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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안식

요한계시 서창근 목사............... 조회 수 1826 추천 수 0 2008.04.21 09: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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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계2:1-2 
설교자 : 서창근 목사 
참고 : 새길교회 

여름휴가의 계절이 되면 모두가 바쁘게 여행을 떠나려고 준비합니다. 진정한 휴식을 위해서 우리는 먼저 성서가 주는 안식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여야 합니다.
전통적인 기독교는 쉬는 하나님, 잔치를 벌리는 하나님, 창조를 기뻐하며 쉼을 통해 창조의 완성과 영광의 목적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소홀히 생각하고 지내왔습니다. "나도 일하니 너희도 일하라"라고 노동과 창조의 동역자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은 동시에 안식일을 창조하시고 '창조의 잔치'에 우리를 초청하시며, 노동의 시간과 삶의 시간을 중단시킬 뿐 아니라 창조의 완전성에로의 회복을 일깨워줍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은 안식일에 창조가 완성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창조의 안식은 창조의 질서에 속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서의 본문은, 창세기 1장의 결론이며 1장과 2장의 본문을 연결시키는 도입부로서, 하나님께서 창조사역 후 일곱째 날에 복을 주시고 안식하심으로서 6일간에 걸친 창조사역을 완성시킨 것을 담고 있습니다. 이 안식의 창조는 하나님의 창조로서 세계를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알리려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항상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자연은 시간과 순환의 리듬을 알고 있지만, 쉬는 안식은 시간과 역사 속에 계시는 하나님의 의도적인 창조인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태초에 행동으로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인간보다 먼저 노동을 하셨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행동적 노동은 아름다운 창조의 행위이며 신성한 것입니다. 이에 대조되는 안식은, 또 다른 의미에서 깊은 의미가 있는데, 곧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면류관입니다. 안식일을 명령으로 주신 것은 창조하신 사역 위에 휴식을 통해 그의 사역에 동참하라는 명령이며, 온갖 피조물이 서로 존재를 확인하며 친교를 가지는 때 하나님의 영광과 피조물들의 기쁨이 안식을 통해서 확인되는 완성의 날이 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창조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축제가 배제된 창조는 기계적 노동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안식을 허락하시고, 제7일을 안식일로 정하시어 축복을 주시고,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이 창조의 뜻을 통하여 우리는 안식일의 평화의 현대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삶 이해의 다원주의적 태도입니다. 계몽주의 '근대정신'으로 대변되는 삶에 대한 견해는 이성에 근거한 합리성으로 대변되곤 합니다. 물론 이러한 형식적 이성주의 반동으로 낭만주의적 색조가 추가되었지만, 근대정신의 핵심은 하나의 중심주의적이며 모든 진실과 내용적 핵심을 하나로 엮어내야만 하는 합리적 획일주의가 숨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행동적이며, 구체적이며, 시간적으로 보여지는 하나님은 안식일을 창조하셨으며 공간적 환경을 창조하셨고 영혼성뿐 아니라 신체성도 창조하셨다는 창조의 다양성을 우리는 소홀히 생각해왔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면서도 삶의 다양한 차원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 삶 이해의 변증법적 태도입니다. 전통적인 기독교는 개념적으로 창조와 구원, 자연과 초자연, 자유와 운명(필연성) 등 대립적으로 분류하기를 선호했습니다. 하나의 극단적인 부정은 십자군적 정신으로 보여지며 크게 호응 받는 가치가 되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것처럼 행동과 휴식은 상호간 부정이 아니라 다양한 관계의 일면으로 보아야 하며 두 가지 면들의 하나의 동일한 과정과 상호보완적 측면에서 공동된 제3의 것을 찾아야만 더 정확하게 인식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의 원천으로 생기 있게 하는 활동과 행동들은 오히려 대립적으로 보여지는 활동과 휴식의 대립 관계에서 창조하는 활동, 보존하는 활동, 쇄신(변화)하는 활동, 완성하는 활동으로 변증법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믿음과 삶을 이해하면서 객관주의나 주관주의를 넘어서는 변증법 종합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 왔습니다.

셋째, 삶 이해의 과정적 태도입니다. 노동과 안식이 대립이 아닌 것처럼, 행동과 명상(관조)은 대립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세계의 창조는 여섯째 날에 끝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끝마친 창조에 있어서 아직도 모자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창조의 '완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휴식'이었습니다. 그것은 휴식을 통한 완성입니다. 하나님의 휴식으로 볼 때 일곱째 날에 축복과 성화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노동은 안식의 성화를 통해서 완성된 것입니다. 그의 창조에 대한 기쁨은 자신의 사역과 더불은 휴식이며, 이 사역에서 하나님의 현재적 임재의 휴식입니다. 이 날을 축복하시며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창조의 사역과 하나님 자신과의 영광과 목적이 함께 어우러지는 상호침투적 순환의 의존관계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과정적 이해는 이러한 상호침투적 순환의 의존 관계적 이해를 뜻합니다.

이제 휴가의 준비에 앞서서 기독교 신앙이 주는 평화적 휴식의 의미는 크고 깊습니다. 노동의 시간과 삶의 시간을 의도적으로 중단시키며 자신을 넘어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하나님의 근원적 관계를 살피면서 하나님께서 '메시아의 나라와 의의 나라'를 회복시키려는 샬롬의 현재적 실체를 이론의 지혜가 아니라 경험적 지혜로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지혜는 윤리적이며 동시에 명상과 관조의 세계가 필요한 신비적 수련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지나친 활동주의자들은 결국은 지배를 위해서 생각하고, 그 결과 자연을 지배하고 소유하려는 일방적 생각으로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안식과 휴식을 통해서 사랑하고 섬김을 배우는 계절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창조의 완성으로, 안식이 필요했던 아니 창조를 안식으로 완성하셨던 깊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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