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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한태완............... 조회 수 3101 추천 수 0 2007.11.02 19: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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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5:21-24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http://je333.com 
중세 시대에 시므온이란 사람은 나무 위에 올라가 살았다고 해서 "주상성자 시므온"이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아마도 나무 위에 원두막처럼 처소를 만들어 놓고 거기서 묵상하고 기도하며 경건생활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의 생활을 다른 말로는 "금욕주의 경건"이라고 합니다.
일체의 육체의 욕망을 배제하고 오로지 영적인 생활에만 전념하는 것, 그것을 금욕주의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시므온의 그런 생활을 영성이나 혹은 경건의 최상으로 보는 사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시므온의 그런 생활을 영성이나 경건이라고 한다면 에녹의 생활은 어떻게 표현해야 될까요? 에녹은 "3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니"말입니다. 자녀를 낳는 것은 육적인 생활이고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영적인 생활인데 이 둘이 어찌 상치되지 않겠습니까? 참다운 영성이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도 자녀를 낳는 것이고 자녀를 낳으면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19-20)

저는 어릴 때 할머니와 살면서 할머니를 따라 5일마다 열리는 읍내 장터에 가는 것을 참으로 좋아했습니다. 5㎞쯤 떨어진 곳을 산을 넘고 해변을 걸어서 다녀옵니다. 할머니는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빠른 걸음으로 재촉하곤 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닷가에서 혼자 장난을 치며 놀다가 문득 할머니를 바라보면 할머니는 이미 저만치 가 계셨습니다. 저는 할머니를 따라잡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해 달리곤 하였습니다. 제가 달려가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도 이와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따라와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 동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야곱이 임종을 맞으면서 자녀들을 축복합니다. 축복의 내용을 보면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설명합니다.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시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여기 섬기다라는 단어는 동행하다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이 하나님을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동행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열심히 따라가는 것입니다. 야곱의 조상들이 그렇게 하였다는 겁니다. 때로는 잘못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깨닫고 다시 열심히 하나님을 따라가는 행위가 동행입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생존하려고 했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생존하려 하였던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깊이 뉘우치고 베델에서 제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한 자녀인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로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달려 갔습니다. 이것이 동행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여야 합니다. 때로는 다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깨닫고 하나님께 달려가면 되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걸어간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비행사가 비행 전에 먼저 비행스케줄을 잡습니다. 기류 때문에 그 스케줄이 조금 변경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목적지에 안착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생 행로에서 약간 비틀 거릴 수 있고 일시적으로 길을 잘못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깨닫고 하나님을 따라잡기 위해 달려 간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성경은 아름다운 동행자에 대한 얘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동행이란 단어 때문에 유명한 이가 에녹입니다. 에녹은 성경에서 아주 짧게 기록돼 있는데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동행이라는 말 때문에 에녹은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동행할 수 있는 분 가운데서 가장 좋은 분이 있습니다. 그분과 동행하면 분명히 복을 받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과 에녹의 동행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에녹에 대한 기록에서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징이 눈에 띕니다. 에녹의 죽음에 대한 표현입니다. 성경은 에녹이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5장의 에녹이 포함된 족보에서 누가 누구를 낳고 몇 살까지 살다가 죽었다는 표현이 공통적이었지만 에녹은 예외였습니다. 에녹의 죽음을 말할 때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에녹을 너무너무 좋아하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데려가셨던 건 아닐까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할 수만 있으면 사랑 받는 자가 됩시다. 그러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경우라면 성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한 노인과 그의 아들이 당나귀를 팔려고 시장에 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마을을 지날 때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 어리석은 부자를 보게. 당나귀를 타고 가면 될 걸 고생을 하고 있네.” 그 말이 옳다 생각되어 아버지가 당나귀 등에 타고 갔습니다. 두 번째 마을을 가니 또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 못된 아비를 봤나. 어린 아들을 고생시키고 자기만 편히 가네.” 그래서 둘은 당나귀를 타고 갔습니다. 또 어느 마을을 지나자 사람들이 쑥덕거립니다. “저 게으른 부자를 보게. 둘 다 어린 당나귀에 탔으니 등뼈 부러지겠네. 아이고 당나귀 불쌍해라.”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은 당나귀를 장대에 묶어 어깨에 메고 갑니다. 냇가를 지날 때 당나귀가 발버둥을 치자 그만 장대가 부러지고 당나귀는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무슨 일이든 비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비판의 소리를 모두 들을 수는 없습니다. 신앙적인 주관을 가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만이 바른 삶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처럼 살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에 이런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가족과 이웃들과 동행하며 기쁨과 아름다움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기도: 언제나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 내게 있는 모든 일을 주님과 함께하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나를 통해 하나님이 증거되기 원하오니 주님의 생각을 분변하며 순종하게 하소서. 또한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언제나 나와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을 믿사오니 항상 흔들림 없는 임마누엘의 신앙 속에 살아가게 해주시옵소서.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주와 동행하며 어떤 환경에서도 그리스도인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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