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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어버이의 바람

요한삼서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036 추천 수 0 2008.05.13 23: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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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삼1:2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순복음중앙교회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인 어버이의 바람"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모든 어버이들은 자식에 대한 천륜의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 고려 시대에 고려장이라는 사회적 풍습이 있었다고 구전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나이 많고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부모를 산에 갔다 내버리는 일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삶이 힘들어 젊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하여 입을 덜기 위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에 보면 한 집안에 어머니가 70이 되어 고령이 되었습니다. 아들이 어머니를 고려장 하기 위하여 업고 산으로 올라가는데 어머니가 자꾸 허리를 제끼면서 나뭇가지를 꺾어서 던지고 나뭇가지를 꺾어서 던지고 업고 가기가 힘이 듭니다. 어머니 내 어깨에 딱 붙어 있어야지 왜 몸을 들어서 나뭇가지를 꺾어 던지고 나뭇가지를 꺾어 던집니까? 어머니가 하는 말이 나를 고려장하고 자네가 집으로 돌아갈 때 혹시 길을 잃어버릴까 싶어서 길을 찾게 하려고 나뭇가지를 꺾어서 던지네... 그 말에 아들은 마음에 감격을 느꼈습니다. 자기는 어머니를 고려장 하려고 엎고 가는데 어머니는 그 길에도 아들이 집에 돌아갈 길을 잃어버릴까 싶어서 나뭇가지를 꺾어서 자꾸 던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고려장 하지 못하고 도로 엎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부모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끝이 없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버릴 수가 있어도 부모는 자식을 버릴 수가 없다는 그 의미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부모들은 자녀들이 구원을 받고 천국 백성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 것이 크리스천 어버이의 소원입니다.

예수 믿는 어버이 치고 자식들이 예수 믿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기로 원치 않는 부모가 도대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이 간절한 소원 아니겠습니까? 어느 부모치고 예수님을 잘 믿는 부모님 같으면 그 자손들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주야로 하나님께 머리를 조아려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으므로 집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간절히 소원하는 것이 크리스천 어버이의 마음에 바라는 것입니다. 크리스천 어버이들은 자녀들이 성수 주일 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다 큰 자녀들이 주일 교회에 오지 않고 친구들과 놀러가고 혹은 운동하러가고 세상으로 갈 때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습니다. 교회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려 기도하고 하나님이여 자녀들이 성수 주일하게 해 달라고 간청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그리고 크리스천 어버이들은 자녀들이 말씀을 멀리 하지 않고 기도 생활을 하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늘 사랑하고 말씀을 가까이에 두고 묵상하며 기도생활을 부지런히 할 때 굉장히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또 자녀들이 하나님께 영광된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게 될 때 부모는 그 마음속에 굉장한 기쁨과 감사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를 위한 기도를 쉬지 않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중생한 부모치고 이러한 일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 안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그 자녀를 위한 간절한 기도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위대한 교부요, 성자요, 신학자요, 기독교의 지도자였던 어거스틴은 그 어머니가 신앙이 굉장히 깊고 경건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방탕하여 어거스틴을 17살 때부터 술집에 데려가서 같이 술을 먹이고 방탕한 길로 이끌어 갔습니다. 잘못된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있지 않다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거스틴은 아주 머리가 좋았습니다.
학식이 많고 수재였습니다. 그러나 방탕하고 이단교인 마니교에 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 아들이 회개하기 위해서 주야로 하나님께 머리를 조아려 눈물을 흘리고 기도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어머니의 기도가 싫어서 어머니를 피하기 위해서 29살에 로마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로마까지 아들을 따라갔습니다. 아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 어머니가 하도 교회에 와서 눈물을 흘리고 간절히 기도하니깐 그 목사님이 "여인이여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는 한 그 자녀는 결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낙심치 말고 계속 기도하시오"라고 후원해 주고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어거스틴은 로마에서 당시 암브로스 목사 설교를 공부 욕심으로 듣게 되었고 3년째 되던 어느 날 거주하던 집 정원의 나무 밑에 앉아서 묵상을 하고 있는데 이웃집에 있는 어린아이들이 놀면서 한 아이가 고함을 쳤습니다. 집어서 읽어라 집어서 읽어라 그 음성이 마치 하나님의 음성 같아서 마침 옆에 있던 신약 성경을 집어서 어거스틴이 펼쳤습니다.
펼치니 13장 13절로 14절이 나오는데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전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말씀이 두 날 가진 금보다 예리하여 그 영혼을 찔렀습니다. 이 말씀이 레마가 되어서 그 심령을 뒤흔들었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크게 마음을 계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32세에 신학을 공부했고 주의 종이 되어 귀향 중 어머니는 자식이 회개하고 주의 종이 된 것에 너무나 감사하며 감격 중에 세상을 작별했습니다. 그는 수도원을 세워서 제자를 양성하고 이단을 물리치고 참회록 등 70권의 저술을 했습니다. 야심과 정욕으로 얼룩진 삶이 은혜로 성결하게 되고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이 결코
저버리지 아니하고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 아들을 위대한 교부요, 철학자요, 신학자요, 초대교회 지도자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이처럼 자녀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부모가 없으며 또 그 부모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부모들은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성공을 하고 행복하기 살기를 원합니다.

어느 부모치고 자식이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헐벗고 굶주리며 빌어먹기를 어디에 있겠습니까? 모든 부모는 자기가 못 먹어도 자식은 먹이고 자기는 못 입어도 자식은 입히고 자기는 공부를 못했어도 자식은 최대로 공부를 시키려고 간절히 노력하고 애쓰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평생동안 목회를 부지런히 하고 70이 되어서 은퇴를 하게 되었는데 교회 장로님들이 목사님 앞에 나와서 목사님 이제 은퇴하시니깐 우리 교회에서 목사님께 여생에 사실 집을 하나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집 문서를 꼭 쥐고 계세요 틀림없이 사업하는 자식들이 와서 집문서 내 놓으라고 할테니깐 그 문서 내 놓으면 목사님 부부는 노년에 길거리에 앉게 됩니다. 그러므로 꼭 집 문서만은 내어 주지 마세요. 그 목사님이 그래 그렇게 하겠다. 그래서 그 교회에서 은퇴하셨습니다. 바로 우리 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계신 교회 목사님이십니다. 은퇴하고 교회가 사준 집에 있는데 맏아들이 사업을 하다가 어려움에 처하니깐 아버지에게 와서 아버지 집 문서 내 놓으세요 그랬습니다. 그 목사님은 장로님들이 그 집을 사주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집 문서를 내 놓지 말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식이 와서 사업이 무너지게 되었으니 은행에 돈을 빌리는데 단보가 없습니다. 아버지 집을 내 놓으시오 하니깐 아버지 어머니가 그 소리를 듣고 눈물을 흘리고 기도를 하다가 별 도리 없이 집 문서를 내 놓았습니다.
안 주었으면 좋겠는데... 여러분 이 설교 듣는 부모치고 자식이 사업하다가 어려워서 담보로 집 좀 쓰겠다고 집 문서 내 놓으라고 와서 간청하면 내 놓겠습니까? 안 내놓겠습니까? 안 내어 놓을 도리가 없습니다. 아버지 잠시만 쓰고 돌려 드리겠습니다. 집 문서를 내 주었는데 아들이 부도를 내고 파산하고 아들의 가족은 미국으로 도망을 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노부부는 길거리에 앉았습니다. 아들은 미국으로 도망을 쳤지만은 이 노부부는 올 때 갈 때가 없어요 그래도 이 노부부가 자식들을 원망하지를 않습니다. 여러분 부모는 자식이 큰 상처를 입고 가더라도 마음속으로는 괴로워하지만은 다른 사람에게 자식 욕을 안합니
다.
저는 이런 실화를 읽어 보았습니다. 경찰관이 순찰을 하다보니 쓰레기 더미에서 큰 푸대 하나가 움틀 움틀 하는지라 푸대 입구를 열어보니깐 중풍에 걸린 노인이 그 푸대에 들어서 쓰레기 더미에 버려졌습니다. 자식이 중풍 걸린 아버지를 돌보기가 힘드니깐 푸대에 넣어서 거름더미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노인을 경찰서에 데려와서 물었습니다. 아들이 집 주소가 어디며 전화 번호가 무엇이냐고 그 노인이 다른 질문하는 것은 다 대답을 합니다. 나이가 얼마나 75입니다. 성함이 뭐냐 아무겝니다. 언제 버림을 당했느냐 몇일 날 버림을 당했습니다.
아들 이름이 뭐냐, 입 딱 다물어 버립니다. 아들의 주소가 어디며, 전화 번호가 어디냐, 절대로 입을 열지 않습니다. 나중에 양로원에 갔다가 그분을 모시고 얼마 있다고 세상을 떴는데 끝까지 자식의 이름과 주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식은 자신을 버려도 부모는 혹시 자기가 그 말함으로 말미암아 자녀의 삶에 누가 끼칠까 싶어서 절대로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부모가 자식에 대한 사랑입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요. 부모가 뭐 위대하고 훌륭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천륜의 사랑인 것입니다. 부모에게 가장 큰 기쁨은 자녀의 성공과 행복인 것입니다. 자녀가 성공해서 행복하게 잘 살면 그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굉장히 흡족하고 기쁩니다. 그러나 자녀가 잘못되면 주야로 주야로 그 자녀가 잘되기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자녀의 삶이 성공적이고 행복한 길을 원하는 부모의 심정을 자식들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부모가 자식에게 원하는 것은 자녀들이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지만 건강을 잃어버리면 온통 다 잃어버립니다. 정치가가 건강을 잃어버리면 정치 끝이고, 사업가가 건강을 잃어버리면 사업이 끝납니다. 목사가 건강을 잃으면 그 다음부터 목회는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건강이 그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이 주야로 원하는 것은 자식들이 건강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제가 평신도일 때에 부산에 보수동에 있는 월드미션교회에 나갔는데 그 교회에 피난 온 꽉 마른 할머니 한 분이 아주 복스럽게 생긴 30대쯤 되는 딸을 데리고 교회에 출석을 했는데 그 딸은 초등학교 교사였으나 실연을 당해서 마음에 낙심을 해서 정신 이상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서운 그런 정신이상자가 아니라 아주 얌전하고 착하지만 바보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어머니가 손을 잡고 이
끌어 주어야 합니다. 어머니가 밥을 떠 먹여야 합니다. 그래서 그 딸은 살리기 위해서 금식을 하면서 온 기도원으로 다 돌아다니고 최후에 우리 교회까지 왔습니다. 하루종이 그 딸 곁에 있어야 합니다. 딸 수발해 주어야 하고 화장실로 데려다 주어야 하고 이렇게 해야하는데 70여세가 넘은 그 꽉 마른 어머니가 그 어린 딸을 데리고 그렇게 눈물로 기도하며 저가 평신도로 별로 신앙도 없는데 저의 손을 잡아서 형제여, 내 딸을 위해서 기도를 좀 해주십시오.
이 귀하고 착하고 좋은 딸이었는데 이렇게 정신을 잃었습니다. 기도를 좀 해 주십시오. 그래서 내 손을 강제로 끌고 그 안수하게 하고 기도하게 해 준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도 얼마 살지 못할 것인데 내 마음 속에 늘 걱정이 되었어요 저 어머니가 세상을 뜨면 저 딸은 어떻게 될 것이냐, 그러나 그 어머니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그 딸의 건강을 회복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하고 애쓴 것이 기억 속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건강한 자식을 가진 것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여러분 자식이 신체불구가 되고 병들면 그 부모의 마음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입니다. 자식은 어찌하든지 부모의 이 간절한 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부모는 또 자식을 어찌하든지 건강하게 잘 살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요사이에는 자녀들이 육체적인 질병뿐 아니라 정신적인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계가 삶의 생존경쟁이 심하고 그리고 직장을 잃어버리고 고통 당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습니까? 최근에 보니깐 어떤 부모님이 아침 일곱시 반경에도 잠을 자고 있던 31세 되는 아들을 63된 어머니가 밥을 안 먹고 늦게 자면 건강에 해롭다 일어나서 밥먹으라고 깨우니깐 이놈이 일어나서 격분하여 다락방에 있는 흉기를 가지고 어머니를 내리치고 아버지를 때려서 70이 넘은 아버지, 어머니가 중상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자녀 이 자녀가 건강하게 잘 살길 원해서 63세 되는 어머니가 70이 된 아버지와 아들을 깨워서 밥을 먹이려고 했는데 일어나서 부모를 흉기로 때려서 중상을 입히게 한 그것은 오늘날 얼마만치 정신적으로 젊은이들이 병들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고학년 취업난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반면에 일하지 않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20-30대 캥거루족의 젊은이들이 현재 105만 명이 된다고 합니다. 20-30대가 되면서 일 안하고 빈둥빈둥 놀면서 부모에게 의지하고 사는 그런 젊은 세대가 105만 명이 된다니 말로 다 할 수 없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모들의 주야로 원하는 기도는 자녀들이 어찌하든지 건강해서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 직장에 잘 나가는 것이 소원
인 것입니다. 우리나라 10대나 20세 이하 청소년들 80%가 사회 현실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한국 청소년 개발원에서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 불만의 이유는 빈부 격차가 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80%이고 집안과 배경이 중시되는 분위기에 대해서 77%, 정의가 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77%, 계층에 따른 특혜가 있어서 75% 이러한 굉장히 불만을 가지고 청소년들이 정신적으로 갈등을 느끼고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래관은 부정적이고 교육 현실이 입시 위주라 학업 부담이 크고 인격 형성과 적성 개발이 되지 않고 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부모들은 자녀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사회적으로 건강해서 어찌하든지 잘 살게 하기를 간절히 간구하고 구하는 것이 그들의 소원인 것입니다.

넷째로 크리스천 부모들이 자녀에 대한 마음의 소원은 자녀들이 만족할만치 잘 해주지 못한 부모의 죄책감을 이해해 달라는 것입니다.

어느 부모치고 자식에게 잘해주고 싶지만은 원하고 만족한대로 잘해주지 못하지 않아요. 부모는 자식들의 최선을 다해 잘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부모는 마음만 있지 경제적인 사유 때문에 자식을 마음대로 돌봐 줄 수 없습니다. 남처럼 좋은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시키고 해외 유학까지 시켜서 훌륭한 자녀로 키우고 싶은 마음 어느 부모가 없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부모가 대다수이므로 거기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한 장성하여 분가해 나가는 자식들에게 재벌처럼 뒤를 돌봐 주지 못해도 어느 정도 힘이 되어 주고 싶어도 만족스럽게 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부모들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문을 보면 어떤 부모는 자식에게 2천억을 재산 상속을 해 주었다. 5천억을 재산 상속을 해 주었다. 어떤 큰 기업체는 1조원을 자식에게 물려주었다. 이런 것을 볼 때 부모의 마음은 천근 만근 같이 나락에 떨어진 것 같습니다. 다 같은 부모인데 나는 자식을 키워서 분가하면서 무엇 해준 것이 없다. 자식이 불평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무 말도 안해도 뒤꼭지를 바라보면 부모의 마음속에 눈물이 흐릅니다. 나는 너무나 못 나서 자식들을 잘 돌봐 주지 못했다는 그러한 마음의 죄책감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자식들이 이해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부모에 나와서 우리 친구 아무개는 아버지가 몇 억의 상속을 주었는데 집을 몇 채를 주었는데 사업을 물려주었는데 아버지가 내게 해 준 것이 뭐요 도대체 뭘 해 주었소 그럴 때 아버지의 가슴속에는 피 눈물이 흐릅니다. 아버지의 가슴은 자식에 대한 간절함이 어머니보다 덜하지 않습니다.
어느 집에 자식이 죽었는데 어머니는 통곡을 하고 우는데 아버지가 울지 않으니깐 그 부인이 하는 말이 당신은 자식이 죽어도 그렇게 냉담할 수 있는냐, 그런데 얼마 후에 아버지가 탄식을 하고 기침을 하니 침을 뺏는데 피덩이를 뺏더래요. 아버지는 말은 안해도 가슴에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녀들 앞에서 부모의 무능력을 통감하고 탄식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자식들은 이 부모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많이 자식들을 도와 주고 밀어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못해 주는 부모의 마음이 잘 해 주는 부모의 마음보다 더 고통스럽게 괴롭다는 것을 알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어야 될 것입니다.

다섯째로 자녀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고 여생을 사는 것이 부모들의 소원이지만은 어려움에 처할 때는 자녀들의 도움을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회 보장제도가 미흡합니다. 1999년으로 기준을 볼 때 60세 이상 노인 중에 공적 연금을 받는 비율은 5%에 불과합니다. 65세 이상 노인을 모시고 사는 가구 중에 약 10% 최저 생계이하의 빈궁한 생활을 하고 특히 노인끼리 사는 가구는 30%가 빈곤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대다수의 가족에서 대다수의 며느리들이 시부모를 모시거나 돕는 것을 싫어합니다. 제가 아는 한 가정에도 한 자식들이 아홉이나 되는데 그 부모를 서로 모시지 않는다고 형제간끼리 다투고 싸워 맏아들집에 한달 있다가 또 봇다리를 싸서 둘째 아들 집에 가고 둘째 아들 집에 한달 있다가 며느리가 왜 또 우리 집에 한달 이상 있냐고 봇다리 싸서 셋째 아들 집으로 갑니다. 이래서 빙글 빙글 도는 부모를 보게 될 때에 얼마나 비참하고 불쌍한지 모릅니다. 미혼 여성들의 93%가 시부모를 모시기 싫다고 응답했습니다. 5월 7일 동아 일보에 발표된 것을 보니깐 남성의 대부분은 모시고 산다는 사람이 16% 밖에 안됩니다. 그 아들들을 보고 왜 부모를 원치 않냐고 물으니깐 부모를 모시고 있으면 아내가 불평하게 생각하고 아내가 불평을 말하기 때문에 마누라 겁이 나서 부모를 모실 수가 없다 그 젊은 여성보고 왜 부모를 모시지 않냐고 하니깐 부모를 모시면 부자연스럽고 심신이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일신상 행복과 자유만 누리기를 원하고 부모를 돌보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자녀를 길러서 분가 독립시키고 난 다음 노인들이 올 때 갈 때가 없어요.
성경에는 디모데전서 5장 4절에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자녀들이 부모가 베푼 은혜에 보답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가 뭐냐 그렇게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낳아서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이며 손발이 다닳도록 수고해서 길러준 것 만해도 큰 은혜인 것입니다. 금 덩어리나 은 덩어리를 못 줬다고 은혜를 안 받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대단한 오해인 것입니다.
사람이 몸이 늙으면 마음도 약해지고 설움을 잘 탑니다. 저도 옛날에 젊을 때는 노인들이 약간만 말하면 삐치고 눈물을 잘 흘리는 것을 보고 왜 저렇게 마음이 약해졌냐 하고 생각했는데 내가 요사이 늙어 지니깐 조그만 잘못하면 마음에 섭섭이가 들어와요.
그러고 마음이 약해서 눈물이 잘나고 그러면 자녀들이 그 부모들이 심신이 약해졌다는 것을 알고 그 이해하고 동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11시 예배 영산효행상을 시상하는데 거기에 보면 남편과 사별한지 40년 동안 온갖 고생하면 자녀 키우고 50년 간 시부모를 모신 분이 있습니다. 50년 간 시부모를 모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상을 드려야 합니다. 또 그렇지 않으면 뇌졸중 아내가 10년 동안 꼼짝을 못하는데 그 남편이 대소변 다 받아 내며 아내를 수발하고도 눈물을 흘리면서 아내에게 잘 못해준 내 마음이 너무나 괴롭다고 하는 그런 좋은 남편도 있습니다. 그 분도 우리가 오늘 표창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절로 3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하나님께서 부모 섬기는 자에게는 땅에서 잘되게 하고 장수하게 하겠다고 약속을 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얼마나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섯째로 자녀들이 형제 우애하고 사는 것이 부모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부모에게는 모든 자녀가 다 자기 혈육이기 때문에 밉고 고운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근본적인 사랑은 같습니다. 착하게 잘 살면 더 사랑스럽게 못되게 굴면 좀 마음에 밉지요, 그러나 근본적인 마음의 자녀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고 똑같은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들을 키울 때 한가지 해야할 것은 자녀의 질서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자가 못났다고 해서 쥐어 박아 버리고 차녀나 그 이외를 높여 놓으면 가정의 질서가 엉망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못나도 장자는 장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에 질서를 지켜 주어야 그 가정에 화목이 있지. 가정에 질서를 무너뜨려 버리면 그 다음에는 가정에는 질서가 없어지고 엉망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녀들을 기를 때에 순서를 분명히 지켜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44년 동안 목회하면서 보니깐 언제나 은혜는 손위에서 밑으로 내려가지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법은 별로 없습니다. 맏이가 언제나 형제들에게 나누어주고 도와 주고 돌봐주는 일을 보았지 그 다음에 밑에 아래서 위로 맏이를 도와 주는 것은 거의 못 보았습니다. 형은 아우를 사랑하고 아우들은 형을 공경하도록 그렇게 부모가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서 17장 17절에 "친구(親舊)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危急)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 평소에는 물고 찢고 싸우는 일이 있을 지는 몰라도 위급한 일을 당하면 그래도 형제는 피를 나누었기 때문에 도움이 될 수가 있습니다. 부모는 형제간의 사랑과 화목이 있을 때에 가장 마음에 안심이 됩니다.
잠언서 17장 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마을에 아주 의좋은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비록 가난해도 부지런하고 심성이 착해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논을 같이 경작을 했는데 가을에 벼농사를 지어서 수확을 해서 형과 아우가 똑같이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수확을 끝마치고 벼를 쌓아 놓았는데 형이 가만히 밤에 생각하니깐 아우는 이제 결혼해서 사는데 젊은 사람이니깐 씀씀이가 많지 않겠는가 그러니 아무래도 처음 살림이 시작했으니깐 돈이 더 필요 할 것이다. 그래서 형이 일어나서 밤에 벼 한가마니를 걸머지고 몰래 아우 집에 찾아 가서 아우의 벼더미에 얻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아우는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깐 똑같이 나누었지만 형은 식구가 많지 않으냐 나이도 많고 식구도 많으니 더 씀씀이가 많을 것이라 밤에 일어나서 벼를 한썸 걸머지고 형의 창고에 갔다 놓았습니다. 아침에 형제간이 일어나서 벼가마를 세워 놓으니 똑같단 말입니다. 이 참 이상하다 어제 분명히 내가 걸머지고 갔다 주었는데 꿈을 꾸웠나 그래서 그 이튿날 형은 또 한가마니를 걸머지고 아주 집에 갔다주고 아우는 그 한가마리를 갔다 주고 형의 집에 갔다주었습니다. 깨고 나면 같고 깨고 나면 같습니다. 그런 어느 달이 밝은 날 형이 벼가마니를 걸머지고 가고 아우도 벼가마니를 들고 가다가 길에 둘이 만났습니다.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둘이 벼가마니를 두고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이 형제의 우애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그런데 대개 보면 부모 상속이 생기면 형제간에 좋다가도 철천지 원수가 되어요. 서로 형이 많이 가져간다 아우가 많이 가져간다. 그런데 전라남도 장성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황금제라는 전설이 있는데 옛날 이 고개에 마음씨 착하고 의좋은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함께 고개길을 건너가다가 동생이 돌맹이 만한 금덩어리를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 동생이 금덩어리를 들고 너무나 기뻐하니깐 형도 같이 기뻐 했으나 조금 있다고 서로 처다보니깐 형의 눈길도 달라지고 동생의 눈길도 달라졌습니다. 형이 생각하기를 저놈만 없었으면 그 금덩어리가 내 것이 될 것인데 동생은 형만 없었으면 내가 안심하고 이 금을 누릴 것인데 형이 보아서 욕심을 부리니깐 마음이 괴롭다. 둘이 그렇게 의좋은 형제가 욕심이 들어오니깐 미운 생각이 들었는데 그들이 길을 가다가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형이 동을 보고 말하기를 여보게나 그 황금 덩어리 강물에 던져 버리라 그러니 동생이 형의 말이 옳아 내가 이 황금 덩어리를 쥐기 전에는 형을 사랑하고 존경했는데 황금 덩어리를 쥐고 보니깐 형의 눈치도 달라지고 내 마음도 달라져도 형이 미워지더라 그래서 그 황금 덩어리를 물에 던져 빠뜨리고 난 다음 그렇게 형과 아우의 인정이 새로워져서 황금보다 더 귀한 우정을 가졌다 그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형제 우애는 형제간만 좋은 것이 아니라 형제가 서로 사랑하여 동거하는 것을 부모님의 보면 너무나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의 그림자인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것의 조그마한 그림자입니다. 하나님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수천배 수만배 수억만배를 사랑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부모의 부모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기에 아들을 보내서 십자가에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죄사함을 주시고 믿고 구원의 얻게 하셨을까요? 우리 부모들이 자식의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 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고 요한 3서 1장 2절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1절로 5절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恩澤)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破滅)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한 것같이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향한 뜻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8장 14절로 16절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 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뜻은 마침내 우리를 깨뜨리고 회개시키고 겸비하고 순종하고 복종하게 만든 다음에 복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소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잘못되게 해 주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오늘 어버이 날에 어버이와 자식에 대한 간절한 소원을 자식들이 알고 또 자식과 자식들이 알고 어버이를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며 어버이를 잘 모시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길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달다 어찌하라 평생에 고쳐 못 할 일 이뿐인가 하노라' 라는 옛 시인의 말이 있습니다. 세월은 신속히 흘러가고 어버이는 세상 뜨고 또 자기도 백발이 성성하게 되어 세상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버이를 잘 섬기면 내 자식들이 그것을 보고 나를 잘 섬겨 줄 것입니다. 그 후 자손이 또 그를 섬길 것입니다. 좋은 모범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아무리 세상이 현대화되고 삶이 각박해졌다고 할지라도 부모와 자식간의 천륜을 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천륜이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이 사랑하기 때문에 성경은 부모들이여 자식을 사랑하라는 말은 한 구절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자식들을 보고 내 부모를 사랑하라는 말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면 자식은 천륜으로 부모를 사랑한 것도 있겠지만 그러나 의지로 마음에 결심하고 사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감정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시 순간적으로 마음에 작정을 하고 의지로 결심하고 사랑하는 참된 사랑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사랑
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사랑하고 그런 감정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사랑 안한다고 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감정이 안생긴다 할지라도 마음에 결심을 하고 작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진실한 사랑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이 부모 자식 모두에게 있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요사이 우리 사회에 부모 자식간에 사랑과 효가 행해지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사회가 각박하고 냉정해 짐으로 부모 자식의 사이에도 냉정하고 각박하게 되어 가고 있으므로 이 세상에 슬픔이 많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꼭 어버이 주일이라고 해서 자식 사랑 부모 사랑을 논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속에 늘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해 주신 것을 기억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사랑하고 받들어 다하는 효를 행함과 동시에 우
리 부모의 사랑에 대해서 효를 다하는 우리들이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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