다.
나를 보다 잘 알기 위해서 그리고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진정한 나를 형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늘이 주신 믿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믿음은 우리가 태어나면서 어머니의 말씀에서부터, 혹은 아버지, 혹은 가정 전체, 사회와 학교로부터 얻은 일종의 신념입니다. 우리 인격을 형성해 주는 마음의 중심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알기 이전부터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것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것이 되도록 하는데 예수가 도움이 되어 줍니다. 우리는 예수를 알고 그를 닮고자 하는 이른바 예수쟁이요, 좀 더 고상하게 말한다면 크리스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을 향해 들어가는 내적인 여행자인데, 예수라고 하는 지표, 예수라고 하는 절대적인 기준, 예수라고 하는 나침반을 가지고 우리 안으로 여행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의 정원이 있다고 가정하고, 그 정원을 거닐며, 그 정원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그 정원이 무질서하고, 너무 늪지대가 많아서 질퍽거린다던가, 신발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 우리를 한편으로 얽어매어 놓는 것은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길섶은 잘 정돈되었는지, 거기에 수많은 아름다운 추억과 기억이 잘 정돈되어 우리의 마음속을 장식하고 있는지 등을 살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유교적인 전통, 한국적인 선비의 전통, 그러나 또 우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권력욕, 명예욕, 금욕, 이성에 대한 욕심, 영웅심 등이 마음의 정원 속에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평가해 보고, 그들이 있을 위치를 정돈해 보고, 제자리에 놓을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올 것이라고 우리는 보는 것입니다. 하나의 정원으로서의 아름다움은 우리들의 인격, 성품, 됨됨이를 결정해 주는 것일 것입니다. 예수는 이 마음의 정원을 가꾸는 일에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여행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예수의 십자가를 만나야 합니다. 원초적인 존재를 만나야 합니다. 그 원초적인 힘을 만나고, 그 힘에 의해서 우리의 마음의 길을 정돈해야 합니다. 예수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우리들의 마음을 그냥 백지로 만들어 놓지는 않습니다. 근본주의자들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전통의 침전물들을 모두 제거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제사, 미풍양속 등을 모두 버리라고 강요합니다. 그러나 예수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이러한 것들을 재해석해 보고, 자기가 서 있어야 할 위치로 가져다 놓는 일을 하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빈 것으로 만들어 놓지 않습니다. 다만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해 준다는 것입니다.
내면으로의 여행은 우리가 언제나 해야할 일일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와 명상, 독서, 성서 읽기 등을 통하여 내면을 의식하고 내면으로의 여행에 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 세계에 대해 무관심하며, 스스로 내적인 병에 고생하면서도 이것을 모르고 지나가며 급기야는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도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내적인 여행으로만 우리의 모든 여행을 마칠 수는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스스로를 이 역사와 사회 속에 투신해야 합니다. 이 역사와 사회를 공동체로 만들기를 바라며, 우리가 마음속을 정돈하듯이 외적인 현실도 정돈해 나가는 일을 감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면의 점검과 외적인 현실 점검과 변혁 이것은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해야할 과제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적인 믿음의 힘으로 외적인 현실 속에서 승리하며 이겨나갈 수 있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의 주제는 믿음이 승리한다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일수록 가장 귀한 무기가 됩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일 수록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세파를 뚫고 넘어가기가 어렵습니다. 가진 자들도 자신을 더 성찰하고 태도를 정리 정돈해야 할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선 존재로서, 하나님이 원하시면 언제라고 불려가야 할 형편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삶과 죽음, 역사와 종말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두려움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믿음은 예수를 통한 진정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생각을 한 걸음 더 발전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만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공동체로 진전되어야 합니다. 나만 승리자가 되는 길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의 승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 안을 들여다보며, 그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에 교회는 진력해야 하는데, 우리를 공동체로 만들어 놓는 필연적인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물론 예수의 사랑에 있습니다. 기독교는 공동체라고 합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 없이는 기독교가 성립될 수 없고, 예수에게 면목이 설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들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커다란 명령이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이유 외에 또 다른 보다 구체적이고 필연적인 이유를 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나의 삶 속에서 공동체는 존재론적인 위치를 가지는 것인가? 공동체는 나의 개인적인 삶 속에 정말 필요하고 필수적인 위치를 가지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나만 승리하면서 살면 되지 공동체는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필요해도 존재론적인 위치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약간의 양식을 가진 보통 사람들은 대답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삶 속에 공동체적인 삶은 언제나 있는 것이며 그것이 목표인데, 어떻게 그것이 존재론적인 위치를 갖는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공동체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이 만드는 것입니까?
얼마 전에 한 통속적인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나왔습니다. 2020년의 위스콘신 주의 삶의 질과 모습은 1920년대의 모습과 비슷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주로 식량난과 에너지의 부족 때문이라고 합니다. 2020년의 우리나라 정부의 청사진과 얼마나 다릅니까? 식량과 에너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경쟁 위주로부터 공동체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럽 특히 독일의 녹색당 운동은 바로 이것을 말해주며,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녹색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높은 것, 그리고 이들이 나이가 들면서도 계속해서 녹색당을 지지하는 것은 환경문제 때문에라도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추세를 말해주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이제는 환경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웃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여야 환경을 보전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미래의 지구와 미래 사회의 운명은 전적으로 인간의 전체적이고 집단적이며, 양심적인 결단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정신적인 결단에 의해서, 그리고 구체적인 실천에 의해서 미래는 결정된다고 합니다. 정신적인 성숙을 위해서는 다양한 교육적 조직과 공동체가 어우러져야 하는데 새길공동체는 바로 이러한 공동체 중에 하나로 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가이야(땅)라고 하는 이 지구의 유기적 구성분자로서 가이야를 살리고 보호하는 충실한 대리자 혹은 종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진정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착실하게 공동체 안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가치관으로 무장되어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공동체의 믿음, 공동체의 내적인 결속 속에서 한결같은 공동체적인 품성이 이 속으로부터 나타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단순한 친교단체, 혹은 예배만 드리고 흩어지는 모임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에 덧붙이어 저는 우리 현실의 단면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토끼와 거북이 중에 누가 이길까요? 옛날 얘기 속에는 거북이가 이깁니다. 왜냐하면 토끼가 중간에 잠을 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토끼가 이긴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토끼가 잠을 자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토끼의 할거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토끼가 되려고 합니다. 악기를 다루려 하고, 영어공부, 컴퓨터 공부 등을 합니다. 일류대학 들어가야 토끼가 되니까 모두가 일류 병에 시달립니다. 우리나라만큼 사교육비가 많이 드는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전교 일등을 놓쳤다고 자살한 여고생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만큼 자기 자식만을 사랑하는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만큼 많은 사교육비가 듭니다. 강남에 잘 사는 집 어머니가 파출부로 나가고, 외판원으로 나가는 것은 다 자기 자식이 토끼가 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런데 얼마 전에 거북이를 토끼처럼 만들기 위해서 한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위해 월 100만원 이상씩의 사교육비를 썼지만 결국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과외공부 시키는 나라로 1위라고 워싱턴 포스트지가 밝혔습니다. 이런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렇게 사교육비를 많이 쓰고, 자기 자식은 틀림없이 토끼가 되게 하려는 풍조 속에서 우리나라만큼 생명 경시 풍조가 많은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앞에서 잇달아 일어났던 죽음의 교통사고, 그런데 그 학교 앞에 주의 표지판 하나 없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재경원의 국고국장이 매우 젊고 빨리 출세했으며(46세에 이사관 2급 혹은 1급), 가지고 있는 재산도 십수억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뇌물을 받았다가 구속되는 현실은 왜 일어나고 있습니까? 이번 4.11 총선이 돈으로 치러졌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1억 이하만을 썼다고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러한 모든 것들은 모두 토끼가 되려고 하는 문화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아닙니까? 쉽게 일어나는 사람은 쉽게 망하고, 쉽게 일어나는 나라나 사회도 그와 같은 운명에 놓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이런 모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북이들이 꾀를 내면 됩니다. 경주를 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닙니까? 토끼가 뛰어보자고 할 때 안한다고 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것을 그대로 놔두지 못합니다. 어떻게든 거북이더러 토끼가 되라고 합니다. 거북이더러 토끼처럼 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진짜 토끼인줄 알고 토끼와 겨루어 보게 합니다. 많은 서민들이 토끼가 되어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에 자살을 하고, 혹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곤 합니다. 막상 토끼처럼 뛰어보지만 토끼에게 당해낼 수 있겠습니까? 상대는 돈 있고, 힘있고 빽이 있어서 토끼처럼 이 사회에서 날고 뛰는데 나는 이런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거북이들이 토끼와 경주하지 않으면 될 것입니다. 거북이가 토끼처럼 되려고 하지만 결국은 소모품처럼 사용하다가 버려지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러면, 거북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첫째 거북이가 경주에 안 오르고 뛰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거북이 식으로 사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합니다. 새로운 패턴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운동을 위하고, 사회를 위한 삶, 나의 삶은 곧 역사적인 삶이어야 한다는 생각과 연결됩니다. 자동차를 되도록 타지 않는 삶입니다. 우리가 미국식으로 살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깁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기쁠 수 있어야 합니다. 토끼의 생활이 결코 최상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으며 사는 삶, 독서하며 명상하며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해나가며 자기의 인생을 아름답게 꾸미는 생활, 그리고 더 나아가서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삶, 그것이 거북이의 삶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전 삶의 방식에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가치관의 삶을 사는 것이 거북이 고유의 방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거북이는 토끼와 경주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거북이는 자신이 토끼와는 다르다는, 즉 자기 정체성, 자기 주관을 분명히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내면의 성찰로부터 가능하게 됩니다. 예수에 대한 믿음은 이러한 내면의 성찰을 하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해주는 것입니다.

두번째의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또 하나의 이야기를 예로 들겠습니다.
토끼와 거북이가 하루는 만났습니다. 토끼가 시합을 하자고 하니까 거북이가 잠깐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아침식사를 안했으니까 식사 후에 경주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거북이는 자기하고 똑같이 생긴 부인 거북이와 짜고 언덕 꼭대기에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거북이는 토끼에게 가서 시합을 하자고 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언덕 꼭대기까지 왕복하며 지칠 때까지 달리자는 것입니다. 토끼가 열심히 달려가 보니 거북이가 와 있고, 또 열심히 언덕 아래로 달려가면 이미 거북이가 와 있어서, 토끼는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결국은 숨이 차 죽어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토끼는 우리 지구와 사회를 멸망으로 충동해서 질주시키는 어떤 구조적인 힘을 말합니다. 잘못된 가치관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우리의 문화, 정신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 문화와 정신상태를 지탱해 주고 있는 모든 물질적 사회적인 구조들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구조적인 힘을 잡기 위해서는 연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연대를 위한 좋은 개념으로 70-80년대는 "민중"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민중이란 개념이 항상 운동적이고 역동적인 개념이었기 때문에 오늘날에 와서는 현실을 포착해 주는 개념으로 사용하기가 힘들게 되었습니다. 민중은 가난하고 힘없고 눌린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주는 개념으로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시민사회란 말이 많이 사용되는데 이 시민 혹은 시민사회란 말도 너무 느슨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민중이라는 개념보다는 배타적이지 않고, 또 시민사회라는 개념보다는 더 유기적인 응집력을 가진 공동체가 오늘날의 현실을 파악하는데는 더 도움을 주는 것같이 보입니다. 진정한 연대는 이러한 공동체 속에서의 자기 성찰과 행동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봅니다.

오늘날 토끼처럼 질주하여 뛰지 않고, 천천히 걷고 그뿐 아니라 필요할 때는 돌아가는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곧 믿음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항상 정의로운 판단을 하도록 노력하는 승리하는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나아가서 그것은 나만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승리가 되게 하기 위해서 공동체를 형성하며, 우리 사회 전체를 공동체적인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삶을 말하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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