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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요한계시 이한규 목사............... 조회 수 1757 추천 수 0 2008.12.23 16:4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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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계2:8-11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20060528 

제목: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본문:요한계시록 2장 8-11절

< 고난 중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

1914년 12월 어느 날 밤, 미국 뉴저지에 있는 토마스 에디슨 공장에 불이 났습니다. 그날 밤, 2백만 불의 재산피해가 났고, 에디슨의 평생 연구 업적이 하룻밤에 날아갔습니다. 그 일로 에디슨의 아들 찰스 에디슨(Charles Edison)은 불타버린 공장보다 67세의 아버지가 너무 낙심해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몹시 염려했습니다. 곧 찰스는 불타는 공장 앞에 서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에디슨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찰스! 네 어머니 어디 계시냐? 빨리 모시고 와라. 이런 불구경을 할 기회가 별로 없을 거야.” 그날 밤 그들은 함께 신나게 불구경을 한 후에 다음 날 에디슨은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화재는 내 실수를 태운 것일 뿐이야.” 그리고 그 화재 후 3개월 만에 축음기를 발명했습니다. 에디슨은 절망적 사건으로 절망하지 않고 고난을 믿음으로 극복해 더욱 위대한 발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의 고난에는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감해주시려고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래도 우리에게 고난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있다는 뜻입니다. 성도의 고난은 우리의 성숙과 진급을 위해 필요한 시험지이고, 영적인 헬스를 하는 과정입니다.

고난은 교만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습니다. 고난은 우리의 잘못된 자아를 무너뜨리고 하나님만 바라보게 합니다. 고난은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려는 하나님의 뜻이 담긴 선물이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가 여전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내가 처한 환경에 내게 최선의 환경임을 잊지 말고 고난 중에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그때 믿음을 보여주고, 기쁨과 감사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 고난을 당할 때 가져야 할 자세 >

오늘 본문에는 주님께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주시는 말씀 중 두 번째로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하신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서 가장 고난이 심한 교회였지만 고난 중에서도 믿음을 지켜서 가장 복된 교회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고난을 당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몇 가지 교훈을 줍니다.

1. 하나님의 선한 뜻을 신뢰해야 합니다.

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이 구절을 보면 “주님께서 아신다”라는 말씀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너를 아신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너를 사랑하신다”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본문 9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서머나 교회를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때로 우리가 고난을 당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까지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 보니까 주님의 십자가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었습니다. 그처럼 우리도 힘들 때마다 먼저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선한 뜻과 사랑을 신뢰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저는 가끔 이런 장난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한눈팔지 말라는 의미로 아이들이 안볼 때 잽싸게 은폐물 뒤로 숨습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없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그 경우에는 은혜와 한나의 반응이 다릅니다. 한나는 불안한 표정을 하고 두리번거립니다. 반면에 은혜는 멍한 상태가 되어서 눈에 초점이 흐려집니다.

그런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면 안쓰럽습니다. 게다가 엄마 아빠를 찾겠다고 엉뚱한 방향으로 가서 여기저기 헤매는 모습을 보면 더 마음이 아픕니다. “이제 한눈팔지 말고 엄마 아빠를 꼭 따라다니라”는 의미에서 그런 장난을 하지만 너무 심하면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아서 1분쯤 되면 다시 아이들에게 나타나 아이들을 꼭 안아줍니다. 그렇게 안아주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겠구나!”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하나님은 잠시 우리를 버린 것 같지만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잠깐 떠난 것처럼 행동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자꾸만 한눈을 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선한 뜻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자포자기하는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고난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난과 실패를 모르고 살아온 사람은 지혜도 없고, 남에게 해줄 말고 없고, 삶도 무미건조하고, 결국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반면서 고난과 실패를 많이 겪어본 분은 남에게 해줄 말도 많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을 잃은 한 젊은 여성이 목사님에게 찾아와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제 어떻게 살지요?” 목사님이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다가 결국 한 마디 했습니다. “어떡하긴요. 기도하며 살아야죠.” 그러자 젊은 과부가 답답하다는 듯이 “목사님은 제 심정을 너무 몰라요.”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도 그 심정을 잘 알 수 없어서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무슨 말로 그녀를 위로할까 고민하다가 일찍이 남편을 잃은 한 여자 집사님을 급히 불렀습니다. 그러자 그 집사님이 급히 와서 젊은 여성을 위로했습니다. “자매님! 혼자 살아도 살만 해요. 용기를 내세요.” 그 말을 듣고 그 여성이 위로받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고난과 실패를 겪어본 사람은 해줄 말이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자산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어떤 고난이 있어도 기죽지 말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필요로 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생명이 있는 이유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필요로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이 있어도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대개 완벽하게 갖춘 사람보다 고난 중에 낮아진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릅니다. 사람은 보이는 것에 좌우됩니다. 사람은 배우자를 고를 때도 “어떤 사람이냐?”를 보기 전에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를 먼저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이 있느냐?”를 보십니다. 우리가 힘든 중에도 믿음 잃지 않으면 우리는 누구보다 멋지게 쓰임 받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2. 우리 자신의 실상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한번 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왜 하나님께서 서머나 교인들에게 고난이 있어도 “실상은 너희들이 부요한 자이다”라고 말씀하십니까? 환난 중에도 믿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믿음이 있는 자는 가장 부요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일마다 예배에 나오는 우리는 어떤 부자나 권력자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라는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부자가 되기보다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3장에서 주님께서는 일곱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를 하는데, 각각의 내용과 어조와 분위기가 크게 차이가 납니다. 일곱 교회 중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는 책망만 받았고, 에베소 교회와 버가모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는 칭찬과 책망을 같이 받았고, 빌라델비아 교회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서머나 교회는 칭찬만 받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머나 교회는 결코 불행한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 교회는 고난이 많았지만 그래도 주님께서 칭찬하신 복된 교회였습니다. 그것이 서머나 교회의 실상입니다. 그처럼 우리가 주님 안에 있으면 우리는 이미 누구보다 복된 존재이고, 환난과 궁핍도 오히려 영적인 부요함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의 삶을 보십시오. 그는 주님을 위해서 죽도록 충성했지만 고난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병도 많았습니다. 백내장이 있었고, 일설에 의하면 간질병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병과 가시를 없애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응답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약함 속에서도 자신의 사명을 잃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복된 존재라는 실상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고난 받는 자들이 더 복된 자입니다. 일찍이 고난을 당해본 사람이 더 겸손히 허리를 숙이고, 더 감사를 많이 하고, 더 헌신하고, 더 지혜롭고, 더 남을 이해하는 것을 봅니다. 또한 고난 중에 있으면 기도도 진실한 기도가 나옵니다. 반면에 아무 문제가 없고 모든 것이 형통하면 감사를 잃어버리고, 마음이 높아지고, 기도와 신앙을 잃어버리고, 더 좋은 것을 뺏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고난보다 더 무서운 것이 유혹입니다.

어느 날, 한 마귀 대장이 귀신들과 기독교 말살 방법을 논의했습니다. 먼저 마귀 대장이 성도들을 비참하게 죽이자고 제의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귀신이 말했습니다. “대장님! 그들은 순교자를 추앙하기 때문에 그러면 역효과가 납니다. 죽이지는 말고 잔인하게 고문을 합시다.” 그때 다른 귀신이 말했습니다. “고문도 안 됩니다. 그들은 고문을 받으면 십자가 고난에 동참해서 하늘의 상급이 많아진다고 기뻐합니다.”

그때 한 노련한 귀신이 말했습니다. “대장!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들이 잘 놀고 잘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줍시다. 그러면 기독교는 점차 힘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그 얘기를 듣고 모든 귀신들이 탄복하면서 소유와 쾌락으로 성도들을 유혹하자고 결의했다고 합니다.

성도에게 정말 무서운 것은 고난이 아니고 유혹입니다. 고난과 실패는 하나님의 저주가 아닙니다. 오히려 죄를 짓고 사명을 망각하고 있는데 잘 되는 것이 저주입니다. 이제는 환난이 없고 주님의 책망을 받으며 사는 것보다는 환난이 있어도 주님의 칭찬을 받으며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며 살고, 진실하지 못하게 잘사는 것보다는 조금 고난이 있어도 진실하게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3.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이 구절에서 ‘10일 동안’이란 말은 성경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입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그 구절에 대해 “서머나 교회는 주후 100년부터 313년까지 있었던 환난 시대의 교회를 상징하는데, 그 기간 중에 있었던 10명의 로마 황제로부터 핍박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여러 가지 해석도 할 수 있겠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10일 동안’이란 말이 고난은 한시적인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과 고난을 만나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난은 짧고 영광은 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양적으로 그렇습니다. 고난의 강도가 하나라면 상급은 열이 될 것이며, 고난의 강도가 열이라면 상급은 백이 될 것입니다.

또한 이 ‘10일 동안’이란 말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시험을 통제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시험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험을 주실 때는 항상 감당할만한 시험을 주시고, 피할 길도 함께 주십니다.

모든 고난은 하나님의 통제와 허락 하에 주어지는 것이고, 항상 한시적이며, 고난 후에는 반드시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무 현실만 보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에게는 현재의 축복도 있지만 미래의 축복이 언제나 더 강합니다. 그래서 오늘 고난과 실패가 있어도 미래를 소유한 사람으로서 고난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새벽에 잠깐 눈을 붙였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밤에 어느 길을 가는데 길이 7-8미터쯤 되는 나무가 갑자기 거대한 뱀처럼 되어 스르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 괴물이 저를 붙잡고 죄려고 할 때 제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너를 나를 어떻게 하지 못해! 썩 물러가라!”라고 생각을 하자 그 나무가 흐물흐물 녹아져 내렸습니다. 그 다음에 길을 가는데 더 자신감이 생기는 것을 느꼈습니다.

고난에 두려워하면 더 당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맞서면 그 고난은 녹아져 내릴 것입니다. 그처럼 고난을 잘 극복하면 반드시 유익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 프랜시스는 고난의 의미와 축복을 알고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님! 제가 죽기 전에 두 가지 은총을 내려주소서! 첫째, 저의 영혼과 육체가 십자가의 고난을 맛보게 하소서. 둘째, 주님이 죄인들을 위해 가졌던 그 불타는 사랑을 저도 가지게 하소서.”

그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임종할 때는 마음에 기쁨이 넘쳐서 크게 찬송하니까 한 수도사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지금 창밖에 많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조금 엄숙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프랜시스가 말합니다. “주책을 떨어 미안하네. 주님 만날 생각을 하니 너무 기뻐서 그랬네.” 그는 죽는 순간까지 넘치는 기쁨으로 살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떤 고난이 있어도 기쁨과 감사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에는 어차피 고난이 있습니다. 그런 고난을 이기고 전진해 나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헬렌 켈러를 키운 앤 설리반 선생님은 늘 이렇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헬렌! 시작하고 실패하는 것을 계속해야 돼. 그러면 실패해도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을 얻게 될 거야.” 우리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고난을 유용한 친구로 삼고, 든든한 발판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4. 고난 중에도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본문 10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이 문장에서 “죽도록 충성하면 하나님의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다”는 말은 죽는 길이 사는 길이라는 말입니다. 그처럼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사는 길이 생깁니다. 우리가 충성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은혜를 주시고, 더 나아가 고난 중에도 죽도록 충성하면 더욱 크신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 말씀의 원리대로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면 가끔 인정이 없다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살기도 어려운데 주일성수를 하라고 하고, 새벽기도까지 하라고 하면 너무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성도들에게 “힘들지 않을 만큼만 하시고 적당해 하세요.”라고 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든 죽도록 해서 죽는 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죽지 않을 만큼 적당히 하려다가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도록 하면 거기에서 사는 길이 열립니다. 반면에 적당히 하면 사는 길이 닫힙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죽도록 해야지 적당히 해서는 안 됩니다. 서머나 교회는 죽도록 충성했기에 가장 오래 살아남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서머나 교회는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 지금까지 존재하는 유일한 교회입니다. 요새도 성지 순례를 가면 서머나 지역에 계시록 당시의 그 서머나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또한 서머나 교회는 위대한 신앙인들을 많이 배출했습니다. 주후 155년에 불에 타서 순교한 폴리캅이 바로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 교회 성도들이 폴리캅을 구하려고 사정했습니다. “감독님! 제발 이번 한 번만 주님을 부인하시고 나중을 기약하세요.” 그러나 그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주님은 지난 86년 동안 나를 한 번도 부인하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한 번이라도 주님을 부인할 수 있느냐?” 결국 그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처럼 죽도록 충성할 때 영원히 사는 길이 열리고,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입니다.

5.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본문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고난이 있어도 믿음을 잃지 않으면 고난을 이길 수 있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믿음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있어도 불안하고, 믿음이 있으면 없어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평소 3등 하던 아이가 실수를 많이 해서 5등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좋은데 그 집착이 너무 지나쳐 다음에 시험 칠 때 “이번에도 또 실수하면 어떻게 하나?”고 하면서 더 긴장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음 시험에는 더 실수를 해서 등수가 더 뒤로 밀렸습니다. 그러다가 “본고사 때도 그러면 어떻게 하나?”하고 노이로제가 걸렸습니다. 그런 식으로 정신이 병든 학생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불안이 문제입니다. 사람의 가장 큰 실패 요인은 불안입니다. 그런데 가장 치명적인 불안은 어디서 옵니까? 바로 불신에서 옵니다. 사람에게 믿음이 있으면 절대 불안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어도 불편은 있지만 적어도 불안은 없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안 믿어도 편안은 있지만 참 평안은 없습니다.

성도의 축복은 편안(便安)의 복이 아니라 평안(平安)의 복입니다. 잘 믿어도 고난은 있을 수 있고 잠깐 불편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며, 편안한 잠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중에도 믿음으로 “내 영혼은 늘 편하다”라는 찬송 고백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 찬양이 고난을 잠재웁니다.

또한 고난 중에 더욱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 감사가 환경을 이기게 만듭니다. 슬픔이 있으면 더욱 기뻐해야 합니다. 그러면 슬픔이 곧 기쁨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처럼 내 마음과 생각에서 미리 축복된 길을 열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런 환경이 펼쳐집니다.

희랍신화를 보면 한 섬에 사이렌(Siren)이라는 여신이 있습니다. 그 여신은 배가 섬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환상적인 노래로 배를 침몰시켜서 오디세우스(Odysseus)는 뱃사공들의 귀를 틀어막아 겨우 그 섬을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오르페우스(Orpheus)라는 노래하는 신은 자기가 탄 배의 뱃사공들을 위해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그러자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도 뱃사공들은 오르페우스의 노래를 들으며 가볍게 그 섬을 지나갔습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우리를 낙심시키는 사이렌 소리들이 들립니다. 그때 우리는 귀를 거룩하게 만들어 좋은 소리만 듣고, 서로 좋은 소리를 해주고,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믿음의 길에서 결코 후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고난을 이기고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 고난은 축복의 예고편입니다 >

미국 알래스카 대학 교수로 계시는 김춘근 장로님의 간증집 “와이 미(Why me?)”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분은 단돈 2백 불을 들고 유학 가서 30대 초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미국 대학 교수가 되고, 4년 만에 최우수 교수로 뽑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에게 갑자기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간경화로 사형선고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는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Why me?”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왜 제게 이런 불행이 와야 합니까?”라는 질문입니다. 나름대로 정직하게 살았고, 신앙생활도 잘한 편이었는데 그런 불행이 온 것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더 기도하다가 자신의 숨은 죄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교만의 죄를 비롯해 너무 많은 죄가 생각나서 그분은 울면서 그 모든 죄들을 회개했습니다.

얼마 후, 하나님께서 치유의 역사를 허락하셨습니다. 그 다음부터 그분은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해서 사람들은 그를 ‘알래스카의 요셉’이라고 불렀고, JAMA(Jesus Awakening Movement for America)라는 신앙과 도덕성 회복 운동을 통해 수많은 청년들을 변화시켰습니다. 그 운동을 하면서 그는 다시 한번 “Why me?”라고 부르짖습니다. 그 의미는 “왜 저 같은 부족한 죄인을 이렇게 써주십니까?”라는 감사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서도 믿음과 감사와 충성을 잃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고 보면 고난도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성도의 고난은 축복의 예고편입니다. 정신과 의사인 칼 융(C. Jung)은 슬픈 일을 당한 친구들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자! 축배를 드세! 이제 곧 좋은 일이 생길 거야.” 그리고 좋은 일을 만난 친구들에게는 말했습니다. “이제 곧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어. 그런 어려움이 없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거야.”

그처럼 인생은 끝없이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얽혀져서 진행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일을 만났을 때는 곧 다가올 나쁜 일을 예상하고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하고, 나쁜 일을 만났을 때는 곧 다가올 좋은 일에 소망을 두고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어떤 고난이 있어도 흔들리지 말고 놀라지 마십시오. 곧 그 어려움은 지나갑니다. 고난 중에 믿음을 잃지 않고 죽도록 충성하고 봉사하고 헌신하면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다 잃어버려도 하나님 한분으로 족한 줄 아는 신앙을 가지면 우리는 결코 부족함이 없게 될 것입니다. 항상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기쁨과 감사 가운데 사는 복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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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52 로마서 참 소망 [1] 롬5:2-4  강종수 목사  2008-12-21 2487
16851 누가복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 눅6:37-38  이한규 목사  2008-12-23 2014
16850 열왕기상 끝까지 남은 자의 축복 왕상19:15-18  이한규 목사  2008-12-23 2731
16849 로마서 아브라함의 3대 복된 믿음 롬22:1-19  이한규 목사  2008-12-23 2177
16848 누가복음 삭개오가 축복받은 이유 눅19:1-10  이한규 목사  2008-12-23 3012
16847 야고보서 입술을 잘 지키십시오 약3:1-6  이한규 목사  2008-12-23 1946
16846 사도행전 성령 충만을 받으셨습니까? 행19:1-7  이한규 목사  2008-12-23 2165
16845 누가복음 용서의 능력과 축복 눅23:32-43  이한규 목사  2008-12-23 2074
16844 요한복음 막달라 마리아의 복된 신앙 요20:1-18  이한규 목사  2008-12-23 2021
16843 골로새서 성공적인 자녀교육 골3:21  이한규 목사  2008-12-23 1870
16842 골로새서 효도와 헌신의 축복 골3:20  이한규 목사  2008-12-23 1856
» 요한계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계2:8-11  이한규 목사  2008-12-23 1757
16840 시편 네 입을 넓게 열라 시81:8-16  이한규 목사  2008-12-23 3198
16839 히브리서 말씀의 능력과 위대성 히4:12-13  이한규 목사  2008-12-23 2472
16838 잠언 마음지수를 높이는 방법 잠23:15-18  이한규 목사  2008-12-23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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